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 [하얀 3] (95/112)

〈 95화 〉 [하얀 3]

* * *

연두는 그다지 활달한 편이 아니다.

그곳은 능력자 학원 중등부, 온갖 능력자들이 모이는 중에서도 비교적 어린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며, 능력에 대한 것을 배우기 보다는 기초 학력을 비롯한 사회관계 등을 배우는 것이 우선시 되어 있는 장소.

물론 능력 훈련도 조금 한다.

아무튼 그 중에서도 연두역시 같은 중등부 능력자이자 학생으로써 그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녀는 약간 소심하고 약간 여린, 여느 학교 여느 반에나 있을 법한 조용한 소녀였다.

그 약간 소심한 것과 약간 여린 것이, 약간 뚱뚱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합쳐져서는 중등부, 그 모든 학생들이 마력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뛰어난 외모를 빛내고 있는 곳에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이 약간 걱정이 많았기 때문도 있고

어릴적부터 친구가 적었던 탓일까,

그냥 부모님의 걱정 탓이었을까.

"그, 글쎄 그녀석 푸흡! 입학하자 마자 2000원 짜리 싸구려 햄버거를 반에 돌렸지 뭐야? 그녀석의 엄마가 직접 찾아와서 애들한테 인사하면서 말이야! 풉.. 진짜 웃기지 않아? 하하하.. 하... ... 어..."

"..."

"아, 아무튼 그런 정도였거든.."

그곳은 능력자 학원.

부모님의 극성맞은 행동은, 그 자존심 높고 돈많운 더 아카데미의 학생들로 부터 비웃음을 샀고, 그 덕에 2000원 짜리 싸구려 햄버거는 교실의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곤 했다. 극히 몇개를 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학생중 누군가가 연두 보란듯이 1인 1판 피자를 돌리며 조롱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그 다음날엔 어떤 애가 자기 용돈으로 1인 1피자를 돌리기도 했지만 말이야.. 하...하하.. .. 훔..아, 아무튼 그 연두라는 녀석.."

아무튼 그것이 연두다.

무언가 열심히 하려곤 하는거 같은데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부류,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바닥에 있는 부류. 보통이라면 자신의 현실은 학생 후, 성인이 된 다음부터 천천히 깨닫게 되거나, 빠르더라도 고등부에 들어서면서 부터 천천히 깨닫는 것이 정상이지만,

연두는 그럴 새도 없이 현실속의 자신과 이상속의 자신의 차이를 알게 되어 버린것이다.

그래도 연두는 무언가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건지..

같이 노는 무리 내에서도 은근히 왕따.

그렇다고 완전히 따돌려 지는 것이 아니고 애매모호한 위치.

조용하고 말 수 없는, 그런데 거리감을 재지 못해 다가가면 조금 귀찮게 할 것 같은, 못생기고 뚱뚱한, 그다지 말 걸고 싶지는 않은, 말을 걸어도 대화 하기가 힘겨운, 언변이 없는.. 말을 조금 더듬는..

그러한 아이.

그것이 바로 연두.

"그러면서도 아직도 뭘 하려는 걸거야.. 새, 생일 파티.. 도 아마 그.. 일환... 하, 하얀아... 왜,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그냥. 잘 아는구나. 연두에 대해.."

"하하, 타겟으로 삼을 뻔했거든... 솔직히 그렇..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땐 그랬다고! 나 이제 반성 많이 했어! 미, 미안해! 하, 하얀아! 아니 보라야! 이렇게 머리 박을테니까 용서해줘! 용서해 줄거지!? 진짜 미안해! 그러니까! 아! 그러니까 하얀이한테 망치좀 내리라고 해줘! 아! 온다! 악! 악!! 이거 바, 방탄 책상... 아악!" "... 되게 이상하네, 역시 악마의 하수인은 뭐가 달라도 다른걸까..." 아무튼 그것이 또 유림의 설명이다. 유림은 실제 연두를 타겟으로 삼으려 했다. 그렇게 좋은 먹잇감이 어디에 있겠는가?

딸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하려고 하는 부모님, 그것이 과해서 딸의 부끄러움 같은건 신경도 쓰지 않는 부모님, 소심한 연두, 적극적이고 싶어하지만 결국 자신을 바꾸지 못하는 연두.

아마 친구가 되자고 다가가는 순간 연두는 곧바로 받아들이겠지. 그리고 하라는 대로 할 것이다. 아무리 힘겹고 어려운 것도, 조금 꺼려지는 것도, 많이 꺼려지는 것도.. '친구'라는 단어 하나 들이밀면 전부 해주겠지.

실실 웃으면서,

그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재미가 될 것이었지만,

우연하게도 그 시기에 비슷한 정도로 눈에 띈 보라가 있었기에, 유림 일행은 보라에게 집중했고, 그 덕에 연두는 그녀들의 마수로 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다.

