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미리네3 (3)]
* * *
미리네는 생각했다.
'어? 이 느낌 뭐지?'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이다.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정수에게는 물론 아지에게도 제법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
이질적인 느낌.
'파편...? 아니, 뭔가 좀 달라'
파편의 힘인것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미묘한 그 힘.
이를테면 파편이라는 순수한 마왕의 힘에, 어느 탁한 힘이 흘러들어가 섞여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말해보길,
그와 또 다르게 하나 더, 하얀이 쓰는 힘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기도 했을 것이리라,
그 모든 것들이 재력이와 함께 다니고 있던 나리와 부딪힌 순간 생각해낸 것으로, 미리네는
"시발"
하고 욕설 한마디를 내뱉은 후에 찡그리며 뒤로 넘어져 버렸다.
어떻게 조치해야 할 것인가,
미리네는 다시금 떠올리기 시작했다.
상황은 막 싸움을 끝내고 온 참이다.
온 몸에 독기가 묻어있어 그것을 덜어내기도 해야 했고, 독을 조금 삼킨것 같아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마력을 사용함으로써 지친건 물론이고, 자신을 '검은 마법소녀'라 추앙하는 이들이 많아 불쾌했기에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부상을 입어버리긴 했기에 서둘러 조치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상한 녀석을 그냥 두고볼 순 없었기에, 미리네는 서둘러 마왕에게 연락을 취했다.
마음속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면, 신기하게도 그가 대답해주는 방식.
하지만,
'야 시발! 개새끼야! 대답좀 해봐! 앞에 이상한 녀석이...'
...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다른 짓을 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알고도 아무말 하고 있지 않은건지, 아니면 대답을 위해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답답함만 늘어날 뿐.
그래서 미리네,
스스로의 판단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결과 부터 말한다면 굉장히 좋은 판단이었다 말할순 있었겠지만,
누군가에겐 결코 좋은 판단이 아니었을테지...
* * * *
아무튼 미리네는 몸을 일으켰다.
"검은 마법소녀!? 맞죠? 그 검은 마법소녀! 팬이에요!"
"어? 어, 응"
인사 한번 받고, 팬이라며 부담스럽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한번 보고,
사실대로 말하면 미리네는 지금 '두 사람'에게서 힘을 느끼는 중이다. 한명은 확실히 이질적이고 기묘한, 파편과 같은 힘이었고, 또 다른 한명, 당장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는 미약한 마력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영향 받는건가?'
또한 그 미약한 마력은 마치 저 주재력이란 남자에게 연결되어 있는것처럼도 보였으니, 필요한건 양 쪽 다.
조사대상.
"아, 그.. 흠."
미리네는 할 말을 고르기 위해 헛기침을 몇번 했다가...
"나... 나느흣!?!"
혀를 깨물었다.
삑사리도 좀 나고,
역시 처음만난 사람들하고 능숙하게 이야기하는것은 아직 무리.
하지만 미리네,
해야 할 일이니까,
자신이 할 일은 마왕의 파편을 되찾아 주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어라? 내가 왜 그래야 했더라? 시발, 그 녀석이 뭐 이쁘다고.. 돈, 돈벌기 위해서지 그래, 돈을 위해서 힘내자.'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했다.
"크, 크흠! 아... 저, 저기 너희..."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 순간.
콰앙!
다시금 들리는 폭음.
그건 마물이 일으키거나 괴물이 일으킨것이 아닌, 능력자가 내뿜은 듯한 기운이 물씬 풍겨오는 것으로..
콰르릉!
천둥소리를 내며 그들의 앞에 한 여인이 내려왔던 것이다.
"잠..."
검은 마법소녀는 인상을 쓰다가도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놀란 얼굴이 되어 손을 들어올렸다.
지친 그녀의 몸에서 활과 화살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재력과 나리가 별 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을때,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 순간,
콰릉!
다시금 울려퍼지는 천둥소리는 한 순간에 검은마법소녀의 앞까지 다가왔고, 다가온 여인은 기다란 검을 꺼내어 그대로 재력을 향해 내려쳤다.
"안돼!!"
소리치는 검은마법소녀.
동시에 뻗은 검은마법소녀의 화살이 그 검의 궤도를 비트는 순간은 찰나.
재력은 놀라 뒤로 넘어지면서,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해내고, 나리는 몸을 낮추며 비명을 지르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검은 마법소녀가 소리쳤다.
