소설리스트

〈 101화 〉 [미리네3 (4)] (101/112)

〈 101화 〉 [미리네3 (4)]

* * *

"라나, 멈춰."

­"네? 하지만! 저 녀석은 파편을 지니고 있어요! 확실해요!"

"아니, 최소한 평범한 파편은 아니야. 이 힘은..."

흘끔, 하얀을 바라보았다.

검은 공간에서 오늘의 숙제를 하고 있는 하얀, 최근 친구들이 생긴 덕분인지 부쩍 기분이 좋아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런 하얀을 보고 나면, 역시 그 화면속에 나오고 있는 힘은..

"아무튼 섞여 있는 힘이야, 미리네에게 맡기자."

섞여 있다.

죽인다고 해결될 것은 아니다.

굳이 방법을 말하면 양도 받는것이 정상적인 방법이겠지.

파편의 회수방법은 크게 두가지. 파편을 지닌 상대를 죽이거나, 파편을 지닌 상대가 힘을 완전한 패배를 느끼거나 하는 두가지 정도.

그중에서 완전한 패배를 느끼게 하여 파편을 양도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당장은 건들지 않는게 좋다.

죽이면 잘못될 가능성이 높아, 폭주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엔..

'하얀이 찾는 친구중 한명의 영혼이 소멸되겠지..'

어떤 영혼인지는 몰라도, 하얀에게 약속했던 '친구들의 영혼'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라나를 멈추었다.

뒤늦게 발견하고, 라나가 먼저 행동했지만, 라나에게 말로 타이르고나면 라나는 금방 검을 거두고는 호흡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미리네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미리네, 당분간은 그녀석 너한테 맡겨놓는다."

­"뭐이 시발아?! 그걸 왜..."

"일단 시간은 끌어봐. 어차피 너 모르는거 같으니까.. 아참 그 옆에 있는 여자애도 같이."

­"뭔 짓 하려는건 아니겠지?"

이런 저런 이야기가 흘러갔다.

단순한 이야기로는 악마 컨피던스는 나의 파편을 인간에게 준 대신, 내가 확보해야 할 다른 영혼을 섞어 버려 대처하기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

대처에 관한 것을 조금더 생각해야 하는 상황.

이전과 같이 무턱대고 죽이거나 받아내는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 놓아 나에게 밀어넣은 듯한 느낌이다.

'그럼 어떻게 해줄까..'

악마녀석, 늘 그랬었지. 어느쪽도 선택하기 힘든 이지선다를 앞에 내놓고 음침한 곳에서 시시덕거리면서 지켜보는걸 좋아했었어. 감정을 가지고, 영혼을 가지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녀석이었다보니, 좀 음침했어야 말이지..

... 하지만 녀석은 아직 모른다.

'옛날 하곤 다르다고 이 친구야...'

지금은 옛날하고 상황도 나도 꽤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 * * *

"후우... 당분간은 우리집에 있어. 위험하니까."

"그전에 알려주세요. 그 여자의 정체가 대체 뭐죠? 당신은요?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거에요?"

"아..씨 그건..."

미리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어떻게 바로 생각나겠는가?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자신에게도 일어나버렸다.

재력이란 놈은 한참 정수를 괴롭히는걸 낙으로 살다가 못하게 되더니 그나마 계획하던 계획도 박살은 커녕 시도도 하지 못하고 망해버리거나, 가족을 빼앗기질 않나, 누구의 속삭임인지도 모르고 넙죽 수상한 힘을 받아버렸으며,

최나리라는 녀석은 학교에서 괴롭힘만 받다가 겨우 살수 있나 싶었더니 하필 구해준것이 재력이고, 그래도 재력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으로 갱생되어가는 단계라 호감의 감정을 품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돌연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만나버렸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다 있을까!

게다가 그런 둘에게 미리네가 붙어있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주재력이란 놈은 괜찮을지 몰라도, 최나리는 틈만 나면 죽이려고 들겠지. 라나녀석... 근처에 있나?'

