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한세이(3)]
"조, 조금은 이해했는데요."
세이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 세상에서 알 수 없을 것같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청년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면서, 침을 꼴깍 삼킨다.
"그러니까, 저한테 그 마력이란걸 주셨고, 그 힘덕분에 제가 이렇게 날씬해지고 예뻐진거잖아요?"
"응? 아니! 넌 원래부터 예쁜 편이었을텐데!"
"읏? 아! 와. 아니, 그,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마력이란게 있으면 왜 운동 시키시는 건데요? 그냥 마력만 있으면 되는거 아닌..가요?"
그는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더니,
이내 세이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마력이란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답은 간단하다.
"마력이라곤 몰랐던 너의 몸에 마력이 깃들어서 생기는 약간의 부작용 같은거라고 생각해도 좋아."
"이, 이 좋은게 부작용?"
"몸에 쓸데없는 불순물, 마력이 차지하기 위해 그 잡다한 것들을 밀어내고 난 다음이 바로 네가 받은 효과인거지. 피부가 부드러워 졌을거다. 깨끗해졌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들이 네 몸을 침범하지 못한다는건 아니야."
"아.. 진짜 좋아진것 같긴 하네요.."
"네 몸에 자리잡고 있던 지방마저도, 겨우 한시간 전력질주하여 달린것만으로도 쉽게 빠졌는데, 그것 역시 마력이 자리잡기 위해서 필요했던 과정 같은거야. 물론, 미리네나 라나 같은 경우에는 원래부터 그런 자리가 충분히 있었으니까 뭐 상관 없는 이야기었지만..."
"네?"
"아무튼! 그렇게 완성에 가깝게 된 네 몸이지만! 이후부터 쌓이지 않는다는건 아니다!"
몸안에 있을 불순물, 먹으면 생기는 지방,
"앞으로 네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이전과 똑같이! 아니, 지금이라면 이전보다 더더욱!!"
"?!"
"네 몸의 건강을 해칠것이다!"
"건강!"
마력을 얻은 세이의 몸은, 더이상 처음과 같은 편법을 쓸 수 없게 된단 뜻.
단숨에 다이어트가 된다던가, 별 다른 부작용도 없이 수십키로를 단번에 뺄 수 있게 된다던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피부미용은 패시브. 공짜라고 해두어도 되었을테지.
그러나 굳이 말하진 않았다.
"끊임없는 관리를 시작한다."
정수는 충실할 뿐이다.
계약이나 약속. 중요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마는 것이 바로 그.
"자, 지금 겨우 한시간 반 밖에 안됬어, 더 달려. 끊임없이 달려서 오늘 먹은 지방과 칼로리를 빼도록 해라!"
"허억..억.. 아니, 저기... 오늘 저 아무것도 안먹었는데.."
"뭔소리야! 아침에 샐러드 먹었잖아!"
"맛 이상한 야채뿐이었잖아요! 드레싱도 없이!"
"샐러드에 드레싱을 부어먹으면 그게 살빼는데 도움이 되겠냐고!"
"사, 살은 다 빠졌는데요?!"
"아직 안빠졌어! 보이지 않는 살이 있는거야! 네 몸에 있는 마력이 네 그 두터운 살을 비집고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냐고! 아직 마력이 안착되려면 멀었어! 오늘은 6시간 밖에 못잘줄 알아!"
운동. 운동.
세이는 끊임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풀고나면, 전투에 익숙할 수 있도록 격렬한 운동까지 함께 시작했으니까..
<공원>
그 공원.
하루종일 소리지르는 학생 한명과,
하루종일 우는소리를 하는 여성 한명의 소문이. 아주 약간 퍼지기 시작했다.
* * * *
'뭘까'
세이는 생각했다.
현실, 상황, 변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아주 작은 생각이다.
무언가가 변했다.
마력을 얻은순간 일반인이 아니게 된 것은 확실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토록 바라던 힘을 손에 넣었다.
이른바 재능.
아름다움의 재능을 손에 넣은 것이다.
마력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몇시간을 뛰어도 괜찮을지 몰라, 미친듯이 운동해도 지치지 않으니 몸매관리는 더더욱 쉬워질지도 몰라, 몸에서 빠져나가는 모든 종류의 에너지들은 더더욱 세이를 발전시켜줄 거야.
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인생이 탄탄대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웠던건..
'아, 목소리를 달라고 할걸 그랬나'
목소리를 달라고 할껄 그랬나 하는 정도의 생각.
