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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한세이 (2)] (63/112)



〈 63화 〉[한세이 (2)]

"..."

지금부터 아주 신중해야 한다.


<세이의 집>

세이의 집은 낡아빠질대로 빠진 아파트 한켠,
곧 재개발이 된다는 믿음 하나로 일단 사서 일단 틀어박혀 있는 다 부숴져가는 아파트의 구석진 곳.

그런 집의 세이의 방에서,
세이는 요근래 바깥으로 나간적이 없었다.

항상 집에서 조금이나마 모아두었던 용돈이나 엑스트라 알바따위로  돈을 사용해가면서 배달음식이나 꾸역꾸역 먹었던데 세이의 움직임 전부였다.

스트레스로 먹을 것은 더욱 들어가고 식욕은 먹으면서도 높아지기만 했으니,


살은 찌기 시작했고,
살이 찌기 시작하니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아 또 먹기만 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니까 나간적은 없었지만,
오늘은 나갈 생각을 했으니,


지금은 신중해야 겠지.


옷에 맞지도 않는 작은 옷을 억지로 낑겨 입은 후에,

'이거 저저번주에 택배 받은 옷인데...'

그렇게  문을 나섰다.

"저 나갔다가 올께요."


그리고 개미 기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한걸음 걷는 순간,
 안방에 세이와 비슷한 정도로 방을 더럽히며 앉아 있던 그녀의 어머니.

"돼지년이 이 밤중에 어딜나가?"


그렇게 말한다.
뭐,
조금 친한 사이에 있을 수도 있는 흔한 모녀관계간에 주고받는 농담가까운 대화는 아니었다.


아니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게 담겨 있는 어조는 명백한 적의였다.


"...우, 운동..하려고."
"운동? 하, 지금 해서 뭐하려고 그러니? 그냥 그렇게 뒤룩뒤룩 살만 찌다가 죽어."
"..."


"내가 너같은 년 키우겠다고 얼마를 투자했는지 생각하면 화딱지가 다 난다. 결혼이나 하겠니 네가?"
"..."

"아니다. 그냥 나가렴. 나가서 들어오지 마. 어디가서 죽던지 말던지, 이제 나가 살아. 이제 너 뒷바라지 안할랜다. 잘먹고 잘 살던가. 배고프면 지 살이라도 잘 쳐먹겠지."
"..."

자존감을 깔아뭉갠다.
인격을 깍아내는 어조, 말투, 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투자당하고 있을 무렵에는 그렇게 믿음직하고 든든했던, 자신을 뒷받침 해주고 응원해주었던 그런 어머니가 하는 적의와 살의조차 담겨있는 그 말. 비수도 아니고 묵직한 둔기에 박혀있는 칼날이 세이의 마음을 패고, 찢어놓고 있었다.


"..."

하지만 세이.
뭘 하겠는가?

평소와 같이 울먹이면서 제 방으로 들어가버려?
아니면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베란다로 달려가 뛰어내리기라도 할까?
또는 정말로 가출해서 혼자 잘먹고 잘살 다른 길을 찾아봐?

셋다.
아니, 지금 세이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는 모든 방법을 쓸 순 없었다. 쓸 수 있는 상황조차 아닌 지금이다.

'어...'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예뻐질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말을 했더니 머릿속에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 자신이 만든 트레이닝 스케줄 대로 따라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기분나쁘게 웃기 시작했기 때문에, 말을 듣지 않으면 뭔가 끔찍한 일이라도 당할 것 같아 무서워서 일단 운동하러 다녀와야겠어요. 라고 말해야 했겠는가?'

사실 지금 당장 어머니의 말이나 갈굼따위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뭐하는거야? 지금바빠. 시간이 없어. 너는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단 말이다! 어서 나가서 가볍게 두시간 정도 달리기를 시작해! 달리면서 상세한 이야기를 할테니까!"

"아.어.으."

"뭘 멀뚱히 서 있어! 이 돼지년아! 빨리 나가던가, 말든가. 내가 이나이에 네 짐까지 챙겨줘야 해? 뒤질거면 저기 배란다에서 뛰어내려 뒤지던가. 숨소리 거슬리니까 아무거나 빨리 결정해줄래?"

"어, 엄마..."

"나 니 엄마 아니다.  엄마는 자식이 돼지가 되는 바람에 이미 화병나서 뒤졌어요. 밖에 나가서도  딸이란 소리 하기만 해봐. 쪽팔려서 얼굴을 들고다닐 수가 있어야지."

"나, 나갔다가 올께요."
"오지마."

목소리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어머니는 쉴틈없이 자신을 죽이려, 아니 죽길 바라고 있으니, 겁먹은 한편으로도 닭똥같은 눈물이나 찔끔 흘리면서.. 세이는 바깥으로 나갔다.

* * *




-"자! 지금부터 간단한 스케줄을 설명해주마! 매일 아침5시에 기상해서 가벼운 스트레칭과 함께 아침조깅 한시간. 그리고 팔굽혀펴기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달리기 다시 3km 달리고, 여름에 에어컨은 안틀거야! 그런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외부세계의 마물을 해치우는 역할을 하면 돼."


