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학교(5)]
<이전 날, 학교>
라나의 앞에서 기분좋은 듯한 미소로 라나의 식사를 바라보고 있는 정수.
그는 턱을 괴고는 미소지으며 라나의 식사를 바라본다.
"저기... 마왕님은... 아니, 정수님은 안드세요?"
"응? 아니 난 네가 먹는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
"읏!?"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우습지도 않은 말 따위에 일일히 놀라며 몸을 떨며 자신의 아랫배어딘가가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끼고 있는 라나.
그런 라나와 정수를 바라보고 있는 3학년 교실이야 조금 어수선 했으리라,
하지만 벌써 몇번째였던가.. 이제는 3학년 교실에 2학년 짜리가 도시락을 가져오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법도 했다.
물론 쉽게 익숙해질 광경은 아니었겠지.
2학년 중에서 항상 꾀제제하게 다니기에 2학년은 물론 3학년에까지 소문이 퍼지고 있었던 정수와. 3학년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해도 좋을 정도인 라나와의 식사시간.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한 점심시간의 식사. 마치 연인과도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두 사람!
"..."
"..."
몇몇 남학생들은 당연히 적의를 가지고 그둘을 보았고,
몇몇 여학생들은 그런 모습이 괜히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질투하는 등의 감정이 솟는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신경쓰이시면..."
"아니, 괜찮아. 일일히 신경쓸 필요는 없어. 저런 적의는 하찮은거야."
"하지만 악마라는 게 당신을 노리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런 것들 중에 악마가 숨어있을 수도있지 않나요?'
라나는 그게 불쾌하다.
불쾌하다기 보다는 신경쓰였겠지.
"감히 정수님에게 적의를 품은 녀석이 있으면 제가 할께요. 죽이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어요. 한마디 비명도 못지르게 할 수도 있구요."
감히.
감히 그 분께.
감히 위대한 마왕 카론이자 마 정수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고, 라나를 직접 관리해주고 보살펴주는 관리인이신 이분께. 적의를 가진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정수는 말했다.
"그럴 필요없어. 저것들은 아니야, 악마는 좀더 애매모호한 녀석을 좋아하겠지... 음... 학교로 따지면 자기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타인을 쉽게 괴롭히는 자. 누구보다 강한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실행할 힘이 없어 조용히 숨죽이는 자. 권력을 등에 업고 악의로써 상대를 괴롭히는 자. 어느쪽이라도 당장 판별하긴 힘들지."
"아... 그럼?"
"그런 녀석들을 찾아서 관리할 생각이야."
필요한건 관리라고,
"그런게 관리로 되는건가요?"
"그럼 되고 말고, 그런 마음은 없어져. 영혼이라고 해서 한번 더럽혀졌다고 한도끝도 없이 더러워지는게 아니야. 마음과 같지. 변할 수 있는게 또 영혼이거든. 그래서 악마의 속삭임에 결코 넘어가지 않는 영혼도 있는거야."'
"아하.."
악마에게 더러워지는 영혼이 있더라도 언제든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도끝도 없이 더럽혀졌더라도 인간의 마음. 의지만 있다면 다시한번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악마가 흥미를 잃을때까지 그럴 수 있는 자라면 결국 악마의 유혹을 버텨낸 존재가 된 것이다.
반면 악마 역시 그렇게 끊임없이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려 노력해야 하니..
"악마녀석들도 힘들겠지 뭐."
치열한 싸움인 셈.
"우선은 난동을 피워서 제일 눈에 띄는 녀석들 몇명 짖밟아 놓고, 그 다음에 그런 녀석들을 일일히 찾아내어 선별하는게 좋겠지. 아참. 영혼엔 종류가 있어서, 사악해지기 쉬운 녀석들이 또 따로 있거든? 그런 녀석들을 찾으려고."
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컨데, 영혼을 좋아하는 악마는 아주 한순간에 절망으로 치닫는 깨끗한 영혼이나 더러울대로 더러워진 영혼을 좋아한다는 것인데,
구하기 쉬운 더러운 영혼은 관리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깨끗하게 될 수 있다는 뜻.
요컨데 이미 타락한 영혼을 찾는 일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쉽게 타락할 수 있는 영혼을 찾아 관리하여 악마가 탐내지 않을 영혼으로 바꾸겠다는 뜻!
"이해가 되네요!"
"그렇지?! 오늘 간식은 와플 아이스크림이다! 단 음식은 여러모로 몸에 좋은거다 라나!"
"네!"
"초코시럽도 뿌려먹어라!! 딸기 시럽도 있으니 2접시째에 먹어!!"
"네!!!"
라나는 이때 생각했다.
'도와드려야 겠다!'
