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하얀3 (3)]
* * *
"아..아아.."
연두의 몸이 뒤틀렸다.
그녀의 몸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연두의 몸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한다.
뒤틀린 몸은 변형되어 두꺼운 팔과 다리로 변모하고, 몸은 점점 비대해져 거대한 살덩어리로 감싸여진다.
살덩이에서는 수많은 팔과 다리가 나와 땅을 붙잡고, 이내 커다랗고 수없이 나타나 버린 입을 쩌억 벌리며 사방을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외로워!"
"친구가 필요해"
"대단하게 봐줘"
"미안해"
"나도 남들처럼"
"난 추악해"
"나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
"미안해 엄마"
"나도 사랑받고 싶어"
수도없이 많을 부정적인 감정의 말,
쉴틈없이 내뱉는 그 말이 살덩이를 너머 다시 자신의 귀로 들려오면, 그 비대한 살은 점차 비대해져가기만 한다.
쿠우웅!
움직이기라도 하면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니..
'아!'
그런 연두의 눈앞에 있는건 인간이다.
겁먹은 듯이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작고 작은 인간.
'아... 저거 맛있을 거 같아'
그 순간 자신을 잃어버리고 이형의 괴물이 되고, 본능에 따라 주변의 감정가진 것들을 찾아 헤메인다. 포식하기 위해서.
그것이 바로 감정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다.
제일먼저 포식하고 싶은건 눈앞에 있는것. 그리고... '아! 그곳에 가야겠다. 그 생일파티에 가야해'
누군가의 생일파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이유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건 괴물이된 본능의 영역이 되어 괴물이 되기 직전 가장 바랬던 것을 목표로 삼게 되어버린 것.
남을 망쳐서라도 욕구와 욕망을, 그리고 분노와 슬픔을 잠재우고 자신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것이 괴물이된 연두가 강해지는 방법이기도 했으니,
'생일파티... 생일파티에 가야 해. 내 생일파티에 초대해야지...'
괴물은 꿈틀거리며 이동을 시작했다.
느릿느릿하지만 확실하게, 눈앞에 있는 감정가진 것을 먹어치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괴물의 앞에...
'아, 저건 분명 맛있는 거다.'
아주아주 맛있는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 검은 마법소녀다!"
"검은 마법소녀가 왔다!"
"마법소녀 펀치! 마법소녀 펀치!!"
"아오, 시발 진짜... 언제 부터 내가... 칫.."
마법소녀가 나타났다.
* * * *
"허억...허억..."
하얀은 보았다.
눈앞에 있는 커다란 살덩어리 괴물을, 그리고 그 괴물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직감하고 말았다.
악마에 대해서라면 쉴틈없이 공부했다.
그 검은 공간에서 하얀이 배운것은, 그저그런 마법이나 일반 기초상식과 요리법과 재단법과 재봉법과 건축방법등뿐만이 아니라... 악마에 대한 지식을 배워왔으니,
그 지식과 하얀의 경험이 맞물리며..
'저 안에.. 사람이 있어...'
하얀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갔다.
구해야만 한다.
사람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죽어.'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으니까,
'원하지 않은 살인을 하게 만들 수 없어'
자신의 친구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로, 악마의 비웃음소리를 들어가면서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을테니까.
'안돼, 그건 안돼. 내 눈앞에서 죽는건 싫어.'
생일파티 같은 그런 하잘것 없는 친구놀이, 우정놀이같은걸 할 때가 아니었으니, 하얀은 다시금 주먹을 쥐었다.
"멈춰어어어!!!!"
그리고 달려나갔다.
고함을 내지르며, 온 세상이 떠내려가라, 분노를 담아서 말이다.
그 강렬한 감정의 파동에, 괴물의 몸을 돌렸고, 그 순간...
"하얀 마법소녀다!"
"와! 이제 우리도시도 마법소녀 도시야!"
"쩐다아아!!! 하얀색과 검은... 어? 물리 마법소녀같은건가?"