"네? 허억..헉...네? 뭐, 뭐라구요?"

-"그러니까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아니, 아니 마지막에 뭐라고...허억.. 하셨...? 네?"

-"역할을 다 해라! 이제 겨우 30분도 안뛰었어!"

"네, 넷!"

운동이 시작되었다.
지옥같은 운동이라면 운동이고, 그렇지 않다면 않은 것인데.

사고가 돌아가는 것은 한참 후에나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엉겁결에 나와서, 일단 뛰고는 있는데, 늦은 밤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공원에 나온 사람들은 제법 있었지 않은가?


얼굴에는 분칠하나 하지 않았고, 세이의 몸은 뚱뚱하고 외모는 비루할텐데,
밤임에도 뚜렷하게 보일만한 터질듯한 옷을 입고 있었으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듯 했다.
그 뿐인가? 비웃는것 같으니까 더더욱 혼란스러운 와중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랴, 자신의 몸을 신경쓰랴, 거기에 운동을 하면서 목소리에 집중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한참 후에야.


세이는 떠올렸다.


'나, 나 왜뛰어?'


왜 뛰느냐면, 목소리가 시켜서였겠지.

'사, 살빼려고?''

살을 빼려고 말이다.

'그럼  소원은?'


아름다워지기 위함이다.

'어라? 그런데.. 허억...  엄청 오래달리고 있는거 같은데?'

...

이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라.. 오..이거... 허억...어...?'

몸은 가볍다.
무거운 체중만큼이나 걸음을 때는것도 힘겨워 죽을뻔했는데, 지금은 놀랄정도로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다.

"며, 몇분..어... 허억..몇 분째.."


-"이제 겨우 35분이야! 자! 좀 더 달려! 한시간 후에 잠깐 휴식하고 나서 나머지 설명과 함께 특제 음료를 주도록 하지!"

35분. 쉬지도 않고 달렸다는 것을 떠올렸다.
페이스를 조절한다면 어렵지 않을 수 있겠지만,

'지치지 않아.. 힘..들지만... 더 달릴 수 있어.'

살찐 후, 한계치가 명확했을 텐데도 그렇게 지친것도 아닌듯 했다.
땀은 비오듯이 쏟아지며 달리는 바닥을 적실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자신에게 남은 여력이 어느정도나 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더 달릴  있다.
 속도를  수도 있다.

"이건...이게..!"


공원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세이를 본 것은 세이가 뚱뚱해서가 아니었다.
세이가 못생겨서도, 터질것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저, 저 지금 엄청 빨리 달리고 있어요...!"

-"그래, 나도 알아. 아, 혹시 막 채소 알레르기 같은건 없지?"


"없어요!"


-"큭큭 좋아. 조금만 더 달린 후에, 휴식시간을 주도록 하지. 지구력의 베이스는 쉽게 완성할  있겠군... 오늘밤은 6시간 밖에 못잘줄 알아!"

"와..네, 네!!!"


마치 전력질주를 하는 것 같이 보이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바라보고 있었을 뿐.


세이는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우중충한 자신의 인생에, 드디어 달빛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

그리고 한시간무렵이 지나, 뚝뚝 흐르는 땀방울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있던 세이의 앞에, 그것이 내려온다.

-"토마토, 시금치, 비트, 브로콜리, 양배추 등을 갈아 넣은 녹즙이다. 큭큭큭... 마셔라 한세이."
"...마, 마시면  얻는거죠?"
-"모..든것."
"저는... 아!"

녹즙.

한세이는 눈앞에 떠오른 그 음료를 받아 마셨다.
확신이 생긴 것이다.
'악마' 혹은 무언가.
자신의 신체능력이 이상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이제부터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며, 따른다면 분명 아름다움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란 그런 확신.

세이는 녹즙을 받아 마셨다.


쓰디쓴 녹즙. 온갖 건강에 좋다는 녹색류 야채들을 모조리 갈아넣은 그 음험하고도 두려운 음료를 말이다.

툭-
그리고 그 녹즙병을 떨어트린 순간..


세이는 두 손을 꼬옥 모아 잡았다.

"제게 아름다움을 주세요!"

다시한번 자신의 소원을 말했고,
목소리는 답했다.

-"그래. 네 소원은 마땅히 이루어질거야. 영원히"


악마의 속삭임처럼.
풀썩-
그리고 세이는 쓰러졌다.

"꺅!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녹즙먹고 쓰러졌나봐! 다들 물러서요! 119불러!"


* * *

"으으..."





백색 공간, 병원의 한 켠에서 그녀는 서서히 눈을 덨다.


한세이.
천장을 올려다 본 그녀는 하얗기만 하고 깨끗한 그런 멀쩡한 곳을 보면서 몇번인가 생각을 하다가,

"윽..대체 뭐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윽!?"

