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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라나(2)] (18/112)



〈 18화 〉[라나(2)]

이 세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하수인 정도?
···

그게 아니라면 한때 나의 사천왕이었던 이들이 봉인에서 풀려 이곳에 와선 내 파편을 노리고 있다던가, 혹은 파편을 노리고 들어온 마물들의 주인이기도  악마들 정도였을 것이다.

‘아참 이 몸 원래 내몸 아니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차싶은 사실을 깨달아 금방 떨쳐버린 생각이다.


그 대신 날 붙잡았던 그녀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너··· 진짜···”

검붉은 느낌이 나는 듯한 머리칼과 갈색 눈동자. 작은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었고, 머리칼의 길이는 어깨를 조금 넘을 정도였다.


머리장식따위는 없었으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듯 했고, 팔에는 꽤 눈에띄는 팔찌를 끼우고 있다. 옷은···

‘라나가 입던 옷··· 오늘 많이보네’


내가 자주보았던 라나의 옷이었다. 인근에 있는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라나의 것과는 달리 아주 짧고 타이트한 치마를 입고 있었고, 상의를 살짝 가린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는 등 세세한 부분은 달랐지만 말이다.


“···.”


그 후에는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마치 이 몸의 전 주인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왔다!’ 라는 듯한 눈빛으로 말이다.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없을줄 알았는데 목격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모른척··· 하면 되나?’

··· 하지만 말해보길.


이 몸의 원래 주인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육체가 사망하는 순간 재빠르게 가야  곳으로 가버린 녀석이다. 의식도 영혼도, 조금의 사념도 남지 않은 아주 깨끗한 몸이며 이 세상. 나아가  차원에는 더 이상 없는 존재.


그러니 내가 자유로이 쓰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 세계의 육체가 아니었는가?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연결되어 있음은 당연한 사실.
인간관계 따위도 있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고, 눈앞에 있는 그녀의 존재는 그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너··· 정수 맞지?”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부르니, 그제서야 확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건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었고··· 적당히 맞추는 듯한 행동으로 이 육체의 인간관계를 파악한 후에 적절한 조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왜···.”


영문도 몰라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는 때엔.


“···!!”

도망쳐 버렸다.


“뭐야.”


그렇게 그냥 가버렸다.
 얼굴을 확인하고, 이름을 확인하고 난 후에, 눈물을 콸콸 쏟아내어 울고는 입을 틀어막고 이 장소에서 도망쳐버린 것이다.

 광경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도망치고 있는 뒷모습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 할 일은 하나뿐.


“반찬거리를 사야겠군.”


장보기를 속행한다.

“큭큭··· 라나 녀석 듬뿍 살찌워주마···”

* * *  *


잠시 후,

 도심>


반찬거리를 좀 사서 나왔다.


“큭큭큭··· 처음이니까 간단하게 기름진 음식으로 해볼까··· 적절한 운동과 병행하여 동물성 지방을 미친듯이 흡입하게 해주마··· 부족한 비타민이 뭔지 알아내서 제대로 영양소까지 챙겨주면 라나녀석, 싫어도 건강해진 몸으로 더욱 열심히 하수인 생활을 하는 수 밖에 없겠지··· 큭···큭큭···. 아프다는 핑계 같은건  수 없게 말이야!”


항상 말라있는 라나를 살찌우기 위한 식단을 머리속으로 짜내며 길을 걸었다.


미리네의 집을 찾기 쉬웠듯이 라나의 집 역시 그렇다.


나는 항상 라나의 일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가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를 걷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으니, 그 길을 따라 걸으면 그만인 것이다.

미리네의 후드를 눌러 쓰고,


띠링-
['17pt'를 획득했습니다.]
['마석(최하급)을 획득했습니다.]

“잘 하고 있군.”

미궁을 공략하고 있는 그녀들을 보며 걸음을 서둘렀다.


라나의 귀환에 맞출 생각이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쯤. 나 역시 그녀의 집에 도착해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음식을 먹이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게 만들어 버려야겠지.

‘흐흐흐, 잘하면 잘 할수록 휴식따윈 없이 철저하게 부려먹어야 하니까 말이야.’


라나의 모든 것을 쪽쪽 빨아먹어 날 위해 이용할 생각을 하며,


머지않아 그녀의 집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네에 도착하게 되었다.

시, 귀족 마을>시, 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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