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8. 하 얀]
"최 미리네"
최근 행적은 특별히 없음. 집과 바깥 나들이를 다니는 듯 하며, 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감. 동네 양아치, 동네양아치의 친구, 괴롭힘 받는 학생. 스토커등.
최근엔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괴롭힘 받는 학생과 모텔에 다녀오기도 함. 범법 행위는 없었다.
"유 라나"
유자 병원 원장 딸. 공부 잘함. 성적은 전국 단위에서 놀고 있는 엘리트. 하루종일 학원이나 집에 설치된 공부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일상.
자주 행방불명됨. 밤에 나가는 일이 잦아짐. 최근에 공부상자를 연달아 파괴하는 일이 있었으며 집안 가정부가 교체되었음. 마지막 강철 금고 공부상자가 파괴된 이후에는 새로운 공부상자가 설치되지 않음.
"하얀."
실종. 마법소녀.
"흠. 흠흠"
기관의 드높은 층.
지부장실의 한 켠에서 기관의 한국지부 지부장인 신영일은 그렇게 한명한명의 이름을 불러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책상위에 올려져 있는것은 영일이 정성껏 빛어낸 네개의 영혼들이었고, 또 다른 한 켠에는 정체모를 힘이 감도는 중이었다.
영일의 비서인 수정씨는 이미 커피를 가져다 주었고, 잠깐 쉬다 오라 명령했으니 이렇게 자신의 힘을 내보여도 들킬일은 없으리라.
'침 뱉어놓진 않았겠지'
그런 수정씨가 타온 커피를 의심스럽게 한모금 마시며,
"마 정수"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냈다.
현재 가장 의심스러운 존재.
아니 확신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일전에 학교에 설치해 놓은 '최면어플'은 사용하지도 못하고 빼앗겨버렸군. 큭큭"
학교에 뿌려놓았던 마법의 파편은 이미 빼앗기고,
이전날 만들어 두었던 [마도 장비]도 빼앗기고 파괴당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건 단 한명. 아니 한 무리 뿐이었으니,
"그런 시시한 이름으로 다니고 있었던건가 마왕 카론... 큭큭. 마법의 왕 마카론이라 불리었던 녀석이 말이지... 큭큭큭..."
영일은 이제 목표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장담했으며,
이 후에 하게 되는것은 당연히
공격.
'가장 탐스러웠던 영혼...'
가장 탐스러웠던 영혼, 가지고 싶었으나, 다른 악마가 선점하려 했기에 가질 수 없었던 안타까운 그 영혼!
'이번에야 말로 가져주지!'
이번에는 손에 넣고 말겠노라고 영일은 다짐한다.
그의 영혼은 수천조각으로 찢어져 있었고, 그 영혼을 하나하나 줍고 모아오고 있었던 영일이다.
악마 컨피던스로써, 수많은 전장을 해쳐와 가장 탐스러웠던 영혼의 조각을 손에 넣고, 그 영혼들로 하여금 수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겠지.
대부분의 일들,
대부분의 도구들조차도 마왕의 영혼 덕분이었으니,
사용하면 할 수록 취하면 취할수록 더욱이 탐스럽게 느껴지는것도 당연했다.
악마 컨피던스, 아니 지부장 신영일은 다시금 그 영혼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 영혼에 합류한 육신마저 탐하기로 하여, 그 힘의 파편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영혼을 얻기 위해,
영혼을 완전히 자기 소유에 넣기 위해서..
"큭큭큭..."
아니, 조금더.
좀 더 탐스럽고 달콤한 영혼을 위해. 부활하려는 마카론의 모든것을 빼앗기로 했다. 그의 희망을 자신의것으로 삼고, 혹여 부활하더라도 불완전하고 비틀리도록 그 주변의 영혼을 엉망진창으로 더럽히기로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둘씩 배제하면된다. 하나 둘씩 그 영혼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면 그만인 일이다.
그래서 영일씨는 덫을 놓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그의 영혼에 어울릴만한 덫.
"수정씨!"
"...? 네?"
"마침 돌아왔군! 정확한 타이밍에 돌아와 주었어!"
"아...네"
영일의 비서 수정씨가 영일의 목소리에 즉시 문을 열고 들어오니, 영일은 흡족한듯 표정을 지어 곧바로 다음 명령을 수정씨에게 말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수정씨였지만 뭐 어때.
"지금 당장 스알 고등학교의 급식비를 횡령하도록!"
"예?"
영혼의 타락.
그것은 식사의 불편함으로 부터 오는것.
아니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중에서도 영혼이 쉽게 더럽혀지곤 하겠지만, 영일이 하려는 것은 확률을 높히려는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의 평균적인 더럽힘 수치를 높혀 그중 깨끗하고 고결한 영혼이 있으면 빠르게 찾아내어 타락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의식주. 인간에게 중요한 것들의 사소한 결여가 영혼을 쉽게 타락시킨다.
