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관리인(7)]
미리네를 겁주는건 적당히 하기로 하고,
"이만하면 정리할건 다 한것 같군."
미리네의 세탁물은 그리 많지 않아 금방 끝났고, 바닥은 치우는 데에서 그쳤다. 아무리 그래도 닦는것까지 하기에는 여러모로 힘이 드니 관두기로 하고,
간단한 식사를 차려 미리네와 함께 먹었다.
"큭큭 배부르게 먹도록!"
"... 풀이잖아."
"큭큭, 근처에 쑥과 돋나물이 많아 그것을 캐왔지. 깨끗하게 세척하여 이 나라의 조리법대로 조리했다! 크흐흐... 네 녀석의 몸에 영양소가 가득채워지고 있는 기분이겠지!"
"아, 응. 그래."
물론 난 식사가 많이 필요하진 않다.
육체가 좀 한심해서 걱정이긴 하지만, 어느정도 파편을 회수하고 마력도 회복하면 식사를 챙기지 않아도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
뭐 미리네는 아니니까 먹이는것 뿐이지.
지금까지 쭉 지겨봐왔던 미리네였는데, 이 녀석은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않아 영양이 불균형적으로 치우쳐져 있고,
"그래서 네가 키가 작은거야!"
"염병 그 말이 지금 왜나와!?"
성장이 그렇게 좋진 않다.
어찌되었건간에 지금 이렇게 식사를 차려주는 정도의 관리는 해줄 수 있긴 하지만, 관리를 위해서는 역시 마력이 필요하다 느끼기 시작했다.
미리네가 인상을 쓰며 젓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여러모로 빈약해."
몸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햇빛을 쬐지도 않고, 보통은 앉아서 움직이지도 않지 않던가? 마력이나 시스템의 보정이 있다곤 하지만 기초적인 신체능력 자체는 라나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것이 미리네.
조금만 회복에 도움을 주면 금방 건강해질 법한데.
"키 작은건 해결 못해주겠지만.."
"아 씨 이새끼가 자꾸..."
그저 식사나 방을 청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겠지.
마력만 있으면 뭐. 신체강화 마법같은걸 써줄 수도 있을테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흘끔 미리네의 신체에 시선을 두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
미리네가 집안에서 간편하게 입는 옷을 바라보았다. 늘어질만큼 늘어나 헐렁한 옷 너머로 하얗기만 한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뭐, 뭘봐?"
그러자 미리네는 짐짓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근처에 정리해둔 이불을 끌어 잡아 자신의 몸을 가리려고 했는데...
"후우... 아니, 내가 괜한 생각을 하고 있네."
금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시발 왜이리 불쾌하지?"
나중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그래 혹시 나중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미리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순간.
띠링-
[마물이 감지되었습니다.]
알람이 왔다.
"미리네."
미리네의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돌리니, 미리네 역시 같은 것을 보고나선 울상을 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일 할 시간이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 * * *
띠링-
[마물이 감지되었습니다.]
라고 라나의 눈앞에 떠오른것은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기능중 하나다.
주변 반경 어딘가에... 그리고 가까운 곳에 머지않아 마물이 나타난다는 알람. 그것도 파편을 노리고 들어와. 막 파편을 손에 쥐어 차원을 넘어버린 마물이 나타난다는 알람이었다.
그러니까 가장 필요한 기능.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
라나는 그 즉시 몸을 일으켰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다시 왔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기쁘게 일어섰다.
철컥-철컥-
상자를 나가려 할때에는 비록 자물쇠가 걸려있었지만, 뭐 그게 무슨 대수라고?
라나가 힘을 주면 상자의 손잡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스러질것이고, 힘을 주어 문을 밀면 자물쇠는 맥없이 떨어져 나가버렸다.
우지끈 거리며 상자가 부숴지고 나면, 라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손에는 '인벤토리 보석'을 꼬옥 쥔 채로 한걸음씩 내려간다.
라나의 부모님과 가사도우미가 나오긴 했다.
"너... 너 방금 무슨소리야!?"
조금은 겁 먹은듯 놀란듯이 라나를 향해 물어보고는
"이시간에 어딜가려고?"
그 후에는 그렇게 물었다.
시선은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라나가 아무말 없이 어머니를 응시하다가도..
"잠깐 나갔다가 올께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불안감을 키우기라도 한듯 그녀는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후에는 2층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으나, 그것인 다른 이유도 아닌..
"너...! 라나 너!"
"저 가야 돼요."
"저게 어떤건데 부숴?! 저게 어떤 나무로 만든건데!? 머리가 좋아지는 양념치킨향 나무로 장인이 수제로 만든 공부방을...! 네가!"
어떻게 부쉈는지 중요하지는 않다.
부숴진게 중요하지.
"그리고 이 시간에 대체 어딜가려고!!"
라나는 신발을 신었다.
들고있던 외투를 걸쳐 입있고,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보면서 옅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마치 주변에 있는 모든것들의 이야기가 들리지도 않는다는듯. 관심도 없다는 듯. 그리고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자신에게 소리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당히 흘려넘기다가도..
"너!"
짜악-!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라나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손을 크게 휘둘러 라나의 뺨을 후려치면야, 라나는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원래대로 돌리고는 아주 평이하게 말했다.
"다녀올께요."
라고, 그렇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뺨을 한대 맞고는 준비를 다 마치고는 외출해버리니, 그 후에야 뒤에서 어머니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역시 신경쓰지 않는다.
라나의 눈에는 오직 그것뿐.
