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라나(4)]
쉬는 시간.
그 어수선한 수업시간이 끝나고 나면 종소리와 함께 시작된 중간시간.
무언가를 할때에 있어서 끊임없이 하는 것 보다 한시간 한다면 1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컨디션을 망치지 않고 더욱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휴식역시 상당히 중요하다는 뜻이었고,
그런 시간을 만끽할겸. 나는 가방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나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 그냥 가자. 여기선 뭘 할게 없어'
이따금 도시락만 전해주면 될것 같고, 굳이 다닌다고 해서 도움될건 없어보이고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해가 될 일도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정수야."
그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누가 가로막았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 없다.
'많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반에 있던 아이들이 대다수 일어서 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표정은 어둡지도 슬퍼하지도, 괴로워 하지도 않고 이죽거리는 듯한 웃음으로 무장한 것이었으며,
내가 뒤를 한번 돌아보니, 그 여자애가 책상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그 외에는 자신의 자리에 앉은채로 나를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뭔데?"
무심코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이 상황은 굉장히 생소한 것.
용사였던 시절, 마법학원에 다니면서 그 고통스러운 책상의자에 앉아 있었으면서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봤을지도 몰라,
같은 반의 평민을 좀 괴롭히겠다고 귀족들이 나서는 모습.
그래도 귀족들중 몇명은 평민 알레르기가 있어서 일부러 피해다니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까... 굳이 신경쓰진 않았지만..
조용히 뒤에서 수근거리는 일도 있긴 했겠지만..
아무튼 생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의 생각이 끝나고 나면,
"큭큭... 뭔데? 래. 이 새끼 진짜 미쳤나봐 재력아."
"정수, 그동안 감 많이 떨어졌네. 아니 진짜 며칠 가출했다더니 기억이라도 까먹고 온거 아니야?"
"야, 그럼 다시 기억나게 해줘야지. 점심시간에 할까?"
돌아오는건 조롱에 가까운 수근거림.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목덜미 부근을 긁적이며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무리.
무리의 지도자는 어디에나 있을테니, 그가 누구인지 살핀것이다.
물론 어렵지 않게 찾은 것은 '주재력' 이라고 하는 잘생긴 녀석.
'어쩐지 마음에 안들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느낀 기분나쁜 기척은 이것을 뜻하는 것이었던 모양이었고...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수야 어디갈건데?"
그러자 재력이 나서서 물어보았다.
"3층, 3학년 4반에 갈거다."
담담히 대답해주니, 재력은 살짝 놀라기라도 한듯. 자신의 친구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이번엔 다시 어이없는 미소와 함께..
"거길 왜?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누구 잘나가는 선배라도 잡았냐? 졸업하고 조폭이라도 되신데? 존나 웃기네 이새끼 진짜... 너네 집 열쇠는 왜 숨기고 갔냐? 진짜 죽고 싶을때까지 해줘?"
그렇게 시비를 거는듯 말한다.
"특별히 그런 사람은 없다. 선배도 아니고, 너희... 쉬는시간에 휴식을 취하지 않고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니까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그리고 내가 대응하는 순간.
빠악-!
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내 뒷통수로부터 난 소리.
고개는 저절로 숙여졌고, 시큰거리는 아픔이 뒷통수를 따끔하게 만들기에 고개를 들면, 막 나의 뒤에서 부터 달려온 한 남자가 나의 뒷통수를 후려갈기면서..
"존나 소리. 큭큭 개웃기네"
웃는다.
"하하하!"
"큭큭큭1"
"정수 표정봐! 핫하하!"
웃는다.
"야 야.. 봐봐.."
그리고 다시 정면에서 달려오며 발을 들어 로우킥을 하려고 했는데, 거기에 대응하지 않고 그대로 그의 발차기에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면...
"푸하하하하!"
"넘어지는거 존나웃겨 진짜. 하하하!"
웃는다.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이
웃는다.
어떤 여자는 자신이 마시고 있던 제티탄 우유를 가지고 오더니 나의 머리위에 붓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그런 나를 불쌍하다면서 바닥을 닦아 한참 더러운 걸래로 나의 뺨을 닦아주려고 하질 않나,
그러면서..
"정수 존나 냄새난다."
"어우 야. 좀 씻고 다녀, 오늘 정수 집 가서 좀 씻겨야 할듯."
