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미리네2 (6)]
한명 고개를 치켜들면, 그 어려보이던 소녀와 정체불명의 여자 하나가 자신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비밀을 지킬거란 보장이 있을까?"
"아뇨? 당연히 없죠. 나중에 분명히 언니의 정체를 말하고 말거에요."
"그럼 어디에 가둬야 해?"
"언니의 정체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이들뿐만이 아니라 악마에게도 해꼬지를 당할 수 있다는데, 가둬두는게 좋겠네요."
들리는 말은 제법 살벌하다.
가둬둔다. 라던가 '악마' 라던가 '해꼬지' 같은 말들 말이다.
그 말 모두가 자신을, 자신들을 향해 하고 있다는 것알 알기에는 어렵지 않았고, 그 차갑고 낮은 눈초리에 그들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능력자 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적인 무언가.
애초에 건드려서도 안되었던 특정 집단.
당장 말로 뭐라 설명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중 한명은 깨닫고 있었다.
'아, 건드리면 안될 사람을 건드렸구나, 애초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하면 안되었구나'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팔을 높이 치켜든 여성이 보였고, 그 후에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쓰러진 청년의 팔목에는 '마도장비' 하나가 채워져 있었다.
* * * *
"와, 집 좋네."
미리네는 감탄하며 그 집으로 들어섰고,
"시체를 숨길 수 있는 곳좀 찾아볼께요."
라나는 집안을 훑어보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라나야 밥부터 먹고 일해. 그리고 시체 안만들거야"
"네!!"
정수는 평범하게 제 집인것마냥 들어와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있으니..
"..."
재력은 멍하니, 그리고 어이없이 그 광경을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 그 다음에는 어머니에 이어서, 자신의 집을 완전히 점거 당한 것이다.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었던 자신의 방 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침범당했고, 미소녀라고 할만하지만 인간이 아닌 힘을 쓰는 기묘하고도 무서운 이들이 집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아."
재력은 얼마나 숨이 막혔겠는가?
게다가 미리네라고 하는 소녀는 어느정도 안심할 수 있을 법 했지만,
아까부터 자신을 죽이려는 듯한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는 저 검은 코트의 여성과는 도무지 같이 있을 수 있을것 같지 않았다.
"근처에 거점 하나 생기니까 좋네. 자... 그럼 식사후에 이야기를.."
"나 아까 밥 먹었는데"
"또 먹어, 너도 살은 좀 찌워야 해. 키도 크고 그러려면."
"키 이야기 하지 말라 했다 시발아 진짜"
"언니랑 마왕님이랑 많이 친해지신거 같네요!"
"아, 아니?! 아닌데!?"
"... 특히 언니쪽이 많이..."
"아니야...!!"
분위기 또한 숨막힌다.
무언가 한틈 엇나가는 순간 엄청난 유혈사태라도 벌어질듯 그런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분위기에... 재력은 그만 정신을 잃고 싶었지만,
그 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재력아 밥먹으렴."
"네? 어, 엄마 이건.."
개밥그릇.
그 상냥했던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개 밥그릇에 넣어두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재력이 무릎꿇고 있는 곳 바로 앞에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건 개사료는 아니었다는 점일까, 그래도 사람이 먹을만한 볶음밥에 계란 후라이가 하나 올라가 있는 정도라고 했던 것일까. 그리고 옆에 있는 '칡뿌리'
"..."
"먹어."
"지금... 대체.."
짜악-!
반항하면, 아니 어머니에게 반항하면 바로 손찌검이 날아오게 되어버리는 정신나간 상황.
가정 폭력, 아동학대. 말하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겠지만, 재력은 침을 넘겨삼켰다. 꾸욱 참고는 흘끔 정수를 바라보았다.
'안돼... 방법이 안떠올라..'
방법은 커녕 조금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재력의 안쪽에서 뭔가 뒤틀려 버린것인지..
자신의 어머니를 단시간이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리고, 정체불명의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정수라는 존재가 이미 재력의 안에서 한없이 커져버리고 말았던 탓인지.
그가 괴물.
나아가 마왕같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리가 없어..'
물론 그럴리가 없지. 마왕이라는 그런 판타지적인 존재가 눈앞에서 칡뿌리따위를 캐어 주던가, 자신의 부하들의 밥을 챙겨주고 도시락 하나 엎었다고 복수하고, 그 복수랍시고 대상의 어머니를 노예화 시키진 않겠지.
