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하얀(3)] (51/112)



〈 51화 〉[하얀(3)]

춥다.

"난 마법 안썼는데"

미리네는 뚱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으나,
그곳이 추운것에는 변함이 없다.




던전의 2층 끝자락이 되는 부분.
포인트 획득을 위해 모처럼 만에 모여든것은 라나와 미리네, 그리고 하얀이었지만,


말했듯이.


춥다.

"라나, 그..어... 음."

미리네는 몇번인가 말을 더듬고 시선을 다른쪽으로 돌렸다가 다시금 라나를 보며 입을 열었지만, 라나의 눈빛에 입을 다물기를 여러번.

 후에는 뭔가 각오라도 한 듯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있니?"


일단은 모른척이다.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모른척 하는 것이 조금더 나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상냥한 언니처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해한 사람이라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면,

"아뇨. 냄새가 좀."

"냄새? 무슨 냄새?"

"도둑고양이의 냄새..."


섬뜩한 분위기.
때문에 춥다.


차갑고 추운 그런 공기가 안그래도 서늘한 던전에  매워지고 있으니, 미리네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니, 아얘 치켜들어 소리쳤다.


"야...야! 뭐... 뭐...! 이제 우리 추, 출발한다!?"

-"어, 그래 좋아. 목숨을 최우선으로 하고 가능하면 다치지 않으면서 사냥하도록! 오늘은 조금 오래 할테니까 각자 집에는 연락을 취해놓도록 해랏!"


"..."
"네! 마왕님!"

그래도 다행스럽게, 하늘에서 들리던 그 목소리 덕분에 미리네는 위기에서 벗어났고, 라나는 영 개운치 않은 듯한 마음을 품은채 던전을 해쳐나가기 시작했다.


...


아마 라나는 속에서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몸을 떨면서...


'아냐, 미리네 언니는 아니야 안돼... 미리네 언니니까 그 분의 하수인이니까... 참아!'

뭘 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  *





아무튼 던전의 2층이다.
하늘탑이라 불리우는 거대한 대미궁의 2층. 마물들이 나오고 목숨을 위협하는 그곳에서,


영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세명이 던전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2층의 막바지.


마물들의 무리는 더더욱 거세졌다.
공격성과 흉포성.
같은 종류의 마물들이라 하더라도 호전성이 증가한것 만으로도  체감되는 힘은  이상.

더욱 거세고 더욱 날카롭게 달려드는 마물들은 자신의 목숨을 무리를 위해 내던지고도 남을 만한 녀석들이었기에..

"크에에엑!"
"아 씨발 깜짝이야!"


파앙-!

...


뭐, 그런 이들이라 하더라도 압도적이게  실력차이에는 변함이 없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기 시작한 미리네는 반사적으로 활을 들어올렸고, 그건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한 빠른 속도로 화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눈깜빡이는 순간 쏘아지는 화살은 단지 소리를 질러 달려드는 괴물의 머리를 정확히 파고들어갔고, 후에는 작은 폭발과 함께 마물의 머리는 물론  몸뚱이까지 미리네의 뒤로 멀리 날아가 처박혀 버렸다.

"휴."


미리네를 비롯한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매복'이라도 하고 있었던듯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마물들에게 습격당했더라도, 당황은 했지만 정확하고 확실한 대처를 통해 자신에게 달려든 마물을 쓰러트렸다.

능력의 증가.
라기보다는 경험 자체의 상승.

싸우고 싸워왔던 그녀들은 더이상 미숙했던 첫 싸움때와 같지 않았으며, 어떤 상황이나 전투속에서도 대응할  있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게 된 것이다.

거기에 능력이 더해진것은 겸할 뿐.

"이거 되겠는데.."

미리네는 그렇게 자신의 손을 한번 내려다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이 정도라면 무슨 적이 나타나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것 같아.
 키 작고 난폭한 녀석들이 상대라면 몇십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와도 침착하게 대처할  있을것 같다고 말이다.

...



라고 생각했던때가 미리네에게도 있었다.


"시- 발"

미리네는 경쾌하게 욕을 내뱉었다.
던전의 깊이는 3층.

분명 위로 올라가고 있는 미리네와  일행.
3층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커다란 호수의 모습이었고, 음산한 비명소리였다.

그리고 한걸음 내딛었을 때.

눈앞에  것은

"쉬이이익-"


뱀.
사람을 한입에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뱀.