그때 느껴진건 약간의 근육통.
하기사 몇달동안 30초라도 운동해본적은 없었는데, 한시간동안 전력질주를 해대었으니 근육통이 안느껴질리는 없었을테지.


"하아... 아, 어제..그거 진짜였나?"

그보다도 자신의 신비한 힘을 떠올려보았다.
어제의 그것이, 그 밤 공원에 자신이경험해보았던 것이, 놀라운 신체능력이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병원이라는 것은 쓰러진건 확실할진데,
어제와 같은 폭발적인 힘은 느껴지지 않아 이상하던 참.


"아야야.. 이거 왜이리 아프지.."

세이는 곧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영양보충을 위한 링겔.


떠올려보면 흐릿하게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쓰러져서, 일단 몸에 이상이 없기에 링겔한대 맞고 보내면 딘다고 하던 의사들의 대화소리? 병실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곳인것도 깨달아갔고,


서서히 그렇게..

"병원. 나 쓰러졌었지. 어제 그건.. 아직 모르겠고, 그보다 팔이 왜이리 아프지...?"


세이는 상황을 깨달았다.


"어?"


깨달아 버렸다.

"내 팔. 원래 이렇게 얇았나?"

팔이 얇아졌다.
팔을 들고 흔들면 펄럭펄럭 소리내며 흔들려야  팔뚝살이 사라져 있었다.

"어어?"


고개를 내렸다.
누워 있는 중에 내려다보면, 자신의 발끝이 보이지않아야 할 뱃살이 어느순간 없어져 있었다.

"어어어!?"


고개를 다시 들어올렸다.
거울이라곤 이 몇달간, 아니 몇년동안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와..."
"야, 니가 가봐."
"아니 안돼 인마"
"현실에서 저런사람 처음봤어."


자신의 얼굴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수근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어어어어!!!"

그녀는,
손에 넣은 것이다.

"내가..!"

당장 병실 끝자락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몸에 꼿혀 있던 주사바늘을 뽑아내고, 옷을 대충 여며 입으며 바라본 그곳에는..


"나...!"

그녀는 아름다워져 있었다.

띠링-
[이름: 한세이]
[백수]

['공격능력' F : 하찮은 공격능력]
['방어능력' D : 정신적 육체적 공격을 훌륭하게 버틸 수 있는 육체.]
['마법능력' F : 재능은 전혀 없다.]
['보조능력' F :  줄 아는거라곤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 뿐]


[보유 스킬]
-['굳건한 방패' 레벨: 1]
-['왕성 방패술' 레벨: 1]
-['방패 타격' 레벨: 1]
-['신묘한 매력' 레벨: 1]


"뭔가.. 나왔어."


눈앞에 나온건 시스템.
세이가 자신의 얼굴,
그러니까 십수년동안 어려서부터, 자라오면서 부터 꾸준히 가꾸고 관리해왔던 그녀의 그럭저럭 예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을때.

돌연 눈앞에 나타난 화면은 이해할 수 없는 것뿐이었지만,

그중 하나,
자신의 그럭저럭인 얼굴이 화사하고 아름답게 된 이유 정도는 알  있을 법한 것을 찾아내었다.


그것이 바로,


-['신묘한 매력']


악마는, 아니, 그 목소리는 세이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똑똑-
"한세이.. 한세이가 어디있지!?"

"히익?! 누, 누구세요!?"

그 후엔 한세이를 찾아온 소년이 한명 있었다.
목소리의 하수인이었을까?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 다부진 표정. 얼굴은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은 순둥거리는 인상이었지만, 질끈 인상쓰고 있는 눈썹이나, 다부지게 다물고 있는 입술. 그리고 행동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듯한, 당당하고도 시원스러운 행동.

"있으면 대답했어야지 한세이!"
"네!? 넷?! 뭐.. 저, 저요?!"

"그래! 네 퇴원 수속은 했어! 바로 옷갈아입고 나오면 된다!"
"아니...네?"


그 분위기에 휩쓸려, 정체도 상황도 다시 모르게 되어버려서는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소년을 열심히 높혀부르며..


한세이는 그를 쫒아갔다.

"아! 그리고 이걸 받아!"
"이, 이게 뭔데요?"


녹즙.

"아침 식사는 끝마쳤겠지!? 아침엔 과일도 같이 갈아넣은 녹즙이다! 사과 녹즙!"
"아..그. 네, 고, 고맙습니다."

"큭큭! 네가  더 열심히 하면 녹즙에 꿀을 타줄 의향도 있으니까 기대하는게 좋을거다. 자! 아무튼 빨리 빨리 움직여! 할 일이 아주 많으니까!"
"..."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데,  몸은 '마력' 덕분에 최적의 상태로 맞추어졌을 뿐이지 진짜 의미로 건강해졌다고 생각하진 마라."
"거, 건강.. 건강이요?  아름다워지는게 아니라?"

"잔말말고 그것부터 마셔."
"아, 네."

건강한 녹즙.

시: 마신 병원>시: 시민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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