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라나3 (5)]
* * *
사랑을 받았으니 그에 보답을 해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
라나의 머릿속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오직 그분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을 뿐!
시기와 질투가 어쨌단 말인가, 그 분께서 몸소 자신을 사랑해주시고 사용해주셨는데, 이것이야 말로 자신이 찾아 해매이던 감정.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인 사랑이었음을 깨달아갔다.
그리 오래걸린 일도 아니다.
라나는 두 손을 모아 자신에게 사랑을 전해주신 마왕님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마왕님에게 드리면서 마왕님에게 다가갔다.
아직은 조금 부끄럽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이, 정말로 힘겹고 부끄러운 일이긴 했지만,
절제하고 절제하기로 했다.
사랑은 알게 되었고, 사랑을 얻었으나, 그 분께서는 자신에게 온전히 모든 사랑을 줄 만큼 여유로운 분이 아니며 그 사랑을 각각의 하수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언젠가 때가 온다면 쟁취하고 쟁탈해야 할건 당연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충실한 그 분의 하수인으로써, 신실하고 믿음깊은 그의 종으로써의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
그렇게 다짐했다.
"아참! 마왕... 아니 정수씨 오늘은 보급같은거 할 필요 없나요? 저 오늘 오디션도 없고 시간 좀 많은.."
스릉
"라나 진정하자, 그거 아니야."
"..."
그래, 그렇게 다짐은 했다.
* * * *
한편,
마왕인 정수.
그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라나가 생각보다 성행위에 대해서 적극적이진 않은것 같다고,
"좋아하진 않나봐. 뭐 그럴 수도 있지"
조금더 달라붙어와주길 바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한번 몸을 섞은 후엔, 친밀해진 육체만큼이나 마음의 거리가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길 바랬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라나는 누가 뭐라 해도 친해지고 싶어할만한 외모와 만들어진 성격을 하고 있었으며, 그 실력이나 재능 역시 출중하니, 어느 누가 그녀의 사랑을, 믿음을, 신뢰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성행위로써는 라나에게 충분한 보답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제 스스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정수.
"다른걸로 보상을 내리는 수 밖에..."
라나라면 아마 '세계 정복' 이나 '도살장'같은걸 바랄것 같으니까. 육체를 되찾고 나면 다시한번 라나의 의사를 물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내려주기로 다짐했다.
그야 라나는 우수한 하수인이니까.
라나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며 돌격하는 약간 걱정스러운 존재이지만, 스킬이 갖춰져가고 있는 지금. 라나만큼 뛰어난 하수인은 찾아보기 힘드니까.
그러니까 라나를 위해서,
라나가 조금더 노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럼 밥을 더 맛있는걸로 해줘야 하나? 옷을 사주면 되나? 라나는 뭘 좋아하지?'
쓸데없는 고민을 시작했다.
"이새끼 또 병신같은 생각하고 있네.."
"미리네! 너는 돈말고 뭘 좋아하냐! 네가 좋아하는걸 해볼건데!!"
"시, 시발아! 깜빡이좀 켜고 들어와!"
미리네도 쓸데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 * * *
그리고 그 시각.
<능력자 학원:="" 더="" 아카데미=""/>
수많은 능력자 꿈나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아.. 요즘 마물의 출현이 잦은데, 괜히 마물 퇴치하겠다고 나서는 학생들이 없길 바라고, 구경하는 녀석들도 없길 바란다.. 우리 도시는 다수의 우수한 능력자들이 지켜주고 있으니까 너희들은 학업에 열중해주길 바라고..."
종례가 한참인 지금.
아무리 각 도시에 수많은 마물들이 쳐들어오기 시작해 세계의 멸망이나 다시금 대전쟁이 시작된다는 루머가 나돌아다니고 있으며, 실제 피해도 점점 그렇게 커져가는 중이었지만,
이 도시의 이 학원 만큼은 여전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야 학교만큼은 다음 세대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장소였으니까다.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이라 학생들까지 차출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에야 이곳은 여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겠지.
아무튼 그런 장소의 그런 학교, 그리고 그런 학급. 중등부 교실.
교사의 지루하고도 별 쓸데없는 종례가 끝나고 나서..
"우리 마물 퇴치하러 가자!"
"B 도시에 엄청 큰 놈 나타났다는데 구경하러 가자!"
학생들이 저마다 볼일을 보러, 혹은 학원, 혹은 집으로 귀가 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기에 다니고 있는 능력자인 하얀.
그녀는 일생일대의 시험에 들기 시작했다.
"하, 하얀아.."
"응?"
