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미리네2 (3)]
"아! 그럼 이제 정제된 마석 만들 수 있지!?"
라고, 미리네는 화들짝 놀란 듯이.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그렇게 소리쳤다.
모텔에서 빠져나왔을때 쯤 이야기다.
미리네는 모텔에 있는 내내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다.
'떡정이라는게 있는건가 염병.'
정말 의문스러운 일이지.
평소에 보면 짜증나고 행동도 좀 짜증나고, 말하는건 죄다 귀찮은 일들 뿐이거나 시키는것도 귀찮은 것이 그 마정수였는데,
이날을 기점으로 그의 얼굴을 보는것이 다른 의미로 불편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보면 조금 심장이 뛰고, 기억이 되살아나고 앙앙거리는 소리를 내던 자신의 목소리가 원망스럽고, 그를 껴안았던 팔이나, 키스를 조르듯이 내밀고 있던 혀는 잘라버리고 싶었다.
그의 허리를 감아 올리고 있던 자신의 다리는 또 어떻고? 입으로는 싫다 싫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그에게 애원하듯이 매달린건 어떻게 설명할건데
"아이 씨발!"
"미리네, 밥먹으면서 욕하면 안되지, 식사할땐 가급적 말을 줄이고 꼭꼭 씹어먹어야 소화에 도움이 되고 그래야..."
"개새끼야 너때문에 너!"
"나? 왜? 어제밤에 불만스러운 점이 있었어? 아직 욕구가 해결이 안돼? 다음엔 더 하드한걸로 해볼..."
"미, 미안하니까 그냥 좀 먹고 나가자."
괜히 욕이 터져나오고, 여기서 이상한 꼬투리를 잡아대는 정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히 미리네는 느끼고 있다.
분명 욕을 내뱉긴 했지만, 평소대로 행동한다곤 했지만.
'시발 얼굴은 왜 뜨거워!? 말은 왜더듬어 이 병신 미리네! 좀...!'
여러모로 심란했다.
그것도 꽤 크게 말이다.
정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식을 챙겨먹고 미리네의 뜻대로 서둘러 모텔을 빠져나왔고, 다시금 미리네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으니..
미리네, 가는 길. 주머니에 손을 꼿아 최대한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아무튼 다음부터는 쌓이면 곧바로 말해. 알았지?"
"..."
"대답해야지. 혹시 몽마가 꿈에 나오기라도 한거라면 즉시.."
"아, 알았다고, 이제 꺼져 좀. 볼일 없어?"
"... 흠, 좋아 믿어주지. 수고해라."
도착한 후 정수는 미리네에게 인사했다.
그 쓸모없는 잔소리는 당연하게 하고 나서 말이다.
그렇게 정수는 다시 제 갈길을 가버렸다.
그렇게 되면, 그런 정수의 뒷모습을 안본척 등 돌리고 있다가 슬쩍 바라보면, 또 한번 미리네는 어떤 사실을 깨달아버리곤 했다.
아니 혹시 오해이거나 미리네 개인적인 망상이나 상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저 새끼, 지금 나 집까지 바래다 준건가? 어...? 어어?'
그런 사소하고도 자연스러웠던 이상기묘한 배려를 깨달아버리니,
미리네는 다시금 집에 들어가 배게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으아아아!"
그것이 미리네의 비명소리를 감춰주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주 뒤늦게서야..
"아, 그러고보니 이제 정제된 마석 만들 수 있잖아!"
상황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컨데 현실도피를한 셈이다.
* * * *
도심>
미리네는 조금 쉬고는 집에서 나왔다.
이유는 정제된 마석을 얻기 위함이었고, 정수를 쫒아간다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집이 괜히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전과 같았으면 그렇게 비어있는 집이 싫지 않았을 것이며, 가득차있던 쓰레기 더미의 산이 오히려 미리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었을 테지만, 요즘들어서는 깨끗하게 정리정돈된 집이 어색했다.
그리고 혼자 있으려니까 뭔가 좀이 쑤셔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혼자있던 집이 아니라, 친구아닌 친구 한두명이 집에 있는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말았던 탓이다.
요즘들어 정수를 보겠다며 자주 찾아오는 아지가 기다리고 있거나 정수가 청소를 하거나,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하는 등의 그 어이없는 모습이 어느덧 익숙해진 탓이다.
그래서 미리네는 머리칼을 긁적거리며 바깥으로 나왔다.
옷은 한번 갈아입어 후즐근한 옷차림과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
평소와 같았으나..
'... 아니, 아니야 어차피 뭐, 그래 아니지'
그것이 좀 신경쓰인다고 해야 할까.
집을 나오고 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옷차림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는 등. 굉장히 많은 잡념에 휘말려 있는 상태.
그런 상태로 바깥으로 나왔기에..
미리네는 이 때를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미리네를 쫒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곳에 숨어서 조심조심 살금살금 미리네의 뒤를 밟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 물론 지금은 관계 없는 이야기다.
"야, 야 마왕놈아."
속닥거리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굳이 이름을 말하진 않았다.
