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재력이네 (8)]
라나는 그 때 보았다.
자신의 학교에서 빠져나오는 그 순간.
돌맹이같은 괴물의 잔해를 해쳐나가 파편을 손에 넣고 그렇게 그렇게 자리를 이탈했을 때.
그러니까 온몸이 부숴질듯 아프면서도 또 다시 그분을 위한 파편을 획득했으며, 더군다나 가까운 곳에서 그분이 자신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도망칠 수 있었을 때.
'어?'
어라? 하고, 그렇게 목격한 것이다.
정수와, 정수의 옆에 있던 낮선 여성을.
"..."
라나는 일단 그 자리를 벗어났고, 미리네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라나에게 수고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라나의 신경은 온통 그곳으로 쏠려 있었다.
'누구지? 누구였지? 왜 그 분하고 같이 있는거지? 늙은 여자. 같은 하수인도 아니었어. 뭐야? 누구야?'
매서울 정도로 날카롭게 그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음... 나, 난 먼저 돌아갈께 라나야? 그, 푹 쉬어. 마법화살인지 뭔지 썼더니 온 몸이 진짜... 당장 기절할것 같으니까.."
"네."
"그래 담에 보자."
미리네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돌아갔고, 라나는 홀로 남아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 정수. 최근에 있었던 일. 학교에서 일어난 일. 모든 일들에 대한 것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떠오른 것은 '괴롭힘' 이라는 단어였고, 정수가 그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까진 아니더라도, 2학년 중에 한 명이 무리를 이루어 학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 있었다.
그 분이 정수의 몸을 차지했다는건 어느정도 자연스래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그 분이라면...' 그분이라면 아마 접촉했을지도 몰라, 그분이라면 혹시, 그런 녀석과 이야기 하게 되었을지도 몰라. 그 녀석이 무언가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녀석을 이용하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 싫어."
까득- 라나는 손톱을 깨물었다.
뭐, 아무리 생각해봐야 답이 나올 수 없는 종류의 생각이었다. 만약 라나가 한 생각이 맞더라도 그런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이 불쾌하기 그지 없다.
"하수인도 아니잖아. 그런 여자는.. 그런 사람은 당신의 옆에 있으면 안되는데... 하수인이 아닌 이상..."
기분나쁘다. 유일하게 허락했던. 그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혹은 그분을 도와줄 수 있는 신실한 존재인 하수인도 아닌 여자가!
'... 그 2학년은 이름이 주재력이라고 했었던가?'
띠링-
['타고난 직감']
주재력. 아마도 그 녀석과 관련있는 여성.
'그녀의 언니? 아니면 어머니?'
아마 그정도. 같이 있으면서 학교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서성이고 쭈뼛 거리고 있을거라면... 그 분과 같이 있으면서 얼굴을 붉힐만한 사람이라면..
아, 그래... 그래봐야 그 정도겠지.
아예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자, 생각해보자. 이제 부터 라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이자."
죽여버리자.
그 여자가 어떤 여자건 상관 없다.
하수인도 아닌 여자가 그 분의 옆에 있다는 것은 분명 아주 안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분을 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분의 하수인 뿐.
파편을 회수할 수 있는것도... 아무튼 전부..
...
아니 이 모든 생각이 다 뭐람. 다 필요없는 이야기지.
"싫어!"
싫다.
하수인 이외의 다른 여자가 그에게 꼬이는 모습이. 싫어.
간단하게 말해 질투나.
그러니까
"처리해야지."
검을 들었다. 그 분의 옆에 있을 수 있는건 오직.. 라나.. 뿐은 아니고 하수인 뿐.
라나는 그대로 한걸음씩 걸어갔다.
자신의 직감으로 선택한 그 수상쩍은 곳으로 향했다.
마을에 있는 모든 집은 알고 있다. 그 가족 구성원도 어떤 사람들인지도 전부 다.
어려서부터 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외워놓으라는 부모님의 명령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따라왔으니까. 그러니까..
"분명 이쪽.."
라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 * * *
라나는 특별히 흥분하지 않았다.
분노에 미쳐있다던가 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저 냉정하게 할 일을 하려고 하는 듯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나서,
자신이 어떤 일을 실행하고 난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지.
'그럼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마왕님이랑 나랑 아무런 문제가 없으려면... 관계부터 제거해야 하는데...'
