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한세이 (5)]
장소는 외부세계.
잃어버린 땅.
그곳은 그 이름에 걸맞게 한때 인류가 쌓아올려왔던 문명들이 즐비해있다.
부숴졌지만,
무너지고 망가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놓여 있는 장소.
자동차가 지나다니던 도로, 부숴진 다리. 망가진 자동차, 하늘위에는 아직도 검은 연기를 풀풀 피워내고 있는 높은 건물.
지상이고 지하고 모든 곳들엔 식물과 덩쿨이 자리잡고 있는 곳.
콘크리트와 철근이 사방에 놓여져 있으나,
단단한 암석을 비집고 피어나는 꽃이나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봉오리를 피우려는 수많은 식물들, 야생 생물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다.
"... 마물들은 자연친화적이네요."
"어? 어, 그러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얘네 걸어다니다가 꽃향기 맡기도 할까요? 고양이 같은것도 종종 돌아다니는거 같은데?"
"야, 이제부터 죽이는거에 그런 소리 하지 말자."
"아 넵"
그런 곳을 그녀들이 걷고 있다.
자연에 조금더 가까운 곳.
세계가 멸망하고 수백년 후의 땅을 밟는듯한 장소에,
미리네는 한 숨을 한번 푹 내쉬곤,
"이 쯤?"
그렇게 물었다.
-"어, 그 쯤"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응하며 주변을 살핀다.
다른 이들 역시 각자 무기를 쥐고 태세를 정돈하고 준비를 끝마친다.
시작할것은 전투다.
외부세계의 마물들은 지상에 내려와 생존한 마물들,
천적이라고 할만한 인간도 능력자도 없는 장소에 내려왔으니, 그들이 본래 하던대로 주변을 배회하며 둥지를 만들고 무리를 지어 세력을 키우는 것이 본능.
마주치는 적대적 생물을 먹이삼고, 끊임없이 번식하며 숫자를 늘리는 것이 마물이라는 생물들의 근본이나 다름없는 행동.
거기에 필요한건 마력이나 다른 종족의 암컷등, 다양한것을 필요로 하겠지만,
당연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악마가 만들어낸 마물들의 근원인 '마력'이다.
이곳은 마력이 많다.
-"그쪽이 특히 짙네, 그 근처일거야."
외부세계에는 마력이 짙게 깔려 있다.
마물들이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 그 증거로 주변의 식생들이 과도하게 자라거나 지성을 얻는 등의 현상이 있고,
작은 곤충조차도 몸집을 불려 위협적인 존재로써 성장하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마물이란 단지 그렇게 존재하는것만으로도 기존에 유지되고 있던 대다수의 법칙을 뭉게버리고 파괴해버릴 수 있는 존재나 다름 없다.
그러니까 뭐 다시말하자면...
-"거기에 마물의 둥지. 즉 마물의 둥지를 만들어낸 마물의 우두머리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거지."
마물의 우두머리가 있을 확률이 높다.
마물의 우두머리란.
이곳에 다다랐던 마물.
마왕의 파편을 삼키고자 수도없이 많은 수의 마물이 이세계에 도착했을때, 주변의 문명을 모조리 파괴하여 자신의 둥지로 삼는데 성공하고, 그렇게 숫자를 늘릴 수 있게 된 파편의 소지자.
쿠궁-
-"봐, 오잖아."
그중에서도 이곳에 있는 마물은 자신들의 둥지이자 어미를 지키기위한 도살자들의 우두머리이며,
쿠웅-!
"시발, 이거 바닥이네. 바닥이야. 뱀같은거지?"
"...!"
움직여 땅을 뒤집어 버리는 한편, 천둥과 벼락을 손에 쥐고 있는 괴물.
쿠릉-!
"쿠아아아아!!!"
"시발!"