말하면 또 자신에게 이상한 감정이 들어버릴까봐, 혹여 주체하지 못하거나 어쩌면 폭주할지도 모를것 같아서,
애초에 처음 겪어보는 듯한 그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겁먹은 것에 가깝다.
그러니 미리네는 일단 그를 불렀다.
"야! 나 정제된거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묵묵 부답.
보통은 항상 감시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대답하고 짜증날정도로 쫑알거리긴 했는데, 오늘은 묵묵 부답.
'항상 감시하는건 아니니까'
뭐 항상 감시하고 있던건 아니었기에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긴 하지.
그래서 미리네는 몇번 확인 끝에 그 몰래 자기위로를 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들키긴 했지만,
그 때문에 일이 일렇게 되어가고 있지만 괜찮다.
지금신경쓸 일은 아니기에,
'그런데 떨어진지 몇분이나 됐다고 벌써 연락두절? 다른걸 하고 있나? 아니 혹시..'
미리네의 사고는 조금 이상해졌다.
'다른 여자를 만나나?'
조금 짜증이난다고 할까,
이것만큼은 미리네가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래놓고 벌써 다른 여자를 취하러 다니는거야? 빌어먹을 새끼 진짜, 마력얻는다는 핑계로 지 욕구 채우러 다니는거겠지. 하여간... 쯧.'
그냥 지금은 욕만 하면서 계속 앞으로 향했다.
'설마 라나를 건들진 않았겠지? 아니 그녀석이라면 건들고도 남겠지. 전에는 이상한 아줌마를...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인가? 그 좀 양아치 같은 녀석의 엄마? 그 녀석은 그런 취향을 좋아하나? 뭐라그러더라 그런거 밀프였나?'
먼저 가볼곳이 있다.
정수가 어디에 있는지, 있을만한 곳중 몇 곳은 미리네가 가기에 가벼운 곳이었으니 말이다.
'라나네 동네로 가봐야겠네...'
가능성이 높은 재력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마석! 마석 때문이니까 마력때문이야 시발. 애초에 그거때문에 한거니까!'
힘차게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면서...
* * * *
그 시각,
<재력의 집: 근처>
이야기 하자.
재력의 각오를, 재력의 의지를.
재력은 참는것에 한도가 넘어가고 있다.
정수와 같은 학년 같은 학급에서, 무시하고 밟아버리곤 했던 이에게 쩔쩔 맨다는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가?
아무리 정수가 어떤 이상한 일이 생겨버려서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한들, 재력의 자존심은 너무나도 인정사정없이 찢어 발겨지고 있었다.
무너져 가고 있던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삶을 이어왔지만, 사실 속은 썩어 문드러져가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겠어?
재력의 자존심이 용납치 않는다.
"후우..."
참을만큼 참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재력은 정수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인간이 아닌듯한 '능력자'와 같은 힘을 갖추고 있다는건 이해했다. 하지만 그게 완전한건 아니라는것도 최근에 알았지.
'그 녀석 싸움은 좀 하는것 같았지만 그걸 내내 유지할 순 없어보였어'
계속 관찰해왔다.
쭈욱 확인했다. 지금껏 그저 패배감 만으로 울면서 자위해온건 아니다. 폼으로 옆에 있던건 아니었다는 뜻!
'가능성이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가필요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을 손에 넣기로 했다.
최근 '마신그룹'에서 개발중이었던 시험용의 슈트가 하나 있다.
능력자가 구해오는 '마석'을 개량하고 개발하여 만드는 '마도장비'의 한 종류로, '마력'이라는 자원이 있어야만 했던 이전의 것과 달리.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마도장비중 하나.'
아버지를 통해 마신그룹에 견학을 갈 기회가 있었을때 아버지를 졸라 하나 가져올 수 있었던..
일시적으로 염동력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그러한 마도장비!
그것을 손에 넣은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나 쓸 수 있는게 아닌 약간의 제한이 있었기에.
신중해야 한다.
마치 정수의 능력과 같았기에 재력은 더더욱 웃음을 지어보이며..
'널 다시 내 앞에 무릎꿀려주마..!'
재력은 이렇게 불태우며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학교에서 내놓으라 하는 싸움꾼 들이다. 주먹으로 학교를 정복하고 지역을 정복하며 사대크루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하는 그러한 이들.
친한 이들도 친하지 않은 이들도 돈으로 매수하고 사전에 이야기를 통해, 무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큭큭큭. 그리고..."
그리고 서프라이즈도 몇개 준비했지.
"네가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나도 네 가족을 건드는거야 이 빌어먹을 새끼야."
기대해도 좋으리라, 아주 화려한 복수가 시작될테니까!
"큭큭..!"
그리고 그 첫단계중 하나인.
친구들을 지금 이곳, 자신의 집 근처에 모아두었다.
"근데 뭐야."
그런데,
계획의 첫 단추부터 아주 약간의 문제가 생겨버린 듯 했다.
모여야 할 이들은 가히 수십명이었을 것이다. 한명한명 친절하고 정중하게 이곳으로 데려와야 했는데..
"왜 몇 명 비어? 1반 불주먹이랑 3반의 샹x스 는 왜 없어?"
"x크스는 팔 부러졌다고 그러고, 불주먹은 갑자기 몸에 불붙어서 전신화상."
