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 [하얀3 (2)] (96/112)

〈 96화 〉 [하얀3 (2)]

* * *

씨앗은 오래전 부터 뿌려져 있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

사악하고도 사악한 악마의 손길이 직접 닿을 필요가 없었을 뿐, 그 씨앗은 착실히 주변을 먹어치우며 성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 씨앗이 먹는 것은 제법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번에 먹는것은 역시 감정 이겠지.

불안하고 불행한, 두렵고도 슬픈, 마음아프고 가슴아픈 그러한 우울과 슬픔의 감정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 * * *

"어, 엄마! 그 생일파티 시간 조금 늦추기로 했어! 하, 한...4시 정도로?"

"응? 왜? 아침부터 만나서 놀기로 한거 아니었니?"

"아! 그, 그냥 그렇다면 그런줄 알아! 4시야 4시! 알았지?"

"...그래, 그렇게 하자. 음식이 조금 식겠네.."

"..."

연두는 거짓말을 했다.

물론 아무짝에도 도움되지 않는 임시방편의 아주 즉흥적이고 튀어나오는대로 지껄였을 뿐인 그런 하찮은 거짓말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거짓말, 단지 상황을 넘기기 위한 거짓말을 했다.

...

아니지 영 쓸모없는 거짓말은 아니었다.

당장 상황을 넘기기 위해,

'내 생일에는 아무도 안올거야' 라는 말을 하기가 무서워서 '미안해 엄마, 준비한 음식은 아무도 먹으로 오지 않아' 라는 말을 하기가 미안해서 해버린 그 거짓말은,

하고 나서 보니..

'어? 혹시 몰라, 가능성 있을 수도 있어'

가능성이 있긴 해.

그러니까 그녀의 생일파티는 오후 2시이지 않았는가?

학원의 아이돌같은 존재인, 모든 중등부 학생들과 고등부 까지도 알고 있다는 모든 이들의! 지인의 생일파티!

2시간 정도면 그 생일파티에 갔다가 자신의 생일파티에 와주는 사람도 분명 있을 터.

아니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겪게 될.. 아니지 그보다는 자신의 생일파티를 하겠답시고 아침부터 별의별 음식을 다 준비하며 연두가 땡강을 받아주고 웃어주신 어머니를 볼 면목같은것이 없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면 누구라도 자신의 생일파티에 와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런 중에서도 조금 유명하고 잘난 친구 한두명이라도 와주었으면 하는 약간의 허영심역시 포함되어 있긴 했어도...

아무튼 그런 생각으로 잠시 외출을 하겠다 하며 연두는 바깥으로 나섰다.

...

하지만 생각이라는게 늘 그렇듯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은 바뀌고, 막상 나와서 같은 날 생일을 맞이하게 된 다른 친구 지인의 생일파티 장으로 뛰어가는 도중.

점차 걸음을 늦추었다.

...

한심스러워진다.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것 같다.

누구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것 같다.

부모님에게 미안해진다.

실망시키는 것이 마음아프다.

들키는것이 무섭다.

사실은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없다.

목이 매기 시작했고,

그 후에는..

그 후에는...?

"왜 나만.."

분노.

"왜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건데.."

화나기 시작했다.

그건 평범하게 변화된 감정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개입한듯이 연두의 생각을 뒤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그 강렬한 감정이 폭발한 것 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짓을 했는데... 왜 아무도 날 신경쓰지 않는건데... 같이 욕했잖아, 같이 쓰레기도 던졌고... 어떻게든 무리에 끼려고 내가... 뭘.."

후회와 더불어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서러움이라도 터져버린 것일까,

그러한 감정은 모두 분노가 되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씨앗이다.

"아... 어떡해.. 울어버릴것 같아...: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연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도심 한복판에서 자괴감에 휩쌓이고 두려움에 휩쌓여, 결국엔 자신을 향한 혐오와 분노로 가득차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몸위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쩌적­ 쩌억­

공간이 갈라지는 소리.

찢어지고 무언가 비집고 나오려고 하는 듯한 소리.

뿌려진 씨앗은 대상의 감정을 증폭시켜 먹어치우는 것.

악마가 만들어낸 그 영혼의 마법은 그로 하여금 마물이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악마의 특기나 다름없는 감정을 이용하는 마법의 힘은, 그 감정의 대상마저도..

"아아..!"

쩌어억­!

"크에에아아아아아!"

괴물로 만들어 버리기 충분했다.

"어..어어? 꺄아아악!?"

"마, 마물이다! 마물이 나타났다!"

"경보도 안울렸잖아..! 도망쳐! 전부 도망쳐요!"

"히, 히익...!?"

콰즉­

도심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아니, 피로 물들기 시작한다.

나타난 순간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열려버린 공간의 틈새로 수많은 마물들이 쏟아져 나와 도망치는 사람들을 쫒기 시작했다.

경보가 울리기에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나타나 버린 그 대량의 마물에 어느 누구도 대응하지 못하며 수 명의 사람들이 더 죽고,

그리고 그 때 쯤이야..

"아니 시발! 한참 레이드 트라이 중이었는데!"

같이 공간을 찢고 나오는 듯, 그녀가 나타났다.