단적으로 예를들면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수사망을 피할 수 있을지. 의심받지 않을지. 거의 그런것.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하수인으로써 활동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 아무튼 라나는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선 라나는 그 코트를 벗었다.
검은색. 타인의 인식을 방해하여 같은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게 만드는 그 옷을 말이다.
그리고 그 귀족마을의 입구로 향했는데, 경비원들은 라나의 모습을 당연히 알아보아 문을 열었다.
라나는 마을에서 조금 유명하니까.
유명한 집에, 유명한 학생. 유명하다는 의미가 어떤의미로 유명한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을것이다.
학교. 학원. 그게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 있는 매일매일. 그런 삶을 보내고 있는게 그녀라는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사실.
라나는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소녀이기도 했다.
"..."
"그 집 딸 들어간다. 돌발행동 못하게 잘 봐야.."
"야. 야 관둬. 뭔 감시야. 감시는.. 어차피 쟤는.."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라나가 겪는 모든 일들을 견딜 수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게 보통 아니겠는가?
감금되다시피 틀어박혀 있고 매일 매일 비정상적일 정도의 공부량을 강요받고, 폭력과 고함이 매일같이 울려 퍼지지만...
라나는 거기에 대해 한마디 하고 있지도 않으니 얼마나 신경쓰이겠어.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었고,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 하지만 정작 라나 본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순종하는 것을 택하고 있었으니,
그저 신경쓰이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던 사건들이고, 일어나려다가 결국 일어나지 않게된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런데 또 우스운 이야기가 있는데..
라나의 부모님들은 그런 라나가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며 철저한 감시까지 부탁해뒀으니, 환장할 노릇.
그래도 라나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라나는 잘 참고 있는거야. 언젠가 우리가 뭘 해줬는지 알고 눈물흘리며 고마워 할거고."
... 아무튼 상관 없는 이야기지. 아무튼 라나는 그렇게 문을 지나쳤다.
그녀를 동정하는 사람들로 인해 감시받지도 않았다. 품 속에 있는 보석을 쥐어 검을 뽑아 들어도, 누구도 눈치채진 못하겠지.
카메라의 사각 따위도 대강은 외워두었으니...
'집에 들어갈때 쯤 다시 옷을 입고...'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쉬울 테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도 괜찮으리라.. 집에 들어가 문을 닫음과 동시에 검은 코트를 걸쳐 입고 다시 나왔다.
-"라나야 들어왔니?"
라고 묻는 어머니의 말을 무시한채로 말이다. 라나는 그렇게 재력의 집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서 조금 고민.
'잠깐. 내가 정말로 그 사람을 죽여버리면 그 분께서 슬퍼하시거나 실망하시진 않을까?'
지극히 평범한 생각.
'내가 너무 흥분했을지도 몰라, 깜짝 놀라서 당황해버린걸지도 몰라. 차분하게 생각했어야 하는데, 아차 싶어서 죽일 생각만 한걸지도 모르겠어'
당연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지. 죽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냈다.
'혹시 실망하실지도 몰라, ... 그럼 어쩌지?'
... 그리고 마음을 바꾸었다.
'팔만... 아니 눈만 베어버리는건 어떨까..'
죽이는건 역시 너무하지 않을까? 그냥 팔이나 다리 하나를 베어낸 후에 그분. 마왕님과 이야기 하고 나서 죽이든지 말든지 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래. 그렇게 하자. 그냥 다리를 자른 후에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마왕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죽이자. 그럼 안심이야. 문제 없을거야. 모르는게 있으면 물어보는건 당연한거니까.'
모르는게 있으면 물어보듯이. 일단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만 잘라놓고 마왕에게, 정수에게, 카론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기로!
그렇게 생각하며, 라나.
띵동-
평범하게 벨을 눌렀다.
-"네에~!"
인터폰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가들렸고, 그와 동시에 라나는 정원 입구의 철창을 부수고 들어가면서. 보석으로 부터 검을 뽑아 성큼성큼 다가간다.
그리고 현관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검을..!
"라나!"
"아...!"
정수가 나타났다.
"마침 잘 왔다. 큭큭. 들어오도록. 널 위해 식사를 차려두었으니!!"
그리고 초대받았다.
"?? ?"
뒤에 있던 자영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
무언가 깨닫고, 풀썩- 넘어져 떨기 시작했다.
