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한세이2 (6)]
<모텔거리: 편의점>
여러 연인이 오가는 장소.
당장 오늘 하루만 해도 이 편의점에는 목줄을 맨 사람과 성기가 보일듯 말듯한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는 사람, 가게 안에서 호텔이라도 차린듯 쉴틈없이 입맞춤을 해대고 있는 연인이나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지 모르는 꼬리를 달고 얼굴을 불그스름하게 붉히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곤 했던 바로 그런 곳.
그만큼이나 성적이고 개방적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장소다.
"후우..오늘은 왜 남자손님밖에 안오냐..."
문제는 오늘은 하루종일 남자손님 밖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건 아니지.
다만 알바생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만한 것을 보기만 했을 뿐.
"..."
"와인 한병 더 살려면 사고"
"...살래요."
"레드? 화이트?"
"...화이트요."
"새로운 경험을 선호하는군!"
그 두사람이 다시 들어왔으니까,
시간은 이른 아침.
어제와 달리 시끄럽게 투닥이는 느낌도 아니었고 기묘한 기류가 흐른다고 해야 할까, 평범하게 친구같은 연인관계가 아니라 기묘하고 미묘한 모습.
무엇보다도 들어온 세이의 뺨이 상당히 붉었다는 것과 어제완 달리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보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걸음을 약간 어색하게 걷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이야기었다.
아니지, 신기하고 자시고...
'뭐야, 어제랑 입은 옷이 똑같잖아?'
어제와 같은 옷에, 대하는 태도는 다르고, 또 콘돔을 하나 집으면서 와인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시발..! 했구나!'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제법 해대었음을 알 수 있엇다.
존나했겠지. 하룻밤이 지나도록 미친듯이 한 사람의 얼굴. 저 예쁜 얼굴이 지금은 완전히 사랑에 빠진표정이 되어서는 수줍음을 어쩔줄 몰라 쮸뼛거리고 있는 저 행동!
"좋아 그럼..."
그 와중에도 중얼거리면서 그녀의 엉덩이를 쓰담쓰담 거리고 있는 저 남자의 양아치 같은 행동까지 포함하여...!
마치 자신을 놀리는 것마냥! '너는 이런거 못하지?' '너는 이런 여자 없지?' 라는 투로 스윽 한번 자신을 흘겨 보고 살짝 그녀의 옷을 당겨 그 굴곡이 보이게끔 만들어 버리기 까지 하니!
'씨이이바알...!'
그 모습에 아르바이트생은 뭐라 형연할 수 없는 패배감을 느끼면서 결제 후.
"...결제 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잠깐 편의점 문을 잠구어 버리기로 했다. 이번엔 30분
...
그 후 당연히 짤렸다.
* * * *
<검은 공간>
그리하여 다시 이곳이다.
그 검은색 밖에 없던 공간에, 커다란 침대와 마사지를 위한 공간과 화장실과 샤워실과 책상과 의자와 냉장고와 여타 필요한 여러 물건들이 즐비하게 된 곳.
던전을 탐험하고 귀환할 경우 강제적으로 이 장소에 다다르게 되는 하수인들이 모이는 곳.
"..."
"..."
그곳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중이었다.
좀 숨막힐 수도 있긴 하겠지.
사각-사각-
옆에서는 이 공간의 주인인 마왕 마정수가 사과를 깍고 있고,
또 다른 한켠에서는 하수인들중 가장 어린 소녀였던 하얀이 열심히 필기를 하며 하루의 복습을 하는 중이었다.
"어, 어디보자 뭘 공부하는건지.."
[8시 59분, 악마의 하수인의 등교가 이상하리 만치 늦다.]
[10시 7분, 악마의 하수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들어 계속 내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 없애버려야 하지만 참아야 해]
[13시 45분, 악마의 하수인이 수업시간에 조는것을 발견했다. 역시 악마의 하수인이라 학교 수업같은건 상관 없어 하고 있어. 하지만 좀더 확인해야 한다.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순 없으니까]
[14시 10분, 쉬는시간이 끝날때쯤 뒤늦게 화장실에 가려고 하기에 막았다. 수업시간을 틈타 어떤 사악한 짓을 하려고 할지도 몰라. 다행히도 말을 잘 들었지만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 계속 감시했다.]
[14시 25분, 악마의 하수인 녀석이 수업시간에 소변을 지렸다. 그리고 울면서 넘어졌고, 다른 학우들의 부축을 받으며 보건실로 향했다. 무슨 생각이지? 무슨 계획이길래 수업시간에 소변을? 사악한 악마의 주술일까? 의심스러워 쉬는 시간에 보건실로 갔다.]
