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하얀2 (8)]
"아...아으..윽... 히끅!"
엉엉 울다가, 이제는 지쳤는지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만 내고 있는 이유림.
이번 사건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이고 가해자이기도 한 중등부의 소녀.
내가 해야 할 복수를 한 이상,
그리고 이 사태를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으며, 하얀에게 어느정도 적의를 품고 있었고, 하얀의 정체를 제대로 꿰뚫어볼지도 모르는 이상.
처분은어떤 방식으로든 해둬야 했다.
하늘을 높이 날고 있던 괴조가 바닥에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고, 그 안에서 나타난 중등부의 또다른 소녀가 적의와 악으로써, 자신의 힘을 빼앗아 갔다느니 하는 그런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런 그녀는 기절시켜 지하감옥에 가두어 놓았을 때.
그리고 나서가 바로 지금.
"그럼 네 처분은 어떻게 할까"
"사, 살려주세요... 살..살려줘.."
"죽여달라는 반어법 같은거지?"
"흐윽.. 시, 싫어... 제발.."
그녀는 흐느끼고 있다.
애원하며 목숨을 구걸하는 중이다.
이건 조금 독특하다 말할 수 있겠지.
내가 오랜세월을 지내오며 경험해왔던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보아 판단하건데,
굉장히 겁이 많은 부류에 속한다.
"네 거짓을 말한 입이 찢어지지도 턱이 날아가지도, 혀가 뽑히지도 않았잖아."
"아...아! 아, 않할께요! 거짓말 같은거 안할께요!"
"죄악을 뒤집어 씌우고 싶어 안달나 사냥감을 찾아 헤매던 네 눈이 뽑히지도 않았잖아."
"으..으윽.. 윽...!"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네 손이 잘린것도 아니야, 다리가 부러지지도 않았어. 대체 너한테 겁먹을 부분이 어디에 있지?"
"사, 살려주세요..."
"이상한 일이구만, 보통은 당하기전까진 전혀 모를텐데"
보통은 당하기 전까지 모를텐데 말이다.
무슨 일을 당하고, 자신이 저지른 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돌아올지 몰라서, 이 순간 지금이라면, 자신이 당한것을 갚아주겠노라고 발악을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원래 사람은 당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자신이 당할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까.
미리네랑 비슷한 것이다.
이상한 확률 상자를 열때도, 자신이 결코 꽝을 뽑을거라는 생각이 없고, 무조건 당첨을 뽑을 거라는 근본없는 믿음을 가지고 일을 저지른다.
그러고선 생활비가 없다면서 징징대는 것이 보통인셈이지.
그와 비슷하게, 이런 이들은 그렇게 당할때까지, 지극히 당연하게 자신이 이길것이라, 승리할것이라 믿고 당당하기마련인데,
"제발... 이, 이렇게 빌께요.. 뭐, 뭐든지 시키는대로 할께요. 그러니까 제발.."
이 아이는 특이하다.
아니, 이 경우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알아보고 있구나..."
뭔가 알고 있다고 해야 할까?
... 아니, 그럴 수는 없을테니까 이 경우엔... 감이 좋다고 말하는게 좋겠지.
무력으로는 이길수 없다. 라는 확신을 가진 후에, 어떤 방식이나 근거로 인해 다른 모든걸로도 이길 수 없다. 진다. 패배한다. 끔찍해진다. 라는 근거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네
"뭐. 상관 없지!"
아, 물론 크게 상관 없다.
"뭐든지 한다고 했겠다."
뭐든지 한다고 했으니까.
꿀꺽-
그녀의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정도로, 그녀는 한참 울먹이다가 입을 다물곤 나를 올려다 보았다.
사형을 언도받기 직전의 사형수처럼 온 몸을 떨면서 얌전히 나를 올려다 보고 있는 중이다.
"편해지진 않을거다."
그런 유림의 인생이 썩 편하게는 돌아가지 않게 될 예정이다.
* * * *
다음으로는 하얀이다.
"힘이 약해졌다고?"