[괴수형 마물: 거대 날뱀]

미리네가 눈쌀을 찌푸리고 있는 동안, 그 뱀의 소름끼치는 눈동자는 정확히 그녀 셋을 향하고 있었고, 그 후에 하는 행동은 그 고개를 치켜 들어, 괴성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이건 좀 아니지 시발 진짜."

괴성. 뱀이 괴성을 지른다.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 그런 괴성 말이다.

입을 쩌억 벌리고는 그 커다란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마치 동료라도 부르는 듯이.

미리네가 얼굴을 찌푸릴만 했고, 하얀과 라나는 즉시 전투할 준비를 했다.

미리네는 한두걸음 뒤로 물러섰는데,
여기서 빛을 발휘한 것은 하얀이다.


뱀의 동료들이 찾아왔다.


땅을 기어 은밀하고 조용하게 오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하늘을 날아 그 꼬리를 거세게 휘두리는 녀석도 있었다.

어째서 뱀이 날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은 적당히 넘기기로 하고,
그렇게 찾아온 뱀이 다섯여마리는 되었을텐데도 불구하고, 그 입에서는 보라색 액체를 뚝뚝 흘려 '이건 독이야, 중독되면 큰일나!' 라고 말하고 있는듯 한데도 불구하고,


라나가 달려나갔다.

'커다란... 벨 곳이 많은 동물!'

싸움에 굶주려 있었던 것인지,


'내가 공을 세울거야!'

질투심이냐 욕심이 있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라나가 전속력으로 달려나가 검을 휘두르고, 뱀들이 라나의 갑작스러운 돌격에 뱀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이리저리 당황하고 있을때면


하얀은 그 모습을 지켜본 것이다.

이전날에도 몇번이나 보았던 라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광전사나 다름 없었다.
상처가 나는 것도 아랑곳 않고 오직 적을 부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늘로 도약해 적을 내려치는 것도, 반으로 갈라버리거나 완전히 무력화 시키는 것도, 마물에게는 자비 없이 검을 휘두르는것까지 모든 것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하얀은 그런것이 필요하다고 여겼겠지.

움직임을 잘 보고, 그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좀 있었다.
복수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원래부터 있었으니..


"난 할 수 있다..."


하얀은  마법의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희망의 곤봉."


무기를 바꾼다.

마법봉이 아니라, 적을 확실하게 부술 수 있을 수 있는 두껍고 무게있는 무기, 그 끝에 철심을 다닥다닥 박아 확실한 살상력을 지니게끔.


"희망의 철심."

그 후엔,

'이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야 해, 복수를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달려나가며 마법을 사용했다.

이미 라나는 거대한 뱀들 틈으로 한참전에 달려들어 죽고죽이는 사투를 시작했고, 라나의 몸에는 독이 스며들기 시작했지만, 마왕이 무언가 하기도 전에,

"정화!"


눈부신 하얀 빛을 내기 시작하는 하얀.

터지는듯한 섬광은 뱀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지만, 라나와 미리네에게는 더욱이 선명하게 적을 볼 수 있도록 도왔으며, 그 후에는 라나의 몸에 스미고 있던 독들을 정화해내고 있었다.


'배운게 효과가 있어!'


촉수도 할 수 있는 마법이론으로 이미 배워두었던 치유와 정화 마법의 기초를 사용했을 뿐. 기적의 마법이자 희망의 마법은 감정만 매개로 한다면 어떤 마법이든 할 수 있으니,


이제 하얀은 그야말로 진짜 '마법사'가  것이리라,
그건 싸우고 있는 라나에게도, 멀리서 활로 하여금 지원을 시작한 미리네에게도 확실하게 전달되었고...

'쓸만한 꼬마네. 꽤 오래 카론님에게 보탬이 되겠어.'

'휴, 죽을 걱정 안해도 되겠다. 얘네는 마석 많이 떨구겠지?'

각자 개인적인 생각을 한 켠에 품으며 싸움을 이어나갔다.


"쉬이이익-!"


거대한 뱀들이 하나 둘 바닥에 쓰러진 것은 그로부터 10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띠링-
['38pt'를 획득했습니다.]
['마석(최하급)'을 획득했습니다.]
['뱀의 가죽'을 획득했습니다.]