"동영상 찍어줘야지 또. 아참, 옛날에 찍은거 다 뿌렸어 정수야. 너 갑자기 가출해서. 이제 새로 찍어야돼."
웃는다.
웃고, 웃고 또 웃는다.
...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지. 이 세계의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모여서 이런 그릇된 행위로써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가학심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신경쓸건 아니다.
이 몸이야 그냥 다른걸로 갈아탈 수도 있는 몸이고, 그냥 그러려니 생각해도 그만인 일 아니었겟는가?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약한 육신은 그런 가벼운 발차기에도 힘이 풀려버린 것이다.
그래도 걸을 수는 있었기에,
절뚝 거리며 앞으로 걸어갔고,
그런 내가 지나갈 수 있도록 재력을 포함한 이들은 나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래, 그냥 도시락만 주고 가자. 여긴 좀 별로야, 대체 왜 웃는거야 이 미친놈들, 사천왕 중에도 그런녀석 있던거 같은데... 여전히 이해를 잘 못하겠..'
생각을 하면서, 약간 인상을 쓰고 절뚝거리며 3층으로 올라갈 계단을 찾았다.
이미 시간이 제법 지나지 않았는가?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주고 나면, 라나가 점심시간에 알아서 잘 먹기야 하겠지 생각하면서 걷는 그 순간..
"정수 정수!"
"...?"
그 순간.
뒤에서 달려온 한 남자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니... 내가 눈치채기도 전에..
빠악-!
하고,
내 몸을 건드는것이 아니라, 내가 손에 쥐고 가던 가방을 걷어 차 버린 것이다.
"..."
남자가 걷어찬 가방은 내 손을 벗어나 복도 끝까지 날아가 버렸으며, 그 안에 있는 도시락이 어떻게 되어있을지는 안봐도 뻔하다.
그런데도 직접 확인시켜주고 싶었는지 열려버린 지퍼 사이로 내가 싸온 반찬이 복도에 흩뿌려지기 시작했으니..
저건 내가 이른아침 마트에가서 제일 좋은 재료를 고르고 골라 미리네의 주방을 빌려 라나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첫번째 도시락중 하나, 어느하나 시스템이나 다른 것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수 정성들여 만든 반찬.
개인적인 정서까지 고려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허."
이건,
좀
선 넘었지.
"정수! 시발! 도시락까지 챙겨왔어!? 오늘 너 먹을건 내가 다 준비해놧는데!? 야! 존나 섭섭하네!"
나의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조롱하는 남자.
"돌겠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머리칼을 쓸어올렸고, 눈을 깜빡이며 다시금 상황을 보았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도시락 가방의 지퍼가 열려있고, 그런 내용물이 쏟아져 있는걸 보면서, 주머니에 손을 꼿고 있는 재력은 천천히 다가가 그 도시락 통을 발로 툭툭 건들고 밟으면서 키득거리는 중이었다.
'후우우우...'
왜 이런일을 당하고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 쟤들도 이해 못하겠지.'
쟤들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눈을 감았고,
다시금 뜨면, 이제는 그 녀석들 다시 한 무리에 모여 '네가 어쩔건데?' 라는 듯한 모습으로 날 노려보았으니...
"아, 복수. 할 일 없을줄 알았는데."
난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이죽거리는 그 미소로 잘생긴 그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 주재력.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무리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조소를 멈추지 않는걸 보며...
차분하고 냉정하게...
'쟤 조져야겠다.'
결심을 했다.
난 마왕.
복수를 위해 마왕이 되었으며,
복수를 위해 이곳에 있을진데,
또 복수를 하게 만들어 주니,
얼마나 고마울 따름인지.
내 수많은 칭호중 하나,
복수의 마왕.
처음으로 그 이름값을 해볼까 한다.
* * * *
그 시각,
<라나의 반>
"..."
라나는 오늘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책의 제목은 [살인과 살육] 이라던가 [존속살해자의 이유], [부모님을 실수로 죽이고 트럭에 치였는데 이세계 환생했습니다.] 라는 등의 추리소설같은것이 대부분.
"라나야! 이 문제 답 뭔지 알아?"
"라나! 공부 같이 할래?"
"라나야! 과자 같이 먹을래?"
그리고 그런 라나에게 모여드는 이들역시 많았다.
라나는 당연히 반의 중심.