"네."
폐허가 되어 있는 이 대성당.
지금은 새벽해가 떠오르고 난 이후,
해가 중천에 떠있을 무렵인 그 오후시간.
이젠 거점으로 삼기로 한 정리된 이 장소에서, 하얀은 내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고개는 푹 숙이고 있었고, 머리칼은 반쯤 산발이 되어 있었으며 시선에는 힘이 없고 고개역시 떨군 상태.
한마디로 상당히 의기소침해있는 상태다.
이전의 문답은 적당히 생략하도록 하자.
하얀은 오늘 낮에 겨우 정신을 차리자 마자 소리치듯이 이야기 했었다.
"악마의 하수인은 잡았나요!?"
"이유림은 악마의 하수인이 아니었어, 이유림의 친구 중 한명이 악마의 하수인이었긴 했지. 반쯤 가짜였지만."
"그럼 이유림은!!"
"집에갔겠지."
"그, 그런...그럴 수가... 그...저는.. 아..."
이런 식으로,
이따금씩 깜짝깜짝 놀라는듯, 의식을 잃거나 약해진 자신이 믿기지 않다는 듯이 생각나는것부터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지금.
"너, 힘이 약해졌었지?"
라는 질문에, 하얀은 금방 주눅들고 주저앉아 버려서 울먹이는 지금의 상태가 되어 있었단 뜻이다.
"이제 전 쓸모없어졌어요? 계속 약해지던걸 느꼈는데... 배운 마법같은건 하나도 생각안나고... 그땐 그냥.."
"뭐, 이것만 마치고 나면 죽어야지. 하는 정도의 생각같은걸 했겠지."
"네?"
그런 하얀의 상태는 충분히 알고 있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기도 했다.
겪은 것은 단순한 감정의 흔들림으로 일어난 사소한 변화로, 감정의 힘에 영향을 받게 되는 불완전한 '기적의 마법'인 이상 어쩔 수 없이 일어난 현상이었다.
"아니면 저 녀석을 쓰러트릴 수만 있다면, 혹은 사로잡을수만 있다면 다음은 어떻게 되도 몰라, 뒷일같은건 생각하지 않아. 몸을 불살라서라도 저 녀석만큼은 죽여야겠어. 같은 생각이라도 했거나"
"그건..."
"무의식중에서라도, 자기도 정확하게 기억안나는 상태였더라도, 그런게 기적의 마법을 약화시키는 요인이야."
"..."
하얀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 짐작가는게 있다는 듯이, 곧 비참하게 고개를 푹 떨구고는 조용한 소리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그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걸.."
"그야 내가 경험해보았으니까?"
답변은 간단하다.
내가 경험해보았기에 하얀에게 알려줄 수 있는것, 충분히 확인했기에 알 수 있었던 사실.
사소한 감정변화에 기적의 마법은 크게 흔들리니,
"그래서 버렸어, 나는 못쓰겠다 싶은 마법이었거든."
그래서 나는 이 마법을 개발하고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감정이란게 그토록 유동적이어서야 도무지 실전에서 쓸 수가 없지 않았겠는가?
'모든것을 끝내고 죽겠다' 라는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하는 순간, 나의 안에서는 '희망','꿈' 따위의 감정은 삽시간에 사라져 버리고 남는건 그저 복수심이라는 감정 뿐이 되어버리니..
그래서 버렸다.
만들어도 쓸수가 없었지.
쓸만한 것이지만 아쉬운 이야기.
'같은 이유로 혹시 기적의 마법의 파생을 더 얻더라도 라나한텐 절대 못주지.'
"그러니까 조심해. 감정을 키우면 위력 역시 상상을 초월할정도가 되지만, 그만큼 쉽게 힘을 잃어버리는게 그 마법이니까. ... 그래서 친구는 몇명 만들었어?"
아무튼 그렇게 하얀의 의문을 해결해주고, 지금 상태에 대한 것을 일러주고 나면, 하연은 여전히 침울한 모습이었지만, 이 후, 하얀의 진척상황을 물어보았을때에는..
