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하얀2 (7)]
번개의 창을 쥐고 있는 라나는 한 순간에 괴조에게 날아갔다.
날아갔다 함은 날아간것과 같이 보일 정도로 높게 뛰었다는 것이고 또 멀리 나아갔다는 것이다.
일순간이나마 하늘의 새와 같은 선상에 설 수 있었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 라나는 망설이지 않고 손에 쥐었던 창을 쏘아냈다.
하늘을 날아 불을 뿜고 있던 괴조는 아래로 부터 탄막처럼 펼쳐지는 번개의 화살 안에 갇혀 있었으며, 그 후 정면에서 날아오는 번개의 창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닿아버렸으니,
그 거대한 괴조의 묵직한 몸체는 쿵-!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후 라나는 사뿐히 내려 앉았으니,
하늘을 날던 새가 땅에 떨어진 이상.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지.
콰앙-! 콰직-! 콱! 콰득!
괴조의 신체부위는 착실하게 하나씩 사라져갔다.
* * * *
한편,
<부숴진 대성당: 예배당 구역>
만애교의 터전이었던 장소.
겨우 몇주만에 폐허로 되어버린 황금의 땅이자 황금 조각상이 있는 장소에서, 하얀은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도 거친 호흡을 고르는 중이었다.
"허억... 허억..."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
라기보다는 몸에 생기고 있는 이상현상.
변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힘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돌아왔다가 빠져나갔다가 아주 제멋대로 였다는 것을 감각하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은 고통과 두려움 때문이었고,
다시금 코앞에 다가왔던 죽음을 눈으로 보아서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건 아무런것도 아니었지만,
정말 찰나, 아주 약간만 틀어졌더라면 하얀의 몸은 불에 그을리고 불타올라 실컷 춤추다가 땅에 쓰러졌을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탓이다.
그런 하얀은 고개를 들었다.
일단 크게 이상은 없고, 당장 의식을 잃어버리고 기절해버릴 것 같았지만,
아직 의식을 잃지 않았고 기절하지 않았으니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핀 것이다.
때마침 괴조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미리네와 라나가 본격적으로 참전하여 하늘에서 불꽃을 뿜어내고 불꽃속에서 작은 괴물들까지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뭐.. 그 조차도 쉽게 처리되어가고 있는 과정임을 보았고,
그 다음엔 저곳에 아직도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보라와 박가드 김가드 등의 사람들을 보았다.
하얀은 천천히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왜 걸어갔는지는 잘 모른다.
박가드나 김가드는 죽어도 상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보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혹은 자신이 지킨 사람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는 작업이었을까, 반사적으로 충동적으로 그냥 그렇게 걸어가서 보라의 얼굴을 보았다.
'아, 울고 있었네'
그녀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무표정하게, 상황도 파악하지못하고 멍하니 주저앉아있을거란 생각과는 달리. 유림일행에게 얻어맞은 흔적과 계속 울고 있어서 퉁퉁 부은듯한 얼굴, 붉어진 눈시울과 눈물자국이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하얀은 또 그것이 조금 짜증이 난다.
'그때 나같네'
악마에게 친구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멈추어 있기만 했던 자신을 보는 것같아서, 울컥 뭔가 솟아올랐지만,
지치고 지쳤으니 뭘 더 하겠는가?
"여...긴 위험하니까... 내려가.."
"어?"
"내려가... 집에...가 너는 이제.."
"아, 이.. 이사람들은..."
"..."
다만 보라가 두 가드들을 걱정하듯이 손을 대고 있었기에..
하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 마법을 하나 사용했다.
회복의 마법 말이다.
서서히 닿는 하얀의 마법은 김가드와 박가드의 표정을 점차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고, 하얀은 이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그저 표정으로 '이럼 됐지?' 라면서 보라를 바라보니..
"고, 고마워."
보라, 고맙다고 말한다.
뭐가? 구해줘서? 아니면 치료해주고 있어서? 유림을 혼내줘서?
아니 아무래도 상관 없지.