굳이 말로꺼내진 않았고,
저 수많은 학생들을 일일히 관리할 생각을 하다니, 마왕님은 어찌 이렇게 관대하고 마음이 넓으시며 하나한 세세한 곳에 신경을 다 쓰실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얀. 그 여자한테 밀려날 수 없어!'
질투도 약간 있었고.
"... 아이스크림 기계다."
"뭐야 쟤... 방금 아이스크림기계 어디서 꺼낸거야?"
"아이스크림 기계가 학교에 왜 있어?"
"매점에 있는거 뜯어온거 아니야?"
"와플기계...?"
라나의 반은 다시 조금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 * * *
뭐,
전말을 이야기 하면 그렇게 된 이야기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현재, 학교: 뒷골목, 잘 보이지 않는 곳>
그 분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실감. 그분의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신이 차오르고 있다. 그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지!
마물을 베는것과 마물을 죽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가볍게 혼을 내주면 되는 일.
악마가 좋아하는 영혼이 쉽게 타락할 수 있는 영혼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영혼은 불량스러운 이들에게 많을 것이고, 대충 그런 이들을 노리면 되는 것이라 판단한 라나.
가볍게 혼을 내주기로 했다.
"아!"
쉽게 타락할 수 있다면, 나중에 타락해도 문제 없도록!
'팔과 다리를 없애두면 되는거잖아!'
타락하더라도 몸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면! 그렇게 해두면 좀더 일을 쉽게 하실 수 있겠지!
앞에있던 이름모를 불량배 한명이 라나의 발길질에 무릎꿇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판단하기도 전에 키가 작아져 버렸기에 라나를 멍하니 올려다 보고 있을때.
"아아!"
라나는 확신한다.
'좋아! 나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다는 확신! 효과가 있구나! 라는 것에 대한 확신!
"자."
라나는 소리내어 말했다.
"비명 질러."
"아...아...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는 길게 울려퍼졌다.
그 순간 라나가 기대한 것은 주변에 있던 같은 불량한 친구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것이었다. 한명 한명 팔과 다리를 기능하지 않게 만들어준다면 타락해도 문제 없어.
아니 애초에 그런 신체를 가진 이들을 굳이 귀찮아서 건들지도 않겠지!
"...?"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야.
바로 앞에 있던 불량배의 다리가 역관절로 꺽이듯이 접혀버리는 것을 보았는데 누가 감히 달려들 수 있었겠는가?
분노가 차올랐던것은 아주 찰나,
다리가 반대로 접혀서 주저앉아 버린 친구를 바라보고 나서 그리고 그 모습을 이해했을때에는 공포에 물들어 하나 둘씩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봐야 아이들이다. 그래봐야 학생이었고 그래봐야 힘없는 일반인이었을 뿐.
누구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악! 다, 다리...! 다리!!! 내 다리가아아아!!!"
'생각보다 시끄럽네'
"그만"
뻐억-!
경쾌한 소리가 났다.
자신의 부러진 다리, 역으로 꺽여서는 힘도 들어가지 않고 있었던 그 다리를 본 첫번째 불량배는 한참을 비명지르다가 가슴에 커다란 충격을 맞으며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눈에는 초점이 없어 흰자위만 희번뜩하게 뜨고 있었고, 입에서는 거품을 물기 시작했으며 그 하반신에서는 조르륵 소변을 지리고 있었을 것이라.
이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료들.
즉, 뒷골목에서 하교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금을 자행하고 담배나 꼬나물며 잡힌 아이들을 상대로 온갖 장난을 치고 있던 그런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사소한 짓을 하더라도 바로 저 다음 목표가 되리라,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본능적인 반응이라도 했을테지.
아무튼간에,
그렇게 한명이 기절해버렸다.
입에 거품물고 추한 몰골로 말이다.
그에게 당하고 있던 피해자가 몇명 남아있긴 했을테지만 라나에겐 상관 없는 일이고..
'생각보다 비명을 많이 지르네. 좀더 깔끔하게 하는게 좋겠어. 머리먼저 쳐서 기절 시킨 후에...?'
라나는 지금 다른 생각을..
"아참 손."
'손도 마저 부숴놔야지. 허튼짓 할 수 없게끔.'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무생각도 없다.
'이러면 그분께서 좋아하시겠지? 일거리를 덜어드렸어! 내가...!'
다른 생각만 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피가 어디선가 줄줄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아도 오싹거리는 자신의 몸을 진정시키며, 추한몰골로 기절한 그에게 다가가 발을 들어올렸다.
그리곤..
콰직-!
밟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소리는 섬뜩하다.
그냥 듣고만 있어도 '아 저 손은 아작이 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볼법 한 소리.
그리고 그 광경.
축 늘어져 있는 손을 사정없이 즈려밟고 있는것이 다름아닌 라나.
그의 한쪽손은 붉어져가고 손가락은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했다.
콰직-!