라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마왕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단계가 되었다.

무슨 짓을 한건지, 어떻게 그녀의 욕구를 잘 좀 풀어주라고 했더니만, 그것이 오히려 악수가 된 듯. 그의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기위해, 자신의 마음이 커져가는 것을 억누르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강해졌으니..

그래, 아마 최나리는 틈이 나는 순간 죽이려고 할것이다. 왜냐면 파편도 지니지 않고 있으며 수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고, 마왕이 죽이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것도 아닌 주제에..

"저기요! 검은 마법사님!"

"검은 마법소녀겠지 인마.."

"마법소녀님!"

"소녀 아니라고..."

"아무튼이요!"

휘말려 버렸으니까.

이제와서는 쌩 하고 모른척 사라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유 역시 말할필요도 없을 정도다.

"재력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거죠?"

"아니... 그렇다면 그런데.."

"... 재력이가 대체 뭐때문에 그렇게 강해지려고 하는지 잘 몰라요. 하지만... 저, 저도 돕고 싶어요!"

"아오! 씨! 진짜...! 일단은 있어봐! 나도 생각해야 하니까!"

이제 나리는 재력이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첫 데이트나 다름 없던 날, 돌연 휘말린 기묘한 사건, 그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건 재력이 뿐. 그 의지함에서 만들어진 것은 호감 이상의 감정.

필사적인 그에 대한 연민과 그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다는 감정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미리네는 이토록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라나의 방법이 더 편하게 느껴질법도 하고, 차라리 나리라도 따로 데려다가 보호하는게 더 편하겠지만, 이제와선 나리는 재력이와 떨어지고 싶지 않게 되어버렸겠지.

...

그래서 자신의 집에 두었다.

일단은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그렇게 보호하기로 했다.

...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재력이와 나리의 질문엔 대답해주지 않고, 재력이에겐 단련을 위해 인벤토리 보석에서 꺼낸 마물의 장비를 한두개 던져주곤 그것을 들어올려보라 시키고 있는 중이 바로 지금의 상태다.

뭘 더 어떻게 하겠는가?

이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미리네로써는.. 스스로 행동한다고 쳐도. 그저 이들을 보내주는 것 말고는... 이렇게 엉기적 훈련시키는 척 하는것 뿐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뭔가 강해지는것 같아... 이 몽둥이 소재가 대체 뭐지? 집에서 조금씩 해봤던 나무뭉치랑은 뭔가 다른 감각이라...'

재력은 만족하고 있었으니 그럭저럭 다행이었겠지!

그렇게 다시 몇 시간이 흘러갔다.

똑똑­

언제 습격해올지 모르는 자객에 대비해 모두 미리네의 방에서 숨죽이고 있는 동안, 뭔지도 모를 무서운 상황에서 컴퓨터 하나만 밝게 화면을 비추고 있는 그 방안에 쭈그려 있는 동안,

문이 두드려 졌다.

그 소리는 왠지 모르게 모두가 불안한 소리였고,

검은 마법소녀, 미리네가 숨죽이고 있다가 '이 시간에 누가 올 사람이 있나?' 라고 생각했을 즈음..

"언니~ 저 왔..."

아지가 왔다.

...

양아지.

마정수의 소꿉친구, 예전에는 짙은 화장과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 짧고 타이트한 교복과 더불어 상당히 날카로운 외모를 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상당히 순진한 모습이 되었고 옅은 화장과 차분한 머리카락, 염색물은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런 소녀 말이다.

학교는 스알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마정수와도 같은 반이었고,

모종의 사건을 통한건 아니고 우연이나 어쩌다보니 미리네와 친해지게 된 소녀.

그리고..

"손님이 계셨.."

"어? 양아지.. 아지야"

"... 너... 네가 어떻게 여기있어?"

"...?"

당연히 주재력과도 같은 반이다.

호흡.

숨을 들이킨다.

...