그야말로 절망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선..
"아..앗..아.."
차마 말을 하진 못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일이다.
"친구를 만들라고 한건 장난으로 한 소리가 아니야. 네 마법에 우정이나 사랑따위의 감정이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말한 소리다."
"네..."
하얀, 힘없이 대답하고,
그 후에는 아직 버려지지 않았다는걸, 아직 계속 싸우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지.
"그럼... 더 강해지기 위해선 뭘 해야 하나요."
"말했잖아 친구 만들라고."
더 강해지기 위한 방법.
"그, 그런거 말고... 그, 아저씨가 이 마법을... 만드셨을땐... 이 감정을 더 확실히, 그리고 강하게 할 수 있는건... 뭔가 더 없는건가요?"
"음, 그런거야 뭐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긴 하지."
"뭐... 뭔데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약간 눈이 반짝거리는 하얀.
이 녀석은 마냥 얌전하지 않았던것 같다.
본래성격이라면 좀더 활발하고, 좀더 이야기를 잘 하는 타입. 좀 덜렁이는 타입이었을까.. 우습지.
그런 그녀에게 기쁜 마음으로 정답을 알려주었다.
"보통 애를 가지게 되면 마법이 갑자기 쌔지고 그러더라고. 가정이 생기거나 가장이 되거나 하는 경우에도 뭐... 보통은? 그런 느낌이었지."
"엗"
"그래도 임신만큼 확실하게 감정을 강하게 만들어주는건 연구결과상 없더라, 뭐 충분한 연애후가..."
"저...저, 저는... 이, 이만 돌아..갈.. 돌아갈께요."
"어, 그래. 오늘 꼭 친구 만들어라."
"힉! 마, 만들거에요!"
"그래 꼭 친구를 만들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수도 있으니까."
"...꼭 친구 만들께요."
"그래!"
의욕이 생긴것 같아 다행이네!
* * * *
하얀이 의욕을 가지고 어딘가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얀의 같은반 학생들이었던 유림과 친구들, 그리고 윤보라등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멀지 않은 곳에, 부숴진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간 하얀은 멍하니 천장이나 올려다 보고 있던 보라에게 말을 걸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아 고개를 숙이거나 웃음을 짓거나 하기에, 금방 고개를 돌렸다.
'이제 문제 없겠군'
하얀의 전력은 특별히 신경써야 했던 관계로, 당분간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라나."
"네!!"
라나다.
라나가 부활했다.
...
아니 부활했다고 말하긴 좀 이상한가?
부활은 내가 해야 하는거지 라나가 하는게 아니니까.
음 그래, 아무튼 라나가 회복되었다.
물론 완전히 회복한건 아니다.
"몸은 좀 어때?"
나의 부름한번에, 어디선가 쨘- 하고 나타나버린 라나에게 동요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녀의 몸 상태를 물었다.
마력의 고갈이라는 것은 꽤 심각한 병과 같은것.
이를테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있던것과 같은 상태라 할 수 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고 퇴원한 후에도 완전히 나은것이 아니고 통원치료나 물리치료등으로 그 후유증을 치료해야 하듯이.
마력고갈 역시 같다.
"저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해도, 지금 상태는 말도 아니겠지.
불안정한 상태에서 싸우기까지 했으니 지금은 휘청휘청 거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저거 봐.
"지...진짜아.. 괜찮아요."
지금도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으면서도 비틀거리고 있다.
현기증이 몰아닥치고 있을텐데,
'어떻게 서있는건데 진짜'
서있는게 신기하다.
보통 어지럽다고 넘어지거나 하지 않을까?
의식을 잃지 않는거야 근성이라고 넘어가도 신체의 당연한 물리법칙을 무시하려고 하는 것 같은게 신기하다.
마력을 가져다 쓰는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
뭐 그런 걱정도 잠시.
풀썩-
라나는 결국 쓰러져 버렸는데,
마침 라나의 앞에 있던 나는 그런 라나를 부축하듯이 껴안았다.