하나의 뿔과 하나의 눈. 하지만 거대한 몸집의 외눈박이 괴물은 그 크기가 커다란 건물과도 비견될 정도인 온 피부가 자색의 빛을 가지고 있으니, 그 이름이
[사령관 타입: 우두머리, 만년 도살자]
인간은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퀴클롭스라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크아아아!"
괴물은 나타나는 순간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땅속에서 얌전히 잠을 자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면서 이곳까지 당도한 인간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수년동안 단 한번도 침범당한 적 없던 신성한 자신의 정원을 망쳣다는 사실이 화라도 났는지.
그게아니면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파편'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건지 모른다.
"이 빌어먹을 인간들이! 크아아아아!"
그것은 말을 할 수 있었으며,
인간을 하찮게 생각하여 자신의 양손을 들어올렸다.
이른바 '천둥'과 '벼락'이라 불리우는 무기와 다름 없는 것. 신화의 왕이 쥐고 있던 번개의 창과 같은 그것.
그 괴물은 이내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릉-!
"시발?!"
한번 휘두르면 우레같은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퍼진다.
-"흠. 여기 '잃어버린 땅 첫걸음 가이드' 라는 책을 보니까, 그 녀석 꽤 유명해. 싸울때마다 천둥번개소리가 크게 들려서 주변의 마물이란 온갖 마물은 다 불러들이고, 근처에 있는 인간 베이스 캠프에도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데"
"시, 시발이잖아!"
미리네는 할 말이 없으면 대게 욕을 하곤 했지만,
이번에야 말로 그녀, 바짝 인상 쓰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름은, 퀴클롭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자기가 주장하는 이름은.."
"이 하리보공주의 땅을 침범한 죄! 나의 아이들을 죽인 벌을 받게 해주마! 인간들!! 크아아아!!!"
"공주!? 존나 염병하네 진짜."
미리네가 하는 행동은 단순하다.
"뒤로!"
잠시 물러서서 적의 공격을 피해야 할때가 오면 그렇게 말했고,
미리네의 지시에는 하얀과 세이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뒤로 물러섰다.
콰릉-!
번개 발치에 떨어지는 것으로 공격을 피해냈다고 생각하면,
"세이야!"
간결하게 이름을 부르고,
"네!"
전진시키며,
"하얀이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더라도 무엇이 필요한지 돌아볼 수 있게끔 이름을 부르거나, 화살을 시위에 걸어 힘을 주었다.
콰르릉-!
하늘앤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고,
천둥과 벼락이 쉴틈없이 내리친다.
주변에 산개해있던 모든 종류의 작은 도살자들이 한마리 두마리, 서서히 몰려와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지키고자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한다.
"쿠에에엑!!"
"키에에엑!!!"
비명소리.
그리고 벼락을 맞고 새까맣게 타버리는 것들도 더러 있으나,
뭐...
"제가 저걸 막으라구요?"
"아니면 피하던가, 전에 애는 그렇게 하던데!"
콰릉-!
"아니, 저걸 피하라구요?"
"아니면 그냥 맞고 버티면서 달려! 전에 애는 그렇게 하던데!"
콰앙-!
"저걸?! 맞고 뭐 어떻게 버텨요!?!"
"아씨...! 다시 온다! 너는 저쪽으로 가! 나는... 윽... 야 정수새꺄! 저거 우리가 이길 수 있는거 맞긴 맞아!?"
쾅!
알아서 잘 하겠지.
"시발! 오늘 온타임 이벤트 한다고!!"
자신의 주인에게 불만은 표현하는 미리네도,
아까부터 과묵하게 지팡이를 칼과 도끼로 변형시키면서 싸움을 이어나가던 하얀에게도, 이제 서서히 상황이 익숙해지고 있었으니까.
익숙해져간다.
싸움에,
또 목숨을 거는 것에,
한순간의 싸움 속에서 세이는 자신의 목숨이 다섯번 정도는 날아갔을 것임을 예감했었다.