"큭큭... 2교시 쉬는시간에 나가는 우유마저 횡령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게, 매일매일 급식은 갈색의 흐리멍텅한 국만 나가게 만드는거야! 매점은 폐쇠하고 도시락도 금지하게 만들어 놓은 후에, 급식은 최저품질로 기초 영양대사도 고려하지 않은 하급품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영일은 한수를 내딛는다.
모든것은 정수. 마정수라고 하는 그를 압박하기 위함이요. 그 주변 모든 영혼들을 더럽히기 위함이니,
아주 대단한 묘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런걸 저희가 왜해요?"
"아."
"저희는 마물과 싸우는 국제 기관인 기관의 '한국지부'인데요?"
"아 그렇지. 깜빡했네"
"... 염병 지랄하고 있네 진짜"
"방금 뭐라고 했나?"
"아뇨. 잘 좀 생각하고 말하시라구요."
"..."
뭐 생각은 좀 더 해야겠지만 말이다.
지부장의 권력보다는 지부장이 쥐고 있는 힘과 능력. 그리고 재산을 이용하여 개인적으로 조치해야 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곧 스알고등학교라는 학교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게 된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학교,
미리네의 직장.
라나의 집과 주변 반경.
하얀의 옛 가족들 친구들의 집 가족.
그리고..
...
"아, 기관에서 교육용이나 훈련용으로 제작한 온라인 게임 하나 있다고 했지?"
"네? 아, 네 그건 있죠."
"그거 랜덤 상자 확률을 대폭 낮추라고 말할 수는 있나? 유저들에겐 비밀로 하고, 조용히 내부에서 확률 조작같은걸 통해서 특정 유저가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어렵게 할 수 있도록?"
"아... 귀찮은걸 또... 말은 해볼 수 있을것 같은데요."
"그럼 그렇게 부탁하네! 아니 그냥 내게 연락을 따로 돌려줘. 주 마신기업의 '마신소프트'지? 연결좀 해주게"
"네, 바로 연결해 드릴께요."
이용할 수 있는건 많이 있으니,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신 영일, 악마 컨피던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의 책상위에 있는 네개의 빛나는 영혼들과 함께.
* * * *
"마력탄!"
치직-
하얀의 등 뒤에 작은 마력탄이 여러개 만들어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늘에 솟은 탑의 2층.
더이상 굶주린 마물이 아닌 그럭저럭 멀쩡한 마물들이 나타나는 그곳에서..
펑- 퍼펑-!
하얀은 연달아 마법을 쏘아내면서 마물들을 물리쳐 나갔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마물들의 무리가 늘어간다.
홀로 다니는 녀석은 거의 사라졌고, 3~4마리 정도의 소규모 무리를 이룬 이들이 나타나 하얀을 압박하지만,
하얀은 재빠른 몸놀림과 마법을 통해 그것들을 물리쳐나가고 있었다.
마물을 쓰러트릴때 나타나는 마석과 마물의 잡다한 물건들은 모두 자신의 보석안에 집어넣어놓고는 앞으로 달려가 마법봉을 휘두르기도 했다.
퍼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마물의 등허리를 치고 지나간다.
하얀색 잔상을 남기는 하얀도 함께 지나가고 나면
"쿠, 쿠에엑..."
마물들은 힘없이 바닥에 널부러지고 말았다.
그 마물의 시체를 발로 밟으며, 힘을 주고 소리친다.
"난...!"
캐치프레이즈다.
"할 수 있다!!"
희망의 캐치 프레이즈.
무한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말.
하얀이 내뿜는 마법의 근원이다.
* * * *
푸슈우우욱-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던전의 깊지 않은 곳에서, 몇번인가 사선을 넘은 전사라도 되는 것처럼, 마물의 시체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내쉬고 있는것이 하얀이다.
하얀 머리칼과 대조적인 검은색 눈동자를 아래로 내려보면서 쏟아내린 마물의 살점과 장기. 흘러내려가는 마물의 피를 바라보며 하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스스로 깨닫거나 알아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알려주는 지식. 누군가가 먼저 그 길을 가보고 먼저 확인하며 먼저 실험하고 먼저 검증해놓은 그 길을 뒤따라 가는 것.
강해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방법을 따르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느껴졌다.
길은 끝없는 싸움의 길이고, 느껴지는건 마물에 대한 살의와 자신의 복수심. 복수를 끝마칠 수 있다는 뜻깊은 희망.
'할 수 있어'
끊임없이 할 수 있다며 자신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하얀은 그렇게 다시금 걸음을 내딛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딛으려던 그 순간이다.
-"이제 그만"
"네?"
하얀은 멈추어졌다.