물론 지금 생각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직업을, 그렇게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약간은 있었던 것 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무렵이다.
하루가 지나고,
녹즙을 다섯...아니 여섯번 정도,
...
먹고나면 온 몸이 불타오르듯이 뜨거워졌다가 가라앉고, 혹은 의식을 잃을뻔한 적도 있었기에 잘 생각은 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만큼 먹었을 무렵.
"좋아 그럼."
"네. 그럼 저 이제. 오디션을 준비하면 되겠군요."
"외부세계로 간다."
"네?"
"뭐."
"왜..."
"넌 나에게 영혼까지 팔겠다 말했잖아."
"죽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죽이겠단 뜻은 아니야."
"...?"
"간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요! 무슨 소릴... 저 그런데 못가요!"
"좀더 격렬한 운동이 필요해."
"죽은 다음에 운동은 효과가 없을거 같은데요!?"
"아냐, 효과 있어. 격렬한 전투는 언데드도 마력증진에 효과가..."
"안죽는다고 말씀하셔야죠!!"
세이의 눈이 캄캄해졌다.
"아!"
탄식의 단말마.
이건 역시 악마의 속삭임이었구나, 소원을 들어준것처럼, 모든게 잘 될것처럼 겉으로 보여주고 나서는 인간의 한없이 끔찍하고 처절한 모습을 보며 즐기기 위한 악마였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얻었는데, 겨우 뭔가 다시 해볼 의지가 생겼는데,
운동을 통한다는 이야기는 세이의 희망을 돋구었고, 마냥 사악하지만은 않은 수상한 목소리라고 여길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데..
'외부세계라니! 외부세계라니!!!'
외부세계가 어떤 곳인가?
통칭 '잃어버린 땅'. 말 그대로 인류의 땅이었으나, 마물의 침공 이후로 완벽하게 빼앗겨 버린 버려진 땅.
인류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무기들이 그러한 곳에 떨어졌었고, 스스로 만든 무기가 스스로를 망쳐버리는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했으며, 그렇게까지 해서 박멸하려 했던 마물들은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도 않고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곳.
용의 땅이요 마물의 본거지라, 마계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끔찍한 곳.
지옥이라 해도 좋고,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라 해도 좋은 장소.
평범한 인간들에게도,
그리고 능력자들에게도 한없이 위험하고, 살아갈 수 없는 곳.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없으며
능력자들은 말 그대로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마경!
'안돼! 죽을거야! 난 죽어버릴거야! 이런거 때문에? 진짜?! 난 아름다움에 목숨을 버린거야!?'
마물들이 흩뿌린 사악한 마력의 힘과 마석의 힘은 환경을 그 자체로 바꾸어버리고 온갖 물리법칙조차 무시하게 되는 곳.
상식이 통하지않는 세계,
외부세계라는 속칭을 가지고 있는 만큼이나, 현재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외부'에 위치해 있는 공포로 가득 들어찬 곳!
'아름다움에!?'
세이는 눈이 캄캄해진 와중에도 경악했다.
이제부터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 뭔가 굉장히 분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겨우 외모 때문에, 겨우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런 곳에 가야 한다니!
그건 정말...
'... 아름다움에...'
말이 될 수도 있을지 몰라.
생각을 바로잡았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간 스쳐지나왔던 짧은 인생이 떠올랐다.
연예인이 되기 위해 해왔던 노력.
재능이라는 한계에 부딪힌 자신.
절망했지만, 그럼에도 노력하려던 자신과,
결국 운조차도 없어 실패해버린 자신의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실패하여 시작된 패배자의 삶과 고통스러운 시간까지.
추해진 모습을 증오하던 자신과 더 노력하지 않았던 자신을 미워했던 기억까지.
스스로를 망침으로써 해소하려 했던 수많은 스트레스들과 결국은 재능 탓이라, 다른 곳에 증오를 돌리려 하던 자신까지.
'다신...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그러니 다시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 경험은 아주 끔찍햇던 것임을 기억한다. 결코 잊을 수도 없으리라,
그러니까,
세이는 단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이건, 당연히 가치가 있어'
겨우 그런 아름다움때문에 목숨을 버릴 가치가 있느냐!
"네!"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건 세이의 용기.
세이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영혼을 팔아 마련했다.
그 기회를 버리지 않으리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어떻게든 이것만은 사수하고 말 것이라, 그렇게 다짐했다.
