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라나3]
<라나의 집>
귀족 마을에 위치해 있는 꽤나 부유하고 잘나가는 집. 커다란 대문 커다란 정원 커다란 차가 있고 커다란 현관을 지나면 겨우겨우 도착할 수 있는 장소.
"다녀왔습니다."
라면서 담담하게 말한 라나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해 있었다.
'실수 했어'
실수 해버렸다.
던전을 돌아 그분께 모습을 보여드린 것까지는 좋았다지만, 후반에는 감정에 휩쓸려 자기도 모르게 충동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처음 느껴보는 불쾌한 감정이었어'
불쾌한 감정을 느껴본 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기분나쁜 기묘한 감정. 자신을 악으로 물들이고 말아버리는 그 끔찍한 여러 감정중 하나인 '질투'를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치 못채게 했어야 하는데, 더 차분히 준비했어야 했는데... 이 감정은 정말... 참을 수 없게 만들어버려...'
평소 라나였다면 좀더 냉정했을 것이다.
냉정하게 계획을 세워 냉정하게 그녀를 죽였을 것이다.
시체도 잘 숨겼을거야 아마, 공소시효가 지날때까지 버틸 수 있을만한 자신도 있었겠지.
하지만 냉정해지지 못한 것은 분명한 라나의 실수다.
'이 감정은 대체..'
살아오면서 질투라는걸 해본적도 없는 그녀였으니, 가장 위험할 것 같은 그녀에게 가장 큰 질투를 느낌으로써,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휘둘러버린 일이니, 라나는 아마 앞으로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면 참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실수를 연발하고 말겠지.
사랑과는 또 다른 질투의 감정에...
"..."
그렇게 라나는 신발을 벗어 방에 들어섰다.
방에 들어서고 나면 보이는 것은 라나의 애틋한 가족이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쇼파에 앉아 있다가도 라나가 들어오는 순간 벌떡 일어나면서 라나에게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서오렴!"
"오늘 학교는 어땠니?"
"그 분이 주신 녹즙좀 먹겠니?"
"그 분께 영광 있으라!"
"그 분께서 너를 더 잘 보필하라고 했단다"
"그 분을 찬양하라!"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해야 한단다 라나야! 넌 그 분의 뜻깊은.."
"그 분의 위대한.."
"성녀잖니!"
"성녀!"
두 사람의 상태는 정상이라 보기 어렵다.
어찌보면 '광신'에 빠져있을 뿐인 평범한 부모님처럼 보일 법도 하겠지. 라나는 방긋 웃었다.
"네, 알고 있어요 엄마, 아빠. 걱정 마세요. 저는 그 분의 성녀니까요."
그리고 다소곳이 가슴깨에 손을 모아, 신실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라나.
그런 라나에게 감동받은 듯이 두 부모님들 역시 두 손을 모아 잡아 위대하신 그분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
이전날의 성과다.
성과라고 해도 될런진 모르겠지만, 예전, 만애교라는 수상한 종교에 납치되었을때. 라나보다도 먼저 세뇌당하여 만애교의 뜻대로 라나를 바쳤던 때. 만애교의 교주가 쓰러지고, 세뇌와 지배의 힘이 라나에게 들어감으로써, 그들의 신앙 대상은 바뀌어버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든 지배로부터 풀려나 평범한 삶을 보내게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만이, 이미 삶을 망쳐버린 이들만이 만애교에 남았고,
만애교에 남은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 이름을 '마왕님 사랑 헤으응앗 실천교'로 바꾸고 새로운 리더를 삼아 내었던 이야기.
새로운 리더는 곧바로 종교의 이름을 '전국 마왕 협회' 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버리고 협회 따위의 방향으로 바꾸어 버리긴 했지만,
여기 두 사람.
라나의 부모님은 아직까지도 그 세뇌의 여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단 것이다.
원래부터 어딘가 어긋나 있던 이들이었던 덕분에, 한없이 어긋나 결국 망가져 버린 인간들의 표본. 비뚤어지고 상처입히고 자신들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된 존재들.
그렇기에 그들은 이런 상태다.
신앙하던 만애교주 대신, 새로운 '전마협'의 회장을 따르며, 회장의 위에 '그 분' 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라나를 바로 그 분의 반려이자 성녀라고 여기게 된 상태.
"그럼 전 올라갈께요. 두분."
"그래! 열심히 하렴!"
"모르는거 있으면 엄마에게 물어보고! 그분의 축복 있으라!"
"하하!"
"호호!"
물론, 옛날과 그리 달라지진 않았다.