애초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재력의 안에서는 이미 그정도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한 정수 탓에... 재력은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말았다.
"수. 수저 정도는.."
"물론 줘야지! 말 잘들으면 식탁에 다시 앉을 수 있게 말씀드려볼께. 착하게 지내자 재력아, 우리 아들. 알았지?"
"..네...네..."
재력은 숨이 끊어질것 처럼 대답했다.
자신이 본 광경,
끌어모아온 양아치들이 [마도장비]의 힘을 빌리고도 무참하게 쓰러지는 모습과 죽기 직전까지 된 모습.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보이는 여자까지 포함해 모든것을 떠올리곤,
식은땀을 흘리며 식사를 시작했다.
메뉴는 김치볶음밥에 계란 후라이. 참기름은 주지 않았다.
* * * *
여하튼간에
"마석! 정제된 마석! 더 많은 마석!"
"그럼 나중에 날을 한번 더 잡자 미리네."
"어?! 아, 읏..어..으, 응.. 그러던가 말던가."
미리네는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띠링-
['정제된 마석'을 습득했습니다.]
작고 예쁜 검은 돌맹이. 평범한 사람이라도 알아차릴 법한 이질적인 기운이 담겨있는 그 물건 말이다.
돈을 벌게 해준다.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게 해주겠다.
그것이 정수가 미리네에게 약속한 하수인의 조건.
물론 지키지 않아도 미리네는 따르는 수 밖에 없지만, 정수는 그 약속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리네는 정제된 마석을 얻었고..
"그런데 돈이 급해?"
"아...응 좀."
"뭐에 쓰길래"
"내일 부터 [마왕의 날개 랜덤박스]를 팔거든, 0.04% 로 얻을 수 있는건데 이거 끼면 날아다닐 수 있고, 경험치 획득량 10%증가에 전투력 강화 10% 딸려 있어서 좋아."
"??"
바라는 일을 할 수있게 되었다.
정제된 마석의 갯수는 이전날 던전에서 열심히 모아온 마석을 바꾸어 총 7개.
하나당 50여만원이라고 쳐도 얻을 수 있는 금액은 무려 350만원!
"잘 소비하고 있는거 맞겠지? 생활비랑.."
"...생활이야 뭐 그럭저럭 할 수 있는거고"
"흠 안되겠다. 오늘부터는 생활비로 매달 일정 금액은 따로 통장에 저금해 놓도록 해."
"뭐래 미친놈이."
"영원히 돈만 벌고 싶지 않으면 내 말대로 하는게 좋을거다."
그래도,
미리네라면 당연 자신의 생활 같은것은 무시하고 무책임하고 무대책적인 소비를 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정수는 금방 그렇게 얻을 미리네의 수입 일부를 가져가기로 했고,
미리네는 뭐.
"윽"
아무말도 못한다.
이전과 같이 던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무서워 해서가 아니라..
'이게 무슨... 돈... 토, 통장. 살림하겠다는거 같잖아...'
조금 다른 망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생각과는 달리 정수.
'놔두면 돈을 펑펑쓰겠군, 역시 관리해주지 않으면 금방 인생 망쳐먹을 녀석이야.'
비슷한 생각을 하기야 했지만 조금은 다르다.
아무튼 그렇게 정리되어갔다.
남의 집에서 낯선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마치고,
또 제갈길을 가게 되는것이다.
"..."
라나의 차가운눈초리와,
미리네의 어쩔줄 모르는 듯한 행동과 그런 자신의 행동을 감추려는 듯한 또다른 행동.
안절부절 손톱을 물어뜯는듯한 자영의 모습까지.
재력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고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차츰 조용해졌다.
다만 정수만은 그곳에 잠시 남아 재력에게 속삭였는데
"다음에 또 해봐,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아 저항해봐. 나는 그런 '용사'들을 마주치는게 취미인사람이거든."
재력이 그 이야기를 이해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 * * *
그리고 나서다.
그리고 나서,
그 일련의 사건을 정수가 아니, 마왕이 경험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정리를 하고 있었을 때.
그 검은 공간에서, 작은 소녀인 하얀은 멍하니 화면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검은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책상과 쿠션이 딸려 있는 의자가 생겼고, 적당한 크기의 침대가 있었으며, 안정감을 주기 위한 벽이 놓여져 있는 곳이 되어 있었다.
