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하얀3 (4)]
* * *
불안하고 초조하게 연두의 어머니는 집에서 연두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된 것은 제법 많은 양의 음식들.
배달은 이미 도착한지 한시간이 넘었고, 틀어져 있는 티비에서는 마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한 뉴스소리로 가득 매워져 있는 상황이다.
준비한 음식은 식고 불어 터져가기 직전의 모습이었고, 애써 준비한 아주 작은 케이크는 아무런 일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놓여있기만 할 뿐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왜 불안하지 않겠는가,
자조섞인 생각을 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부끄러운가?'
'원하는게 없었나?'
'이걸 미안해서 어쩐다'
뭐 그런 수많은 생각 말이다.
연두의 어머니는 처량하게 그 곳에 앉아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면서 눈앞에 놓인 음식 하나를 집어먹었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조금도 먹지못했던 끼니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함이었지만,
"..."
다 자신이 못나서 일어난 일인것만 같아 슬프고 아프다.
고통스럽다. 가슴이 죄어지는것만 같고, 어떻게 이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을지는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
재능을 타고난 아이가 그 재능을 조금도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어머니의 심정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한입. 입에 문 불어터진 떡을 한번 더 씹는 순간에는 그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나와 이내 엎드려 오열하듯 울기 시작했다.
전부 알고 있어, 친구가 많이 없다는 것도,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는것도, 그래도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으며, 그 이외의 수많은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어머니로써 도와주지 않는것이 정답이라는 것도,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도,
자신이 움직이면 오히려 딸아이를 부끄럽게 만들수도 있다는 것도... 이제는 전부 알았다.
하지만, 너무 늦게 알아차린걸까..
전부 자신의 잘못 탓에, 자신의 주책 탓에 안좋은 인상이라도 남겨버린 것일까..
"미안해서 어째... 이걸 미안해서 어쩌나.."
그저 미안하다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울려던 그 찰나.
띵동
벨소리가 들렸다.
* * * *
"아, 안녕하세요."
꾸벅. 하얀은 인사를 했다.
등에는 오늘 생일을 맞은 연두를 들쳐매고 있다.
연두의 옷은 이래저래 찢어져 있거나 했지만, 몸의 상처는 없었고, 눈을 감고 있는 연두의 표정도 편해보인다.
그런 하얀의 모습에 당황한 연두의 어머니는 한동안 그 모습을 보며 벙찐듯 눈을 깜빡이고만 있었지만, 이내 하얀의 앞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유림은 자신의 머리칼을 찰랑거리면서 말했다.
"생일파티 하러 왔는데요! 연두가 너무 피곤 했는지 자고 있는 바람에 같이 데리고 왔어요!"
적당한 이야기.
하지만 연두의 어머니는..
"어, 어머 그래?"
그런 그녀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상태가 조금 의심스럽고 조금은 불안했지만,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반가운 정도였고, 찢어진 옷과 달리 몸은 아주 깨끗했으니 어떤 장난의 종류일까 싶었다.
게다가 이렇게 생일파티에 뒤늦게라도 찾아와 주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연두가 깨어나면 분명 기뻐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 많이 먹으렴 얘들아, 연두 얘는... 어, 아줌마가 잘 깨워볼께."
"네."
생일파티를 시작했다.
아주 작은 생일파티다.
연두가 얼마 지나지 않아깨어났고,
괴물이 되었을때의 기억은 사라져 버렸지만, 마법소녀 한명이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뻗었던, 자신의 죽어가는 몸을 치유해주기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하려 했던 그녀의 모습만은 분명히 기억났으며,
방바깥으로 나왔을땐, 자신의 작은 생일파티에 놀러와준 하얀을 비롯해서 몇 아이들을 보고는...
"미, 미안했어.. 하얀야! 나, 나 사실은 너를.. 이용하고 싶어서.."
머리를 숙여 사과.
요즘 잘나가는 하얀을 이용하여 자신을 높히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얀이 누명을 쓰고 있을때, 거기에 일조한 이야기를.
하얀에게 쓰레기를 던질때에 같이 던졌던 이야기를,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던 이야기를..
늘 상 할 수도 있는 실수를 했던 이야기를... 그렇게 말하면서, 진심을 담아 사과하니, 하얀은 그저 밝게 웃으면서 연두와 이야기 했다.
"괜찮아. 그보다 이건 선물."
"서, 선물이라고?"
"생일파티엔 선물을 주는거잖아."
선물을 주고 받았고,
"아, 이거 맛있다."
