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한세이2 (2)]
며칠 전,
세이는 집에 들어갔다.
<세이의 집>
세이는 집에서 쫒겨나듯이 나와버렸다.
뚱뚱하고 비루햇던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어머니로 부터 많은 비난과 욕설과 매도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었을 뿐인 나날이었으니,
그날 세이가 나온 것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가족이 그리고 어머니가 세이의 등을 떠민것과 같은 이야기었을 테지.
하지만 그럼에도 세이는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집이란 그런 곳이다. 아무리 싫다 해도, 아무리 자신을 내보내려 해도, 결국은 돌아갈 수 밖에 없게 하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심리의 마지막 끈.
화목했던 과거의 기억. 상냥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 유년기의 아름답고 따스했던 나날,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 있던 가장 좋았던 때의 기억. 그것은 분명 가족끼리만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요소.
어머니가 아무리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했다 한들, 실패작이라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한들, 결국 돌아가서 화해하고 싶게 만드는게 가족이고 어머니의 품이었으니,
세이는 힘없이 돌아갔다.
"다녀왔습니다."
힘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비밀번호는 바뀌지도 않았으며, 적막한 집안에 공허하게 울려퍼진듯한 목소리다.
하지만 곧.
쿵-! 쿵! 쿵!
성큼성큼 걷는 성인의 발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세이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려뜨려 버렸다.
그건 버릇이다. 늘상 있던, 어머니가 화낼때마다 들리곤 했던 그 분노어린 발소리에 저도 모르게 몸을 위축시키는 것이 세이. 세이가 고개를 들었을땐.
거구의 체격이 되어버린 그녀의 어머니가 험상 궂은 표정으로 세이를 노려보았고, 세이는 어색하게 나마, 작은 몸인 상태로
"다, 다녀왔어요.."
다시한번 인사했는데,
그 순간...
"어? 너..."
털썩-
세이의 어머니, '최시란'. 그녀는 주저앉아 버렸다.
"너...뭐, 뭐야? 누...누구야?"
못알아본다.
목소리는 분명 세이의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가서 며칠동안 돌아오지도 않은 빌어먹을 딸내미. 아니 딸도 아니지, 모든 투자에 실패하고는 엉망진창이 되어 제 몸을 망쳐버리고 방안에 틀어박힌 그녀는 짐덩이도 되지 못하는 쓰레기.
역겨운 년. 키우지 말았어야 할 딸,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그런 존재.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목소리였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던건 왠 처음보는... 하지만 세이와 굉장히 닯은 듯한 아름다운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뛰어난 매력을 몸에 두른채로, 가녀린 몸을 했고, 고운 머릿결을 어깨까지 늘어트리고 있는 그녀가 눈망울엔 눈물을 조금 담아 더더욱 반짝이는 듯한 커다란 눈을 가진 그런 그녀.
백옥같이 하얗고 깨끗한 피부와 완벽이라 해도 좋을만한 몸의 굴곡.
"어...엄마?"
한세이.
최시란의 딸.
"어어.. 어?"
놀랄 수 밖에 없다.
분명 어렵풋이 닮긴 했으나, 도무지 자신의 딸이라곤 믿기지 않는 무언가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 바로 세이였다. 그래도 성격은 어딜가지 못해 다소 소심하고 소극적인 그녀의 모습이 남아 있어, 주늑든 채로 자신을 '엄마' 라고 부르는 그녀는..
"세이..세이니?"
"아..네, 죄송해요. 제가.. 그, 가출하려던건 아닌데"
분명 그녀의 딸이었다.
세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당당하게 인사할 수 있겠지! 나 이제 굉장해 졌으니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주 당당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 최시란을 보고서 다시 그날이 떠올라 주늑들어 힘없이 말했으나,
최시란은 기쁘게 세이를 맞이 했다.
"도, 돌아왔구나!"
"어...네? 아..네."
기쁜 마음으로, 오랫동안 기다려 왔단 듯이 돌아와 주어 기쁘다는 듯이!
당장 수십초전까지만 해도 다리몽둥이를 뿌러트린 후에 옷벗기고 바깥에 내다 버려애겠다! 라고 생각한 주제에!
"어떻게 이렇게 살이 빠졌어?"
"어..음, 우, 운동을... 해서요?"
"운동을 했다면 그럴만도 하지!"
말도 안되는 그 변명을 믿으면서!
