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한세이 (6)]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주 지극히 당연하고도 당연한 반응은..
"안돼요! 싫어요! 폭력 멈춰! 맞고 가만히 서 있으라구요? 아파요! 죽을것 같다고! 다쳐도 회복되니까 걱정말라니! 고통은 그대로잖아요! 미쳐버릴거에요. 이런짓 한두번만 더 했다간 저 정말로 정신이 나가버릴지도 몰라요!"
"..."
"이번에는 어떻게든 근성으로, 악이라도 써서... 아니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기절한 순간 깨달은거죠! 아, 이거 나 죽겠구나! 평생 이런식으로 고문받고 이용당하다가 죽겠구나! 그 하얀 애가 날 치료해줘도 소용... 아니 그 애는 치료는 커녕 덜 다치게 해주겠다고 앞으로 나가서..."
이런것이다.
누구도 나서서 두들겨 맞는것을 원하지 않는다.
고통을 자처해 당하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기 마련이다.
하물며, 흉악한 마물에 맞섬에 있어서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방패를 들고 가장 앞에서 가장 위험한 싸움을 해야 하는 그 위치는, 대다수의 모험가들이 꺼리는 포지션이기도 했다.
이곳 인간이라곤 다를바 없지 않았겠는가,
아픈건 싫은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방어력에 올인해서 뭔가 엄청난 짓을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맞아, 라나가 특이한거였지. 원래 가장 앞에 서는 녀석들은 선택받은 녀석들 정도니까'
라나가 특이했을 뿐.
내가 있던 세계의 모험가들도 전위. 즉, 동료들을 지키는 방패역할의 모험가들은 어지간한 실력자 이상인 녀석들이거나 그런 성격이나 타입으로 선택받은 녀석들, 다시말해 선천적인 조건이 상당히 영향을 끼치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큭큭, 그래! 넌 그렇게 내게 이용당하다 죽을것이다."
"아악! 악마! 당신은 진짜 악마였어요!"
"마왕이야! 그리고 애초부터 네 욕망을 위해 아무런 조건도 듣지 않고 덥썩 받아들인건 네 녀석이잖아, 불평하지 마라, 의무를 다해. 평생 날 위해, 나의 부활을 위해 온 몸 다 바치는 것이 네 역할이다."
뭐! 그정도야 상관 없는 이야기지!
애초부터 이것은 나의 부활을 위한 싸움.
나의 파편을 모으기 위한 선택이며, 나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한세이.
그녀의 고통, 아픔, 슬픔이나 절망, 두려움. 그 온갖것들은 내게 있어서 아무런 상관도 신경도 쓰이지 않은 하찮은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큭큭큭... 후회해 봐야 늦었어."
하지만,
그래.
솔직히 말해서 아예 상관 없을 순 없지.
감정이란 무릇 다양한 마력의 성질과 성격, 그리고 싸움에 영향을 끼치게 되니까.
당장 하얀을 바라보자, 감정을 기반으로 한 마법을 쓰고, 복수에 불타고 있는 열망은 그녀의 성장을 더더욱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다.
관계 없진 않아.
가능하면 기쁜마음으로, 의무감 보다는 날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잔말말고 이거나 먹어!"
"으...으으으...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거야... 난... 어? 뭔데요 이게."
"큭큭큭, 피부미용에 확실하게 효과적인 콜라겐의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향산화 성분, 수분, 무기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수박과 딸기를 갈아넣은 음료다. 큭큭.."
"피부...미용?"
"그리고 다 마시고 나면 저쪽에 간단한 탈의를 하고 누워 있도록 해라.. 큭큭.."
"...음.. 이거 맛있...음... 네!? 뭐, 탈의요?"
"마사지를 해주마."
"안해주셔도 되는데."
"네 소원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야. 벗어"
"와..."
세이의 눈에 빛이 사라졌다!
* * * *
<검은 공간>
"쿨..."
굳이 쿨쿨 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든 듯한 하얀이 침대위에 누워있는 그곳 검은 공간,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는 기타 생활 용품들과, 테이블위에 놓여져 있는 문제집등이 눈에 띄었지만, 바로 그 옆, 간단하게 놓여진 가림막의 너머에는 또 다른 시설이 생겨나 있었다.
시설이라고 해야 할까, 얇은 벽과 더불어, 은은한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장소.
"예전에 사이비 종교녀석들 털어먹을때 가져왔던건데 내 나름대로 개조를 좀 해봤지"
['안정의 향기']
수상쩍은 설명이 붙은 수상한 향이 풀풀 피어나와 몸과 마음을 조금씩 안정시켜가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놓여 있는것은 말한것과 같이 벽과, 아주 간소하게 생긴 마사지용 침대. 그리고 몇가지의 향료가 올라가져 있는 수납장이었다.