"네가 뭔데 이 집에 있는거야?"

재력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학교의 왕.

나리에게 그랬던것 처럼, 아지같은 녀석은 재력에게 있어서 반친구도 뭣도 아닌 그냥 주변에 있는 자신의 들러리같았던 존재.

괴롭히는 타겟이었던 마정수와 관계가 있는 녀석 같긴 했지만, 그래도 인상은 옅었던, 특별히 건들 생각은 하지 못했던 여자애중 하나.

그러니까 기억은 희미했고, 얼굴은 떠오를까 말까 했다.

그게 문제였다.

아지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영문 모르고 자신을 보고 있는 재력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나리가 무심코 재력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면서 구역질을 참지 못하게 된듯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당장 기억하여 아지의 입을 막기 위해 무슨 수를 써도 모자랐을 판에,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여 갸웃거리고나 있다니!

"이 쓰레기 새끼... 역겨워."

결국 아지는 입을 열고 말았다.

그를 향해 입을 보여주는 것도 혐오스럽다는 듯이.

뻔빤하게 지금 정수의 연인이나 마찬가지가 된 미리네 언니의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을 데리고 들어앉아 있다니.

"대체 얼마나 괴롭혀야 속이 시원해?"

대체 재력은 정수를 얼마나 못살게 굴어야 시원하단 말인가.

"너 때문에 뛰어내리기 까지 했으면 됐잖아, 요즘 성격이 좀 이상해지긴 했어도 그래도 너는 정수한테 그러면 안돼잖아."

대체 정수가 뭘 잘못했다고,

잘못한것이 있다면 재력이 먼저 저지른 것인데, 재력은 대체 어디까지 해야 만족한단 말인가.

"자, 잠깐..,! 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게 무슨소리야 양아지!"

"너.. 최나리? 네가 왜 거기에 있어? 저 역겨운 녀석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몰라서 그래?"

솔직히 이 부분에서 나리는 그러한걸 잘 알지 못했다.

워낙 조용히 있던 터라, 학교가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반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가려진 얼굴로 밖에 기억하고 있지 못하던 때에, 특히 인상에 남던 양아지와 주재력정도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누군가 괴롭힘 당하고 있었는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야 나리 본인도 숨쉬고 있기 힘들던 때 아니었겠는가?

친구 하나 없고, 괴롭히고 시비거는 이들만 잔뜩.

재력이 있을때야 그 정도가 덜했다지만, 왕따로써 지낸다는 것은 괴롭기만 한것이었기에, 고개만 푹 숙이고 수업시간엔 자고, 쉬는시간엔 자는척 하고 있는게 전부였던 나리의 일상.

그렇기에 모른다.

몰라서 물었다.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재, 재력이는... 그, 그래도 사과하고 있어! 최선을 다해서!"

"역겨워, 역겹다고."

그러나 아지는 이전과 조금 다르다.

정수에게 쌓였던 죄책감이 그의 투신으로 터졌고 무너졌으며, 정수가 돌아옴으로써 구원받은것이나 마찬가지었던 아지.

이제는 더이상 모른척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아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휙휙 돌려보았다.

미리네 언니는 없다.

집을 비운 틈에 문이라도 따고 들어온 모양이지.

미리네 언니 대신 미리네 언니를 닮은 검은 마법소녀같이 생긴 사람이나 코스프레 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코스프레 아니야."

말투도 비슷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세사람.

이곳에 있어선 안될, 있으면 불쾌할 그런 사람들. 재력은 왜인지 아무말 하지않는다. 당장 폭력을 휘두르며 욕을 해도 모자랄 녀석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얌전히 있다.

뭐, 상관 없지. 아지는 이번에 자신이 부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저항할 생각을 했다.

"나, 나가..."

일단 아지는 용기내 그렇게 소리쳤다.

"다 나가! 여기는 정수랑 미리네 언니의 사랑의 보금자리란 말이야!!!"

"아니야!!!"

검은 마법소녀도 소리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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