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라나2 (7)]
세뇌한다는건 아주 섬세한 작업이다.
평범한 수준으로 타인을 세뇌할 때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시간과 노력.
이것은 당연히 먹고 들어가야 하는 전제.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 가치관 등은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통째로 바꾸어버린다는 ‘세뇌’라는 작업은 그만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들면 아주 어릴때부터 계속해서 그 사실을 주입한다던가,
세뇌하고자 하는 것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보여주거나,
또는 그것만을 볼 수 있게끔 착각하게 만들거나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있으니, 그 모든 것들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만애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키는데 성공했다.
능력은 [인식저해]
상대의 인식을 흐려놓거나 뒤섞어 놓아 잠시동안 의식이나 인식을 앗아가 버리는 능력. 그 시간동안에는 무슨 짓을 해도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수긍하게 되는 상태. 이른바 잠시간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 수준의 힘.
그리고 또 하나의 능력[파고드는 목소리]는 그런 상태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상, 가치관. 그리고 사랑 등을 주입해놓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용이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한명 두명을 세뇌해 나갔다.
옆집 학생. 옆집 유부녀, 남편, 애완동물, 애완 파충류와 애완 새. 같은 방법으로 손쉽게 세뇌해 왔다.
그렇게 몇 가구인가 지배해 나가면서 잘먹고 잘살게 된 이후에는 조금 돈 있는 집으로 손을 뻗었고, 조금씩 더 높은 경지. 더 대단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세력을 확장해 왔다.
···
하지만 아쉽게도 그 능력에는 지속시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능력을 사용해 세뇌를 용이하게 했을 뿐이지 세뇌 자체의 능력을 가진게 아니었기에 서서히 걸어두었던 세뇌가 풀리거나 제정신을 차리거나 철이 들려고 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때 일만애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약을 접했다.
중독성과 의존성이 강한 녀석으로 한둘에게 시험을 해보았고, 그 효과가 검증된 것을 알게되고 나면 일만애는 그런 마약을 구하기 쉬운 자를 찾아가 그에게 세뇌를 사용했다.
그건 정말 힘든 여정이었지.
몇 개월동안 이어졌던 정치와 싸움, 사악한 음모와 보이지 않는곳에서의 암투 등. 아주 격렬한 싸움이었다.
마약상의 우두머리에게 닿았을 무렵에는 일만애의 세력은 거대한 범죄조직보다도 커질 수있게 되었으며, 마약을 위해 고정적인 수입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단걸 알았고,
그 후에는 정치권 세력과 손을 잡거나,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거나 하는 등.
‘마약’, ‘의식을 몽롱하게 만드는 향수’, ‘교육 커리큘럼’, ‘거대한 본진’, ‘말’, ‘행동’
그 모든 것에 하나하나 정성과 의지를 쏟아내고 신중하고 확실하게 종교를 이끌었다.
대 종교 만애교의 탄생이라, 그의 부흥이니.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었을 때엔 그 세계기관의 한국지부 지부장 조차 굳이 찾아와 반짝이는 보석까지 선물로 주었으니,
그야말로 만애교의 시대가 열리고야 말았다.
일만애가 일군 십수년간의 피땀 흘린 노력.
눈물. 열정등의 모든 것들을 부딪혀온 결과가··· 바로 이곳! 만애교에 있다.
-“진짜 세뇌가 뭔지 보여주지.”
“뭐···?”
그런 만애교.
한방에,
정확히말하면 20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만에,
20년세월의 모든 노력이···
[“자! 모두 저희의 새로운 신을 맞이합시다!”]
잡아먹혔다.
* * * *
완벽한 통솔.
능력자라면 조금 아쉬운 부분이지만,
“자! 모두! 대답.”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아아아ㅏ!!!!!”
이곳에 있는 일반인은 전원.
“마왕님의 것이 되어버렸네요~”
마왕의 것이 되어버렸다.
라나는 키득 웃음을 지어보이며 일만애의 위에 서 있었다.
“엄청 노력하셨네요. 이 커다란 예배당. 당신이 노력해온 사회적인 지위. 사람들에 대한 신뢰. 마약이나 그런거 열심히 구하신거 같은데···”
“너, 넌··· 대체 왜··· 나, 나한테 왜이래···”
“이제 전부 할 필요 없으세요! 축하드려요!”
“머?”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되묻는것도 황당하여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단상으로 달려오던 모든 신도들이 귀신같이 제 자리에 멈추어 버리고, 딱딱하고 아무런 반응도 없는 인형처럼 되어, 라나가 시키는대로 우두커니 서 있다. 한마디 하지 않고, 숨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하게 말이다.
“하아···하아···!”
저것이 바로 세뇌.
사람을 조종한다는 것.
인형으로 만들어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다는 행위.
복종하게 만들고 지배한다는 것.
“아···아아!”