* * * *
꿀꺽-
"큭큭큭... 최고 품질의 야채가 많아서 하기가 편하더군, 손질할 필요도 없어서 빨리 해낼 수 있었지. 고급 고기를 사용했으니 먹도록."
"네?"
일단. 자영은 침을 꿀꺽 삼켜넘겼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진수성찬의 요리들이 먹음직스럽게 보여서 넘겨 삼킨 침이 아니라, 두려움에 긴장한 상태로 넘겨삼킨 것이다.
왠 여성이 다가오더니 검은 피가 흠뻑 묻어있는 검을 휘두르려 했고, 얼떨결에 집에 들여버렸다.
흘끔 마당정원쪽을 살펴보면 대문이 박살이 나있질 않나.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 정수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직후에 이런일이 생기니 더더욱...
"..."
자영은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라나 역시 침묵상태였다.
'들켰어!'
자신이 무슨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고 있는지. 그에게 들켰다는것이 썩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는걸 알고 있는지,
라나는 당황했다.
자영을 죽이려 한 것을 모두 보이고 있었겠지. 자신의 생각같은건 금방 꿰뚫어보고는 행동마저 예측하여 자신을 막기 위해 이곳에 와 있으신 거겠지!
'역시... 역시 마왕님은! 내 모든걸 속속들이 알고 있어!!'
그 덕분에 속으로는 다시금 광신에 가까운 믿음과 찬사를 쏟아내기 시작했으며, 마음이 술렁거려 뺨을 발그스레 붉히긴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빨리 먹어."
정수가. 그 마왕님이 자신의 앞에 앉은 채로 라나를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한 것을 보고는...
"읏.. 아.. 그, 네. 네..."
천천히 식사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라나는 많은 계획이 있었다.
첫번째가 실패할 경우의 두번째 계획이나 계획을 성공한 후의 다른 계획도 있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호감도를 유지시킨채로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다른 년을 떼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계획.
비정상적이고 비논리적이며 평범하게는 이해되지 않을 뒤틀린 계획이나 생각은 많이 있긴 했는데..
"아..."
앞에 두고 보니 그 모든 계획들이 새하얗게 물들어 버리는 바람에 바로 옆에 있던 그녀에게 손끝하나 대지 못하고 젓가락질을 이어가고 있었다.
"큭큭. 맛있냐!"
"마, 맛있어요."
맛같은걸 알 수나 있었을까.
다만 매일같이 똑같은 야채와 드레싱 따위만 먹었던 라나의 입과 몸에는 분명히 반응이 왔겠지.
"크하하! 살찌는 맛이 네 몸을 구석구석 잠식하고 있겠지! 입은 그럭저럭이라 말해도 몸은 분명히 반응하고 있잖아! 크하하핫!"
"네... 네"
"그래도 한동안 육식은 먹지 못한듯 하여 넘어가기 쉬운 요리로 준비했다. 여기에 있는 자영이 많이 도와줬지. 내가 모르는 이세계의 요리들을 알려줬거든."
게다가 앞에서 친절하게 요리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 하며...
"처음엔 도시락을 할까 했다가, 내가 이 집을 차지할 생각을 했으니, 차라리 널 초대해서 같이 먹는게 더 나을것 같기도 했고. 가깝잖아. 그렇지?"
"네!"
"크하하! 오늘은 특별식이고 다음부턴 학교의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가져다주도록 하지!"
"네에!"
"네 부모님이 챙겨주는 쓰레기 같은 도시락은 매일같이 버려도 좋다! 식단은 한달 동안은 정해진 걸로 하고 다음부터는 기호식품을 따로 받아 식단편성에 영향을 줄 테니 그렇게 알도록 하고!!!!"
"네에에에!!!"
"자, 그럼 맛있게 먹어."
"맛있어요! 마왕님!"
자신이 먹는 모습을 아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있는 정수.
"많이 먹어. 꼭꼭 씹어서."
"네!"
그것이 라나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버리고 말았다. 자영이니 뭐니, 하수인이 아니고 자시고 아무래도 상관 없어져버린 것이다.
라나는 그냥 그렇게 기름져지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헤프닝의 마지막을 장식해줄 사람은...
-"뭐야! 왜 대문이 부숴져 있어!? 엄마! 엄마!!"
주 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