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라나(3)]
첫번째는 도어락기능과 같이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지문을 등록하는 것이었으며, 그 외에는 다이얼 식의 자물쇠와 특수 열쇠가 필요한 특수 합금으로 만든 자물쇠등이 있었는데,
도어락의 비밀번호는 라나의 어머니만 알고 있었고,
지문 역시 라나의 어머니의 것만 등록되어 있는 제법 삼엄한 장치.
라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전날 양념치드향 공부방의 문과 자물쇠를 통째로 부수고 나와버렸기 때문이 아니고 뭐였겠는가,
라나의 어머니는 라나가 또다시 문을 부수고 나올가봐 이번엔 더 강한 나무인 불양념치드향 나무를 사용했다. 잠금은 여덟게나 되었고, 그로써 라나가 스스로 자물쇠를 부수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정해진 시간 보다는 조금 부족했지만 오늘정도는 괜찮아."
"네."
하루 정해진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는 절대 나올 수 없게끔...
라나는 그런 공부방을 나왔다.
어머니 없이는 방에 들어올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으며 공부방에 들어가는 것도 나가는 것도 전부 어머니의 뜻대로 였지만,
특별히 신경쓰지도 않으면서 오늘의 기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기분좋은 미소를 지어보이기만 했다.
"후후, 그렇게 마음에 들었니?"
"네?"
"아니 저번에 산 갈릭치드향 공부의자 말이야. 지능이 10%오른데"
"아, 네."
'그랬었나?' 라나는 자신의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기억엔 없는 일.
평소 자신의 주변이나 무언가가 바뀌면 아는척하거나 반응해주는 것이 어머니가 좋아했기에, 그렇게 해오고 있었지만, 이번엔 정말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뜻깊은 일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일까,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던 덕분일까, 그게 아니면 그분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바뀌든 말든 뭐가 상관이람.
관심없다. 기억하고 싶지도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라나,
그냥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정말 좋았어요."
그냥 이렇게 말하면 어머니는 언제나 만족해주지 않던가?
"그렇지? 호호! 신경썼단다. 네가 저번처럼 반항하지만 않으면 점점 더 좋은걸로 바꿔줄께."
철컥-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철창의 잠금을 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분좋게 1층으로 향했다.
"채식이 여러모로 좋지만 건강을 위해 가끔 동물성 지방도 먹어야겠지. 영양소 보충용 알약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렴. 엄마 그렇게 어리석은 채식주의자 아닌거 알지?"
"네. 맛있을것 같아요."
그렇게 도착한 식탁에서,
말없이 라나를 응시하는 아버지와 싱긍벙글 미소를 띄고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라나는 한 호흡 쉰 후에...
"기도 할까요?"
"그래 오늘은 라나가 먼저 하렴."
아버지의 허락을 맡은 이후에 기도했고,
그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조용하고 말없는 그런 식사 말이다.
...
그런 도중에,
라나의 아버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라나,"
"네?"
"학교에 친구들은 많이 있니?"
"네. 그럼요."
"가려 사귀고 있지?"
"네."
라나, 평소처럼 대답했지만.. 이 다음.
"그럼 혹시 그중에 '마정수'라는 친구도 있니?"
"아."
땡그랑-
라나는 들고 있던 포크를 놓쳐버렸다.
당황한 탓이다.
'그분의 성함.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실때의 이름인데...?'
어느때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던 라나였지만, 지금만큼은 당황하고 말았다. 무심코 포크를 놓칠 정도로 말이다.
라나는 순간 보지 못했지만 두 부모님의 눈빛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라나가 당황하다니... 불행하게도 라나는 그런 모습을 모두가 모이는 식사자리에서 들켜버리고 만것이다.
라나는 포크를 집어 들었다.
라나 답지 않게 혼란해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 것인가, 뭐라고 해야 이 상황을 넘길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도통 대답을 내리지 못하고 멈칫 당황해 포크만 잡아 올려 식탁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 분. 그에게, 그 카론에게 관련되어 있는 일이니... 라나는 그렇게 고개를 들어 두 부모의 눈치를 살폈다.
'어쩌지, 그냥...'
그래 차라리 그냥 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벤토리 보석에서 무기와 장비를 꺼내어 일을 저지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까지 하던 그 도중.
"그래, 그 애는 어떤 애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네?"
"남자애니? 집에 돈은 많아?"
"부모님은 뭐하신다고 하니?"
"친하게 지낼 가치가 있니?"
"너보다 무엇이 더 뛰어난 애니?"
라나가 당황한 것 치곤,
그런 라나를 목격한것 치곤, 지극히 평범하고 평온한 평소와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라나는 안심했다.