"...!"
순간 라나의 표정이 사라지고 아무말이 없어졌지만,
그것보단,
'치료 해야 하나'
치료할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단순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마력고갈은 치료할 수 없지만,
마력고갈에서 벗어나고 나서 시작되는 후유증은 어느정도 치료할 수 있다.
회복을 돕는다. 가속한다라는 정도의 개념.
방법?
그야 간단하지.
'마력을 가져와야겠는데...'
마력을 줄 생각이다. 마력.
* * * *
한편,
그 시각.
"우와아..."
그녀 한세이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피곤하고 노곤하다.
당장 어젯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왜이리 활발한지, 우는것도 반성하는 것도 욕하는것도 증오하는 것도... 친구말들기도, 사랑을 속삭이는 것도.. .아무튼 죄다 팔팔한 것이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죽겠다 이거, 그냥 피로해서 죽을지도 몰라'
싸우다 죽는건 그렇다 치고, 그냥 과로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방패를 든다는 것은 그만큼 피로한 일.
공격의 정면에서, 공격을 막는다. 라는 그 행위 자체에서 오는 심리적 육체적 부담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것이 못된다.
그 탓에,
해가 중천에 떠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이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생각도 제법 많았으니까.
'그 사람이 라나 라는 사람이구나'
그 사람이 바로 라나,
굉장히..
'예쁘던데'
아름다운
'여긴 외모보고 하수인 뽑나봐'
그리고 고결한 듯한,
여신과 같은 자태를 뽐내며 새를 향해 날아가는 그 모습은... 진짜 그야말로 전장의 여신이다. 전장의 아이돌.
"헤.."
그렇게 생각하니까 칠칠맞은 웃음이 흘러나오긴 했는데,
주륵 흐를뻔한 침을 닦아낸 세이.
일어서기로 했다.
뭔가 하긴 해야지.
가출해버린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긴 하고...
집에도 들어가 봐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집.. 들어가긴 해야지... 그래, 모처럼 얻은 외모 좀.. 써먹으면서 지내고 싶긴 한데'
...
'휴가 있나, 휴가 달라고 하면 주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곤에 찌든척 하며 세이는 계단을 내려갔다.
장소는 대성당의 2층에 있던 작은 방이었고, 그곳에서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것이..
'얼씨구.'
그 모습이다.
라나와 그 남자. 마왕이면서 정수라고 하는 친근한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
'둘이 사귀나? 좋~겠네, 누군 죽을..아, 둘다 나보다 더 죽을뻔한거같으니까'
그 모습이 탐탁치 않게 보였다.
생각은 복잡했으나.
눈쌀은 살짝 찌푸렸다.
'여자가 너무 아깝다. 라나라는 저 사람 엄청 예쁜데, 와 씨. 남자쪽이 너무 평범하잖아.'
예쁜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어울리고 있으니 살짝 화가난 것인데..
그런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
세이에게도 아주 약간의 변화가 생길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하수인으로써 무언가 통째로 바뀌게 될 변화.
"아참, 인사는 했겠지! 라나! 얘는 한세이다!"
마왕은 곧바로 세이를 불러 인사시키기 시작했다.
세이는 얼떨결에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조금 다가가기 시작했고,
"그래고 세이! 이 애는 유 라나! 앞으로 잘 지내도록 해라!"
"아, 네.. 안녕하세요. 라나...씨. 그.. 읏?!"
"잘. 부탁. 드릴께요."
"어? 왜...왜 갑자기 춥지? 에어컨 틀었어요? 좀 춥..아, 네.. 자, 잘부탁 드려요."
"...네."
"저...저기... 그, 미, 미리네 언니! 미리네 언니 어디있어요!?"
세이는 본능적으로 미리네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엔,
"아참, 너는 또 할일이 있으니까 정리되고 나면 다시 이쪽으로 오도록 해!"
"네!? 아니, 어? 더 추워진거 같은데, 가, 가까이 오지 말아볼래요? 뭔가 짐작이 가는데 지금!"
불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