저 먼 곳. 혹은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마왕이 하얀의 움직임을 멈추었으니
"아, 아직할 수 있어요! 체력도 남아돌고 아직 제 마법도..."
-"아니야, 그만해. 50분싸움 10분 휴식으로 최적의 전투효율을 내는건 이제 그만해도 돼!"
"저는!"
-"학교로 따지면 쉬는시간까지 거르고 싸우는 중이라는걸 잊었느냐! 그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몸을 망치는 행위인지 알면서도 그러고 있느냔 말이야!"
"읏!"
하얀은 그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머릿속으로 직접 울리는듯한 그 목소리는 확실한 어조와 하얀으로써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당당함을 품고 있었고, 그야말로 지배자와 같이 명령하는 것에 익숙하기도 할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확실하게
'쉬는시간까지 공부에 집착하는 애들이 별로 좋게보이진 않았었어!' 라고 무심결에 생각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할 일이 있다!"
이야기는 곧 명령이 된다.
하얀의 움직임을 멈추고 하얀을 다시금 그 검은공간으로 소환하려는 것이다.
하얀은 좀더 싸우고 싶었지만, 복수를 해낼 수 있는 희망을 다시한번 불태울 수 있었고 그렇게 수많은 마물을 쓰러트릴 자신도 있었지만,
돌연 멈추어버린 하얀은 점차 던전에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표정은 조금 분하다.
주먹을 쥐고 있었고, 더 강해질 수 있었는데, 더 노력할 수 있었는데 따위의 생각들로 가득차서는 고개를 숙였다.
파앗-!
그리고 빛이 하얀을 감싸고 다시한번 검은공간에 돌아오면..
"어?"
검은 공간이 아니다.
"어라?"
하얀은 당연히 그 어두침침한 공간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푸른색 디자인이 되어 있는 벽이 한켠에 우두커니 서있는 공간일 줄 알았으나,
눈을감았다 뜨면 다시는 보게될줄 몰랐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하얀을 지나쳐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
휴대폰을 쳐다보며 고개숙이고 다니는 이들과, 이따금 들리는 자동차의 경적소리 구급차의 소리나 경찰이 달려가는 소리.
여러 소리와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는 곳.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
"내...내가 왜 여기에?"
무언가 잘못된걸까, 착오로 인해 검은공간이 아닌 이곳에 소환되어버린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얀은 서둘러 몸을 낮추어 버렸다.
그건 거의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악마가 주변에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악마의 하수인이라던가!'
악마에대한 두려움때문에, 그리고 들키게 되면 여러모로 일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지레 겁을 먹어서는 침을 꿀꺽 삼킨 반사적인 행동.
혹여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 누군가 갑작스럽게 공격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이들중 누군가가 마물이 되어버리면? 내가 죽인 사람들의 가족이 있으면?'
딱히 이유없는 관련도 없는 수많은 불안과 공포가 하얀을 잠식해 나갔다.
"하아... 하아... 읏... 마, 마왕...카론님... 어, 어디..어디에.."
그리고 의존할 곳을 찾았다.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사람이었건만,
방금전까지 불만스러운 일을 하던 사람이었건만, 결국 하얀은 그에게 의존하려 했다.
결국은 어린아이에 결국은 어른이었던 정수, 하얀은 그의 이름을 더듬거리며 부르면서 주변을 살폈다. 눈을 질끈 감고는 머리를 감싸쥐어 주저앉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신차려."
목소리. 안심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하얀이 고개를 드는 동시에 펄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하얀의 어깨위에 걸쳐졌다. 가까이 다가온 그의 모습도 있다.
평범하고 평온해보이는 듯한 키가 조금 작은 평범한 남자. 청년이고 학생인 그.
"마왕님..."
"여기선 정수라고 불러. 오빠라던가"
"오.. 아.. 그, 아저씨."
"그러던가."
하얀이 무심코 내밷고 있는 부끄러움 섞인 말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면서, 정수는 하얀에게서 떨어져 손짓했다.
"일하러 간다. 따라와."
"네... 아, 하지만.."
"그거 입으면 돼."
그리고 하얀은 그제서야 자신의 어깨위에 걸쳐있는 것을 확인했다.
검은색 코트 한벌. 이름은 '초보자용 코트' 라고 되어 있었지만, 주변으로 하여금 인식을 비틀어 같은 사람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마법적인 도구.
하얀이 그 옷을 알아차렸을때.
정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했다.
"희망이 뭔지 다시한번 알려주마!! 따라와!"
"... 아..."
무언가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신이난듯한 표정이었다.
하얀은 그 표정에 이끌렸고 아무말 없이 한걸음 다가가며 그 코트를 두 손으로 꼬옥 잡았다.
그리고 말한다.
"아...네!"
떨떠름하게, 그런듯 말하면서도 발걸음은 착실하게 정수의 뒤를 쫒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