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관리인(8)]
<검은 공간>
미리네가 달려가는 것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던 일은 하나 뿐이었다.
시스템의 기능중 또 한가지.
평범한 인간이었던 라나와 미리네가 저렇게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이유.
라나가 광기에 젖은듯이 마물의 피를 몸에 뒤집어 쓰고, 초능력자와 마물을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둘러대고 있다는 것과.
미리네가 근처에 있던 돌맹이나 칼이나 마물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던질때마다 정확히 노린곳을 맞춘다던가 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이 바로 '스킬'
나의 파편에서 비롯된 '재능'이라 말해도 되고 '기술' 이다.
난 파편을 모을때마다 강해진다. 아니 정확하게는 파편을 모을때마다 힘을 되찾는데, 아무리 되찾아봐야 완전히 부활할때 까지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하수인에게 줄 수 있는 것.
요컨테 저 둘은 나의 힘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셈인데...
띠링-
[보유스킬]
-['장렬한 투척']
-['타고난 직감']
-['왕족 궁술']
-['속성 마법 궁술']
-['노련한 검슬']
-['전이']
이것이 바로 지금 내가 나누어줄 수 있는 스킬이다.
파편을 되찾을때 마다 돌아온 내 힘이 늘어나면서, 나누어 줄 수 있는 스킬의 가짓수도 갯수도 점점 늘어나겠지.
그러니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은 하나.
신중하게.
그녀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약점이나 장점을 파악하고, 어떤 스킬을 전해주어야 최소한의 소모로 그녀들을 훌륭한 하수인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그러한 계산 뿐이다.
한번 준 이상 도로 되찾을 수도 없으니 나는 더더욱 신중하게 주어야 할 스킬을 고르게 될 것이고...
그런고로 한번 스킬을 건네어 준 그녀들을 나의 하수인으로써 끝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옳다.
"라나한테 준건 제법 귀한거니까...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초재생' 이나 '격노 재생' 같은 스킬이 아니고서는 재생계열도 없으니.."
그러니까 나는 지켜보았다.
화면속을, 라나와 미리네가 나의 파편을 쥐어버린 마물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미리네 녀석은 궁술을 하나 줄까... 그럼 활도 하나 장만... 음.. 아니, 다른 원거리 장비도 있지 않나?"
특별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라나와 미리네. 대미궁에 들어가 몇마리의 마물과 싸우는걸 보았을 때. 저 둘은 마물에게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쿠어어어-"
후에는 마물이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 * * *
"크르르..."
한 밤중에, 검은 마물이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여섯개나 되던 팔은 모두 떨어져버렸고, 몸에는 돌맹이와 몽둥이나 칼따위가 박혀 있는 채로 죽었다.
한쪽 팔은 타다 남은 자국이 있었으니,
그건 아마 기관의 초능력자중, 불을 쏘는 능력을 지닌 자가 해버린 것이었으리라,
라나는 그런 사실을 알고는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몸에 상처는 적었다.
아니, 지금도 기묘한 소리를 내며 상처가 아주 느린속도로 재생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적을만도 하지.
그런 라나의 주변에는 초능력자들이 있었다.
"드, 등록되지 않은 능력자..."
"... 허억...허억... 부, 붙잡아요?"
"당연하지. 등록 외 능력자는 범죄자나 마찬가지라고."
"근데 이 사람이 방금 저 마물을 쓰러트렸는데.."
그들은 수근거리고 있기도 했다.
그야 등록되지 않은 초능력자인 라나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당연도 하지.
그럼에도 평범한 초능력자와 달리, 연단된 [마도장비] 같은걸 사용하는 듯 했으니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이들을 보며, 라나는 생각했다.
'아, 또 이상한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어서는...'
기관의 등록된 초능력자. 다시말해 국가에서 마물과 싸우고 있는 이들을 보며 그저 '이상한 사람들'이라 칭하고는 곤란한듯이 얼굴을 구겼다.
'파편을 가져가야 하는데...'
마물의 시체가 뱉어낸 파편을 주워야 하는데, 주변엔 초능력자가 많고, 조금 움직이면 마치 자신을 붙잡으려 들것 같았기에... 라나는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면 처음보는 무기나 장갑 같은걸 낀 초능력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저 사람은 손에서 불을 쏘아냈었고, 저 사람은 막대기 끝에서 화살을 만들 수 있었지..'
라나는 생각한다.
'저 사람들도 파편을 가지고 있을까? 그럼 여기서 죽이는게 편한가? 파편은 소유한다 라거나 빼앗았다 라는 개념이 생기면 얻을 수 있다고 그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죽이면...'
조금은 편해질까.
라나는 한걸음 나섰다.
검을 쥔 손에는 힘을 주었고, 다소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의 주변에 모인 네명의 능력자들을 바라보며..