"고마워 하지 마. 널 도우려고 한게 아니야. 난 악마를 잡으려고..."
"..."
하얀은 악마를 잡으려고 했을 뿐.
그 하수인을 찾았을 뿐이니까.. 그냥 치료를 마저 끝내며..
쿠우웅-!
멀리서 다시금 진동이 들려왔을때 쯤에...
"후우..."
눈을 감아버렸다.
* * * *
전투, 싸움은 금방 끝났다.
땅에 떨어진 괴조는 더이상 하수인들의 적이 아니었고,
발악하여 마물을 뿜어내던 것도 결국에는 간단하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곧 괴조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안에서 '파편'의 힘 툭- 하고 빠져나오게 되었다.
"..."
"미친."
"아..."
풀썩-
일단 세이는 기절했다.
방패를 들고 있던 그녀 역시 후반에는 멋지게 적과 맞서 싸웠고 결국엔 괴조를 쓰러트리는데 일조했으나, 그런 그녀는 괴조의 안에 있던 사람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그저 풀썩 누워버린 것이다.
...
그건 인간이다.
그것도 평범한 학생이었던, 평범한 능력자일 뿐이었던 인간.
그리고 이 산에 스스로 올라왔던 이유림의 친구였으며, 하얀에게서 정신없이 도망치던 사람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괴조가 사라진 자리, 괴조의 심장이 위치해 있어야 할 장소에,
의식을 잃지 않고,
이성을 잃지 않고,
또렷한 정신과
분해보이는 듯한 눈동자를 지닌채로,
적의와 증오를 담아 그녀들, 마왕의 하수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돌겠네, 그러니까 이 녀석. 이성을 잃은 괴물이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괴물이 되서 그 난동을 피웠단 거네요."
그러니 기절할 수 밖에.
자신이 상대한 거대한 마물이 사실은 인간이었다는 것도 놀라울진데,
그 인간이 마왕의 파편을 손에 쥐고, 다른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하수인들을 죽이기 위해 스스로의 의지로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눈앞에 있었으니 말이다.
"너희가.. 너희가 잘못했잖아!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조금만 더 있으면 죽일 수 있었는데! 이 힘으로! 전부다 죽여버릴 수 있었는데! 다 태워버릴 수 있었는데!"
"죽일까요 미리네 언니?"
"아니 라나야, 일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뭘 또 죽이려고 그래..."
"마왕님의 파편을 이용한거에요."
"악마인지 뭔지가 그랬겠지!"
"반성같은거 한 적도 없었고, 하얀이 없었다면 이곳을 나가서 온갖것들을 다 불태우고 다녔을걸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가 막았으니까 일단... 그래, 정수녀석이 오면 그때 이야기 하자고, 너 마력 회복도 완전하진 않다며!"
"..."
"휴."
그녀, 괴조였던 소녀는 반성할줄 몰랐다.
반성은 커녕, 자신이 뭘 잘못한지도 알고 있지 않았다.
"갑자기 힘이 생겼어, 하얀이 그 녀석이 우리들을 쫒아오는데 이걸 어떻게 안이용해? 사용하니까 내, 내가 엄청나게 강해졌는데... 그걸로 하얀이고 뭐고, 그 짜증나는 이유림 그년도 죽여버릴 수 있었고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고! 그런데 너희가 뭔데 나를!"
당연한 것.
힘이 생겼으니 마음껏 쓴다.
그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다.
"..."
뭐,
그 때 쯤이면 머리를 긁적이면서, 허리춤에는 이유림은 짐짝처럼 들고 산을 올라와 헉헉거리고 있는 정수가 나타났으니,
"이... 후욱... 허, 높네... 아니! 그 힘은 내꺼야 이 어린녀석아. 너희는 내껄 훔쳐쓴거고 우리는 그걸 돌려받는..후우, 돌려받은 거다! 불평불만은 허락하지 않는다!"
금방 해결되겠지만 말이다.
"당신이 뭔데! 그 힘은 내꺼야! 다시 돌려줘!"