벽의 색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되는 색인 푸른색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근처에는 냉장고라는 물건이 전선도 없이 아무렇게 놓여 기능하고 있었다.
냉장고문을 열면 '꼭 데워먹을 것' 이라는 쪽지가 쓰여 있는 반찬 몇개가 놓여 있었고, 엉성하게 준비된듯한 부엌도 딸려 있는 곳이 되어 있다.
그곳에서 하얀.
그 이름처럼이나 머리칼이 하얗게 새어있는 그 소녀는..
"으읏...!"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두려움? 공포? 뭐 그런건 아니고, 그 공간에 혼자만 남겨져 있다는 외로움 때문도 아니다.
그 검은공간은 마치 창바깥을 보듯이 여러명의 화면이 눈앞에 드러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라나가 공부를 하거나 사람을 죽이려고 들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공부하는 척 하는 모습.
그리고..
"다녀왔다."
"앗!? 아...! 그... 어, 어서...오세... 아니 다녀오셨...그.."
미리네의 화면도 당연히 보았을테지.
갑작스럽게 돌아오는 정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공간의 균열을 열고 그 틈으로 걸어들어왔는데,
"간식 사왔다. 몸에 좋고 건강에도 좋은 당근주스. 설탕대신 꿀이들어간 친환경적인 건강음료다. 맛도 좋아 눈도 좋아질거고 비타민A. 알지?"
아무렇지 않게 주스 하나를 사와 하얀에게 건네었다.
하얀.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무심코 보아버린 그 모습.
하루종일 '감시' 비슷한 것을 위해 떠올라 있는 두 사람의 화면중에..
"아, 고, 고맙습니다."
미리네의 모습을..! 정수와 미리네가 서로를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이듯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흔들고 있는...
"좋아 그럼! 다마시고 나면 실습을 시작하겠다!!"
"앗... 어..음. 네"
그 모습...
하얀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쉽사리 뇌리에 박혀 잊혀지진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노력해보기로 했다.
자꾸만 정수 모습이나, 그때 그건 무엇이었냐고 물어보고 싶다던가, 어느정도 알고 있는 지식으로 유추해보긴 하겠지만..
그리고 미리네를 보면 굉장히 얼굴이 붉어질것 같았지만..
그래도 하얀은 노력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머지않아 하얀은 다시 던전으로 향하리라,
'포인트'를 벌어들이고 전투적인 능력을 갈고닦기 위해서. 그리고 뭐..
'그래,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복수하는거야. 반드시... 친구들을 되찾아와야 해'
친구들을 되찾아오기 위해서..
* * * *
장소는 하늘탑 2층.
파앗-!
반짝이는 빛은 곧바로 하얀을 하늘탑의 2층으로 이동시켰다.
-"이것도 포인트였는데, 네가 일을 잘 해줘서 쉽게 구매할 수 있었어"
띠링-
['인스턴트 입장' 스킬]
-[세이브 포인트 생성 '100pt']
-[세이프티 존 생성 '500pt]
칭찬인이 통보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하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심호흡을 한번 했다.
싸움은 목숨을 주고받을 싸움.
마법소녀로써 활동할때와는 달리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마물들을 상대하는 일.
'그 때 마물들은 역시...'
생각해보면 마법소녀일때 상대했던 마물들은 폭력성이 굉장히 높긴 했지만, 진짜 의미의 '살의'는 느껴지지 않았었다.
악마가 변이시키고 마물의 탈을 뒤집어 씌운 인간들이었으니까..
"..."
생각하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화도 나고 슬프고 절망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하얀은 한걸음 내딛었다.
"케에엑!"
마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하얀에게 이빨을 들이밀기 시작했을 때 부터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절망하고 화날수록 슬퍼할 수록
-"배운건 기억하지? '기적의 마법'이 감정을 이용하는 마법이지만, 결국 평범한 마법과 비슷한 구조. 타격형 마법부터 시작한다."
목소리, 이 목소리가 들리는 한 하얀은 해낼 수 있음을 직감했다.
부정적인 감정만큼이나 그것을 이겨내리란 희망이 차오르고 있던 것이다.
"후우우..."
다시한번 심호흡을 한 끝에, 하얀은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띠링-
['21pt'획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