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라나2 (5)] (58/112)



〈 58화 〉[라나2 (5)]

"으...으으! 으아아악!!"
"괜찮으십니까 교주님!?"

"괘, 괜찮...괜찮다. 물러가라."
"네..."

<교주의 방>

시간은 이른 아침 예배를 끝내고 난 이후의 오후.
태양이 하늘에 딱 걸쳐져 있을때 쯤이었으나, 교주 일만애는 악몽을 꾸었다.


한낮에 백일몽이라도 꾼 것일까, 마치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 그 여자가 수많은 신도들의 시체를 발로 밟고, 자신의 위대한 성전을 부수고 불태운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섬뜩하고 섬짓한 그녀의 모습,


이날 아침. 교주 일만애는 그런 그녀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하곤 결국 그녀를 성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후우... 미치겠군."

좋은 선택은 아니다.
마치 귀신. 혹은 악귀.
신화나 자신의 종교에서 말하는 사탄 마귀가 있다면 바로 그러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었겠지.

이 믿음과 사랑으로 일만애가 공들여 완성시켜온 위대한 종교에 끼어든 사탄마귀...

조치해야 했다.
성녀로 만들어버린 이상에야 그녀를 더더욱 확실한 방법으로 세뇌하는 일이나 아니면 더 확실한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때는 정말 경황도 없었고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지만..


'대체 뭐하는 여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잠입한걸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십수년간 만들어온 내 종교는 폼이 아니란 말이다!'


일만애는 오히려 자신감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기묘한 존재가 자신에게 A시를 장악하라고 했던 이유도 알것같기 시작한다.


'그래 이건 시련이로군'

이건 말하자면 시련.
일만애에게 주어지는 시련.


한낱 노숙자에 불과했던 자신이 별 볼일 없는 능력을 지니게 되고, 그 능력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여 이 곳 이 자리까지 올라온 자신에게 향하는 최후의 시련!

'모든 능력, 모든 수단. 모든 것들을 사용해 널 막아주마!'


일만애는 그렇게 결의를 다지며 몸을 일으켰다.

"그 여자의 부모는 어디에 있나!"

이 세상 어떤 누구도! 부모님을 저버리진 못하리라.
그것이 일만애가 선택한 방법!


...

라나가 만애교에 들어온지 17시간 가량 지나가고 있을 무렵의 일이다.

* * *  *

<만애교: 준비실>

"라나야! 라나야아아아!!"
"라나야!  아빠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성녀님이 되었다며!?"


"드디어 상환! 상환 받는구나!"
"상환의 때가 온거야! 아니, 드디어 네가  컸어!"

갖가지 준비를 하는 만애교의 준비실.


거대한 공간에 라나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지만, 그런 라나를 돕기 위해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수십명에 달한다.


하나 둘 라나를 치장하기 위한 무언가를 가져오면, 라나의 부모님들은 그 옆에서 한도끝도 없이 라나를 칭찬하며, 또 만애교와 그 교주를 칭찬하는데 여념이 없엇다.

처음에는 상환이라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관리인이 한명 나타나 자그마한 병을 눈앞에서 흔들어 보여주니,

"야, 약..!"
"드디어 약..바, 받을  있겠어.."

"서, 성수에요 여보 성수."
"라나야 그거아니? 성수를 받아들이면 정말 기분이 좋단다. 분명 교주님에게도... 하아..하아..."


금방 돌변하여 교주의 찬양을 이어간다.
라나는 흥미롭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피어오르는 향기. 수상쩍은 소리들,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적당히 받아 넘기고, 정신을 차리기 위한 자기방어 행위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얌전했다.

화장. 머리손질. 몸에서 피어오를 향기나, 오늘 밤에  물의 온도에서 부터 수질까지 전부 체크하고 있으며, 입을 옷의 원단이나 디자인까지, 자수 한땀한땀조차도 확인하며 라나에게 하나둘씩 오고 있었다.

그런 중에서,


"... 재미없네요."


라나는 벌떡일어났다.

라나가 그것들에 흥미를 느낀 순간은 약 15초,
자신의 부모님들이 개처럼 핵핵대며 약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도.


"분명 다른 플랜도 없겠죠. 솔직히 실망이야."

수 초간 지켜보다가 일어서버린 라나. 흥미없다는 듯이 거침없이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하기도 했으나,

그녀를 수행하려던 수많은 이들은 그런 라나에게 손끝하나 대지 못하고 그저 손만 뻗고 있을 뿐이었다.

이유를 말하자면 분위기였다.
굳이 더 말하려고 한다면 진짜로 내뿜고 있는 '마력'과 비슷한 무언가이기도 했겠지.


그것을 느끼기라도 하는 순간엔 모두가 칼날같은 살의에 휩쌓여 버리곤 했으니, 감히 누가 접근할 생각일랑할 수 있을까.


그래,
설령 같은 '능력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라나를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이렇게.

라나의 앞을 한 여자가 가로막았다.

"어디가십니까. 예비성녀님. 아직 의식이 끝나지 않았는데요."