"어..."
이야기를 하려 입을 여는 순간.
"아, 씨!"
한결같이 욕을 내뱉으며 미리네가 그곳에 왔다.
라나는 그녀를 기억한다. 모자를 뒤집어 쓰고 싸움전엔 내내 욕을 내뱉더니, 싸움이 시작된 후에도 있는욕 없는 욕 다 해가면서 열심히 무언가를 집어던지던 그녀를 말이다.
쓸만했고, 또 강했다.
비슷한 느낌이 느껴져서 조금은 친근감 마저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리면..
어느새인가 미리네.
라나의 가까이 까지 와서는 한번 그녀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곤, 다른 초능력자들의 얼굴도 한번씩 보고는..
"하... 지, 진짜 못알아보는거 맞겠지.."
얼굴을 가리듯이 고개를 숙이며, 마물의 시체로부터 '파편'을 집어 들었다. 그 일련의 과정에 능력자들은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는데, 라나가 내뿜어대는 정체모를 기운을 감각적으로 눈치챈 탓이었으리라,
'움직이면, 공격당한다.'
그렇게 미리네가 파편을 집어 든 순간.
띠링-
[파편을 습득했습니다.]
띠링-
['시스템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띠링-
['강제 귀환'의 횟수가 상승했습니다.]
['회복'의 횟수가 상승했습니다.]
['정화'를 습득했습니다.]
['정화' : 하수인의 모든 상태이상을 제거합니다.]
띠링-
[곧 '강제 귀환'이 사용됩니다.]
미리네는 처음보는것을 보았고,
라나는 몇번 보았던 것을 보며...
"뭐야... 이거 뭐야... 어? 엇?!"
모습을 감춰버렸다.
"..."
"..."
모여있었고, 미리네와 라나가 사라진 광경을 목격한 능력자들은 아무말 없이 입을 벌리고 있다가..
"공간이동 능력자인가?"
"비등록 능력자가 둘이나 있다고? 한명은 공간이동 능력자고? 두 능력자가 갑자기 나타난 마물을 토벌하고 그대로 사라져?"
"너희 뭐하고 있어! 빨리 주변 정리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그리고 너, 네가 제일 먼저 왔지?"
"네? 아, 네! 그 키작은 여자 능력자가 있었는데, 뭘 던지기만 하면 던지는 족족 맞춰버리던데요? 원거리 계열 능력자... 아니 그냥 강화계인가? 아무튼 엄청..."
"넌 가서 시말서 쓰고 있어."
"네?"
"시말서."
* * * *
<검은 공간>
이 검은 공간. 육신을 얻어도 무리없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곳. 하기사 라나도 들어올 수 있었는데 육신을 가졌다 한들 못들어올린 없었겠지. 날 가두던 이 공간은 이미 나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띠링-
['파편'을 되찾았습니다.]
띠링-
[새로운 스킬을 습득합니다.]
-['왕족 검술']
-['지속 출혈']
-['상처 지지기']
-['칼날 폭풍']
그보다도 파편을 얻음에 따라,시스템 스킬의 레벨이 올랐고,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
새롭다기보단 되찾은 것이지만, 아무튼.
나의 힘이 다시 조금 더 돌아온 것이다.
그런 내가 뒤를 돌아보자.
"마왕님!"
라나,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고 나의 앞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저 이번엔 잘 해냈어요! 제가 당신의 도움이 되었어요 마왕님! 아아.. 어? 모습이 좀 변하셨나요?"
"어, 어 응... 잘해주었다. 라나! 다가오진 말고 거기에 있도록 해! 그리고 앞으론 이 몸이다. 잘 기억해두도록!"
약간 과한 반응에 당황하긴 했어도, 라나야 원래 이랬고, 마왕이었던 때에도 이런 녀석들은 수두룩 했으니 뭐.
"이번에는 정말 잘 했어! 이몸이 완전히 부활할 날도 머지 않았으니, 더욱 노력해라!"
회복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작은 상처로 일을 끝낸 라나를 칭찬해주고, 다음엔 미리네를 본다.
"여긴..."
이곳엔 처음 들어와봤을 미리네다.
검은 공간.
"내 의식이 갇혀 있었던 곳. 여기가 너희의 귀환 지점이야. 복귀할땐 직전 장소로 돌아갈테니 걱정 말고."
"하, 진짜..."
미리네는 격렬한 전투 후에 여러모로 많은 소모를 거쳤으리라, 정신이나 체력이나 양쪽 다 지쳐있었다는 셈이다.
그럼에도 미리네는 불만스러운듯 주변을 둘러보고는..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이 순간 라나의 미간이 꿈틀대는 것을 보았다.
미리네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이 나를 잡아당겼는데,
"그, 근데 다른 사람은.. 뭐, 호, 혹시 더 있고 그래?"