일만애 해왔던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노숙자에서 출발하여 위대한 종교의 위대한 교주가 되었다는 것은 그저 허상일 뿐이었다.
전부 빼앗겼다.
자신이 빼앗아 오던 것과 같이 완벽하게 빼앗겼다.
···.
“아씨,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좀 비켜요 이 인간들아!”
“휴우··· 아, 미, 미리네 언니 이쪽이에요.”
일만애.
망연자실하여 멍하니 라나 앞에 무릎꿇고 있던 중.
인형이 되어버린 신도들을 헤집으며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하얀 머리칼을 하고 있는 어린소녀와,
풍성한 검은 머리칼이 얽히기라도 한 듯 끙끙 대면서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고 있는 또다른 소녀.
입으로는 연신 욕설을 내뱉고 있었지만, 라나를 보는 순간엔 조금 미소를 지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면···
‘저, 저 녀석들은 또 뭐야. 내편인가? 아니면 이 여자의 동료인가? 아님 내가 뭘 건드린거지? 이녀석들 대체···’
라나의 동료다.
그녀들이 한걸음씩 나아와 일만애의 근처에 도착했다.
* * * *
<마왕님 사랑 헤으응앗 실천교: 예배당>
찬란하고 드높다.
거대한 조각상은 미리네의 화살에 박살이 났고, 거기에 들어있던 보석들은 깨어져 있었다.
그 보석의 파편을 발로 밟아 확인하면,
"그래. 이거구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
이 장소.
나는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깨달았다.
마법으로 숨겨져 있었고, 보석으로 보호되고 있었던 장소.
'라나와 연락이 닿지 않았을땐 얼마나 놀랐는지'
라나와 연락이 닿지 않게 되기도 했었다.
미리네와 함께 외부세계로 나가기 위한 수속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관리가 소홀해졌을 때.
그 때 일어난 일이다.
라나의 납치사건.
'납치 사건의 골든타임은 48시간, 그 안에 찾지 못하면 인질이 죽었다는 생각까지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
아무리 라나가 조금 특이하고 독특하더라도, 결국은 소녀일 뿐이었으니, 납치되어 얼마나 힘들어 하겠는가! 라는 생각하나로
라나와의 통신이 사라진 마지막 지점을 확인하고, 적의 존재를 파악했으며, 적은 규모와 가지고 있는 힘을 확인했다.
...
'시스템을 방해할 수 있는 정도의 도구가 있다고? 이 인간들에게?'
인간이 시스템을 방해할 수 있는 수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조각상 위에 꼿혀 있었다는 것도 알아내었고, 그 후에는..
'파편이 있다.'
내 파편과 관련된 곳이라는 걸.
'인간, 그것도 아주 오래된 파편이야. 시스템으로 하는 통신을 차단할 수 있는 힘과 마력을 제한하는 결계까지 펴져 있다니?'
여러모로 수상쩍은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 한것은 직관적이고 즉각적이었던 것으로,
"미리네, 잠입하자마자 무슨 수를 써서든 엄청 큰 조각상의 머리를 쏴 맞춰."
미리네는 나의 말과 같이 즉시 조각상의 머리를 맞추었고,
하얀은 어리다는 이유로 쉽게 잠입해서 사람들을 보호했다.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이야기고,
그만한 장소.
그곳에서,
한다는 짓이 조잡하고도 복잡한 세뇌작업이라니,
수천명이라는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 했고, 거기서 부터 온갖 것들을 착취해내어 자신의 배를 불리려고 했던 목적이라니.
조금 귀찮아질것 같았고 화났으며,
'내 파편으로 겨우 이런 짓이나 한단 말이야?'
혼내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말했다.
"자!"
지금.
그 이 교주녀석이 일구어 놓은 모든 것들을 간단하게 집어삼켜주는 모습을 보여준 후에,
비참하고 무력하게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하고 있는 그 교주의 앞에서!
"네가 열심히 가꾸고 키워온 이 대성당. 내가 아주 잘~ 써줄께."
"아... 뭐, 뭐?"
"날 위해 이런 좋은 장소 만들어줘서 고맙다."
"아..아악! 아아악!!"
그의 패배를 알렸다.
띠링-
[파편을 흡수했습니다.]
띠링-
['인식저해']
['새기는 목소리']
['지배하는 매력']
['누르는 눈빛']
파편을 얻었다.
* * * *
...
인간에게 깃든 파편을 회수하는 것엔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죽인다.'
둘째
'능력을 포기할 의사가 있고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인정할 경우.'
뭐, 대부분은 능력이고 뭐고 줄테니까 제발 가져가줘! 라는 소리를 지르는 단계에서 손발톱을 생으로 뽑는 정도의 고문이면 충분히 파편을 흡수할 수 있는 정도의 패배감을 안겨줄 수 있다.