"아참! 그리고 연두 걔! 너 뒷담화에도 엄청 열심히 끼어들었던거 알아!?"

"내 뒷담화?"

"그래! 저, 전에 내가 너에 대한 그 소문같은걸 퍼트렸을때...아1 그, 그런 눈으로 보지마! 그, 그랜절할께! 그, 그랜절... 할... 으윽.. 균형잡기가.. 봐, 봐줘 하얀아 그랜절 했... 크엑!"

뭐, 그랜절을 하려다가 숙련도가 부족하여 균형을 잃고 우당탕 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진 유림이를 흘끔 본 하얀은 다시금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이번엔 아마 기억난다.

그래, 그 당시 아이들의 얼굴은 뿌옇게, 굳이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불분명하지만, 이렇게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면..

'음, 있었던 거 같긴 하네, 쓰레기 같은걸 던졌던거 같아.'

쓰레기를 던졌다는것이 기억나는 정도.

그래 그런 연두는 그런 아이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타려고, 어떻게든 무리에 끼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평범한 애구나."

그런 아이.

하얀은 초대장을 쥐었다.

뭔가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들긴 해도, 분명 가봐야 친구를 많이 만들기는 커녕, 그 다음 친구 만들기에 약간의 애로사항이 꽃필것 같다 해도,

일단은 가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물끄러미 초대장을 바라보는 사이.

"아, 그 초대장도 걔네 엄마가 만든걸껄? 아마 내 생각엔 걔네 엄마가 생일파티 해준다고 친구 잔뜩 모아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연두 그 녀석은 걱정 시키지 않겠다고 친구 많다고 거짓말 했을꺼고, 가.. 가봐야 분명하찮은.."

유림은 당당하게 그 이유를 밝힌다.

"그걸 말하는 이유가 뭔데."

"다, 다른 애 생일파티가 있거든!"

"아, 다른 애?"

"유지인 이라고! 그,.. 엄청 부자인... 아니.. 내가 널 도와줄께 하얀아!!"

"날... 돕는다고? 악마의... 하수인이!?"

"마, 망치좀 제발..! 난 악마의 하수인이 아니야! 악마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걸 증명할께! 지인이는 나랑 꽤 친한 친구야! 생일파티도 초대장 없으면 못가지만 나랑 같이가면 갈 수 있어 하얀아! 거기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올거고 우리 또래도 많이와! 친구 100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잖아?"

"맞아. 나는 아저씨의 과제로 친구를.."

"내가 도와줄께! 그 생일파티에 가면 순식간에 발이 넓어질거야! 연두같은 녀석의 생일파티보다. 지인이의 생일파티에 가면.. 친구 100명! 너두 할 수 있어!"

지인의 생일파티에 가자고...

공교롭게도 우연하게도 같은 날 생일을 맞이하게 된 두 소녀들의 사이에서, 이제 하얀은 선택해야 겠지.

'단숨에 친구 100명을 만들 수 있다니! 그렇게만 하면 아저씨한테 [촉수도 할 수 있는 마법실전 중,상급]책 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 * * *

연두는 울었다.

아니 지금 말고, 일주일 전 쯤에

"나도 생일파티 해줘!!"

라면서 말이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줄 엄마도 잘 알잖아! 내 능력도 별볼일 없는데 다른 능력자 친구 많이 사귀어야 한단말이야! 조금이라도 인맥을 넓히게 도와주지도 못하고 학원도 안보내 줄거면 적어도 생일파티 정도는 성대하게 해달란 말이야아아!!

대채로 바닥을 굴러다니면서 그렇게 빼액 소리를 질러대거나 했다.

평소였다면 그런 연두는 어머니에게 몇대 맞은 후에 방문을 살살 닫고 배게에 얼굴을 묻은채로 작게 소리를 지르는 상황이 펼쳐졌겠지만,

이때는 왠지모르게 연두의 어머니는 아주 서글픈 목소리로 "그래" 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엄마가 맛있는거 많이 해줄께 친구 많이 데려오렴."

친구 많이 데려오라고,

"어. 응."

연두는 기뻤다.

기쁘고야 말고,

남들 다 하는 생일파티.

게다가 능력자 학원의 특성상.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어머니가 알고 있다면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생일 파티.

가장 좋은 친목의 수단이자 행복이었으니, 연두는 신나하며 계획을 세웠다.

그나마 같이 놀곤 하는 친구들에게 설문을 받았고,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아이들에게도 좋아하는 음식이나 다른 것들을 물어보았다.

조금 무서운 친구들도 집안이 좋고 예쁘며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니, 그 아이들에게도 한명 한명 다가가서 용기있게 초대장을 건네 주었다.