미리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다섯번은 더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얀이 도와준것까지 포함하면 아마 일곱.. 다합해서 아마도 스무번 정도는 족히 삶과 죽음을 왔다갔다 했을까.
첫번째 싸움은 아니었지만,
첫번째 날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런걸...이걸 게속 해?'
절망스러워지고 말았다.
할 수 있다곤 생각했는데, 해야겠다고, 하고 말겠다고는 생각했는데...
'진짜,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 못걸렸구나!'
이제는 이렇게 되어버렸겠지.
아무리 자신의 이상향같은 외모를 지닌 두 소녀와 두근거리고 복잡미묘한 모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들, 버틸 재간이나 있었을까,
그럼에도 세이는 울면서 다시 방패를 다잡았다.
거대한 괴물이, 번개를 쥔 손을 잡고 자신을 향해 내리치려는 것을 보면서,
익숙해진 만큼이나,
죽음에 대해 걱정하게 된 만큼이나,
이 하루,
동료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쳐나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이 한번은 막는다!"
막아낸다.
콰앙!!!
번개가 자신의 방패를 내려치고,
쩌적-
그 덕분에 방패에 균열이 가기 시작해도,
그리고 그 다음 공격자세를 잡는 괴물이 눈에 보여도, 세이는 방패를 치우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세이의 뒤에서 제대로 된 자세를 잡고, 있는 마력 없는 마력 전부 이끌어내려고 하는 미리네를 지켜야 하니까..
"이것도 막는다!"
막으면 이길 수 있다.
...
콰릉..쿠우우웅-
세이는 그렇게 자신의 역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을 보호하는 보호자.
방어전담.
탱커.
[굳건한 방패]
[왕성 방패술]
콰아아아앙-!
그 후 벼락은 수십번 그녀에게 내리쳤다.
띠링-
['회복']
띠링-
['회복']
띠링-
['회복']
띠링-
['끈질긴 생명력'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끈질긴 생명력' : 빈사의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버틸수 있는 생명력.]
[최대생명력이 약간 상승하고 매우 낮은 확률로 죽음을 버틸 수 있다.]
띠링-
['전격 내성'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전격 내성' : 전격 속성에 대한 공격에 약간의 내성을 가진다.]
[전기계열 스킬에 아주 약간 내성을 지니게 된다. 단, 데미지를 무효화 할 순 없다.]
쾅-!
의식을 잃을때 쯤에 들린 소리는 신경쓰지도 못하고 말이다.
* * * *
...
...
그 후의 이야기는 간결한 이야기다.
미리네가 혼신의 힘을 다해 쏘아낸 것은 '어둠속성'을 담아낸 마법화살.
띠링-
['미리네'가 '속성 강화'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속성강화' : 속성공격력을 약간 상승시킨다.]
[속성을 담은 공격이 아주 약간 상승한다.]
화살은 그대로 괴물을 향해 날아갔고,
그 찰나의 시간동안 하얀은 자신이 할 일을 떠올려 힘을 쥐어짜냈다.
희망은 본디 무언가를 복돋고 회복시키고, 강화하는 것에 특별한 효과를 보이는 마법의 일부.
마왕은 굳이 그 특성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지만, 하얀의 본능은, 기적의 마법을 사용하며 마법의 재능이 있던 하얀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특기를 끄집어 내었다.
띠링-
['하얀'이 '희망의 강화'를 습득했습니다.]
희망을 불어넣어 어떤 것을 일시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스킬.
그 효과의 지속시간이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온갖 에너지와 모든 종류의 힘에 불어넣을 수 있기도 했으니,
미리네가 쏘아낸 어둠의 화살은 희망의 힘이 불어넣어져 더더욱이 강력한 공격이 되어 우두머리 도살자의 머리를 꿰뚫은 것이다.