"... 이자식이, 너도 복수해줄까?"
"당한것도 없는데 복수는 무슨 복수!"
"지금 내가 당하고 있잖아! 네 탐욕에 대한 죄값을 치르게 해줄 수도 있어! 조만간 아주 직설적이고 빠른 형태로!"
"내놔! 그 힘은 내꺼야!"
"라나 쟤 기절!"
"네!"
빠악-!
"켁!"
조금 원시적이고 원색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 * * *
파편은 회수했다.
띠링-
-['비행']
-['저주의 화염']
-['화염 내성']
-['화염 방사']
-['날개 바람']
일단 '화염 방사'와 같은 것도 마법의 일종이었으니, 마법의 파편을 회수한 셈이다. 하지만 생각해두어야 했던 것은 그 과정이다.
<옛 만애교: 배교자의 감옥>
이곳은 배교자들을 가두어두던 감옥.
종교시설의 감옥 치고는 피와 어두움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었으며, 각각이 좁은 독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얼굴도 볼 수 없고 빛도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창틀만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식사를 넣어줄 구멍따위도 없으며, 화장실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덕분에 어느방이건 한 구석에는 오물따위로 가득차 지독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기도 했다.
'청소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
그동안 나는 이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만애교의 뒷수습.
그러니까 교주였던 일만애가 신자들을 케어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남아있던 갈곳없는 신자들과 함께, 이 안에 갇혀 있던 모든 이들을 풀어주고, 대대적인 청소를 하고 있었단 뜻이다.
...
뭐, 아직 완전하게 끝나진 않아 냄새가 조금 남아있긴 했지만,
감옥이라면 어느정도 필요할것 같아, 증축과 개조를 거듭해왔던 것이 이제와서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또한 바깥에 있는 폐허와 같은 모습도 나름의 인테리어다.
마왕의 성에 어울릴만한 거대한 대성당은, 이미 한번 부숴졌으나, 어차피 멀쩡한 꼴로 있어도 누군가에게 더더욱 부숴질것 같았기에, 사람들을 지켜 필요한건 가져가 쓰게 하고, 필요없는건 뜯어 파는 등으로 사용해왔기에,
이토록 어수선하고 음산한, 그리고 스산한 아지트가 완성되어 있었다.
어찌되었건 간에,
그런 감옥이다.
그곳에 괴조로 변했던 소녀, 교복 명찰에는 '이영희'라고 쓰여 있던 그녀를 감금해 두었다. 그녀의 증오심과 분노, 복수따위의 감정은 확실하게 증폭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파편을 쥐고, 파편을 활용함에 있어서 스스로 괴조가 되는 결과를 낳았던 모양.
"흐음.."
악마의 짓이다.
수법도 엇비슷한 편이다.
다음부터는 이런 방식으로 주변에 진을 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겠다 생각하는 도중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엔 직접 노려진건 아닌것 같네'
그래도 이번에 그녀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건 아무래도 운.
악마쪽이 대놓고 우리를 노릴 수가 없었던 이야기.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면, 그 악마 컨피던스의 성격상 조금더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얀이 목표였다면 그래.. 하얀의 친구들을 썼을 것이고, 그 외의 다른 하수인들을 노렸다면,
조금더 확실한 녀석,
예를들면 라나의 부모나 미리네의 친구들을 사용했겠지.
아니잠깐.
'미리네는 친구가 없었던가?'
미리네는 친구가 없었던거 같기도 하고,
뭐 아무튼 간에,
그런 만애교의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가두고 나서 한숨 돌리는 상황을 맞이하며,
작은 새가 지저귀고 아침해가 떠가는 이 시간,
쓰러졌다가 쿨쿨 잠을 자고 있는 하얀과 막 회복했음에도 제법 무리해준 라나,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기만 하는 미리네, 엉엉 울다가, 이렇게 늦게 자면 피부에 문제 생기는거 아니냐고 물어보고 있는 세이를 바라보았다.
"후우.."
한숨을 한번 쉰 후에,
"정리 한번 더 해야겠네"
정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