조금 풀어지긴 했지만, 그 집착은 여전히 남아 있다.
라나에 대한 비이상적인 집착.
라나는 그런 이들을 흘겨보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라나가 특별히 두 사람을 건들진 않았다. 뇌를 만지작거린다던가, 지배하고 세뇌하고 최면을 걸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아무짓도 하지 않은 상태다.
...
곧이어 자신의 방에 도착한 라나는 눈앞에 있는 '초합금 오가닉 공부상자'를 한번 보고는... 그 옆 침대위에 누워 버렸다.
감정이란 무엇인지.
이렇게 집에 들어와 귀찮고 짜증나기만 하다가도 이젠 집착이 괴이하게 변질되어 망가져 버린 두 사람을 보고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애시당초 라나의 감정이 희박한 이유는 그 두 부모 덕분이다.
감정을 절제 하는 것을 배웠다.
자신을 지우는 방법을 배웠다.
더 높은 학력. 더 강한 능력을 위해서 모든 인간적인 부분을 버리도록 교육받아온 라나의 성과가 이곳에 있다.
어떤 감정 표현도 생각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서 흉내내기만 했을 뿐. '사랑'도 '질투'도 하물며 그 외 대다수의 모든 감정들도 알지 못하게 만든 것이 라나.
그렇게 만들어져 온 라나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라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질투라는 악의 섞인 감정에 라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버텨내어 그분에게 미움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그 사람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게 싫어' '정수님이 나만 봐줫으면 좋겠어' '카론님이 나에게..'
...
뭐,
나중 일이다.
* * * *
"죄송합니다."
라고 라나는 먼저 사과를 건네었다.
"딸꾹!"
세이는 딸국질을 했고, 숨이 막힌듯한 표정으로 멍청한 표정으로 세이를 바라보았고, 그 후에는 나를 바라보았다.
<검은 공간>
왜, 나도 몰라. 날 보지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고개를 가로저으니,
라나는 다시한번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합니다. 죽이려 해서.."
이번엔 좀더 구체적으로 사과해야 할 이유와 자신이 잘못한 점을 함께 말했으니, 아. 사과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라나가 저곳에 있다.
"..."
"..."
그 후에는 침묵.
나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안그래도 불안정했던 라나가 어떤 계기로 인해서 폭발해버렸다는 것 정도.
이전에도 라나는 세이를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라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임무를 완수하려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세이가 임무에 관해서라면 어느정도 너그럽고, 널널한... 흔히 자신의 꿈이 조금더 중요한 타입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라나는 폭발해버리고 말았겠지.
"내 사천왕중에도 있었지.."
사천왕중에서도 한명쯤 있었다.
그러니까 악마 컨피던스가 마왕군의 군단장 이었고 또 다른 서큐버스 타입의 사천왕이 한명 있는가 했으면, 또 다른 사천왕중 한명은 우직하고 둔직하여 오직 임무와 의무에 따라 죽고 사는 녀석.
...
아마 라나 역시 그런 타입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잘 알고 있다.
...
'아니지.. 생각해보니까 그 녀석.."
아니, 생각해보면 그 녀석.
몽마가 당한 이후에 이곳저곳 설치고 다녔었지.
원래 조용한 성격이었던 녀석 답지 않게 몽마가 당하고 나서 얌전히 있으려니까 혼자 제국의 어둠으로 침투해서 황자를 사로잡아 왕국간의 전쟁을 일으키고 반란군을 만들어 내는 등의 별 짓을 다 했던걸 기억한다.
그 결과로 용사가 두번째 각성을 했었지 아마,
어디서 데려온건지 용을 한마리 타고 오더니 '마왕님 대신에 제가 이 땅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오겠습니다!' 같은 말을 하고 출정해서는 실제 제국의 삼분의 일을 지 혼자 불태워 버리다가, 죽은 영혼의 힘을 모으는데 성공한 용사가 각성하는 바람에 싸워서 결국 지고 말았다.
'젠장,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아마도 그 때 그 녀석은 내가 못마땅했던 거겠지.
몽마가 당하고 나서도 제대로된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었으니 말이다. 그 녀석은 박해받던 종교로 인해 마왕군에 합류하게 된 녀석이었고, 그런 만큼이나 나와의 만남을 신의 계시라 여겨 마왕군이야 말로 자신의 의무이자 의지라고 생각했던 녀석.
답답했겠지.
의무를 저버리려고 했던 내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제멋대로인 행동을 했던거겠지.
그래 이건 안되겠다.