"손에서 에너지파 쏘나..?"
시민들의 환호성과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
"언니!"
"뭐야!? 너도 있었어!? 조심해! 이 녀석 [부패]같은걸 쓰고 있어! 원거리인 내가.."
"제가..! 제가 할께요!"
"... ... 좋아 알았어! 일단 막고 있을테니까 결계 부터 만들어줘! 이 주에서 더이상 사람이 죽지 않게"
"네!"
쿠웅!
마물 자체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테다.
그 비대한 몸집은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 괴기한 팔과 다리는 공격을 하기엔 너무 짧고 또 거추장 스러운 것이었다.
입에서 내뿜는 부정적인 말들은 독의 안개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런거야 이미 그녀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독.
하지만 그 능력과 몸에서 뿜어내는 부패의 힘은 너무나도 광범위하게퍼지기 시작하며, 마법소녀의 팬티 하나 구경하겠답시고... 아니, 마법소녀를 응원하겠답시고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퍼지기 시작했으니,
그것을 막기에 어려운 것이다.
"희망의 결계...!"
하얀의 결계는 곧바로 펼쳐졌다.
결계는 하얀색의 두껍고 강력한 결계. 바깥에 있는 것이 침범할 수 없게하는 용도가 강력하긴 해도, 실제로는 안에있는 것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악마를 사로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하얀의 심상이 반영되어 있는 결계이니,
한번 펼쳐진 이상 안에 있던 괴물로 부터 뿜어지는 독은 더이상 시민들을 향해 날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결계 안에 갇힌 독은 그대로 안에 쌓이기 시작하며 점점 보랏빛의 안개가 가득한 장소를 만들고 있었고,
그 비대한 모습의 괴물은 꿈틀거리면서 맛좋은 감정의 대상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취이익
독은 더욱 강력하게 뿜어지며 그 주변에 있던 마물들 마저 점차 녹아내리기 시작할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 지게 된다.
[독 안개]
그곳은 이제 독의 안개가 가득한 장소가 되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 되려 자신들의 목숨을 조이기 시작한 일이었지만,
미리네와 하얀, 둘 중 어느 누구도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은 품지 않는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에, 당연히 자신들이 감수해야 할 상황이며, 당연히 지켜야 할 시민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조금 있다.
그것은 마물들의 숫자. 아니, 그 종류.
괴물의 독은 주변에 있는 온갖것들을 녹이고 병들게 만들고 있었지만, 그 주변에 나타난 마물들이자 나타나고 있는 마물들은 마치 그 독에 적응이라도 한듯 자신들의 피부를 보라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점차 쌓여가는 보라빛의 마물들은 일제히 결계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계는 분명 강력하다.
강력하지만..
"키에엑!"
콰앙!
몇번이나 집중해서 공격받으면, 결국 금이가던 깨어지던, 구멍이 나던 하게 되어버리겠지.
결계 안에 가득차는 독이 그 틈사이로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순간에는 결계가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되는 일.
"... 방법... 방법을.."
하얀은 필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며 결계를 유지하고, 손에 쥔 지팡이를 바로 바꾸어 커다란 무기를 손에 쥐었다.
"희망의 화염방사기."
희망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 * * *
화르륵!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또 다른 마법소녀가 불을 쏘고 있어!"
"젠장, 안개 때문에 잘 안보이는데?"
"야! 이쪽으로 가면 마물들 잘 보여!"
"빨리 찍어봐! 잘하면 팬티도 찍을 수 있을듯"
"마물의?"
"응"
"... 오, 보인다. 저거.. 오..."
"오..."
그저 구경거리에 신기해 하고 있을 뿐이다.
갑작스런 마물의 출현은 분명 두렵고 무서운 일이겠지. 끔찍하고 또 끔찍한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아주 평화로은 A시의 시민들, 다른 곳에서 수십명씩 죽었다 한들 자신들은 아닐거라고 믿는 사람들. 우둔하고도 어리석다 할 만 하다.
