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하얀2 (9)]
나머지는 적당히 정리할 수 있다.
물리적인 정리정돈은 물론이요.
유림의 친구 한명이 실종되었다는, 그런 하잘것 없는 이야기는 대체로 '만애교' 라는 존재 자체, 이 산의 존재 자체가 해결해주는 부류중에 하나다.
그 이유는 만애교가 이곳에 강력한 결계를 쳐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폐쇠적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종교였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
강력한 결계는 안으로 직접 침투했던 미리네가 박살을 내버리긴 했지만, 겉에서는 이 산의 존재 자체를 희미하게 만들고, 시스템의 통신 능력조차 차단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악마가 관여한 힘이었기에, 강력했고.
당연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 산이 갑자기 뚜렷하게 보이고 있는것에 위화감과 불쾌감을 느끼고 있으며,
만애교의 거점이었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피하게끔 만들거나, 수상한 사람이 많이 나오는 곳. 사이비가 거주하던 곳. 위험한 장소. 라는 인식을 만들어 주었다.
거기에 만애교는 그동안 이곳에 신자들을 끌어들여, 그들을 가두고 실종시켜왔고, 심한경우 죽여 땅에 묻고 모른채 하는 등.
많은 일들을 해왔으니,
그 덕분이라면 덕분.
이곳에서 사람 한명두명 실종되었다 한들, 대부분은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괜찮아 놔둬도 돼."
여기까지가 미리네가 걱정스래 말한 것들의 답변이었으니,
미리네는 평범했던 소녀 한명을 감금해두어야 했단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그래도 어린애잖아"
미리네는 스스로도 잘못된 말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역시..' 작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미리네는 놀랐겠지.
괴조의 안에서 튀어나온 그 인간은 실제하는 인간이었으며 파편의 힘을 잃은 순간에도 증오스럽게 내 하수인들을 바라보았고, 입으로는 저주를 퍼부었을테니.
평범한 사람의 반응은 아니니,
그것이 악마의 타락이며,
그런 악마의 타락을 눈앞에서 처음 보았으니, 미리네와 같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놀라게 된다.
"... 그걸 구해줄 방법은 없어?"
그 조차 구하고 싶어하는 듯 했으나,
아쉽게도,
"없어."
없다.
악마에게 타락한 이상.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인 이상, 거기서 우리가 할 수있는 방법은 없다.
죽어서도 영혼은 고통받으며 지옥에라도 떨어지겠지.
알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방법이 있다고 억지로 말하면
"그래도 있다면 개인 문제겠지."
스스로 벗어나오는 수 밖에는 없다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듣는 미리네는 탐탁치 않은 듯이 한동안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비틀비틀 미리네가 산을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만애교의 남은 사람들이 정리정돈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후우.. .어쩔 수 없지. 여기 이름이 이제 뭐랬지? 헤으응앗교?"
"마왕교."
"그냥 뭐, 종교 말고, 전마협 같은걸로 해. 전국 마왕 협회 같은거."
그래 그런거 나쁘진 않네
"그건 나중에 정하고, 너도 지쳤을텐데, 이만 가서 쉬어."
"말 안해도 그렇게 할거니까 걱정말고, 아 그거 나 줘요 내가 들고 갈께."
집에 가는 척.
관심 없는 척.
상관 없다는 듯이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도우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아마, 오늘 저녁까지는 미리네는 계속 여기에 있을 생각인 듯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를 끝마치고 나면,
아니 진행중 이었다면,
이제는 또 다른 이야기.
마력.
이 시점에서는 역시 마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어졌다.
* * * *
"그래서 뭐 하고 싶은일은 없고?"
세이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왠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정수. 자신의 주인이 된 사람이자 스스로 마왕이라 주장한 사람. 어떤 존재. 초월적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말이다.
그 의미가 있을 법도 하지만,
"연예인이요."
세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왜 따라와요?"
뭐 이렇게 말해봐야, 그라면 '그냥 가는 길이 같아서야' 라던가 혹은 '너 따라가는거 아니야' 같은 말투로 틱틱거리겠거니 했는데,
"너희 집을 갈 생각이다."
"뭐 그러시.. 네? 제 집? 왜요?! 뭐, 뭐땜에?!"
이럴수가, 진짜 세이의 집으로 가기 위해 세이를 따라간다는 정수.
혹시 세이는 생각했다.
'이상한 짓 하는거 아니겠지?'
'설마 내 몸이 목적은 아니겠지!?'
'충분히 그럴 수 있을거 같은데!'
라고,
물론 그 생각을 한 후에는 속으로만 피식 웃으면서,
'내가 무슨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거람. 이 남자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뭐, 마사지 한다고 할때도 걱정해서 괜히 힘이나 들었고'
그럴리가 없지. 왠 이야기 속에 나오는 흔한 망상이나 하면서 사건을 꼬이게 하겠거니 웃고 있었다.
어리석은 이야기다. 정말 그럴리가 없을텐데,
"너랑 섹스할라고"
"후후, 그럴 줄.. 네!? 왜!? 뭐, 뭐땜에!?"
근데 그런 모양이다.
이번만큼은 세이.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얼굴은 순식간에 화끈하게 달아올라 버렸다.
몸이 살짝 떨렸고, 갑자기 나온 말에 땀이 흘러내린다.
그 후에는 뭔가 오해가 있을거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했지만,
정수는 아주 냉정하게 상황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요컨데 이런 이야기다.
"내가 마력이 좀 필요한데, 자주 쓰던 베터리도 휴식이 필요할 것같고, 너희들도 당분간은 나설일이 없으니까 휴식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할 일이 없을것 같은 너한테 마력을 뽑아와야겠단 뜻이지. 참고로 섹스하면 내가 너의 마력을 뽑아서 사용할 수 있어."