그리고 라나.
"아! 이래서 마왕님이 많이 먹으라고 하신거구나!"
뜬금없이 다시 기뻐하며!
"체중을 실어서 밟으면 더 확실하게!"
콰직-!
그 마왕님의 뜻깊은 생각과 멀리내다보는 혜안에 감탄한다.
"손을 못쓰게 만들 수 있었어! 아아아! 그래서 그러신거구나! 역시 마왕님!"
콰직-!
"역시 대단하셔!"
콰직-!
두근두근
라나는 그렇게 심장이 뛰고 있다.
흥분,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주 기쁘게...
...
* * * *
<잠시 후: 조용한 뒷골목>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좁은 골목길이다.
그 안에서 평화롭게 현금을 갈취하던 아이들은 이미 무릎을 꿇고 있었으며 엉엉 울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골목길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겠거니 짐작하며 지나칠 뿐. 그게 아니더라도 그저 또 심한 폭력의 현장이 그곳에 있나보다 생각하거나, 그저 보지 못하고 지나치곤 했다.
그런 장소를 직접찾아낸건 본인들이었으니 당연히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았겠지.
당연하게도 도와줄만한 이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 이럼 곤란한데."
라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곤란한 일이고 말고..
"사, 살려주세요 흑...흐윽.."
"제,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나쁜짓안할께요. 제발..."
빌고 있지않은가?
'반성하고 있는건가? 그럼 손발을 부술 필요가 없어? 무섭게 할 필요도 없나?'
이건 예상보다 달랐다.
바로 몇 분전까지만 하더라도 타인을 비웃고 조롱하며 폭력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이들이었을 텐데, 그리고 그 후 어떻게 타인을 자신의 아래에 굴복시킬까, 그 후에 어떻게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악마적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을게 분명한데..
지금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쉽게 변해...'
영혼이란 쉽게 변한다.
깨끗해지거나 쉽게 더러워지거나 해버린다.
'...'
그렇게 따지면 이들이 더이상 악마의 눈에 들지 않는 영혼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으니..
"아... 아닌데, 이럼 안되는데..."
라나의 일은. 성공적이라 해도 좋았겠지.
하지만 조금 걸리는것은...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무것도 못한게 되잖아'
이들이 자연스럽게 그리 되어버렸다는 것.
라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분. 마왕 카론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리되어버리면 라나는 그저...
'내가 한걸로 쳐도 되나?'
아니 어쩌면, 아니 혹시..
'하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 뭔가 했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또는? 만약에...?
라나의 생각한번에, 무릎꿇은 아이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고 있다. 아니 목숨은 아니고 그냥 손과발의 존재유무가 돌아다니고 있었겠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울고만 있었고...
라나는 그에 묘안을 하나 떠올렸다.
"그럼..."
그럼, 이렇게 하자.
이 아이들이 정말로 괜찮은 영혼이 된건지 아닌지 확인도 할 겸.
다른 영혼들도 찾아볼겸.
"다른 녀석 데려와."
"네..네?"
"너희같이 쉽게 변할 영혼... 음.. 불량한 사람 데려와."
"그... 그..."
다른걸 찾으면 되겠지.
"다음주까지."
시간은 넉넉하게 잡기로 했다.
마왕님을 돕는 일이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돕는'것이지 자신이 마땅히 해야만 할 일. '던전'과 '파편수집'은 멈출 수 없으니.
"이 자리. 이 장소에. 너희랑 최대한 비슷한 녀석들로 데려와."
그렇게 하면 굳이 손발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 필요가 없겠지.
그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 그냥 팔다리 못쓰게 해주면 굳이 안해도 돼."
그래도 이렇게 말하면..
"데, 데려올께요! 데려오겠습니다! 꼭 데려올께요!!"
"네! 꼭 데려올테니까! 사, 살려주세요!"
다시금 바뀌는 표정과 싹싹 비는 손 모양은 어느정도 믿을만 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겠지.
그래서 라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잘 되고 있어...!'
그 후 라나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골목을 나섰다.
* * * *
그리고 그 시각.
<학교: 교장실>
"그래서 학교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는 이사장 자리를 차지하려면..."
"..."
"흠... 그냥 마력을 쓸까... 아니 일시적인 마법으로는 해결 못해... 최면 마법도 유지할 마력이 있어야 하니까... 으음... 그럼 돈... 아니 그냥 심적으로 굴복을 시키던가... 방법이 특히.."
위이이이이이잉-
"아, 거 오늘 밖에 사이렌소리가 왜이리 많이 들려? 누가 팔다리 부러져서 구급차 실려가기라도 했나.."
"으읍.. 읍..♡"
"자영. 그래서 교장은 언제... 읏.. 오... 많이 늘었네. 잘하고 있어."
정수역시 그 나름대로 일을 척척 진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