'안해도 되겠다.'
쓸데없는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옅게 웃음지었고, 그 다음에는 이야기를 꺼냈다.
...
라지만 뭐 얼마나 할게 있겠어?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리 말하는 수 밖에 더 있겠는가
하지만 역으로 돌아오는 말들은 또 이런것들이었다.
"가난하면 멀리해라."
"가난한 사람도 도움이 될때가 있지만 지금은 아니야. 반에 휘혈이라는 애가 있던데... 그 애랑은 많이 친해지고 있겠지?"
"성적이 어느정도야?"
"..."
흠을 잡으려고 하는 듯한 모습. 라나가 당황한 만큼 그녀의 부모님들은 정수라는 남자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나의 평소 행동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 당황하는 모습과 그 표정에 일어난 미묘한 변화에 관심이 생겼다. 기 보다는 경계하기 시작했단게 옳겠지.
주말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집까지 찾아오려는 비슷한 나이의 남자. 였다고 경비원실에서 듣고 나니, 두 부모님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뒷조사를 할 생각으로 가득차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겉으로는 이렇게 말해야겠지.
"알아서 잘 해낼거라 생각한다."
짧은 당부의 말을 하면,
라나 역시
"네, 걱정마세요 아빠."
싱긋 미소지어 대답하고,
그 후에는 다시 정적.
아니...
하하호호 하는 단란한 가족간의 식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라나의 집 가정부는...
"...아!"
털썩-
결국 쓰러져 버렸다.
"숨막혀서 못해먹겠어요..."
* * * *
...
그게 라나가족의 식사시간이다.
단란한 가족의 식사시간.
라나는 그런 30분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 후에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어머니와 함께 2층으로 가는 창살의 잠금을 풀고, 그 다음에는 라나의 방으로 들어가 여덟개의 잠금을 풀고 공부방으로 들어가면, 다시 여덟개의 잠금장치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후우우..."
라나는 혼자가 되었다.
펜을 잡고, 스텐드 불빛에 의존하며, 양념치드향 나무의 냄새를 맡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문이 있는 곳에는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있었지만...
아마 라나가 그 너머를 볼 필요는 없었겠지..
그저 라나는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아니 오늘은...
'그 분이 가까이 오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어떻게 해야 칭찬받을 수 있지? 어떻게 해야... 그분의 마음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하아아♡"
괜히.. 학교에 가는것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학교는 라나에게 있어서 거의 유일한 자유시간. 그곳에서 그 분을 위해 무슨 일을 할지 계획을 세우는것만 해도 즐거워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신비한 힘으로..
아니 어쩌면 사랑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믿음과 신앙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그 분이 점차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으니...
내일 학교가 더더욱 기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간다.
* * * *
그 다음 날,
스알 고등학교>
"후우우..."
학교의 전경을 바라보는 동안엔 생각이 좀 많아진다.
나는 지금 어정쩡한 책가방을 등에 지고서는 학교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커다란 운동장, 등교길을 올라가는 수많은 학생들과 선생님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상한 개량 한복을 입고 뒷짐지면서 그냥 쓸데없이 학생들에게 시비거는 사람...
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가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이 일이 있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우선은 학교에 갈 결심을 했었고,
미리네에게 밥을 해주며 상담을 했었다.
미리네는 '너 원래 집 있지 않았냐? 그 몸 집' 이라는 말을 했고, 나는 아차 싶어서 내가 떨어졌던 장소로 갔고, 나의 집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몸의 기억을 내가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라, 집의 열쇠는 커녕 비밀번호도 알지 못했는데,
그 때는..
'요즘 멸종한 열쇠수리공이나 불러야 겠네, 5만원이면 자물쇠 따준데.'
라고 미리네가 말했기에,
'니가 힘줘서 부숴.'
'아참 나 힘 쌔졌다고 했지.'
미리네가 가진 마력의 힘을 이용해, 조금 끙끙 거리면서도 문을 강제로 열어 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 찾은 것은 낡고 헤진 교복.
'이 색깔이면 너 2학년인듯. 근데 왜이리 낡았지? 물려 입었나...'
조그마한 원룸방과 정돈되어있지 않고 담배와 벌레들이 가득한 지저분한 방은 뭐 그러려니 하고, 사진같은건 없고 혼자 사는 듯한 살림살이가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방안에 신발자국은 여러개로 가득하고 벽이 쩢어져 있거나 이상한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등.
여러명이 같이 뒹굴고 있던 흔적도 나 있었지만...