부작용으로는 복수심을 키울 수 있어 그냥 죽이는것이 편한 경우가 생기겠지만 뭐,.
이번에는 아무래도 운이 좋았던 모양이지.
간단하게 돌려받을 수 있었던 나의 힘이다.
"너, 너희가 대체 뭔데... 왜 나한테 전부 빼앗아가는 거야.."
"뭘 착각하는거 같은데... 빼앗아간건 너희고, 난 내걸 돌려받는거거든."
'돌려받았'다. 확실히 하자.
어디까지나 이 녀석은 자신이 일구어 놓았던 대성당을 빼앗겻다고 생각할테지만, 이런 녀석의 생각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자! 라나!"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다.
라나의 납치.
라나의 부모님.
우리들의 잠입.
이상한 상황의 확인.
수천의 신도들과
이곳에서 일어난 수없이 많은 일의 정리.
옛날 생각이 날법도 한다.
한걸음 한걸음 무너진 교단위로 올라서며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이곳에 어떻게 왔는가.
미리네와 하얀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무슨 싸움을 했는가등등에 대해서는 적당히 넘겨두고,
수천의 신도들이 인형처럼 서 있는 이 곳의 앞.
무너진 조각상의 잔해로 더럽혀져 있는 이곳의 왕좌와 같은 곳을 찾아 그 앞에 바로섰다.
커다란 마이크는 목소리를 증폭시켜주는 마석을 탑재해 놓았으니, 거 참 세심하기도 하지.
옛날 생각이 날 법도 했다.
"전원."
나의 목소리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군중이 내 목소리를 새겨듣는다.
나의 모든 이야기들이 저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라나에게 준 나의 스킬 몇가지가 그렇게 만들고 있겠지.
이야기 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발닦고 잘 자도록."
"..."
"평범한 생활리듬을 유지하고 가급적 문제없이 원만한 사회생활을 보내도록 해라! 저금을 생활화하고 자신을 소중히 하는 생활습관을 가질 수록 좋아!"
"...?"
"그로써 너희는 진정한 이몸의 하수인! 신도들이자 병사들로써 움직일 수 있게 되리라! 이 '마왕교'의 힘이 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숨죽이고 있도록 해라! 마치 종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것처럼 행동해! 마음속으로만 종교를 믿고 결코 바깥으로 표출하지 말고 티내지 말고 있는거지! 마치 이 종교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말이야!"
그로써 이들은 진정한 나의 병사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큭큭큭, 겉으로 보았을때는 평범하고 건실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사실은 마왕교의 일원이라는 엄청난 비밀을 가지게 되는거야."
<마왕교: 부서진 예배당>
이렇게 갑작스럽게 병사들을 늘릴 생각은 없었지만, 뭐 어때.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숨죽이고 나의 명령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건실한 생활로 차오르게 될 신체능력은 어떤 유사시에도 나의 도움이 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 누구도 이 종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왜냐! 모두 숨어있을테니까!
'완벽하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확실히 힘을 키워나가는 위대한 종교라니, 얼마나 대단해. 물론 그 노출도를 낮추기 위해서 어떤 종교적 규율도 없어야 하겠지.
천천히 하자.
우연이라곤 하나, 이곳에 그 마도기계들이 있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유는 사실 알고 있지.
'컨피던스. 다음엔 또 무슨 짓을 할테냐, 네 녀석이 뭘 하든 다 빼앗아주지'
컨피던스가 내 주변, 은근슬적, 자신은 나타나지도 않고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으니, 뭘 하건 간에 모조리 다 내 손으로 돌려받고 빼앗아 주리라 다짐하던 순간이다.
"자 그럼 여러분!"
그 후에는 라나가 말했다.
"마왕님이 말씀하신거 잘 들었죠? 모두 '마왕님 사랑 헤으응앗 실천교'를 위해 각자 집에서 잘 먹고 잘 지내시며 언제올지 모르는 명령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마왕님 사랑 헤으응앗 실천교: 부서진 예배당>
"아냐 라나 여기 그냥 마왕교로 하자"
<마왕교: 부서진 예배당>
라나의 말과 함께 일제히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미리네는 아무말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라나에게 있어서는 조금 긴 하루 이상이었겠지만,
미리네에게는 겨우 몇시간 만에 일어나고 있는 이 일이. 상황이 얼핏 이해되진 않았겠지.
"그래서, 이름이 뭔데? 사랑 실천교 뭐시기야? 마왕교야? 하나로 해주면 안돼?"
하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직후엔,
"당연히 마왕님의 위대한 첫걸음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사랑 실천...어..."
라나는 한순간 휘청거리며,
"응앗... 실천...교인데.."
풀썩-
쓰러져 버렸다.
"... 마력 많이 썼잖아. 한참전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왜 지금까지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
그만큼 마력을 많이 써버리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