하얀에게 말을 건것은 친구인 보라도 아니고 감시해야 할 대상이자 악마의 하수인(추정)이었던 이유림도 아닌 같은 반에 있었던 정체불명의 능력자.
'가 아니라 반 친구지 참..'
다가온 순간 바짝 경계하는 것도 잠시, 하얀은 그녀의 얼굴을천천히 바라보았다.
평범한 반 학생으로... 아마도 그래,
반에서 꽤 겉도는 느낌의 학생이었지.
안경을 쓰고 있고, 옅은 녹빛의 머리칼을 하고 있었으며, 주근깨가 조금 있다.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일이 많고, 수업시간에도 좀처럼 집중하진 못하는 소녀.
'키는 146cm의 작은 키에 몸무게는 54kg으로 과체중과 비만을 왔다갔다 하고 있는 애잖아? 성적은 등급을 기준으로 봤을때 6등급으로 평균에서 조금 못미치며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지만 무리지어 다니는 친구들이 몇명 있긴 하고 왕따는 아니고 괴롭힘 당하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위치의 평범하지만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학생이야. 오늘은 쉬는시간 전부 교실에서 나가 쉬는 시간 10분을 전부 썼던 그 애.'
"무슨 일이야?"
하얀은 머릿속으로 그녀에대한 짧은 정보를 떠올린 후에 그렇게 대답했다.
친구 100명, 지켜야 할 사람. 감정을 가지게 되는 사람을 모아야만 자신의 힘과 능력이 강해지니, 그를 위해 친구될 사람들의 간단한 정보를 얻는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중인 하얀.
이 모든 것은 복수를 위해서이기도 하면서, 점차 친구들을 포함한 세계를 지킨다는 희망으로 자신을 채우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그녀의 이름은 분명...
"연두."
"아, 내 이름 아는구나.."
"같은 반이잖아."
"그, 그렇지."
참고로 출석번호는 32번, 능력은 아직 모름. 가족관계는 어머니와 아버지 남동생이 있고, 주거지는 허름한 빌라에 이웃으로는 왠지수상쩍은 백수가 하나 있는것 빼면 문제없는 수준...
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게 아니다.
하얀에게 주어진 커다란 사건중 하나,
하얀은 이 순간,
말이 걸려지는 순간에 조차도 이유림의 움직임과 친구인 연보라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그와 동시에
'이 애랑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친구 100명 만들기중 2명이나 만들어 버렸다는 어마어마한 성과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저기! 내, 내 생일 파티에 와주지 않을래?"
"생일...파티...?!"
생일파티에 초대당하고 말았다.
"...새, 생일 파티라니.."
하얀은 잘 알고 있다.
하얀이 이렇게 되기 전, 평범한 마법소녀가 되기도 이전, 초등학생때 해왔던 친구의 생일파티라는 이벤트를!
그것은 각 집안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자 친구에게 전해주는 선물의 가치에 따라서 얼마나친한 친구인지 나쁜 친구인지를 가리는 자리.
생일상의 크기, 생일 선물 가치, 그리고 생일에 초대하는 친구의 숫자는 모든것이 과시할 수 있는 대상이며, 그렇게 과시하고 나면 남게 되는것은..
'대량의 친구?'
대량의 친구!
생일파티에서 같이 놀게 되는 이들은 서먹했더라도 금방 친해지게 되는 법!
놓칠 수가 없다.
아니 놓쳐선 안되는 이벤트.
하지만 하얀에게는 문제가 있다.
이 이벤트에서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선물은? 아니 어디서 하는거지? 어떻게 해햐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전날 자신은 대체 어떻게 생일 파티에 참여했는가!
평화로웠던 기억은 모조리 사라진 듯 하얗게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나는건 그저 생일파티때 탈출로를 찾아보는 계획과 생일파티에 숨어든 악마의 하수인을 감별해내는 방법, 그 후에 대처하기에 앞서서 즉결처분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뿐!
선물은 뭘 줘야 했더라? 어느 것이 평범했었지? 뭘 해야 했지? 케이크를 무기로 싸워야 했던가? 솔직히 말해 생일 당사자의 부모님이야 말로 고생하셨으니 낳느라 고생하셨다고 선물을 드려야 하는게 아닌가? 몇 분전에 도착해야 했지? 가서 해야 하는 일은 뭐였지?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
"어.. 그... 어.."
하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기다리다 못한 연두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직접 만든듯한 귀여운 모습의 초대장을 건네주었다.
'...? 뭐지 이건...'
하얀은 다시금 그것을 보고 당황했다.
'중등부 학생 치고는 조금...음?'
조금은 초등학생 같달까, 조금은 유치하다고 해야 할까.