더 아름다워지면 좋고,
더 연예인 스러워지면 좋고,
그도 그럴게..
'엄청 의욕적인 프로듀서까지 있는데 그깟 목숨이 대수야!'
녹즙가는데 여념이 없던 그 목소리의 주인까지 있는데, 아 목숨쯤이야 뭐!
좀비도 어디서는 아이돌을한다는데,
세이라고 못할게 또 뭐 있담!
"으아아아!"
그래서 세이는 눈을 떴다.
시야가 암전되었고,
그 후에 다시 밝혀진 세이의 눈에는
두 천사가 보였지만,
세이.
여기선 당당하게 소리쳤다.
"뒤...뒤에 괴물 있어요!!!!"
"와 씨 깜짝이야."
콰앙-!
한 세이.
아름다움을 쥐고 싶어 하수인이 된지 40시간 가량.
첫번째 전투를 시작했다.
* * * *
<제1 외부세계: 마물로3번길-1>
그녀의 몸에 작은 빛이 감돈다.
빛의 색은 검은 빛이었으며, 빛이 사라진 후에도 그녀는 검은색의 코트를 한벌 입고 있었다.
어깨까지 올 법한 짧은 핑크빛을 띄고 있던 머리칼에는 거북이가 그려져 있는 머리핀이 그녀의 앞머리를 고정하고 있었고, 한 손에는 평범한 크기의 방패가 하나 들려있었다.
방패의 색은 회색빛이었으며,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겨우 가리고 조금 남는 정도의 크기
한세이.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방패를 양손으로 잡았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정도였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크게 방패를 들어 바닥에 내려 치는 세이.
자신의 몸에서 폭발할 듯한 힘을 느끼고있었고,
띠링-
['마왕의 축복'을 받는 중입니다.]
세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새로운 주인. 목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
그러나 그 정체에 대해 곱씹기도 전에,
"크어어어!"
커다란 괴물은 세이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아니, 자신의 뒤에 있는 두 천사를 향해서 달려들고 있었던가?
뭐 세이가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었지.
콰앙-!
방패에 그 묵직한 괴물의 몽둥이가 닿는 순간,
띠링-
['왕성 방패술'의 스킬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라는 메세지와 함께..
"앗. 케헥!"
방패로부터 몸까지 충격이 전해지며 격통을 느꼈다.
그래, 신경쓸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왜... 왜 저 무기 없어요!?!!?"
무기도 없이 방패 하나만 딸랑 들고 있는데 대체 뭘 어떻게 신경쓰겠는가?
당장 한대 막아낸것만 해도 온 몸이 부숴질듯 아파져 왔고, 한두시간 운동한 것 가지고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격통과 아픔이 밀려들어왔다.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급속도로 지쳐갔고, 숨은 거칠어 졌으니..
'하, 한대 더 맞으면 방패고 뭐고 깨질거 같은데...!?'
세이가 절망하는 그 순간.
'아! 일단 살고 봐야 아름다움이고 뭐고 상관 있는건데! 나 진짜 멍청이야!'
"누군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고맙다!"
그 뒤에서 천사가 한명 뛰어나가는 것을 세이는 보았다.
작은 체구를 하고 있는 그녀, 뱀같은 머리장식으로 그 풍성한 머리칼을 묶어 흩날리고 있는 활을 들고 있는 그녀 말이다.
"아...!"
그녀가 씨익 웃어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순간엔, 세이의 몸에 빛이 닿았다.
"괜찮으세요?"
그건 또 다른 천사였다.
하얀 머리칼을 하고 있는 귀여워 어쩔 수 없는 소녀가 세이의 눈앞에서, 세이의 이마에 살짝 손끝을 대고 있었다.
"아..아으? 어?"
말도 잘 나오지 않는 그 순간,
닿은 하얀 빛이 힘을 볻돋아주고, 지쳐버린 몸을 치유해주었으니..
'뭐야 이거, 이거...혹시 나 벌써 죽었고 여기 사후세계인가?'
"치료.. 했어요."
세이.
하얀색 소녀의 모습을 한 천사는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세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마치 싸움이 자신의 일이라는 것처럼.
"나와라. 희망의 강철둔기"
작게 중얼거리곤 큼직한 둔기를 손에 쥐어 달렸다.
세이는 멍하니, 그 모습을 눈으로 쫒았다.
커다란 괴물을 두 천사가 쓰러트리는 그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