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하얀2 (6)]
"크하하하! 악의를 가진 자에 대한 복수는 모름지기 확실해야 하는 법! 당한것 이상으로 갚아주었다! 고통스러워 해라! 네 거짓의 대가를 치러라!"
이유림이 삽시간에 희망이 절망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을 체험하고 있을때.
...
"끼에에에에엑!"
하얀은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하얀은 이 산에서 도망친 악마의 하수인을 잡기 위해 산에 커다란 보호막을 만들어 놓았었다. 하얀색 결계는 산전체를 뒤덮고, 시야와 소리를 가리며 마력의 반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었고,
그로인해 이곳에서 어떤 비명소리나, 어떤 마력이 터져나가도, 그리고 악마의 하수인들이 본 모습을 꺼내도 바깥엔 들키지않도록 했다.
그런 희망을 담아 두었던 것이다.
근본적인 희망의 마법, 즉 기적의 마법은 대체로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을 지녔으니, 하얀이 그렇게 바랬다면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였지만..
'결계가 약해진다..'
결계가 약해지고 있었다.
눈앞엔 악마의 피조물이 울부짖고 있었다.
커다란 붉은 날개를 펼치고, 입에선 불꽃을 쏘아내며 비명을 지르더니, 곧 날개를 휘저어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에 올라가가 그 구슬픈 비명소리를 내는 괴물은 곧 새의 부리와 같은 입에서 불꽃을 뿜어내어 하늘에 놓인 결계에 닿기 시작했다.
"으윽..!"
약간의 신음.
결계에 공격을 받으니, 그 근원인 하얀에게도 영향이 끼친다.
본래라면 거의 아무렇지 않을 피해를 받아야 했지만,
'결계의 방어력도 약해졌어'
결계의 유지. 방어력등 대다수의 것들의 성능이 떨어지고 있는 중.
하얀 본인은 이유를 알수 없어 혼란스러웠지만, 아무튼 행동했다.
눈앞에 둔, 어떤 희생자를 구하기 위함이요. 그 희생자를 만들어낸 악마의 흔적을 쫒기 위함이다.
어느쪽에 비중을 더 두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었겠지.
"하얀아 피해!"
"네!?"
콰아앙!
불꽃.
타오르는 붉은 불꽃이 사방을 휩쓸어낸다.
온 신경을 괴물에게 집중하고 있었지만, 하얀은 금방 그 불길에 삼켜졌다. 타오르는 불꽃은 하얀의 피부와 살을 태우기 위해서 그녀를 감싸기 시작할 것이고,
하얀은 자신이 가진 마력을 한껏 사용하며 불꽃을 떨쳐내려 애쓰고 있었다.
'큭!'
문제는 확실하다.
이건 위기와 같다.
'힘이 왜...!'
어째서 힘이 나지 않는지. 왜 자신의 능력이 떨어져가고 있는지 그것을 알 수 없는한 계속될 위기이기도 하지.
이번의 마물은 지금까지와 달랐기에,
화르륵-!
다시한번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하얀은 그대로 하늘에서 추락하여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쿠웅-!
커다란 소리를 내며 떨어진 하얀,
그리고 그런 하얀을 내려다 본 괴물이자 괴조가 되어 있는 그것은 다시한번 매서운 눈빛으로 하얀을 내려보더니 그 부리를 열어 뜨거운 불꽃을 쏘아냈다.
"하얀아 괜찮아?!"
"세이씨.. 윽.. 괘, 괜찮아요."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다.
아니 하얀이 약해진것도 다르지만,
콰아아아-!
불꽃이 세이의 방패를 덮치고 지나가고 있을때.
'뭐야 이거, 그 괴물이 내려친 번개만큼... 아니 그것보다..!'
이야기 들었던 평범한 파편을 지닌 마물의 수준을 벗어나고 있음을,
쿠웅-!
"꺄아악!"
알게 되었다.
하얀을 돕기 위해 달려온 세이는 자신의 방패를 제대로 가누지 못한채로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장소는 지상.
하늘을 날아올랐던 괴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새의 사냥감이 된 땅을 기어다니는 벌레와 같아진 상황.
하늘을 날 수 있었던 하얀은 약해져 있었고,
미리네는 어디서 뭘 하는지, 보이지도 않고있었으니 제법 절망적인 상황이다.
'안돼... 안돼!'
하얀은 그럴수록 몸을 일으켰다.
여기부터는 체력같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근성의 문제가 된다.