"그 사이비 종교에서 가져온거야. 실제 효과는 있었으까"
"당신이 사이비종교인건 아, 아니죠?"
"아니지. 마저 벗기나 해."
"조폭 같은것도 아니고?"
"마왕이라니까 글쎼."
그곳에서 그녀 세이는 스르륵 옷을 벗고 있었다.
분홍색 가운을 걸쳐 입고 있었으나, 앞에 있는 남자, 키는 조금 작은 편인 정수라는 소년에게 협박당하면서 말이다.
몸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얼굴은 울상이었다.
실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긴 했으나,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있던 사실이었고,
곧 가운을 벗어 내린 그녀는 거의 나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부끄러워... 죽을거 같아!'
나름대로의 정신수양이라고 생각해도 될법 했지만,
세이의 인생을 돌아보면 남자라고는 엮여 본적도 없는 하잘것 없었던 삶.
삶의 대부분은 연예인이 되기 위한 무한한 노력과 정성으로 채워져 있었던 노동과 연습의 나날 뿐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서도 달성하지 못한 연예인이라는 꿈 때문에 좌절한 것이 또 세이인데, 그런 삶 속에서 타인에게 속살을 보인적이나 있었겠는가?
게다가 이건 어떤의미론 알몸보다 부끄러운 복장이었다.
"비, 비키니... 저, 정말 이걸 입어야 해요?"
"다 벗어도 돼. 자, 저기 누워!"
"힉! 소, 소리지르지 마세요! 누울께요!"
"큭큭큭, 좋아. 고분고분하게 따르기만 한다면 이 이상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거다. 큭큭큭."
소름돋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남자에게, 자신보다 어린것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는 소년에게, 알몸이나 다름없는, 알몸보다 더더욱 자극적인 하얀 비키니 수영복을 한벌 입고...
'내 인생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거지? 난..'
결국 눕고야 말았다.
무방비하고 적나라하게 준비된 침대에 누워 얌전히 타인의 손길을, 그 남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울먹이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살이 빠지고 예쁘게 된 이상적인 신체가 남자의 눈에 사정없이 범해지고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슬퍼하고 있다.
"아니 돌아누워야지, 등을 보여야지 인마."
"아, 네."
조금은 나아졌다.
뭐, 그래도 부끄러운게 사라진건 아니었고, 자신의 잘빠진 엉덩이를 남이 본다고 생각하면, 뒷태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운건 똑같..
"앗 차가워!!"
"아, 맞다. 좀 차갑다. 화염마법이 있었으면 조금 데우기라도 했을텐데, 포인트 여유가 없어서."
"포인트? 아니지금 제 몸에... 하으읏♡"
몸에 오일이 닿는 순간.
"큭큭, 그보다 어떠냐! 이건 자극이완 소화불량과 오늘 하루 고생하여 생길 수도 있는 근육통및 경직경감효능이 있으며 노화 방지. 정신적 피로해소에 뛰어난 특제 아로마 오일이지 크흐흐, 어디가서도 경험해볼 수 없는 효능을 네 몸으로 직접 느껴보는게 좋을거다!"
세이는 아득한 세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득하다 함은 말 그대로다.
"아읏♡ 아♡"
처음엔 신음소리를 좀 참으려고 했지만, 아니 아예 소리에 대한 것을 염두에 둔적도 없었지만, 입에서는 미친듯이 튀어나오는 신음소리.
정수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온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듯 했으며, 그의 손이 어깨와 허리를 향할때에는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는 야한 신음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앙♡ 앗♡ 잠...이거 뭐에..♡ 여♡ 이거..하으읏♡"
"크큭! 정신도 못차리겠지! 내 마법이자 마력이 담긴 전격에 두들겨 맞았으니 당연히 온 몸에는 피로와 마비효과가 스며들었을테지! 그걸 풀어주마!"
"앗♡ 뭐, 뭔소리 하는지 전혀♡ 앙♡ 모르겠...거든요? 이거..뭐야!"
말 그대로, 모르는 일. 모르는 경험과 감각이었다.
온 몸이 성감대가 된 듯이, 시원하다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는 마사지!
어디를 눌러야 가장 시원한지, 어디를 자극해야 몸에 가장 큰 자극이 올지 전부 알고 있는 사람처럼,
기혈과 점혈을 누르는것 마냥, 세이는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아♡ 안돼!"
움직여 얼굴이라도 가리고, 입이라도 틀어막고 싶었으나, 그 행동은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자신의 발끝에서 부터 허벅지. 엉덩이에서 부터 허리 어깨 머리까지, 온 몸을 실컷 마사지 당하고 말았다.