"팔 한쪽 정도야.."
"두 쪽다 부러졌데, 손가락이랑, 팔이랑."
"레어 고등학교의 붉은발은?"
"다리가 반으로 접혔다는데"
"다리는 원래 반으로 접히잖아"
"반대로 접혔데"
"???"
없다.
몇명이... 있어야 할 꽤 유망한 불량아들이 말이다.
그것도 무슨 교통사고라도 당했는지 이상하게 다쳐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니, 마치 괴물에게 당하기라도 한 듯.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듯한 이야기가 있었다.
...
뭐 그래도 괜찮겠지.
재력은 생각했다.
솔직히 너무 많아도 번거롭고..
이 '마도 장비'를 몇명에게 나누어 주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지. 너희 중 몇명 이리로 와봐. 조져줘야 할 녀석이 있는데"
"누구?"
"재력이가 또 누굴 조지려고? 우리까지 불러야 할 정도야?"
재력은 웃으며 상자 하나를 꺼냈다.
"일시적으로 마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마도 장비]야,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지. 삼일에 한번 정도 30분 동안 밖에 효력이 없지만, 그정도면 충분하겠지. 총 일곱개 있거든?"
가벼운 팔찌가 들어있는 상자.
일곱개 들어있었고 심플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는데,
"와.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마도장비]야?"
"개쩐다. 일반인이 쓸 수 있는거면 수백만원은 가뿐히 넘는거지?"
"수백이 뭐냐 수천만원 넘을껄?"
"이, 이걸 준다고? 진짜?"
"시험장비라 그렇게까지 비싼거 아니야. 제한도 많고."
여기 모인 십수명의 양아치들중 일곱명에게 그것을 주고 난 후에, 정수를 완벽히 무너트릴 계획을 정돈했다.
우선은 이 십수명의 양아치들 중에서 일곱명의 선발된 인원을 정해야 하는데,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전투력이 조금이라도 높은 사람이어야만 해.
그러니까..
"아니 시발 여긴 콜록-! 담배냄새가 왜이리.."
"??"
"뭐야, 누구야?"
지나가던 누군가.
작은 체구,
후즐근한 옷차림.
그리고 꾹 눌러쓴 모자.
재력에게 있어서는 처음보는 사람. 잘해봐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그렇게 한가로이 길을 걷다가 기침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며 재력을 비롯한 양아치 무리를 둘러보고 있으니..
재력은 피식 웃었다.
"아...그, 미...미안, 하던일..계, 계속해.."
거기에 자신들을 바라보고 시선을 눈치채는 순간 자신감도 없이 모자를 꾹 눌러쓰고는 두 눈을 깔아 도망치려고 하는 겁많은 모습.
전형적인 피해자의 행동아닌가?
자신들과 같은 다수의 불량아들을 보고서도 한마디 해볼 생각도 못하고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이 말이다.
물론 중학생 정도가 해봐야 뭘 더 하겠냐마는...
그러니까 재력은 웃은것이다.
사냥감으로는 딱 좋지.
"우선 한명은..."
상자에 들어있는 마도장비를 쓸 첫번째는 저걸로 정하는거다.
때론 전투력보다 잔학무도함을 겸비해야 할때도 있으니까.
"쟤를 제일 먼저 망가트리는 녀석한테 이걸 '줄게'"
재력이 그렇게 말한 순간.
"오... 나 그런거 진짜 개좋아."
"일단 쟤좀 여기 데려와서 말하지?"
"야 꼬맹아 이리와봐! 오빠들이랑 놀자~"
"얘야 너 이름뭐야?"
슬금슬금 그 소녀에게 다가갔다.
십수명의 덩치큰 청년들이 작은 소녀의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음흉하고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미, 미리네인데"
자신의 이름을 말한 소녀는 그런 청년들이 무서워 점차 그들이 있는 골목길로 따라들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이름 특이하네?"
"너희 뭐, 뭐하려고? 그... 가까이 오지좀 말아줄래? 너무 가까우면 기분나빠지는데, 그리고 난 지금 바쁜.."
"하아, 하아... 나 이런거 진짜 개좋아하는데"
"꼴림?"
"개 꼴림. 벗겨놓고 내가 제일 먼저 해도 돼?"
"재력이가 다 막아줄껄. 존나 운 좋았네 킥킥"
"아! 재력아 우리 진짜 친하게 지내자!"
겁먹은 소녀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했다.
겁먹은것과 다른 의미로, 아주 차갑게 말이다.
"넌 이런 작은애한테 꼴리냐?"
"작다니, 이만하면 다 컸지 그렇지 친구야?"
"키 작네, 몇살? 몇학년이니?"
"... 시발. 작다는 소리 하지마"
"어? 얘 욕했는데?"
"킥킥 애가 욕도 잘하네, 야야 모자부터 벗겨봐. 얼굴도 중요해"
"..."
"진짜 몇살이야? 초등학생은 아니지?"
"이 시발진짜. 다 컸다고 개새끼들아."
"다 컷데! 큭큭큭...! 그럼 오빠들이 벗겨서 확인좀 해줄..."
시: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