"하, 하얀아! 나중에 우리집 셰프가 만든거 같이 먹으러 갈래!? 내가 대, 대접하고 싶은데!"
"... 유림이 너 갑자기 너무 이상해졌어, 또 무슨 일을 꾸미는건 아니지?
"아니야! 그... 하, 하얀색 그 마법소녀는 너지? 검은 마법소녀님이랑 같이 싸우던... 그걸 보고나는.."
"...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공격한다."
"..."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친구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잡담을 하고 웃거나 떠들면서 그렇게 생일파티를 즐긴 것이다.
하얀은 뿌듯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한 순간이었을테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뻔했고, 또 다쳤으며, 비명과 피가 난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만큼은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은 한때가 되어 있었다.
잠깐은 그냥 다른 생일파티에 가서 그 수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삼는게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역시 마음 가는 곳에 온 것이... 이곳에 온 것이 정답이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정말 친구가 되어보고 싶었던건 다름아닌 연두였으니까,
친구 100명이라는 강박감에 휘둘릴 필요가 없음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시간만 계속 되면 좋겠다.'
조금 불어버린 음식을 한입 먹으면서, 친구들과 떠드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얀은 무심코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계속 이렇게 편안한 시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시간을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
그래 예를 들면...
'악마와 마물들을 놔둘 수가 없어.'
악마와 마물들로 인해, 다시 그 때 처럼,
첫 친구들을 빼앗겼을 때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하얀은 그렇게 다짐했다.
* * * *
작은 이벤트였을 뿐이다.
"그래! 잘 놀다왔겠지!!"
"네!!"
"맛있는것도 많이 먹었을 거다!!!"
"네!!"
"그렇다고 숙제를 미뤄선 안되겠지! 숙제를 끝마치고 양치하고 발닦고 취침하도록 하겠다!!"
"넷!!"
그 생일파티라는 작은 이벤트,
마물이 나타나고 친구가 괴물이 되어버렸지만, 어찌어찌 해결 할 수 있었던... 그리고 친구를 한명 더 획득하게 되었던 그런 이벤트.
그 속에서 하얀이 얻은 것은 하나.
"아참 아저씨."
"그래!"
"저, 더 강해지고 싶어요."
"그건 복수 때문이냐, 아니면.."
"지금 있는 친구들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그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어요. 좀 더, 더 강한 마법을... 알려주실 순 없을까요...?"
"... 그래 좋지."
복수에 휘둘리게 된 것이 아닌, 마음을 간직한채로 다시금 타인을 지키고자 하는 감정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것.
하얀이 강해질 수 있는, 또 다시는 악마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을 얻은 셈이지.
"그런 너에게 '촉수도 할 수 있는 실전 마법 (중급)'을 선물로 주도록 하마!!"
"네!! 감사합니닷!!"
"학업과 병행하여 스스로 읽고 공부한 후에 궁금한 점이나 모르는 것이 있을경우 나에게 와서 물어보도록 해라!!"
"넷!!"
합당한 보상도 얻었다.
"아오.. 진짜 너네 왜이리 시끄러워졌나.. 으..."
근처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미리네는 인상을 쓰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 미리네 언니는 왜 여기..."
그리고 하얀은 그 근처에 널부러져 있다가 미처 숨겨지지못한 속옷을 발견했고, 고개를 돌렸다.
끄덕
당분간 하얀은 그 모습들을 모른척하기로 했다.
우선은 공부 부터 끝마치도록 하자.
할 수 있는걸 한 후에, 언젠가 자신의 성장이 막히게 될것 같으면 그 후에...
'나도 저런걸 해야 하나? 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는게 좋은가...'
뭐, 그건 나중일이지만, 아무튼 하얀은 나름 준비하기 시작한 셈이다.
* * * *
한편,
"마물의 갑작스러운 증가 사건"
어두운 곳에서, 어느 누군가가 그렇게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말투는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듯 했으나, 어두운 곳의 그림자는 한명 뿐.
그는 그 사실을 아랑곳 않고, 계속 벽을 향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마물의 갑작스러운 증가 사건.
A시를 비롯한 세계 어느곳에서든 수많은 마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세계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
"검은 마법소녀와 광전사 등의 등장"
이전부터 조금씩 오르내리고 있던 비등록 능력자의 등장과 그녀들의 활약이 유명해졌다는 것.
"C시 마법소녀들의 실종"
C시를 지키고 있던 마법소녀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마물들의 갑작스러운 증가가겹쳐져서 C시는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
"오디션 회장 근처에서의 마물 출현"
이런 상황에서 대국민 오디션을 시작한 방송국 근처에 나타난 대량의 마물과 그것을 해치운 검은 마법소녀와 광전사의 활약이 널리 알려졌던 것.