굳이 이런 초대장을 건네준다는 것이 오글거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해야할까.
하얀은 당황하고 만것이다.
"저기.. 아! 미안 부담스러우면..그, 그냥 안와도 되는.."
"아니야!"
하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이 조금 그렇고 그런.. 조금 애매모호한 느낌을 들게 했지만, 이런 기회를... 이런 빈틈을 파고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슬금 초대장을 빼려는 연두의 손을 잡아, 하얀은 그 초대장에 손을 뻗었다.
"갈께."
그리고 짧게 대답했다.
생일 파티 정도야 가고말고, 한번 가보면... 아니, 아저씨에게 상담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건 당연할테니..
"내일 모래... 주말이었네?"
"응"
시간과 장소를 체크했다.
"다른 친구들도 많이 올테니까 꼭 와!"
그리고 연두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마 하얀이 초대장을 받아준 덕분이었겠지. 곧 자신의 생일 파티에 많은 사람들이 올거라는 기대감 덕분이었겠지.
그 덕분에 활짝 웃고 있는 연두를 보면 하얀도 괜히 마음이 녹아내렸다.
긴장을 조금 풀고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이 약간 올라간 것이다.
"그럼나는 먼저 갈께! 세명 다 와주면 좋겠어!"
"응. 잘가. ... 세명?"
연두는 그렇게 돌아갔다.
"..."
그리고 하얀은 남아서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세명이라니"
고개를 휙 돌리면, 이제 얼굴이 좀 편해진 보라가 하얀의 얼굴을 보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아, 명? 인수로 쳐야 했지 참..."
이유림도 있긴 했었지.
뭐, 알게 뭐람.
"어차피 데리고는 가는게 좋겠지. 감시해야 하니까."
"...하, 하얀아 감시는 보통 네가 따라다녀야 하는거 아닌..가? 나, 나도 그 때 약속이 있.."
"어? 네가 나한테 감시당하게 쉽게 눈앞에 있어야지. 잘 생각해. 내 시야에서 네가 사라지면 어떻게 할지 난 잘 몰라... 악마의 하수인이 계략을 꾸밀거라고 생각하면 심장이 터져버릴거 같다고.."
"미, 미안.. 미안해..어.. 가, 갈께. 갈테니까 하얀아 지, 진정...해주라.."
"난 진정하고 있어. 네가 진정해 이유림."
"응..."
수상한 것은 완벽하게 결백이 증명될때까지 파고들거니까,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래,
아무튼..
"그럼... 보라야 저기.. 나는 잘 모르는데 이것저것 알려줄 수 있을까?"
"생일 말하는거지? 선물...?"
뭐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확인해보자.
우선 하얀은 전학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전학생에, 초반부터 유림에게 잘못걸려 온갖 오해를 뒤집어 쓴 상태로, 학교내에 친구한명, 아는사람 한명 수준이고,
하얀의 친구가 된 보라는 오랫동안 유림에게 괴롭힘 당해오는 바람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는 하나도 없고, 자기몸 건사하기도 바빴으니 다른 친구들을 볼 여유조차 없었으니 아는 정보는 조금도 없다.
...
유림은 뭐.
넘기고
"내가 제일 잘 아는데.."
"... 악마의 꾐에는 넘어가지 않을거야."
"미, 믿어줘 제발! 난 악마도악마의 하수인도 아니라고 했잖아! 지, 진짜야! 증명할께! 이번에 증명할 수 있게 해줘! 제발 하얀아! 제발 나좀... 용서해줘"
"용서를 왜 나한테 빌어? 네가 괴롭힌 사람들에게 빌어야지. ...아니 역시 나한테 캥기는게 있는거지? 내 친구들에게 한 짓을 알고 있기라도 한거지? 응!? 역시 악마의 하수인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으.. 제, 제발 딱한번만! 내가 도와줄께! 진짜야!"
"... 희망의 해머."
아니,
넘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 조금 정도는 도움을 받을 수도있지.
악마를 이용하는 건 괜찮겠지.
'아저씨한테 보고하고 상담해보자'
보고와 상담이 충분하면 괜찮다.
'아저씨는 계속 날 지켜봐주신다고 했으니까. 괜찮을거야'
필요한건 이용할 수 밖에..
"말 해봐."
하얀의 성장이 다시 한걸음
이루어질 시간이다.
"꿀꺽... 그, 그러니까 방금 그 연두라는 애는.."
유림은 녹색 액체 따위가 묻어있는 하얀의 망치에 시선이 고정된 채로.. 힘겹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눈을 보고 말하지 못하잖아 이 녀석... 역시 수상.."
"아, 아니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