날카로운 눈매. 차갑고 도도하여 그 어떤 것에도 유혹당하지 않을것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여성. 머리칼은 쭉 뻗어 허리까지 닿는 기다란 머리칼이었고, 구부러짐이나 흐트러짐은 조금도 없이 단정해 보였다.


다부진 눈빛과 다물고 있는 입술에서는 결의가, 그녀의  끝에는 '공식 능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마도장비]의  종류가 들려있었다.

마물.
 위험천만한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마물의 시체와 마석따위를 조합하고, 혹은 생산형 능력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한껏 사용해 겨우 만들어내는 [마도장비]


마물이 들고 있던 것을 인간이 쓰기 좋게끔 가공한 것을 [마물장비]라 하고, 용이라는 특별한 마물의 조각으로 만든 것은 [용 장비] 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인류의 과학이나 능력자의 힘을 빌려 창조, 만들어내는 장비를 통칭 [마도장비]라 말한다.


마도장비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고 사용하는 능력자들 역시 다양한 마도장비를 들고 다니기도 하지만,

'이 마도장비'를 들고 있는 능력자의 경우에는... 보통 그 능력이 하나로 한정되는 편이다.

"검."


본래라면 역사책이나 기념품 장식용으로만 썼어야 할 차가운 병기.
검따위의 마도장비를 들고 있는 능력자라면,  능력은 하나 뿐이지.

라나와 미리네역시도 그 능력자라 판단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능력자라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거겠지만,

"능력자시군요?"
"네,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자 입니다. 아셨으면 얌전히 돌아가시죠 성녀님. 의식이 아직 진행중입니다."

"능력자도 세뇌해버리는 대단한 종교네요. 웃겨라."
"... 그 이상 만애교주님을 모욕한다면 참지 않겠습니다."

능력자가 라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도장비중 하나인 검을 한 손에 쥐고, 매섭게 라나를 노려보면서 말이다.


이 만애교.
능력자 신도 또한 당연히 존재한다.

그녀도 그중 하나다.
일만애가  주동안 공들이고 사전작업을 해서 겨우 손에 넣은 능력자중 한명.

"구천애. 입니다."

이름은 구천애.
아니. 이름 같은게 있을리가 없지.


자신의 존재도 모두 일만애에게 바치고 새로운 이름을 하사받는 존재로써,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표현한다는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어질때까지 일만애에게 만애교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바쳤다는 뜻이다.


"아, 저는 그냥 이 중요한 곳에  방해하는 중요한게 있는것 같아서 찾아볼 생각인데요."
"필요한게 있으시다면 제가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아뇨, 그게 뭔지 몰라도 부숴버릴 생각이라."
"...그게 뭔지 여쭤도 될까요?"

"제 사랑을 방해하는건데요."
"사랑? 죄송하지만..."

짧은 대화는 서로가 서로를 알기 충분하게 만든다.
라나는 상대가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따위는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테고, 천애는 라나가 어떻게든 이곳을 나가려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뭐.


이번에 그녀들이 이곳에  이유를 말해보자.

누가 불렀는가.
만애교주.

누가 시켰는가.
만애교주.


누구의 말을 최우선으로 따라야 하는가?
그야 당연히 위대하고 사랑스러우신 만애교주님을 위해 왔으니,

가장 중요한 임무요 가장 선결되어야 하는 일이니.
한명만 왔을리가 없지.


지금 교단의 능력자들은 모두 라나에게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듯이..


"라나님. 여길 보세요."

또다른 능력자,  다른 '구천애'는 라나의 부모님을 붙잡는다.
또 다른 한명은 천장에서 나타났고, 또 다른 능력자는 라나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네명이라는 능력자들이, 마치 라나라는 존재를 잡기 위해 모여든 듯. 엄중한 감시를 시작한 것.

당연 빠져나가려는 라나를 막을 수 있었으리라.


충분히.
그렇게  수 있다.


"..."

 후 이어진건 침묵이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을 인질로 잡았는데 움직이는 녀석이 있을리가...'

부모를 인질로 잡고 있는데,
대놓고 두 사람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라나가 도망치면 죽이겠다는 협박따위를 하고 있었는데...


누가 움직이겠어?
무슨 생각을 하겠어?

'교주님의 책략은 완벽하시다. 넌 이곳에서의식을 끝마치고 다음 세뇌를 받게 될거야'


일천애는 그렇게 생각했다.
굳은 라나가 그 증거다.

멈춘 그녀가 바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했다는 증거다.


"자! 그럼 다시 앉으시죠! 의식을 계속 이어하겠습니다."

"절 세뇌할 의식이요?"


"아뇨, 만애교주님의 신실한 성녀가 되기 위한 의식이죠. 당신은 사명감을 가지게 되실겁니다. 이곳을 위해 일하시게 될거에요. 교주님의 의지에 따르시게 될겁니다."


"교단을 위한? 절 인형으로 만드시려구요?"


"인형이 아닙니다.  당신의 의지로 교단을 위하실겁니다. 자. 여기 전혀 수상하지 않지만 여러 전선과 반짝이는 전구 그리고 전기 의자 같은 의자위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쓰면 잠깐 의식이 혼란스러워 지겠지만, 귀와 눈에 보이는 영상에 집중해주시면 금방 끝나요."