[15시 02분, 보건실로 갔는데 악마의 하수인이 멍하니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보건선생님께 내가 간호하고 있겠다 말하니 허락해주셨다.]
[15시 28분, 악마의 하수인이 창문을 깨고 탈출했다.]
[15시 30분, 붙잡았다.]
[15시 31분, 당장 수상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서 아저씨에게 조언을 구했다.]
[15시 33분, 아저씨가 금방와서 확인했지만 아무일도 없는 모양이다. 악마의 하수인 녀석, 아저씨 앞에서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척을 하고 있다.]
[15시 40분, 붙잡아 학교에 다시 놔뒀다. 이 이상 의심스러운 짓을 하게 되면 그땐..]
"아, 일기쓰는구나."
"아, 네."
"분 단위로..?"
"네, 악마의 하수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감시 일기에요."
"그렇구나.."
일기를 쓰고 있었다거나 말이다.
미리네는 하얀이 쓰고 있는 것을 보고는 꿀꺽 마른침을 넘긴 후에, 그 다음엔 앞을 보았다.
이런날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지만, 역시 없었지. 없었다. 분명.
"..."
바로 여기 앞에 그녀의 표정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녀라 함을 합류한지 이제 꽤 되었다고 생각하는 한세이의 모습이었으며, 그간 오디션 탓으로 바빳기 때문에 오랜만에 던전을 돌고 돌아온 이곳인데,
여기에 가만히 앉아,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을 깍아주는 정수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그녀의 발그스레한 볼, 흘끔흘끔 정수가있는 쪽을 연달아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
이따금 군침을 넘기면서 시선이 마주칠랑 하면 휙 하고 시선을 돌리면서 모른채 하는 모습.
'돌겠네'
세이의 반응이 그러하니, 마침 옆에 있었던 라나 역시 그 모습을 알아차리고는 뭐라 말 못할 기운을 풀풀 뿜어내는 중이었다.
다만 세이는 그런 기운에 무감각하기라도 한 듯이 몸을 비비적 대면서 조금 웃거나 근심스러운 표정만을 지어보이니,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을 보고 알것같은 미리네만 죽을 맛!
'시발'
미리네는 욕을 했다.
그리곤 조금 아픈 머리를 붙잡았는데,
상황이 조금 꼬여갈것 같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어찌어찌 잘 해왔던게 반쯤은 기적 아닌가? 미친놈한명, 제정신이 아닌것 같은 애들 둘에, 그나마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기세좋게도 말려들어버렸어.
'아, 파국이다 파국.'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 팀은 아마 내부에서 부터 펑! 하고 터지겠지.
...
"... 아."
그리고 그 때쯤 터지기 시작한다.
"냄새."
차갑고 굳은듯한 눈동자로 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나가, 그런 시선을 눈치채지도 못하며 사랑에빠진 소녀마냥 안타까운 한숨을 토해내고 있는 세이를 향해 다가간 것이다.
한 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석에 힘을 준 채로, 그녀의 목덜미 부분에 코를 가져다 대어 한번 그 향기를 들이키고 말았다.
섬칫- 몸이 떨렸을 것이라,
미리네야 뭐 눈치껏 그 상황을 피해왔지만,
아마 저것은..
"마왕님 냄새가 나잖아요."
확신할 수 있는 소재.
"어? 까, 깜짝이야! 넷?! 무슨 소릴.. 잠깐만요? 라나씨 너무 가까우세.."
스릉-
검이 뽑힌건 순식간이고, 라나는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꺅?!"
그리고 그 반동으로 세이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러덩 뒤로 넘어져 버리고, 그 이후 라나는 그대로 칼을 거꾸로 잡으며 세이의 심장을 향해 칼을 겨누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건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분명히 목숨을 빼앗으려는 행동이었겠지. 실제 그 검이 세이의 심장을 파고 들어갔다면, 라나가 그간 얻어온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세이의 온 몸을 찢어놓았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처가 나는 순간 이용했을지도,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도 라나는 온갖 방법을 찾으려 했겠지.
허나 다행이었던 점 하나는 그 공간이 '검은 공간' 이었다는 것.
"야 라나 너...!"
당황한 미리네도.
"...!"
일기를 쓰던 하얀이도,
사과나 깍고 있던 마왕역시도 재빠르게 다가와 라나를 막아낼 수 있었다.
한 손으로 검을 막아 들고, 한명은 라나의 허리를 붙잡아 때어내려 했으며, 또 다른 한명은 마법을 이용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라나의 움직임. 라나의 준비되지 않았던 충동적인 살인미수는 거기에서 멈출 수 있었던 것이다.
"허...어..? 어, 어라?"
세이는 자신의 가슴 끝에 닿을랑 말랑 하고 있는 라나의 칼을 보아 가쁘게 숨을 내쉬는 상태가 되었다.