악마의 흔적이 저곳에 있을텐데, 저 괴조를 물리치면 어쩌면 악마의 흔적을 쫒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이렇게 누워 있을 순 없지.
반드시 쓰러트려서, 반드시 악마의 흔적을...!
"후우...후욱.."
'떨어트릴까? 아니 떨어트려도 공격력이.. 애초에 내가 저걸 떨굴 순 있을까.. 몸에 힘이 안들어가, 마법이 잘 안써져 대체 왜... 왜 이런 순간에..'
하얀은 다시 무기를 쥐었다.
괴조의 불길에 세이가밀려나 넘어지고 말았으니, 아무래도 괴조는 그것이 세이의 '패배'라 판단한 모양이었고, 그 후에는 다시금 결계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하늘을 향해 불꽃을 마구잡이로 뿜어내고 있다.
"희망의 활"
이번에 따라할 것은 미리네의 모습.
활 시위를 겨누어 적을 쏘아 맞추는 파괴적인 화살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법의 재능']
하얀에게는 재능이 있다.
그런 재능. 본 마법을 흉내낼 수 있는 재능. 어디까지나 흉내일 뿐이지만..
'저대로 놔두면 결계가 부숴질거야. 일단 땅으로 끌어내려야 해'
지금 당장 확실한 방법은 이뿐이었으니, 심호흡을 하고, 화살을 겨누어...
'죽...'
괴조의 심장을 향해!
"키에에엑!!"
"!? 윽!?"
그 순간, 괴조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하얀의 적의 공격할 화살을 감지해내기라도 한건지 괴조는 한차례 날개짓을 하더니 하얀을 향해 불길의 방향을 바꾸었다. 하늘을 향해 뿜던 불길을 세이와 하얀이 있는 곳으로 다시 쏘아내었다.
이번엔 날개짓을 통한 바람과 함께 커다란 불꽃을 소용돌이와 같이 뿜어내었다.
'아직 할 수 있어..! 피하고 나서 쏠 수 있어! 오히려 더 확실하게!'
하지만 하얀이라면 피할 수 있는 공격,
아직 남아있는 힘이 있으니까, 약화된 힘으로도 잠시간 공중을 도양하고, 화살을 괴조의 날개와 심장으로 쏘아낸다면..
그리고 땅에 떨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아...!"
분명 끝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을텐데...
"콜록- 콜록-!
하얀의 뒤에서 들린 것은 낯선 사람의 기침 소리.
지금껏 숨소리 한번 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누군가.
"네가 왜 아직..."
윤보라.
"너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콜록- 무, 무슨 일이.. 무슨 일인데.."
유림에게 아마도 같이 불려왔던 같은 학급의 학생.
옥상에서 뛰어내렸음에도 찰과상 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능력자. 자살시도를 했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장난감이 되어 놀아나고 있는 보라.
그런 보라의 옆에는 허리가 반으로 꺽여있지 않게 된 박가드와 턱이 으스러져 아직 널부러져 있는 김가드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보라가 그들을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하고 있었음에도, 괴롭힘 받고 있었음에도, 도망치지 못하고, 아니 도망치지도 않고 아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산의 한 중턱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것을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저애는 무슨...'
바보라도 되는건가, 착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건가, 호구안 같은거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가,
아니면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지금까지 기절이라도 했단 뜻인가?
혹은, 아직도 유림의 명령을 듣고 있기라도 한건가.
'윽... 대체..!'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하얀이 도약하여 피한다면 박가드와 김가드는 물론이고 보라까지 괴조의 불길이 휩쌓일것이란 것.
그냥 옥상에서 떨어져 내린다는 선택보다.
마력을 머금고 있는 불길에 휩쌓이는 것이 보다 확실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될것이다.
세이는 멀어서 시간이 부족하고,
하얀이 막을 수야 있겠지만, 그 시간동안 괴조를 노릴 타이밍도 쥐어짠 하얀의 힘도 거의 다 떨어져서는 괴조가 도망치려면 도망칠 것이고, 하얀을 죽이려면 또 죽일 수도 있겠지. 아니 직후에 후속타가 날아오는 순간 하얀은 무방비하게 확실히 당할 것이다.
하지만 하얀이라면 한명정도는 데리고 도망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예를 들면 그저 피해자일 뿐인 보라를 안고서 도망친 후에, 남은 여력으로 싸움을 이어할 수도 있었겠지.
박가드와 김가드는 죽겠지만,
그들 역시 괴롭힘에 가담한 악마의 하수인. 또는 악마의 하수인의 하수인인이... 뭐 신경이나 쓸 필요 있겠어?