와락- 최시란은 세이를 끌어안았다. '내가 네 엄마야' 라고 말하는 듯 '어서와 가족의 품에' 라고 말하는 듯이, 아주 따스하게...
세이는 당황했으나..
"...다, 다녀왔어요 엄마."
그런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그리운 어머니의 품에 다시 안긴것이다.
그날, 재능이 넘치던 때의 상냥한 어머니의 곁으로 세이는 돌아왔다.
* * * *
<잠시 후: 세이의 집>
잠시 후, 세이는 소파에 앉았다.
어머니가 가져다 준 탄산수를 앞에 두고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색하고도 숨막힐듯한 그 침묵중에서 먼저 입을 연것은 세이의 어머니 최시란.
"정말로 운동은 굉장하구나"
"어..응. 아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긴 하더라구요..."
세이는 아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한번 쓴 후에는 피식 웃음을 흘려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의 앞에만 오면 고개가 숙여진다.
자신에게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어머니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게 되었던 만큼이나 더더욱 푹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를까?
'아름다워져서 어머니도 날 다르게 보고 있는건가?'
아름다워 졌기에, 다시 어디로 보나 '연예인' 할 것 같은 모습을 손에 넣었던 덕분일까, 그 덕분에... 아니, 뭐 생각은 거기까지 하기로 했다.
그보다도 최시란은 활짝 웃었다.
운동으로 사람이 이렇게 바뀌다니!
...
뭐 말 도 안되는 이야기지.
그게 말이 되면 개나소나 완벽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이는 그걸 가능케 했다. 아니, 사실은 운동이건 수술이건 뭐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
중요한건 세이가 아름다워졌단 것이지. 어떤 약이라도 썼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세이가 보여준 불타는 의지라면 또한 상관 없는 이야기.
'할 수 있겠어. 이정도라면...!'
이정도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세이의 어머니.
최시란의 꿈. 희망. 인생.
나만의 인형, 나의 대리 인생 그래프, 자신의 인생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 실패한 부분을 고치고 다시 시작하게 만들어주는 완벽한 아바타! 모든 것을 뜻대로 그리게 해주는 아름다운 작품.
이상에 그리던 환상적인 모습을 하고 왔으니 그걸 마다할리가 있나,
운동의 힘이건 과학이건 마법이건 아무짝에도 상관 없다.
다시 잘 키워서, 다시 잘 조련해서, 다시 잘 조종해서... 시란은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세이를 통해 이루기만 하면 될 일이지.
이렇게 아름다워졌으니! 분명 이전 시란보다도 더더욱 대단한 경지에 올라가 주겠지! 그리고 그런 그녀를 키운 과거 옛 연예인의 모습으로써 시란 역시 다시 정상에 다다를 수 있을거야!
아! 그 얼마나 아름다운 미래인가! 얼마나 꿈에그리던 광경인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나이가 좀 있지만,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나이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충분하다.
"네?"
"우리 다시 노력해보자 세이야."
"... 네. 당연하죠."
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란의 입꼬리가 내려갈줄 모른다.
이토록 자신의 말에 잘 따라주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딸이 또어디있겠는가.
엄마 친구 딸이라는 환상의 존재가 이곳에 있는듯 하니, 기뻐 어쩔줄 몰라 자랑하고 싶을 정도.
시란은 빠르게 그녀를 위한 준비를 했다.
세이를 훈련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세이의 오디션을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행동은 빨랐고, 의욕을 잃었던 몸을 다시 움직인다는게 조금 힘들긴 했어도 아주 완벽하게.
"오후 5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말고, 물은 꼭 지정한거로만 먹으렴. 운동시간은 엄마가 정해줄테니까 그렇게 따라오기만 하렴. 노래 연습은 목에서 피가 나올때까지 하고, 엄마가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구해올테니까 맡겨만 주렴. 그리고 입술을 조금 수술해볼까? 엄마가 생각할때는 조금더 작은 편이 더.. 아, 그리고 주사도 몇대 맞으러 가자, 피부를 더 탱탱하게 해줄거야. 이런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약간 정도는 불법적인 일에 손대도 된단다. 자, 이건..."
"...아, 으, 응.. 시키는대로 할께요 엄마.."
세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입맛대로 제멋대로, '게임'을 하는 것 처럼...
"일단 한달치 스케줄은 이렇게 짜뒀으니 참고 해주렴. 네가 성공한다면 엄마 덕인거 잊지 말고."
"네..."
세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 * * *
<세이의 집: 연습실>
집에 딸린 연습실의 안에서 세이는 작은 숨을 내쉬었다.