검은 머리칼을 뱀같은 머리장식으로 묶고 검은 코트를 몸에 두른채로 자신의 키만한 활과 화살을 등에 짊어 진채로 공중에서나타나 버리는...

"거, 검은 마법소녀다!"

"초인 헌터 검은 마법소녀야!"

"사, 살았다!"

"마법소녀님이 와주셨으니 전부 해결될거야!"

"마법소녀 펀치! 마법소녀 펀치!!!"

"시발!"

미리네.

"꺄악! 저한테도 욕해주세요!"

"검은 마법소녀의 실물 욕이다! 와아아아!"

소란이 일어났다.

물론 그런 소란과는 상관 없이미리네는 나타나는 순간 곧바로 행동했다.

바닥에 깔린 시체와 피를 흘끔 바라보곤, 이내 자신에게 환호하기 시작한 시민들을 바라본 후에,

'... 전부 미쳤군'

반쯤 미쳐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 눈쌀을 찌푸려 아이템을 바닥에 흩뿌린다.

능력자 기관에서 일반 능력자 용으로 판매하고 있는 임시 보호막을 만들어 내는 것인에,

그것이 미리네를 기준으로 천천히 펼쳐지며 마물들과 시민들 사이에 벽을 만들어 버리고, 미리네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에는 잠시 자신의 귓가에 손을 올리며 누군가에게 말을 걸듯이 입술을 움직였는데, 그 직후 미리네를 기준으로 하여 밝은 빛이 뿜어졌고,

['범위 회복']

주변에 있던, 아직 죽지 않았던 부상자들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치료됐다!"

"마법소녀 님이 치료해주셨다!"

"역시 이 마을은 마법소녀님이 구해주실거야!"

그러고 나서야 전투 개시.

수십의 마물들이 끊임없이 공간을 넘어 튀어나오고 있는데, 그 한 가운데에 커다란 이형의 괴물이 서 있는 상황.

이형의 괴물은 비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고, 많은 색상을 가지고 있다.

붉고도 푸르고 녹색이기도 하면서 보라색으로 빛내기도 하는, 화려한 색상.

마치 온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봐달라고 하는 듯한 괴물의 모습.

마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수많은 팔과 다리가 꿈틀거리고, 심장과 같이 맥동하고 있다. 그 속은 아주 시꺼면 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머리 부분에 달린 수십개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는 그러한 괴물이니,

미리네,

그 검은 마법소녀는 이번엔 다시한번 눈쌀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난 왜 이런 것밖에 못만나냐 진짜.."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

한편,

"괜찮은거겠지"

"그래, 이렇게 선물도 샀으니까 가자 하얀야."

"응..."

조금 전,

하얀은 마음을 굳혔다.

마음을 굳혔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이끌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악마의 하수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말을 듣고싶지 않았기 때문인건 아니야."

"알아."

"아니! 나 아니라고!"

"..."

뭐 아무튼 그런 이유는 아니다.

하얀은 생각을 조금 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로 부터 조언을 얻었고, 어느쪽이 확실하게 이득이고 이윤인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기로 한 것 뿐이다.

그 호화로운 생일파티에 갈 수 있다면 분명 수많은 친구들을 단번에 사귈수도 있겠지. 악마의 하수인(추정)인 유림이 함께 있는다면야 분명 쓰기 좋고 유용한 친구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0명 만들기야 금방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하얀은 굳이 먼저 초대를 받은 연두의 생일파티에 가기로 했다.

분명 이곳은 사람이 많이 오지도 않을거라고 유림은 말했지만,

하얀은 보다 이곳으로 마음이 끌렸다.

한마디로

"연두와 친구가 되보고 싶었어"

단지 그런 마음.

그런 생각이었기에,

하얀은 그곳으로 향하는 중인 것이다.

아저씨를 대동하고 있는것은 그저 우연한 만남이었긴 했고, 만난김에 상담을 좀 하고 있을 뿐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 때쯤 소란이 일어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겨오기 시작했고,

그 후에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툭­

하얀은 몸을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악마의 냄새에, 그 녀석이 한 사악한 짓에 대한 반사작용. 적당한 크기의 곰인형 선물을 무심코 바닥에 떨어트린 채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하기 시작했다.

"잠.. 하얀아!?"

유림과 보라가 그런 하얀을 바라보아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순간,

"안돼... 사람이 죽..잖아."

하얀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얀은 순식간에 복장을 갖춰 입었다.

싸울 수 있는 무기.

싸울 수 있는 옷.

싸울 수 있는 각오를 다지며,

"이 녀석의 감시좀 부탁해. 보라야."

순식간에 하얀색 마법소녀의 모습이 되어, 뛰어 나가 버렸다.

파앙­!

공기의 파열음을 내며 모습을 감춘 하얀.

그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유림과 보라는 역시 당황했으나, 곧 두 사람 모두 마음을 맞춘 듯이 하얀이 떨어트린 선물을 줍고는 하얀의 뒤를 쫒아가기 시작했다.

"아 씨! 아이씨! ... 야! 너 진짜 나 감시하는거 아니지?!"

"..."

유림은 뭔가 잘 못된것 같다는 듯 쉴틈없이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말이다.

"씨이... 또 저러고 내가 바로 눈에 보이는 위치에 없으면 어디갔었냐고 난리치겠지.. 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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