"괴물화 현상."
마물도 아닌 듯한 기묘한 것들이 도심 한 가운데에 나타나고 있던 것. 능력자들의 빠른 대처로 피해는 크게 없긴 하지만, 주로 A시에서만 나타난다는 현상이라는 것.
"외부세계의 네임드가 퇴치."
오랜시간 퇴치 당한적도 모습을 드러낸적도 없었던 네임드 마물이 퇴치 당했다는 것. 능력자 최미리네의 단독 토벌로 알려져 있으나, 다른 능력자들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 최 미리네의 위상은 조금더 높아져서 이젠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을 내뿜는 괴물의 등장"
온 몸에서 독을 내뿜는 괴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 이번엔 검은 마법소녀와 하얀 마법소녀가 나타나 괴물을 퇴치. 여기까진 똑같은 이야기지만, 몇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느 어린 소녀의 몸이 괴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
"능력자의 증가."
그리고 능력자의 증가.
능력자들이 갑작스럽게 증가했다. 모두가 강력한 특수능력을 지니고 있는채로, 아주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대부분은 등록 능력자로써 외부세계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것.
...
어둠속에 있던 한 남자는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렸다.
그건 지금까지 있었던 큼직한 사건들의 나열. 빠진 사건도 있는 만큼 왠지 모르게 통일성도 없는 듯 했지만,
그 남자가 중얼거리는 것은 그 사건들에 대한 숨겨진 공통점에 대한 것이었다.
그건 바로...
"이걸 전부 당신이 했단 말입니까?"
누군가에 의도로 의해서 일어났다.
남자는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참을 계속 들었던 것을 되뇌이면서, 몇번인가 벽을 바라보았는데, 그중에서 남자가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하나.
"능력자의 증가... 능력자의 증가...? 갑작스럽게 증가한 능력자. 강력한 특수능력... 큰 활약... 정말 다른 모든게 당신이 한 일이라면.."
능력자의 증가 사건,
다수의 능력자가 나타났고, 모두가 강한 특수능력을 지니게 되엇던 것.
그리고 만약 그것이 누군가의 의도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걸 행할 수 있는 존재라면...
"신.. 입니까?"
신이라도 되는 존재 아니겠는가?
남자는 무릎 꿇어버렸다.
이젠 멍하니 중얼거리지 않았다.
어두운 지하실 한 켠에서 그는 이제 벽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이 신이건 악마건... 다른 무언가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
"그, 그럼 제게도! 제게도 그 힘을 내려주세요! 저한테 능력을 내려주세요! 신이시요! 저는! 저는 그 힘이 꼭 필요합니다!"
제발 자신에게도 '힘'을 내려달라고 '능력'을 달라고...
어떻게 해서든 그런 힘과 능력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빌었다.
"복수해야 합니다!"
복수를 위해서...
...
그리고 그 벽은..
아니지, 그 벽 앞에 아른거리던 신비로운 기운을 가진 검은 연기 자락은 그런 남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아, 실패할 수 있는데도? 정말~?"
마치 조롱하는 듯 하다.
어떻게 들어도 고귀한 신이 할만한 말투는 아니었을테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거 상관 없다.
악마인게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래 그런 초월적인 존재라도 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니까, 인간을 벗어나버린 무언가인 '그 녀석' 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힘이 있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하다.
"네! 그 녀석에게 대항할 수만 있으면! 난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신이시여!"
"아아!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했겠다..."
"네! 뭐든지! 괴물이 되어도 상관 없어요!"
"그래, 힘을 주마! 네가 바라마지 않는 강력한 힘을! 견뎌내면 너는 힘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괴물이 되어 난동을 피우다가 퇴치당하는 일 뿐!"
"힘을!"
"이 몸이 내려주는 모든 사건의 하나로써, 네 이름 역시 나에게 기억되리라 '주재력' 하찮은 존재여!"
그러니 그는 힘을 받아들였다.
주 재력.
그는 그 이형의 존재가 말하는 것을 듣고, 내려주는 것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금방, 목소리는 끊어져 버렸지만, 재력의 손 위에는 자신이 경험한 방금전의 일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뚜렷한 증거가 놓여져 있었다.
노란색의 연기 같은 무언가.
형태를 가진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어떤 것.
'노란색의 영혼'
재력은 그 영혼을 망설임없이 입안에 넣어 삼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