휴식 따위는 없다.
오롯이 훈련 뿐이다. 목에서 피를 토할때까지 하는 끝없는 훈련, 익숙해지고 완벽해질때까지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세이는 연습했다. 춤을 퍼포먼스를, 노래를 외모를 갈고 닦는 것이다.
...
하지만 세이는 생각한다.
'어라? 뭔가 좀 비슷하네'
뭐가 좀 비슷한것 같지 않나... 하고,
혹시 자신은 이러한 굴레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로 가든 저기로 가든, 어디로 가든 시키는대로만 하는 인형 신세. 스스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고, 주입당하고 주입당해 부풀대로 부풀어지기만 한 꿈을 가진 어리석은 인간.
'이렇게.. 매일매일, 그럼 분명 꿈을 이룰 수 있겠지'
그래도 이렇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으리란걸 안다.
그래도 이렇게 쉴틈없이 달려나가다 보면 골인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으리란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세이는 연습했다.
휴식없이.
"...아..."
그러니까 세이는 저절로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으...우으..."
싫다. 그런 인생은 당연히 싫고 말고,
누군가의 뜻대로, 누군가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도, 꼭도각시인채로 인생을 마감하거나, 누군가의 소모품이 되는 것도 싫은게 당연하다.
앞으로 매일 매일 그런 삶을 살게 될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세이는 무너져 버렸다.
덜컥- 하고 걸려있던 이성의 끈이 무너져 내린다.
-"세이! 뭐하니! 아직 끝까지 못불렀잖아! 일어서서 불러!!! 이 소절 정확하게 부를때까지는 밥 못먹을줄 알아!"
노래부르다가 돌연 주저앉아 버린 그녀를 어머니인 최시란이 다그치고 소리지르며, 이내 화라도 났는지 쾅쾅 문을 두드리고,
-"또 저번처럼 실패하려고 그러니!? 이 쓸모없는년! 이번에도 실패해서 돼지새끼마냥 방구석에 처박히려고!? 일어나서 불러!!! 너는 꼭 성공해야 한다고오!!"
욕하며 세이의 의지를 복돋아주려고 했던 듯했지만, 그럴 수록 더더욱..
"우윽...우아아...이런걸..흐윽..."
흐느껴울기만 할 뿐이었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와 '어머니'의 방식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취하는 수단과 방법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고생꽤나 하겠구나 하는 그런 방식의 생각으로, 연습은 언제나 고달프고 괴롭겠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지금 깨닫고 있었다.
그 남자가 생각나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그때가 좋았어, 차라리 그남자가 나았어' 같은 생각은 아니다. 훈련의 강도자체는, '꿈을 이루기 위한' 연습의 강도 자체는 아마도 그 남자의 수단이 더더욱 가혹하고 힘겨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과 지금 최시란이 세이에게 퍼붓고 있는 이 방식은...
근본부터가 달라.
-"세이야 너!!! 빨리!! ...? 뭐, 뭐야 당신 뭐야? 왜 남의 집에... 꺅?! 그거 뭐야? 안치.."
"...엄마?"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주저앉아 있던 세이의 주변에,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그, 그건 안돼! 그건 세이의 10년치 인생 계획표란 말이야! 그걸 찢으면..아! 아악! 당신 진짜 뭐야!? 신고해버린다! 아니 이미 신고했어! 당장 나가지 않으면 내가... 꺅?! 뭐하는거야? 당신은 또..."
쿠웅-!
연습실. 그러니까 이 '녹음실'의 유리창 너머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다.
세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들어올린 순간 묵직한 소리가 난 것을 확인했고, 확인한 그곳은 아주 조금의 유혈사태와 함께...
"어라? 다, 당신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왕이라 불리우는 '그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고, 연예인 마냥 아름다운 차가운 느낌의 그 소녀 유라나가 보였다.
그리고 막 녹음기기에 머리를 박고 주르륵 흘러내리듯이 쓰러지고 있는..
"엇. 엄마?"
세이의 어머니 최시란...
세이가 그 상황을 파악하려는 순간,
그 남자는 성큼성큼 녹음 기기 쪽으로 다가와 마이크를 잡고 세이에게 말했다.
-"내 하수인이 감히 끼니를 걸러!? 항상 긴장하고 있으라 했을텐데! 당장 도시락 먹으러 튀어나와!!"
밥먹으라고.
시각은 오후 9시가 지나가고 있는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