"그 녀석 여자였냐?"
"응? 뭐, 여성형이었지. 후우.. 생각하니 또 씁쓸하군"
"혹시 너 그때 쯤에 다른 짓 한건 아니고?"
"다른짓? 아.. 몽마가 당한 후에는 병력이 부족하다 판단해서 마지막 사천왕을 찾았었지. 설득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 전력을 충당하는데 밍기적 댄탓에 그녀석이 폭주한걸수도 있겠네."
"마지막 사천왕도 여성형이었지?"
"응"
"... 대단하다 너 진짜."
"맞아."
"병신."
미리네는 할말이 없으면 대체로 욕을 한다.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갑자기 생각난 나의 과거, 사천왕에 대한 추억은 이 상황에 대입하면 안될 것 같아 고개를 휘저었다.
필요한건 다른 것이다.
미리네는 인상을 쓰며 머리칼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저곳에서 사과를 하고 있는 라나와 그런 라나를 앞에 두고 바짝 굳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세이를 보면서. 푸욱 한숨을 내쉬고는..
"너, 라나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니. 흠, 필요한 부하지. 유능하고 괜찮아."
"필요한... 그거 밖에 없냐?"
인상을 썼다.
스윽 나를 올려다 보며 눈썹을 모은 그녀가, 혹은 화를 내려고 하듯이 건방진 자세로 서 있는 그녀가 썩 귀엽게 보이는 편이다.
"그래, 그 외라면.."
그 밖이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괜찮은 몸을 가지고 있지"
역시 성적인 시선 뿐일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괜히 미리네에게 욕을 먹을까봐 굳이 하진 않았지만, 라나의 신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야할까, 균형을 완벽하게 맞추어 놓은 듯한, 짜 맞춘듯한 라나의 몸은 아마 가장 이상적인 몸매였겠지.
괜히 괴롭혀주고 싶고 천박하게 만들어 보고 싶은 세이랑은 또 다르고 미리네와 비교하기는 말할 가치도 없다.
"시발놈이?"
라나는 괜찮은 여성이다.
하수인이 아니었다면 분명 얻으려고 했을거야, 성노예나 아니면 그 외에 다른 무엇으로든 내 수중에 넣으려고 했겠지.
...
"그럼 시발! 야!"
"아니 왜?"
미리네는 대체로 욕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생각 어느 부분에서 욕이 나올 부분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아예 그 작은 다리로 나의 발을 툭툭 치면서, 소리지르기 시작한 미리네
"아니 그러니까 그거잖아 염병할 새끼야!"
"...?"
"마력이니 뭐니! 별 시덥지 않은 핑계 같은거 대면서 덮치는그거!"
"하지만 라나는 가장 중요한 전력인데? 라나한테 마력을 추출하라고? 게다가 라나는 세이처럼 잉여 마력도 없이 전부 컨트롤 할 수 있고, 라나의 부재는 던전 공략도 좀 늦어지는..."
"상관 없으니까 하기나 해!"
하긴 뭘해. 라나를? 라나라는 중요한 전력에게서 마력을 추출하라고?
그런건 있을 수 없다.
기억해야만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파편을 회수하기 위한 싸움이다.
악마 컨피던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노리게 될줄 모르는 전장이다.
이미 하얀의 옛 동료들이었던 마법소녀의 사례가 있듯이 우리들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너, 진짜 그래? 그런 핑계 없이 진짜 암것도 못하겠냐고. 쟤가 너한테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게 까지 모른척 해야겠냐?"
그리고 미리네는 사뭇 진지한 투로 다시 물었는데,
그녀의 시선은 나의 눈이 아니라 나의 고간에 향해 있었으니, 나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리니
이미 바지를 뚫고 나올 듯한 나의 남근이 열심히 자기 주장을 하려고 하는 참이었다.
"..."
"진짜냐고. 새끼야"
"흠, 생각보다 이 몸의 성욕이 감당하기 힘드네. 상상한것만으로도 이정도인가... 으음..."
"가, 쫌. 이거 다 우리 팀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든가, 밸런스를 위해서라던가! 뭐 아무런 핑계도 상관 없으니까!"
"... 그래. 그렇지."
그래, 이렇게 되면 또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하수인을 위해서, 안정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일보 후퇴쯤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라나! 이리와봐!"
나는 라나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미리네에게는 손을 한번 흔들어 조언에 대한 적당한 감사를 표현했다.
"후... 병신 진짜.."
그 후 미리네는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었지만 못들은채 해주기로 했다.
미리네는 보통 욕을 하니까.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