"뭐하는짓이야!!"
마치 그 번개와 함께 나타난 여인을 잘 알고 있는 듯이 인상을 쓰면서 말이다.
그녀는 아주 차가운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감정이라곤 조금도 없는 듯이, 차갑고 소름끼치는 표정. 미리네를 볼때에는 잠시나마 표정이 풀어지긴 했지만, 그 뒤에 있는 남자를 바라볼때에는 마치 쓸모없는 사물을 보는 듯 했으리라.
"언니, 그건 죽여야 해요."
"잠깐만 기다려,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게 아니잖아. 그보다 그 녀석은 왜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분은 전부 보고계셨어요. 언니도 걱정하시고 있는거에요. 저건 위험해요, 위험한걸 섞어 놓았어요. 악마가 벌인 짓이라고 의심하고 계신거에요, 그러니까.."
재력이 듣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대화.
자신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인지를 초월한듯한 그 두 괴물의 싸움.
기싸움같은 것을 벌이고 있기라도 한지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하는 재력.
검은 마법소녀는 다시금 한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아무튼 멈춰, 이게 전부 그 녀석의 뜻은 아닐텐데.. 맞지? 그 녀석이 너한테 이런짓까지 하라고 하진 않았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죽이는게 가장 효율이 좋아요. 가장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고..."
"아니, 아니야. 야! 듣고 있지!? 빨리 대답해봐! 지금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허공에 소리치는 검은 마법소녀. 재력은 물론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다른 존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그 행동은 처음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정적을 유지하고 있다가..
"앗. 하지만! 하지만 지금 죽이지 않으면...! 아니, 아니에요! 저는 그냥 도움이.. 아...! 전 언니를 도우려는 것 뿐이었어요! 명령대로 도와주었을... 아아.. 네, 네..."
습격을 했던 여성은 그 무언가와 이야기라도 하기 시작한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도중에 눈물을 흘리거나, 잘못했다고 말하거나, 금방 화색이 되어버리는 등. 일반인은 이해못할 감정변화를 보이긴 했지만, 재력은 그로써 무언가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 살았나?'
갑작스러운 공격.
천동소리의 잔향 만으로도 목이 베어나간 듯한 공포를 느꼈던 것이 사실.
그래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보고 있던 상황은 그 검은 마법소녀 덕분에 점차 잦아들어가는 듯 했다.
의문거리야 수도없이 많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당장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재력.
그리고 그제서야 재력은 나리의 상태를 살폈는데, 나리는 아무래도 의식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눈을 감은채로 쓰러져 있었다.
"나리야...!"
재력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엇을 위해 힘을 달라고 했는지. 뭘 위해 복수하려 했는지!
단 한사람이라도 자신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였건만! 또 지키지 못하게 되다니!
이렇게 한심스러울 수가 있을까!
재력은 기어서라도 나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공격당한 것의 여파로, 단지 그 여파만으로 재력의 팔과 다리에는 부숴진 파편이 스치고 지나간 상처들이 여럿 있었으나 신경쓰지 않고, 다가가 나리를 감싸안았다.
"으..읏? 재, 재력아?"
나리는 영문도 모른채로 조금씩 의식을 차렸고,
자신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재력을 보다가, 이내 말없이 그를 끌어안아 주었으니..
그 동안,
"후우... 알았으면 돌아가. 방법은 내가 찾는다. 감시를 해도 내가 하겠어."
"... 알았어요. 하지만 언니, 위험해지면, 만약 실패할 것 같으면 당장 저 녀석들을 죽이겠어요,"
"... 그래, 그런 일이 없길 바랄께."
상황은 끝났다.
번개와 같이 나타났던 여성은 모습을 감추어 사라져 버렸다.
검은 마법소녀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재력과 나리에게 다가왔고,
서로를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염병하고 있네 진짜."
* * * *
"이 쪽으로 와. 너희 당분간 집에는 못들어가겠다."
하루만에 기연을 만나버렸다.
기묘한 일에 휘말려 버린 재력이다.
이 이상한 힘을 얻으면서 평범한 생활은 당연히 하지 못할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야 대낮에 이상한 사람한테 습격을 받고, 그 유명한 검은 마법소녀가 자신들을 지켜주는 듯 하는 그런 상황이 흔한건 아니지 않았겠는가?