"켁! 시, 싫어요! 뭐, 무슨 소리를 하시는거에요!? 저, 저는 그런거 하기.. 게다가 우리집은 엄마도 계시는데!"
"그럼 그 모텔이란 곳으로 가면 되겠네!"
"더 싫은데요!?"
"보상은 내가 너에게 얻은 마력으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돕는다! 내 마법은 대체로 뭐든지 가능하니까 하고 싶은게 있으면 말만 하란거지!"
"도망치고 싶어요!"
"그런거 빼고!"
세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 * * *
한편,
"..."
"..."
시작된건 침묵이지만, 주변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옆반에 있던 학생 한명이 무단 결석했고, 또 다른 한명은 지나가던 고라니에게 치여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태가 일어났는데,
거기에 더해 전학온지 얼마 안된 신입생 하얀과, 중등부를 지배하고 있던 이유림 그리고 한번 옥상에서 투신을 시도했던 능력자인 임보라가 붕대를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함께,
그것도 점심시간 후에야 뒤늦게 등교했으니 말이다.
"..."
그럼에도 이유림이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대단하고 사람 좋고 착하며, 학원을 위해 물심양면 불철주야 노력하는 아이인지 알기에 아무말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뭐, 미움받는 하얀은 어찌되던 알바 아니긴 했지만,
학교 왕따나 다름 없는 보라는 시선에 들어있지도 않았지만,
문제는 그런 셋이 같이 같은 시간에 등교했단 점이겠지.
'뭐야, 유림이가 왜 쟤랑 같이?'
'원래 같이 다니긴 했잖아'
'그런데 뭔가 이상하잖아'
'유림이가 물든거 아니야?'
'학교에 점심먹으러 왔나봐'
때문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에, 셋은 아무말 없이 둘러 앉아 있었으며...
"..."
"..."
"저, 저기.."
그 셋중에서,
주변의 시선을 견디고 제일먼저 말을 꺼낸것은 다름아닌 보라.
"나, 나는 그냥 저, 저기 가서 혼자 먹을.."
"안돼."
막혔다.
"응. 그..그래."
흠칫 일어서려다가 다시 앉은 보라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도시락을 꺼냈다.
사실 그녀는 도시락을 싸다니진 않고, 급식을 주로 이용했는데, 오늘은 특별하게 도시락.
"..."
"..."
이후에는,
"저, 저기... 나, 나도 그냥 혼자가서 먹을.."
스윽-
유림이 힘내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순간 하얀이 보인 반응은 안된다고 말린다던가, 아니면 무슨 다른 말을 한다던가가 아니라.
정말 아무말 없이 입을 다물고 유림이를 노려보며,
유림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때는것과 동시에 하얀 역시 스윽- 하며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단 것이다.
"꿀꺽-"
소리내어 침을 삼켜버린 유림.
자신의 도시락을 쥔 채로 엉거주춤 서있는 그런 유림.
어정쩡한 자세를 하고 있지만,
하얀은 정말.
진짜. 아무말도 없이. 가만히. 유림이 움직임을 보일때까지 노려보고 있었다.
완벽한 초 긴장상태.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죽여버리겠다.
혹은 네가 이상한 짓을 할때까지 내가 널 감시하면서, 그 후 죽여버리겠다. 같은느낌의 눈빛.
살벌하고 살기가 담겨있는 그 모습을 보면,
유림은 다시 의자에 앉아..
"미..미안, 역시 그... 그냥 여기서 먹을께."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도시락을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수초가 지난 후에야, 하얀 역시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자신의 3단 도시락을 꺼내어 늘어놓기 시작했고..
"자.. 잘먹겠습니다."
"잘..먹겠...스,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세사람의 어색하고도 숨막히는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깨작깨작 먹는둥 마는둥한 두사람과 달리,
하얀은 제대로 음식을 맛보고 씹으며, 자신의 영양분으로 삼을 생각으로, 힘의 원천으로 생각으로 가득차서 열심히 식사를 했다.
...
기억을 떠올리면 그래,
'보라와는 친구가 됐지'
보라와는 친구가 되었다.
오늘 아침.
보라를 만나 직접 말했다. 당장 친구를 사귀지 않게 된다면, 희망의 마법을 강화시키기 위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일단 친구가 있으면 되겠지 판단하여 '나, 나랑 친구가 되어줄래!' 라는 대사와 함께 보라를 친구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
하지만 하얀은 조금 불만이다.
보라를 친구로 만든것까진 좋아.
'이 악마의 하수인 녀석은 왜 두고 보라는 거지?'
이 악마의 하수인 이유림은 왜 같은 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과 같은 교실에 있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
그것이 썩 불만.
악마의 하수인이건 하수인 비슷한 짓을 했건 결국 처단해야만 마땅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아, 혹시 감시하라는건가?'
알게 되었다.
'그래, 당장 잡아서 뭔가 불것같진 않으니까 계속 이 애를 옆에서 감시하면서 악마에 대한 정보를 얻으라는 걸거야'
악마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뭔들 못하겠어
'그 감옥에 있던 그애는 아저씨가 알아서 해주실거고, 여기에 있는 녀석은 나에게 맡기신다는 거구나! 좋아, 확실하게 해야지.'
확실히 할거다.
감시건, 유도건, 그래 혹시 필요하다면
'친구인 척이라도 해서, 이 녀석에게서 악마의 정보를 얻어, 악마를 죽이겠어. 그래 그렇게 한다. 절대 눈때지 말고, 경계심을 풀게 할 수 있으면 더더욱 좋겠지'
뭐라도 할 수 있지. 친구인척 하는 것 조차도 말이다.
하얀은 그만한 각오를 지니게 되었다.
뭐, 다른 방식의 희망을 품고 있다고 해도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