"큭...큭큭.."


그러나.
웃는다.

키득거리면서, 못참겠다는 듯이.
느껴지는건 오한. 섬뜩함?

왜 웃는지,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니, 그저 갑자기 뜬금없는 부분에서 크게 웃어버리는 광인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라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슨!?"

말했지만 일천애. 그녀들은 만애교주에게 선택받은 '신체강화계' 능력자들. 그녀들의 시야를 회피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 몇이나된다고.

"그녀도 신체 강화계 능력자다! 조심해!"

능력자.
 예상하는건 어렵지 않았지.


"상처를 많이 입었으니까 그걸..."


오전 예배에서 세뇌에 당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신체를 쥐어 파내었으니, 부상된 상태. 원하는만큼 움직일 수 없으리라 판단한 일천애.


'상처가 없어? 벌써 나았다고?'


움직였다.


어디로 향할지도 예상하고 있다.
계속 배교자들의 감옥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그곳이다.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지하로...!'

지하 그 숙소의 기숙한 곳으로,,!


일천애중 둘이 재빠르게 그 곳으로 향했다.
나가서 곧장 숙소로 향하는 길에 발을 딛는 순간.


"지하 안갈건데"
"어?"


슈욱-
그녀들을 스쳐지나가는 라나.

라나는 예배당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뭐...어딜...!?"

무슨 짓을 할지 예상할  없게 되어버렸다.
라나는 광인.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상처입히는 미쳐있는 사람.


그런 그녀는 이제 뭘 하게 될것인가?


예배회장으로 달려갈까?
달려가면 무슨 짓을 할까?

부모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라나가 달려나가는 순간 그 두사람의 다리에 칼을 박아넣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나쳐 가버렸다.

 부모의 비명소리가 '상환!'하고 우는 소리가 들림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예배회장.

시간은 오후.
오후예배가 시작될 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성녀를 기다리고 있을곳... 그곳에 그녀는 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할까?


'세뇌에 대한 고발? 부조리를 말하려고? 그런게 돼? 아니 아니야 그런건...'

학살.
학살?


모조리 죽여버릴지도 몰라.
그녀에게 어떤 무기도 장비도 없었지만, 신체강화계 능력자는 그 파괴적인 완력이 있다.


주먹으로 수백명 죽이는 것 정도야 시간문제일 뿐.


아니 애초에 그녀가 정말 예배회장으로 가서 학살을 저지르느냐 아니냐를 생각해야 했지만, 상상속에서 라나가 그 이외의 짓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보다 무섭다.

"뭘..."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일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면 바로 라나를 떠올릴것 같게 되었다. 눈을 질끈 감으면 차가운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는것 같게 되어버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대체 무슨 일인지. 왜 이런생각이 떠오르고 있는지는 제쳐두고.

"대체 어딜 가시는 겁니까!!!"

드디어 일천애는 소리를 질러 라나에게 물었다.
라나는 대답해줄 것이다.


한걸음 도약하는 순간, 능력자들이 라나의 뒤를 따라오는 순간. 그 순간순간 마다 예배당에 가까워지는데, 라나는 그 앞에 멈추어  것이다.

문을 열게 되면 능력자들은 신도들의 시선을 신경쓰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라나의 턴이 계속 되겠지.


'안돼...! 그건 안돼! 만애님...! 제가 뭘 어떻게 하면...!'


절대 있어선 안되는 최악의 상황.
일만애가 일천애를 믿고 맡겨준지 겨우 한시간도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녀들은 선택해야 했다.


'나는... 우, 우리는...!'


-"일천애!!"


 순간.
 찰나.
선택해야  그 순간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일만애님?!"

그녀들의 신. 교주님.
영원히 따라야  존재이자 삶의 모든 것인 그였으니..


-"해라."


그는 지금 예배당에 있다.
라나가 서서 웃음짓고 있고, 서서히 문을 열고 있는 예배당에 말이다.


그곳에서   바깥에 있는 네명의 일천애 들에게 이야기했다. '해라' 라고,
대체  하라는지. 그녀들은 이해했으리라,


숨을 들이키고, 침을 넘겨삼켜, 정말 뭘 해야 하는지 각오를 붙이기 시작했다.

'교단을 유지해야 해.'
'저 여자 뜻대로 흘러가게  순 없어'
'저 여자가 예배당에 들어가서 교주님의 옆에서면 돌이킬 수 없게 될거야'


교단의 근간.
오랜 시간을 들이는 여러 작업들을 한방에 뒤짚어 엎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


'죽인다.'


그러니 일천애들은 생각했다.
죽여야 한다.


라나를 이곳에서,
죽일  밖에 없다.

...


그래,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죽인다.


예배당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찬송가를 부르며 만애교주를 찬양하고 있는 수천의 신도가 가득 들이차 있는 커다란 장소의 문이.


문이 열리는 순간 신도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라나는 그 때부터 걸어갔다.
가벼운 옷차림, 하다가 말았던 화장이나 머리손질.

전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라나는 한 곳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목적이냐! 네년은!!'


일만애를 보고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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