뭐, 아무튼 그러려니 하고 교복을 찾아 적당히 입었고,
그 후에는..
'스알고가 어디야?'
라고 미리네에게 물어서...
'근처 학교.'
찾아오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앞에서 한 숨을 한번 내쉬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있건 말건, 이젠 라나를 위해 할 수 잇는 일중, 가장 부담없고 간단한 방법이 이런것뿐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한 후에,
책가방 속에 책대신 들어있는 보온 도시락의 따듯한 기운을 느끼면서 한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띠링-
['보온 도시락통' 30pt]
[넣어두면 온도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첨단 보온용 용기! 주로 도시락을 싸는데 사용한다.]
'라나녀석, 어제도 이상한 알약이나 먹고 말이야. 좀더 고기를 먹으라고... 영양소만이 아니라 가끔은 지방도 필요한게 당연한건데... 그렇게 허약한채로 마물과 싸우면 결국 일이 터질거야...'
학교에 '등교' 했다.
* * * *
<스알고: 2학년 복도>
영상을 보면서 많은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복도를 거닐었다.
라나는 무사히 자신의 반에 도착한 듯 했다. 영상으로 보건데 3학년.
'연상이군' 이 육체보다는 한 학년 위. 4반쯤 되는 모양인데 뭐 아무튼간에... 이 학교는 보통 급식을 운영하고 있지만 자율급식체제로 도시락을 먹고 싶은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한번 책가방속의 도시락을 느끼면서 앞으로 걸었는데..
"내 반은 어디지"
내가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띵-동-뎅-동-
종소리가 울리고..
"흠..."
복도에 혼자 남았다.
"..."
뭐 여기 서 있으면 선생님이든 뭐든 와서 나를 반으로 데려가 주겠지. 학생의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이 많을리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
라고 생각했었는데
"너 뭐야, 몇반이야?"
"나도 몰라."
아니었다.
* * * *
자,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이 있었던 첫 등교날이었다는 뜻이다.
어찌저찌하여 겨우 내 학급으로 들어왔고,
내가 반에 들어갔을땐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몇명이 키득거리며 웃긴 했지만, 비어있는 자리가 하나 뿐이었기에 자리를 찾는건 쉬웠다.
"책상이 좀 지저분하군."
책상에 이런저런 낙서가 많은것 빼고는 괜찮은 곳이라고도 생각했다.
... 짐짓 나의 원래 세계를 떠올려 보건데,
마법학교의 마법강의실에서는 어떤 미친자가 책상과 의자를 일체화 시켜놓는 정신나간 짓을 하고, 또 그 정신나간 디자인의 의자를 인근 마법학교에 보급을 하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니,
"휴유, 이 세계에 그런 미친 물건이 없어서 다행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기도 했다.
그 후에는 고개를 들어 수업이 시작하는 것을 보았고,
그 다음에는 양옆을 살펴봤는데..
한명은 거의 죽기 직전의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일전에 만난 그 여자와.
반대 쪽에는 역시 이전에 만났던 주재력 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같은 반이었구나, 친하게 지내야겠다. 이용해먹을 수 있을테니까.'
특히 주재력의 경우에는 라나와 같은 동네에 있는 만큼 어떻게 이용을 해볼까 생각까지 했을때 쯤에는..
"야...! 야, 정수!"
"응?"
수업시간에 잡단을 하려는 불량한 녀석을 보며...
"오랜만에 한번 또 해야지?"
"뭘? 그보다 수업시간에 잡담하지 마라."
인상을 썼다.
"미친... 이런 시발새끼가 돌았냐?"
"어떤 지식이라도 넣어두면 도움이 되는걸 몰라? 매일 한심하게 게임만 하고 있는 미리네도 게임을 잘하기 위해 공략을 보는 노력을 하는데, 너는 학교에 와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시간만 때우려는 속셈이냐는 뜻이다."
"허.. 이 미친새끼 진짜 돌았네? 시발, 가출해서 뭐 싸움이라도 배워왔냐?"
이곳은 문제가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 선생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
어느 학원이고 학교고 간에 이런식의 교육시설은 어떤 이로움도 낳지 않고, 학급은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어떤 조치를 커녕. 오히려 학생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쯤오면 불쾌해진다.
이정도면 시간 낭비.
혹여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이 학교에 도착한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깨닫고 있었다.
"라나한테 도시락이나 주고 가야겠군."
굳이 이 육체에 맞춰줄 필요가 없어지. 라나에게 도시락이나 전해주도록하자.
학교라면 라나를 만나는데에 어떤 장해도 없을테니까..
쉬는시간이 되고 나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시: 스알 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