자신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은 배제한채로, 그저 유흥거리를 찾아 해매이는 이들과 같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웃고 떠들면서 '당연히 저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주겠지!' 라고 믿는 것.
그것은 분명 기관 때문이다.
기관의 한국지부 건물이 이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능력자들이, 그리고 기관의 지부장이기도 한 신영일이. 마법소녀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그들 덕분이지!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들이 수십명은 더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들은 안심하고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다.
비록 팔이좀 잘리고 다리가 좀 녹아버린 사람이 조금전 구급차에 실려갔더래도 말이다.
...
그런 사람들 탓에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는 능력자들은 꿈에도 모른채로...
"찍었다!"
"마물거?!"
"검은 마법소녀꺼! 안개 때문에 잘 안보이는데 확실히 찍었어! 이거 봐봐!"
"에이..."
그 이벤트를 즐기고 있겠지.
* * * *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여기 유림은...
"허억... 허억... 아니.. 후우... 왜 사람들이 이렇게..."
일단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물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찟고 발겨버리는 흉악한 괴물이다. 목숨은 물론이요 가진 모든것을 파괴당하게 만드는 것. 얌전히 팔과 다리가 잘려죽는다면 다행. 산채로 내장이 파먹히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것도 어느정도는 다행인 축에 낄 마물의 등장에..
사람들은 그 주변에 잔뜩 모여 구경을 즐기는 중이었다.
당황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도망쳐야 하는게 당연한데, 도망치지 않는 사람들.. 당연히 두려워해야 할진데,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분명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유림은 금방 그 이유를 알아챘다.
"...하... 하하."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만한 이유였다.
유림은 천천히 그 군중들 앞에 있던 하얀색 결계에 다가갔다.
그것은 굉장히 두껍고 강력한 결계처럼 보이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온갖 독의 안개와 액채들을 뒤집어 쓰면서 까지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보는 순간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이런걸 어떻게 안믿어'
저런 모습을 보고서 어떻게 자신들이 안전하다 믿지 못하겠는가?
사투라면 사투. 목숨을 주고받는 치열한 싸움.
수많은 마물이 끊임없이 공간을 통해 뛰어나오고 있으며, 그 마물들의 색은 보라빛으로 물들어서는 독을 묻히기 위해서, 안개를 내뿜기 위해서 달려들고 있다.
커다란 괴물은 방벽을 치는가 하면, 수십개의 입에서 끊임없이 독을 내뿜고, 육중한 몸을 그대로 이끌어 공격하고 있는데..
그런 즉시 하늘에선 화살의 비가.
하얀 마법의 빛이 일어나며 불꽃이 폭발하고 있는..
그런 모습.
결계안의 싸움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 점칠되어 있는 그러한 사투였다.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망칠 수도 없었던게 당연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무의식으로 깨달아 그 주변에 모여 있었다.
혹시 그게 오히려 방해되는 행동이었다 한들,
자신들이 안전한 상태로 싸움이 끝날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죽은 사람들과 부상당한 사람들이 모두 괜찮아 질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예를들면 그래,
희망을 가득 품은채로,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림은 그것을 본다.
호흡이 살짝 가빠졌고, 뺨은 발그스레 붉혀지고 말았다.
"굉장해.."
굉장하고 놀라워라,
자신들과 싸울때의, 그 무서운 폐교회가 있던 산에서의 하얀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마법소녀'와 같이 싸우고 있는 그런 하얀을 눈앞에서 이렇게 보니..
"진짜 차원이 다르잖아..."
유림은 무심코 그 모습에 '동경'을 품게 되었다.
* * * *
화륵 화르륵
불꽃이 타고 있다.
다 꺼져가는 재 위에서 그 불꽃은 잠시간 일렁이며 타오르다가 금방 꺼지곤 그 열기조차 서서히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아..우,, 우에에엑!"
연두가 구토를 시작했다.