양손에 있던 번개를 놓치고, 그대로 뒤로 고꾸라지고 있는 괴물은 하늘 높이 뛰어오른 하얀의 '무차별 희망 난사' 로 인해 형체가 흐려지고, 곧 그렇게 쓰러졌다.
흙먼지가 휘날리기 시작하며,
우레소리를 듣고 달려온 외부세계의 능력자들이 몇명 있긴 했지만, 이곳은 말했듯이 외부세계.
"뭐, 뭐야?"
"저거 '공주'잖아"
"요 근래 모습을 보인적도 없었는데..."
"그, 그럼 이 지역도 안전확보 할 수 있는건가?"
"그보다 저 공주를 쓰러트렸다고?"
쏟아지는건 쓰러트린 당사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상황과 진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이 커다랬으니,
"빠, 빨리 회수하고 튀자!"
"아, 네!"
"..."
"아 이 녀석 기절했네.. 하얀야 얘좀.."
"희망의 들것!"
"완벽하네"
후다닥 장소에서 도망치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정리된건 그 뿐이었다.
-"식사시간이군, 이만 돌아와, 미리네는 그대로 인류 거점 통해서 돌아오고, 그 김에 마석도 정리해. 하얀이 너는 한세이를 들고 있어라, 귀환스킬은 범위가 좁아 한번으로 소환해야 하니"
나머지 뒷 일들이야 저들이 알아서 하겠지.
미리네는 그대로 돌아갔다.
'여왕'이라고 불리우는 [사령관 타입: 우두머리, 만년 도살자] 와는 관계 없다는 척하면서,
"이, 이거, 바, 바로 교환..하고 싶은데요."
"...!? 뭐야 이거! 사령관 타입이 희귀하게 떨구는['적색 마석'] 이지 않습니까?! 이걸 대체 어떻게 구하신겁니까!?"
"아..!? 아, 아니 그게... 그, 그냥 교환해주면 안되요?! 어, 얼굴 보지말고 시발...!"
"앗! 자세히 보니까 그분 아니십니까? 평범하게 구할 수 없는 정제된 마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해오시던 무소속이지만 기관에 주로 들리시는 최 미리네님! 작은 체구와 날렵한 움직임! 어떤 추적자도 잡지 못했던 기묘한 은밀성과 소문으로는 [스킬: 전이]를 소유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던 전장의 아이돌!"
"씨, 씹쌔.. 그게 무슨...이 시발 진짜..야이 개..시발!"
"앗! 도망치지 마세요 미리네님! 세계급 능력자가 되시기 전에 사인부터 하고 가십쇼! 미리네님! 미리네님!!"
"이름 부르지 말라고 시발 개새끼야 진짜!"
... 이것도 아마 미리네가 알아서 했을 것이다.
거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험상궂은 인간들을 피해 달려 전이문을 통해 'A시'로 돌아올때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
<검은 공간>
"으...으으..?"
한세이는 눈을 떴다.
"자! 첫 전투! 수고 했다! 덕분에 회복스킬을 4회나 사용해버렸지만! 처음치고는 기대 이상이야! 난 또 라나처럼 팔이나 다리 하나 잘려놓고 돌아오면 어쩌나 했는데 말이야!"
"파, 팔이나..다리..자, 잘리고 그러는건가요. 그 라나라는 사람은 대체 정체가 뭔가요. 괴물? 저는 그런 사람의 대리를 맡은거에요?"
처음엔 조금 당황했겠지.
검기만 했던 공간에 있는 생활용품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경황이 없었다.
세이가 기절하고 나서 6시간은 더 지나, 바깥은 지금 새까만 암흑이 내려앉았을 것이며, 착한 하얀은 잠자리에 들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세이에게는 어디까지나 조금 전 있었던 일.
기절했던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는데... 그, 그런 무서운걸 계속.. 한다구요? 제가요?"
"그래. 그게 네 입장이지."
세이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세이의 앞에 있는 정수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너무 정상적인 반응이라 조금 당황했네."
세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