잃은것은 정신이 아니다.
"아아아♡"
전신이 타오르듯 뜨거워 지더니 곧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아이거.."
왜 이렇게 기분좋은지, 왜 이렇게 마사지를 잘 하는지, 아니 애초에 마사지가 맞긴 했는지 여러가지를 물어보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세이는 쏟아져 온 잠에 몸을 맡기고 말았다.
"...쿨..... 쿨...."
하얀은 열심히 소리내며 자고 있는채다.
* * * *
<검은 공간>
"...으... 응앗!?"
소리를 내며, 세이는 몸을 일으켰다.
검은색의 천장, 검은색 바닥.
하지만 주변에는 드문드문 가구들이 보이고 있는 그런 공간에서 말이다.
기억을 떠올린건 순식간이었고,
"...뭐야이거"
세이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었다.
너무 기분 좋았다던가, 너무 시원하다던가, 몸이 날아갈 것 처럼 가벼웠다던가, 그런 감각을 느낀 후에,
"뭐야 내 피부, 이거 뭐야 이거 쩔어."
자신의 상상못할 피부감촉을 즐겼다.
항상 가득 들어차 있던 살이 없어진건 당연하고, 피부가 매끈하다 못해 잡티는 찾아볼 수도 없는 정도, 매끄럽고 부드러다.
"진짜... 진짜...!"
그리고 벌떡 세이는 몸을 일으켰다.
스륵- 떨어지는 것은 세이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 자락이었지만, 크게 신경쓰지도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가며 수납장에서는 거울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 날아갈것 같이 가벼워 지금까지 있었던게 2~3일은 푹 자면서 꾼 꿈이 아닐까 걱정하던 것이었기에,
"차, 찾았다."
세이는 곧 거울을 찾았고,
자신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 며칠동안에는 정신이 없었지.
자신의 아름다워진 외모를 충분히 확인하고 감상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피로하지 않고, 땀범벅이 아니고, 개운한 상태에서의 자신의 얼굴..
"아..! 지, 진짜다."
몇번, 몇십번 확인해도 모자르지 않을 확인.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몸매를 듬뿍 확인하고 난 후에,
세이는 훗날 다시 후회 할 지라도 다시한번 다짐했다.
'일 열심히 하자!'
이 외모를 대가로 해야하는 것이 그 무서운 일이라면...
'그래 어쩔 수 없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조금씩 나아질지도 몰라... 진짜! 그럴거야! 그래!'
어쩔 수 없지. 죽어도 아름답게 죽고 말겠다. 다시는 그런 모습. 추하고 뚱뚱해진 모습이 되지 않겠다. 적어도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다가 죽겠다고 다짐한다.
"좋아! 오늘은 간단하게 던전만 탐색하고 휴식한다! 2시간 정도만 돌다가 와! 4층으로 넘어가면 좋겠지만 필요 포인트를 확보하고 나면..."
벽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이가 마땅히 섬겨야 할, 그리고 따라야만 하는 자신의 주인님!
자신에게 매력과 외모를 줄 수 있는, 그리고 유지시켜줄 수 있고 발전마저 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마왕님!! 이, 일단 그랜절 부터 박고 시작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
세이는 결심한 만큼이나 즉시 행동하며 그의 앞에 나섰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린다는 의미에서, 전통의 인사를 하려는 순간.
"..."
"..."
"..."
침묵.
그 후에는 세이.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아참."
어제 이런 차림으로 잠들어 버렸지. 라고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하얀색, 비키니를 입은 채로 기쁜 표정으로 세 사람 앞에 서 있었다.
하얀과 미리네와 정수 앞에서 말이다.
정수는 물론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
"이 시발아!"
미리네는 정수에게 욕을 했다.
"쿠, 쿨쿨..."
하얀은 얼굴이 조금 붉어졌지만 서서 잠들었고,
"존나 개새끼야! 별짓 다하고 다닌다 너 시발!"
부족하게 느꼈는지 몇마디 욕을 더 하고 나서 미리네, 정수를 툭 밀치듯 하곤 세이의 앞으로 향했다.
...
...
그리곤 살짝 울먹이는 듯한표정, 걱정하는 듯한 표정과 진심으로 짜증이 나고 있다는 표정이 조금씩 섞인 모습으로 세이를 올려다 보며 이야기 했다.
중요한 이야기다.
"너, 너도 좀 조심해! 저 개새끼가 그럴줄은 알았지만... 그, 뭐... 아무튼 조심하라고, 진짜로!"
아주 중요한 경고.
"네..."
세이는 모르겠어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