...
다시말해 하얀은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보라라도..! 아니 하지만..!'
전부 버리고 괴조를 쏘느냐.
보라만 살리고 싸움을 계속 하느냐,
모두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보호막이라도 만들어내느냐의 선택.
...
'지금이 아니면 안돼는데... 내 손으로 악마를... 악마의 흔적을!!'
"으윽..!"
결단은 빨랐다.
어차피 한치도 망설일 틈이 없었던 상황이었으니,
하얀은 손을 뻗었고, 손 끝에서 활과 화살을 지워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내었다.
'희망의 방패!'
세이의 모습을 떠올려, 그녀가 들고 있는 방패를 떠올려서, 자신과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 내었다.
결국 선택은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
이건 미리네나 세이 등의 다른 사람들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도 괴조가 쓰러질거란 확신을 가져서가 아니라
반사적이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마법소녀 본연으로써의 본능에가까운 생각과 행동이 하얀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아무리 쓰레기라도 지켜야해. 죽게 할 순 없어.
지키는건
마법소녀의 의무이자 근원.
결국 하얀은 그에 따르기로 했을 뿐.
콰앙-!
소용돌이치는 불꽃이 하얀이 만들어낸 방패에 닿는 순간, 파괴적인 불꽃은 하얀의 방패를 휩쓸었다.
"크으으으읏!!"
불길은 하얀의 예상보다 조금 더 강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하얀의 방패를 깨부수고 하얀과 그 뒤에 있던 모든 이들을 불태워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쩌적-
희망으로 만들어진 방패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세이가 뒤늦게 뛰어 오고 있었지만..
'이건.. 아마... 당하겠..'
하얀은 이 순간 직감했다.
역시 이번엔 좀 달랐어,
악마가 만들어낸 저 괴물은 역시 지금까지와 무언가 다르다고,
저 안에 있는 무언가..
'유림이 데려왔던.. 그 애잖아... 연다홍...'
확실히 안에 사람을 넣어놓고 만들어 놓은.. 유림의 두 친구중 또 다른 한명인 다홍의 모습을 보았다. 조종당하고 있지 않은 분노에 가득 차서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콰아아아아-!
하얀은 불길에 휩쓸렸다.
* * * *
하얀 빛은 그 불꽃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불길은 지켜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로 향했지만, 커다란 방패를 쥐고 있던 세이가 결국 도착하여 그 불길을 막아내었고
"뜨거워! 악! 아뜨! 뜨거워! 진짜 싫어! 그만하고 싶어!"
아무튼 막아내었고,
"으으! 하얀아..!"
불꽃속에 있는 작은 빛, 하얀은..
'어라? 생각보다 안뜨겁..'
이상함을 느낀다.
불길이 뜨겁지 않다.
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자신의 뒤에 있는 세이는 방패로 막고 있는 그 뜨거움에 손을 놓았다 잡았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주변의 나무들은 그 열기에 그을리고 스스로 발화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불길 자체는 뜨거운 것.
하지만 달라진건 자신이었으니..
이 강렬한 불길에도 뜨거워하지 않고 있는 내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뜻!
'조금은 뜨거운데... 아니 조금많이? 하지만 죽지 않을 정도 사우나에 있는 것 같은 그런..!'
물론 완전히 괜찮은건 아니었고,
불길은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으나,
그 순간.
하늘에서
콰릉-!
번개가 내리 쳤다.
화염이 중간에서 끊어지고, 그와 함께 새의 몸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하얀이 빛에 눈을 감았다가 떴을때 쯤엔... 그녀가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러니까, 자연갈색이라 교칙에 걸리지 않는 암갈색의 고운 머리칼을 늘어트리고 있는, 검은 나비 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으며 외출복을 따로 가질일이 없어 그저 그런 교복이나 단순한 옷을 입고 있을 뿐인,
그럼에도 외모 관리는 스펙이라며 또 나름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던..
"라...라나 언니!"
라나.
띠링-
['번개의 창'을 습득합니다.]
새로운 자신의 무기를 한번 다잡은 그녀는 하얀을 흘끔 보고는 곧 바로 괴조를 향해 뛰어 올라갔다.
하얀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저앉은채로, 잔열을 느끼면서 지쳐 죽을 듯한 모습을 하곤, 저곳에서 멋지게 괴조를 떨어트리려 하는 라나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았다.
"역시 비행타입에는 전기가 최고지! 4배 데미지를 맛봐라!!"
멀리서 번개의 화살을 쏘기 시작한 미리네도 그렇다고 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