띠링-
['41pt'를 획득했습니다.]
['마석(최하급)을 획득했습니다.]
['뱀의 이빨'을 획득했습니다.]

띠링-
['34pt'를...]


* * *

"아이고 허리야..."

언제나  안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미리네다.


'숨막혀 죽겠네'


하고싶어서 한건 아니고, 미리네가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숨막혀서 죽어버릴것 같았기에 일부러 계속 혼잣말이나 이야깃거리를 꺼내는 것이다.


"..."
"..."

라나야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하얀은 도통 말을 잘 하지 않는편이었으니, 셋이 같이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하겠는가?

무언가 불온한 공기라도 흐르는듯 했고,
이젠 춥지 않은데도 식은땀이라도 날것 같았으니까 미리네는 굳이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바닥에 떨어진 마석을 줍거나, 뱀의 시체를 치우거나 하면서 말이다.


"...아, 저기..."


미리네 나름의 노력이다.

"하얀이는 뭘 좋아해? 아참, 그,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시간  지나긴 했는데... 어, 내 이름 미리네인거 알거고... 어라 이 말도 했나?"

"네, 하셨어요. 좋아하는건 없어요."


"으, 응 그렇구나.. 그럼, 그... 라나는? 라나는  좋아하는거 없어? 게임이라던가"


"아뇨 없어요. 미리네 언니야 말로 게임을 많이 좋아하시죠?"
"응! 게임! 조, 좋아하지! 요즘은 '대마잎스토리'랑 '히어로오브지진'같은거 하고 있거든.. '감전노기'라는 게임도 하는데..."


"..."
"..."


라나 역시 조금은 미리네의 말에 맞춰주곤 했지만,


'아, 이건 안되겠다.'


도중에 미리네가 불편한 분위기를 감지하곤 자신의 입을 꾹 닫아버리니,
그럼에도 그 다음을 묻지 않는 라나와 하얀 덕분에 아무도 미리네의 이야기를 관심있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 참다못한 미리네는 소리없이 자신의 가슴을 꽝꽝치다가

"죽을것 같아...야!  죽을것같다고! 어떻게좀 못해!?"

-"괜찮아! 넌 안전해!"
"아니 시발 그런게 아니라!"


마지막, 조금이라도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정수에게 기대어버리니...


-"아냐 아냐,  봐봐 안전하잖아."
"뭐?"


미리네가 소근소근 정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을 라나가 아는 순간.
미리네에게 바짝 다가와서 라나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미리네 언니 다른거 더 좋아하는거 있어요?"


라나 나름의 견제.


"저랑 이야기해요 미리네언니, 자! 제 얼굴보고 눈 보고 이야기 하세요.  더 말하고 싶으세요? 무슨 대화를 하고 싶으신데요? 그 분하고 대화하지 말고 저하고 하세요. 제가 들어드릴께요. 어차피 인생에서 게임만 하시면서 허송세월 보내온 미리네 언니는 게임 이야기밖에 할것 없을테지만 무슨 이야기든 하면  들어드릴테니까! 자! 한번 말해보세요!"


"아, 아니, 라나..어,얼굴..우부붑.. 그리고 나 상처받아.."

미리네를 꽈악 붙잡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 그 다음은 하얀.


-"네 힘을 늘리기 위해서 내가 분명히 말했지 하얀? 복수에 집착하는 순간 네 힘은 정체되어버리는거야!   힘을 위해 지금 '행복'하다고 느껴야 하고, 더 행복해질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윽... 그, 그럼 제가 대체  해야."

-"미리네가 물어봤잖아. 뭘 좋아하느냐고, 생각해봐 뭘 좋아하고, 그걸 위해 뭘 하고 싶은지 희망찬 생각. 아님 그저 대화 하는것 만해도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는것에 도움이 될거다."
"..."

 고개를 숙였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어, 라나가  붙잡고 있는 미리네에게 다가갔다.


조금씩 조금씩. 더듬거리며 그녀의 옷을 잡고..

"괴, '괴물사냥꾼: 월드'같은 게임은 좀 해본적 있어요... '검정영혼'이라던가..  그런거요."
"아...그렇구나"
"검정영혼은 제일 처음에 마주치는 우두머리 잡고 너무 어려워서 안하고 있었지만..."

"제일처음? 어..아, 그거 잡는거 아니고 도망쳐야 하는 그... ...?"

"??"


조금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이다.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순간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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