생일때는 뭘 해야지. 이런걸 해야지. 저런걸 해야지. 어떤걸 먹어야지.

연두는 대체로 별 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던 셈이지만, '생일이니까 이정도는 괜찮을거야' 라는 생각을 가진채로 학교를 돌았다.

많았던 초대장을 모두 돌렸을 때쯤.

자신의 생일파티는 정말 최고의 생일파티가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쯤.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하나 있긴 했었다.

그것이 바로 하얀.

처음 하얀이 학원에 들어왔을땐, 그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신비한 하얀 머리칼과 외모는 어느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을 만한 것이었지 않은가?

비록 어떤 소문에 잘못 걸려서는 호된꼴을 보고, 고양이나 애완 고라니등 생명을 죽이고 다닌 다는 소문을 뒤집어 쓰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아닐것 같은 학생이기도 했다.

그 수많은 소문을 등에업고 다닐때의 하얀은 그런 소문 따위를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매일같이 같은 행동을 할 뿐이었고, 다른 아이들이 그런 하얀에게 험담을 퍼붓고 쓰레기를 던져도 그녀는 눈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고고하고 고결한 느낌이었다. 하찮은 장난질에 엮일 생각이 없다는 듯한, 어떤것도 자신을 흔들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아무튼 그녀를 둘러싼 안좋은 소문은 무성했으나 그것을 진짜로 믿는 아이들은 단 한명도 없었을거라 확신하고 있다.

...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좀 무서운 아이이긴 했다.

아무튼 연두는 그런 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같이 하얀에게 쓰레기를 던지며, 뒷담화를 했었다. 그럴때에는 확실하게 친구들과 친해진 기분마저 들지 않았던가.

뒷담을 하면서 깔깔 대거나, 하얀이에게 쓰레기를 던질때 같이 던질때면, 정말로 친구가 된것 같았지만, 그 후는 늘 찝찝한 마음을 품을 수 밖에 없었던 연두.

그래서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초대하고 싶었다.

물론 요즘 하얀과 유림이 제법 붙어다니고, 중등부의 지배자인 유림이가 하얀에게 싹싹하게 대하고 있었던 덕분에 하얀의 주가가 올라갔기 때문인건... 아니다.

...

아니 조금있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그것이 주된 이유는 아니다.

과거가 마음에 걸려서, 조금은 편해지고자...

한명이라도 많으면 좋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초대장을 건네주었다.

"..."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유지인 생일파티! 내일 14시00 분에, 'ex레스토랑'통채로 빌려서 합니다. 전부 참석해줘­!]

교실 칠판에 쓰여있는 저것.

해가 저물고 하교시간이 되었을 때 쯤. 칠판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여 있는 같은 학급의 더 뛰어나고 더 예쁘고 더 잘난 아이의 생일파티.

분명 연두의 초라한 집에서 하는 생일파티보다 더 호화스럽고 더 맛있는 음식이 있겠지. 더 많은 사람이 올거고, 더 뛰어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일것이다.

"아, 연예인도 온다고 하네... 요즘 티비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그 사람이잖아. 재미있겠네"

유명한 사람들도 온다.

재미도 있겠지 분명.

그럭저럭 열심히 준비한 연두의 생일파티.

텅빈 교실에서, 칠판에 적힌 다른 아이의 생일 초대 메세지를 보고 난 후에,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는 길.

해가 뉘엿뉘엿기울어가며 석양이 비추어 질 때 쯤까지.

연두는 자신의 발치를 보면서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에겐 뭐라고 말한담.

분명 반 친구들은 모두 다른 친구의 생일파티로 놀러갈텐데, 거긴 자신의 허름한 집이 아니라 멋진 레스토랑이고, 어머니가 정성껏 해준 음식이 아니라 최고의 셰프가 구워주는 스테이크가 나올텐데...

아무도 자신의 생일파티에 오지 않을텐데...

"..."

한숨조차 나오지않았다.

여기서부터는 무서워 진다.

몸이 떨릴 정도로 말이다.

현관에 도착한 연두는 비밀번호를 눌러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창백한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려면, 한참 내일 준비를 하고 있는 어머니가 웃는 얼굴로 연두를 반겼다.

"어서오렴!"

오늘만큼은 조금 득의양양하게 활기차게 인사하는 어머니,

'널 위해 많은 음식을 만들었고! 주문 해놨어!' 라고 말하는 그런 어머니,

떡볶이나 김밥같은 분식과 피자나 치킨같은 배달을 할 예정이라면서 웃어보이는 어머니,

"내일 친구들 많이 온다고 하지?"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 연두가 대답할 수 있는 대답은 딱 하나 뿐이다.

"무, 물론이지! 다들 꼭 올거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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