"대체... 뭐였어요 그게"
평소 재력이었다면 다짜고짜 욕부터 박아버리고, 자신이 무조건 더 강하고 더 위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건방진 행동을 했겠지만,
바뀐 재력은 예의바르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려 했다.
그런 재력의 말을 들은 검은 마법소녀는 미간을 좁혔다.
그동안 바라본 외곽구, 어느 공간의 모습은 근처에 아직 치우지 못한 쓰레기 봉투와 좁은 방안 치고는 굉장히 좋은 컴퓨터가 한대있는 그러한 모습의 장소.
행복빌라 203호라는 이름을 가진 곳.
그런 장소를 한번 훑어보았을때 쯤.
"너희 목숨을 노리고 있는 녀석들이지 뭐."
검은 마법소녀 줄여서 검마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목숨을 노린다니.. 왜?"
"글쎄다. 그건 네가 더 짐작가는게 있지 않겠냐"
"그건..."
신기한 힘.
자신이 얻은 [염력]을 비롯한 [사랑의 마법]에 관련한 그 힘.
재력은 침을 꿀꺽 삼켜넘겼다.
"너에게서 돌려받을 힘이 있는거야."
"이, 이 힘은 못줘요. 난 이 힘으로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해..."
"쯧. 그건 관심 없어. 아무튼 당분간 너희도 이곳에 있어. 아마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당장이라도 그 녀석이 와서 너희 둘다 죽이고 그 힘을 빼앗가 가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한다면 재력의 목숨이 위협받는건 어찌 이해한다 쳐도, 나리까지 싸잡아 노려지고 있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리는 왜요? 나리는 보내줄 수 있잖아요!"
"아냐, 그 애도 비슷한걸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가능성? 그런거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다구요? 그런게 말이나.."
"하하, 네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인걸 쥐고 있단건 부정하지 않네"
"..."
재력에겐 전부 이해하기 힘들었겠지.
하지만 그래도 이해하려 했다.
이해하지 않으면 이상해져버릴것 같았으니까.
복수를 위해서 재력은 필사적이어야 했고, 지키기 위해서는 더더욱 강해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재력은 한참동안 상황을 곱씹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상한게 날 노린다곤 말 안했잖아? 몇명이나 노리는거지? 얼마나 노리는거야? 검은마법소녀의 정체는 또 뭐고? 이런젠장...!'
그리고 한가지 결론을 내기로 했다.
'강해져야해. 뭐건 간에 강해져야 한다고!'
어떻게든 힘을 키워야만 한다고,
그렇기에 재력은 사소한 의문 같은건 잠시 지워버리기로 했다.
필요한것만 판단한다.
"당신은...! 저를 도와주신다는거죠?!"
"응? 아... 뭐, 도와준단건 아니긴 한데..."
"절 살려주셨... 아니 저희를 살려주셨잖아요!"
"그래, 죽이게 되는 것도 죽는것도 별로 보고싶지 않았으니까."
"그럼 저희를 도와주세요!"
"뭐?"
조그마한 아이같이 생긴 그녀에게 머리를 박는것은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겠으나, 재력은 지면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녀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강해지게 해주세요! 당신이 저희를 지킬 필요가 없게! 저희 스스로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그건... 불가능해. '그 애'는 못이겨 절대. 그리고 난 어디까지나..."
"제발!"
돌아오는 답은 별로 듣지도 않고, 그저 필사적으로 부탁한다.
"아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최소한 나리 만큼이라도 지킬 수 있어야 해요! 저는 더이상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학교에 군림하던 왕이 자신의 자존심 같은건 전부 내팽겨 치고, 필사적으로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지키고 싶은 것을 말하며 부탁하니,
안그래도 부탁에 약했던 검은 마법소녀, 줄여서 검마가 대체 뭘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으윽, 하지만.. 하아.. 아, 알았으니까 그만 좀... 윽, 후회하지 마라? 너 진짜 후회하게 될껄?"
받아들였다.
"아.. 네!"
그리고 재력은 이 때의 '후회하게 된다' 라는 말을 그저 흘려듣기만 했다.
진짜 후회할텐데... 좋은 추억이었지.. 라며 회상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진 않을텐데, '후회한다' 라는것은 떠올리기만 해도 괴롭거나 이불을 차버리게 되는 일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을텐데..
재력은 그 의미를 곱씹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당장 나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면서 기뻐하기만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