성적은 전교 2등, 성격은 어떤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흠잡을데 없는 성격이었으며, 외모는 아름답고 다가가기 어렵지도 않다. 집안은 돈이 많은 재력가 집안이라 가까워지려는 이들도 많은데, 결코 자랑하는일은 없이 배풀기를 잘 했고, 미워하는 사람 없이 단아하고 단정한 모습 그대로,
집안에선 학교에 대한 기부도 많아, 선생님 학생 가리지 않고 인기를 독차지 하는 수준에 가까웠다.
물론 라나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라나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일상.
다른 삶이 뭔지 모른다. 따돌림을 당한다던가, 누군가에게 미움받는다던가의 상황 자체를 겪어본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당연한듯이 그 관심을 받고, 당연한 듯이 웃음을 지으면서 지냈다.
읽던 책을 잠시 옆에 덮어두기까지 하면서 성심성의껏 반응해주고 있긴 했지만...
말했듯이 신경쓰지 않는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생길까...'
그냥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현재라나의 생각.
지금 라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라나에게 있어 일상이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것.
"역시넌 내 최고의 친구야!"
"후후, 나도 그래."
누군가가 낯부끄러운 소리를 하면서 친한척을 해오고 그렇게 대답을 해주면서도... 실제 생각은..
'다음 주말엔 얼마나 많이 죽일 수 있을까'
등의 '내일점심 뭐먹지?' 수준의 생각이었다.
그런 라나...
할 일없이 첫번째 수업을 마쳤을때.
그 때 역시 라나의 주변에는 사람이 가득히 있었지만..
이날따라 라나. 괜히 몸을 일으키고 싶었다.
"나 잠시 화장실좀 다녀올께"
평소 화장실은 3교시가 끝난후가 아니면 가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냥 이상하게 평소의 루틴을 깨고 싶었던 라나,
그냥 일어서서 화장실로 가는 때.
수많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라나의 주변을 맴도는데, 라나는 멈칫. 걸음을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는 우연히 창밖을 보게 되었고...
"어?"
라나는 창 바깥의 풍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라나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학교의 운동장을 가로지르면서 자신의 머리칼을 연신 쓸어올리며 걸음을 걷는 교복입은 학생 말이다.
"아...!"
그리곤 알아보았다.
그라면 아무리 멀리서라도 알아볼 수 있지, 어디에 있더라도 그의 존재를 느낀다고 여길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사냥이나 파편을 수집하는 임무가 아닌때에 만날 수 없었던 그...!
하지만 이게 무슨 우연이란 말인가,
이 어떤 행운인지!
비록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아아아!"
라나는 뺨을 붉히며 소리를 내었다.
"라, 라나야?"
"라나 괜찮니?"
"어디 아파? 가슴만질래?"
"양호실 갈래 겠지 이 미친년아!"
그리고 털썩 무릎꿇었다.
그리곤 벽에 머리를 대고는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맞잡아 기도드렸다.
'마왕님!!'
이 행운에 감사를..
이 변덕에 감사를 하면서 라나는 속으로 쾌제를 지르면서 멀리 가고 있는 그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 순간..
'엇..♡'
평소와는 조금 다른...
원래 있었던 그에대한 감정과는... 그 광신이라는 믿음과 신격화가 아닌 조금 다른... 그런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두근-
심장이 두근거린다던가..
쿠웅-
아랫배가 쿵쿵 거린다던가 하는 그런 어떤 흔한 감정..
"아..."
라나는 사랑을 시작했다.
아직 그 정체를 눈치채진 못하겠지만, 그 타오르는 감정이 사랑이라고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분명 이 그리움, 기쁨 만큼은 분명한것이었겠지..
'너무 좋아♡ 빨리... 다음엔 더 빨리 죽이러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아, 나의 신. 나의 마왕님...!'
아무튼 라나는 기뻐했다.
멀리서, 무려 평일에...! 사냥하지 않는 시간에! 그의 존귀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으니..!
라나에게서는 행운의 날이 되었다.
"라나야?"
"엇... 가슴이 안돼면.."
"꼬..."
"미, 미친놈..!"
"저 미친새끼 성희롱으로 신고해 라나야!"
라나의 주변에서 시끄럽게 구는 이들도, 오늘의 라나, 더욱이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이 되어서,
"응 그러자."
"그래!"
밝게 웃었다.
일주일치 버프가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