"아니, 라나와 미리네 너희 둘이 지금 내 하수인의 전부다. 많이 늘릴 생각은 없어."
"..."
그 덕분에 라나의 눈초리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오한이 조금 들 정도로 차갑게 식은 눈동자. 따스할 것 같은 녹빛의 눈동자로 저렇게 미리네를 바라보니 오히려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미리네는 그런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겁먹은 듯 나와 라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미리네다. 미리네는 쭈뼛거리며 라나에게 다가갔는데..
"저, 그.. 아..."
아마 마음속으로는.. '미친년아 그 따위로 달려가면 어떻게 뒤질뻔 했잖아! 네가!' 라고 소리치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마치 어른 앞에서 말을 더듬는 아이마냥 옷자락을 쥐고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싸울땐 잘만 욕하더니..
이윽고 라나가 먼저 날카롭게 말을 걸고 나서야..
"... 당신도 마왕님의 수족이에요?"
"어? 으.. 응. 뭐 그렇긴..해... 요. 아 저기.. 이, 이름은..."
더듬더듬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라나요."
"나... 난 최미리네라고...하는데... 그..."
"마왕님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면 환영이에요. 하아.. 아아..마왕님.."
"너...정상 아니구나..."
"맞아요 저는 마왕님께 미쳐있어요!"
"아니 그렇게까지 말 안했는데..."
... 그래도 금방 친해질것 처럼 보인다.
* * * *
뭐, 아무튼 간에 그렇게 되었다.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알려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능력. 이것으로 할 수 있는 기능. 스킬의 존재와 파편을 회수하고 그것으로 또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 이외의 더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이 역시 시간을 좀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식사는 미리네의 집에 있을때 해결하면 될 것 같고. 마력은 꾸준히 모아 두는 걸로 생각해볼까, 시스템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정확한 조건도 찾아둬야 할테고..
해둬야 할 것이 이래저래 많다.
"그럼 미리네, 밥은 잘 챙겨먹고 방안은 항상 정돈하고 있도록 해라!"
"...가라, 가!"
"큭큭... 건강엔 유의하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도록..."
"너만 아니면 돼!"
그렇게 말해두곤 미리네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이 검은공간속에서, 미리네가 방법을 찾아 빠져나가고, 라나 역시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보고 있다가 내 명령과 함께 돌아가고 나면..
이 텅비어있는 조용한 검은공간에서 다시 계획을 가다듬었다.
두 하수인을 얻었고, 그녀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깨닫게 되었으리라, 나 역시 육신을 얻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밥먹을 곳도 생겼고.
...
돈도 조금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좋아."
그리고 이곳에서,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현실공간에 둘만 남아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라나와 미리네의 영상을 띄워 놓고 떠올려 보았다.
가장 늦게 떨어진 파편들을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고민해야 할것은 먼저 이곳에 떨어진 파편. 그리고 누군가 이미 차지해버린 파편.
그것을 회수할 방향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어디에 있는지까지...
* * * *
<능력자 기관: 한국 지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있는 기다란 탑.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마도기술을 종합한 쓰러지지 않는 탑.
비행기가 박아버려도 끄떡 없을 강도를 자랑하는 그 드높은 탑의..
<본부, 43층: 지부장실>
43층. 지부장실에서.
한 남자가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아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마석을 왠 어린애가 가져왔다고?"
"네 지부장님."
"그리고 몇주전부터는 계속 비정상 마물출현이 있었는데... 비등록 능력자가 나타나서 번번히 해치웠다?"
"네."
"흐음.."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와중이다. 사람이 몇 죽었고 몇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입원했고, 얼마의 재산피해가 났으며, 뭐.. 그 이외에 얼마나 많은 영향이 나타났는가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지부장, 기관의 한국지부, 지부장 '신 영일'은 고민하는 척 입가에 손을 올린채로...
조금 웃고 있었다.
"이야... 그거 참 대단히 큰일이군. 비등록능력자가 둘씩..."
"지부장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수정씨. 커피나 좀 타다 줘."
"네."
전담비서였던 수정씨까지 나가고 나면 지부장 신영일.
아니 영일씨.
이제는 마음놓고 웃기 시작했다.
"큭...크흐...크흐흐..."
음산한 웃음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새어나오는 것은 검은기운.
마치 세상 온갖 불길함이라도 한 곳에 응축시켜놓은 듯한 그 불길한 검은 안개를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왔구나!"
드디어 올것이 왔다는 듯. 영일씨는 웃기 시작했다.
"크...크하하하하!!!"
"퉷"
"음? 수정씨 방금 그쪽에서 누가 침뱉는 소리 들리지 않았어?"
"아뇨? 커피 타왔어요. 드세요 지부장님"
"어...음. 고맙네"
시: 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