'나 방금 죽을 뻔..했어?'
방금 살해당할 뻔했다.
재생 능력이나 마력의 힘이 있더라도 도무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어버릴 뻔했다.
물론 정수가 어련히 알아서 치료해주겠냐마는. 아무튼 돌이킬 수 없는 트라우마나 부상이 남아도 이상할 일은 없었겠지.
섬칫했다. 공포심이 물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내가? 뭣때문에? 방금 살해당할 뻔했다고? 마법도 뭣도 아니고, 그냥 사람손에?'
이해할 수 없었으니, 행동한 원리조차 알 수 없었으니.
차라리 미움받았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겠지. 아니면 상대가 괴물이고 무조건 인간을 죽이는 상대였다고 한다면 이해하겠지.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달려와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이..
'어.. 무서워..!'
무섭다.
두렵다!
그렇기에 세이는 일단 여기서...
"켁!"
기절!
* * * *
<검은 공간>
여전히 검은 공간.
사건의 당사자인 라나는 흐느껴 울고 있다.
...
당사자이긴 하다지만 가해자인 라나가 울고 있다. 세이는 짧의 기절에서 의식을 되찾는 중이었고, 미리네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 하얀이는 곧 취침할 시간이라 이부자리를 펴는 중이다.
"흐윽..윽.. 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라나는 사과를 하는 도중이기도 했지.
흐느껴 울면서, 감정이라곤 조금도 없는 듯이 검을 휘둘러댄 주제에 지금은 엉엉 울면서 용서를 구하듯 정수에게 머리를 숙였다.
"정말..죄송해요."
그녀로써도 이번 일은 조금 그랬다.
감정이 대체 뭔지.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줄 몰라서.."
이런 감정을 어디 한번이라도 느껴봤어야지.
자신을 죽이며 살아왔다. 아니 애초에 '본인'이라는 자아 따위가 없는듯이 살아왔다. 부모님의 인형으로 살았고, 시키는대로 했고, 하란대로 행동해왔던 라나다.
말 하는 법, 표정을 짓는 법,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올바른 행동인지, 호감을 올리고 적의를 낮추는지, 자신의 편으로 삼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철저한 주입식 교육으로 탄생된 인형.
그것을 자신의 꿈으로 삼아버린 세이와는 달리, 완벽하게 자신을 죽여버린... 아니 애초에 자신이라는 자아를 만들기도 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라나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혼란스럽다.
"마왕님 옆에는 나만 있고 싶은데! 당신의 말을 듣는건 저만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마왕님이 나만 바라봐주고 나만 생각해주길 바라는데! 이런 감정같은건 모르겠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겪고 있는 것에 대한 혼란.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볼때마다! 마왕님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안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었는데! 그걸 참아왔는데!!! 막상 눈앞에서 아무것도 모른채로 있는 저 여자를 보니까 죽여버리면 편해질것 같아서!"
질투 라는 감정에 대한 대처법.
"그래서 검을 휘둘렀는데! 운좋게 피해서는 이 도둑고양이같은년, 너만 없으면 마왕님이 날봐주겠지 날봐주실거야 죽어서 세상에 없어지면 되는거잖아 없어지면 돼 그럼 난 다시 마왕님곁에 있을 수 있어 이감정을 계속 느낄 수 있고 받을 수 있을거야 이런 더럽고 불쾌한 감정은 내 안에 더이상 필요없으니까 다 너에게 줘버리고 죽여버릴거야 너를 너, 너를.. 으...으흑.."
그에대한 해소법에 대한 아주 자그마한 혼란이다.
"아니, 울던가 미치던가 둘중 하나만 해주라 라나야.. 제발"
"사춘기때 흔히 있는 일이지!"
"흔히 없어 병신아..."
미리네야 뭐, 그런 라나의 격한 감정 표현방법에 혀를 내둘렀지만, 정작 정수.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에게도 별것 아닌 일은 아니다.
동료를 해치려고 했다는 것, 충동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살인'을 하려고 했다는 것. 하수인끼리 다투었다는 상황 자체를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좋게 볼 수 없었겠지!
하지만 그것을 해결하기전에 앞서서.. 정수는 이 말은 해야 했다.
그래, 요컨데 '질투'따위의 감정 해소 방법이 살인으로는 안된다는 말.
"그리고 오해하는거 같아 말하는데! 죽으면 좀비로 만들거고! 또 당하면 해골로! 당하면 영혼도! 너희의 모든 것은 생명은 커녕 존재가 다하는 순간까지 써먹을 생각이니까! 죽인다는 걸로는 아무것도 해결 안돼!"
뭐, 그런 선언정도?
"그러니까 라나! 너도 마찬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