그녀의 몸안에 있던 어떤 종류의 씨앗이 뱉어진 것이겠지.
그 씨앗은 나오면서 연두의 목구멍과 입안을 태우면서 뱉어진 것이겠지만, 그 때 연두는 그 고통보다도 자신이 저지르게 될뻔했던 일을 상기해내고 말았다.
몸이 비대하게 커져서, 온갖것들에게 질투하기 시작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버리고 싶어하고... 누군가의 생일파티를 망쳐버리려 했다.
자신의 생일이 망해버린 것과 같이, 쓸쓸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와 같이, 전부 자신과 같게 만들어 버리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몇 사람의 죽음과, 수십명의 부상과 수천만원이 넘어갈 도심거리의 파괴. 그리고 그 끔찍한 몰골의 기억이다.
자기자신의 몸이 괴물이 되었다가 돌아온 것이지 않은가?
'마지막에... 그건...'
마지막 찰나, 기억이 닿는 곳을 끄집어 내면, 비대한 괴물이 된 자신을 하얀같이 생긴 마법소녀가 나타났던것을 기억할 수 있었고, 그 하얀의 지팡이가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 역겨운 살덩어리가 터져나가면서 연두는 돌아온 것.
...
'아, 내 팔...'
그 여파로 연두의 팔은 한쪽이 잘려 있었고, 다리에는 구멍이 나 있었으며 온 몸의 살점은 군데군데 사라져 뼈가 보이고도 있었으니..
'죽는구나'
그거야 뭐, 죽음밖에 직감할 수 없었겠지.
연두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푸르르다.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날씨였고, 화창하고 좋은 날씨였다.
이날은 연두의 생일이었고,
지인이의 생일이기도 했다.
연두는 자신이 사귀려 했던 거짓된 친구들에게 미안해 했고, 허영심을 가졌던 것을 후회했다.
'그러지 말걸 그랬네'
반의 어느 누군가에게, 어느 전학생에게 쓰레기를 던지고 험담을 하는데 열중했던 자신을 후회했다.
'미안하다고 말할껄 그랬어, 내가 너무 뻔뻔했지'
그런 그녀에게 뻔뻔하게 생일 초대장을 준것도,
그런 그녀를 이용해서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던 것도 전부 후회했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죽을때가 되었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걸텐데,
후회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게 이순간이었을 텐데,
그래서 연두는 그냥 울었다.
눈의 한쪽이 시큰거려서 눈물도 나오지 않은 듯 했지만, 자신의 뺨 언저리에 있는 살덩이가 날아간것 같아 시큰거려 차가웠지만...
뭐, 아무튼 그냥 울었다.
고통을 느낄 신경조차 없어진것 같았으니까..
그런 평범하고도 하잘것 없는 후회를 하며,
그런 미안함을 느끼면서,
연두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 * * *
"아저씨, 미안해요... 그래도 그 스킬을..."
"[범위 회복]"
파아앗!
"??"
회복되었다.
고통이 돌아온다.
눈물도 돌아왔고, 온갖 생각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의식이 날아가기 직전이 되어..
"한번 더 [광역 회복]... 젠장! 이제 광역 회복도 없으니까 당분간 전투 금지다! 미리네만 해!"
"뭐 시발?! 나는 왜 새끼야!"
"화살로 조심조심 멀리서만 싸우면 되잖아!"
"시발!"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몸이 회복되었다.
고통이 사라졌고, 눈물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흠, 얘네 집 어디지? 넌 알아? 악마의 하수.."
"내, 내가 안내해줄께! 금방 주소 알아볼테니까 기다려줘!"
"? 응. 뭐야, 너 원래 연두네 가기싫어했잖아 이 악마의 하수.."
"아니야! 진짜! 진짜야! 하아... 하아.. 펴, 평생 날 감시해줘 하얀아! 평생 감시당하고 싶어!"
"윽... 아저씨 이 녀석 이상해졌.."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연두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