조금만 더 있으면 다시 그분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희망가득찬 일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빨리...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라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 * * *
얼마전의 사건
그러니까 어떤 마물이 갑작스럽게 공간을 찢고 나타나 성인 둘을 그 자리에서 찔러 죽이고 수천만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토벌당했던,
어떤 능력자나 도구로도 빠르게 감지하지 못해서 마침 그 자리에있던 비등록 능력자가 마물을 토벌하지 않았더라면 더 큰 피해가 나버렸을수도 있던 그 곳. 바로 그 장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
라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후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그런 기다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라나는 그 한복판에 가만히 서서 고개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런 한편 그 주변에는 또다른 소녀가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칼은 미처 정리하지도 못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소녀 말이다.
아니, 아무리 봐도 소녀처럼 보일만한 외형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겠지. 다만 체구가 작을 뿐인 그녀 미리네는 불안한 듯 지나다니는 사람을 연신 돌아보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발.. 시발..."
욕을 하면서 말이다.
"시발... 으...으으... 멀미한다.. 토할거 같아.."
머리에 쓴 모자를 더욱이 푹 눌러쓰며 자신의 감지않은 머리칼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되려 눈에 띈다는 것도 모른채로
"날 쳐다보는건 아니겠지? 아닐거야... 빨리...빨리 끝났음 좋겠다. 이런 도심 한복판에 대체 뭐가 나올려고... 으...으으..."
그녀는 괴로움 기다림을 이었다.
손에는 인벤토리 보석을 쥐고는 심호흡..
그렇게 두 명의 하수인들이 같은 장소에서 각자 다른 생각으로 마물의 침입을 기다리고 있으면..
곧이어,
위이이이이이이잉-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공간에 균열이 가며, 그 공간을 찢고 나오는 무언가가 나타났으니...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건 그이 비해 너무나도 늦어, 소리와 함게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마물의 칼날이 휘둘러 졌다.
서걱-
아니땐 소리에 멍하니, 영문도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 두명이 반토막나며 바닥에 떨어진것을 다른 이들이 보고나면,
"꺄아아아악-!"
그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렸고, 아비규환이 되어버린것도 금방.
그럼에도 인류는 지금까지 마물과 싸워왔던것이 폼이 아니라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강력한 마도장비의 힘으로 공간이 열린곳 주변에 벽을 만들어 세웠고,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그래도 밤 중에 일어난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었겠지.
기관의 초능력자들이 달려오고 있을 때 쯤.
그 광장에 남은 것은 미리네와 라나. 그 두명 뿐.
"뭐하시는 겁니까?! 지금은 실제상황이에요! 거기있음 죽어요!!"
우연히 있던 기관의 하급초능력자가 그 두사람을 향해 소리쳤지만..
두 사람은 보석을 다잡았다.
바람과 함께 모습이 변하는 것도 금방.
검은색 코트와 나비모양의 머리장식을 가진것이 라나였고,
같이 검은색 코트와 함께 뱀을 형상화 한듯한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은 것이 미리네였다.
"후우."
"스으으읍.."
두 사람이 심호흡을 하는 순간.
"키에에엑-!"
마물은 마침내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어, 날카로운 칼날을 쥔 여섯개의 손을 휘두르고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네개의 입을 한꺼번에 열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촉수인지 손인지 발인지도 모를 그런 덩어리.
[마물 식별명: 멜트 비스트]
그 마물을 보며 미리네도 같이 괴성을 질렀다.
"시발! 저게 무슨 마물이야 크리쳐지!!! 칼 한자루 가지고 어떻게 싸우라고!!! 아아악!!!"
억하심정을 다 담아서.
반면 라나는...
"저, 저저 미친년! 저건 왜 달려가!"
달리기 시작했다.
보면 즉시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그곳에 있는지. 때문에 미리네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 모습을 경악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 * * *
라나의 눈에는 마물이 보이고 있었다.
띠링-
[이름: 유라나]
[학생]
['공격능력' F : 보잘것 없는 일반인]
['방어능력' F : 재생 능력이 있다.]
['마법능력' G : 마법의 재능은 조금도 없다.]
['보조능력' E : 이것저것 평범하게 하는 편]
[보유스킬]
-['재생' 레벨: 2]
-['전투 재생' 레벨: 2]
-['엉성한 검술' 레벨: 3]
-['투지']
그리고 자신의 능력도 보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킬도, 자신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뭐가 부족한지도 말이다.
눈을 한번 깜빡이면 마물의 칼날이 바로 라나의 눈을 스쳐지나가는 듯 했지만, 라나는 한순간에 몸을 낮추어 자세를 잡았다.
"후우.."
호흡을 정돈하면서, 기억을 떠올렸다.
'이제 회복마법 없어!' 라고 했던 그 마왕의 말을 기억해내며.
'다치면 곤란해 하실거야'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며 검을 빼들었다. 한걸음 나아갈때마다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여섯개의 손에서, 여섯번의 검격을 내지르는 마물이었지만, 라나는 천천히... 그것도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칼날이 뺨을 스치고 팔을 스쳤지만, 라나는 가만히 마물을 응시했고, 틈을 찾으려 했다. 물론, 그리 쉽게 보이지는 않았겠지.
한걸음 나아가는 것도 금방 한계가 다가오고, 그저 검격을 막는것 밖에 할 수가 없어졌을 때에는..
"젠장... 저 여자가 또...!"
이제는 다른 능력자들이 찾아왔다.
곤란하다.
다른 능력자가 온다면 '파편'을 원활히 회수하기 어려워 질것임을 알았다.
'기관'에 속해 있는 능력자들은... 아니 애초에 그 기관은 아직 '파편'에 대한 존재도 모를테니...
저들이 끼어들어 곤란해지기 전에... 재빠르게 적을 해치우고 파편을 회수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라나의 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상처입지 않고서는... 가령 예를 들면 팔이나 다리 하나, 눈정도는 내어주지 않고서는 파고들 방법이 없어보여 곤란해 하던 때.
"모... 몸좀 사려 이 미친년아!"
왠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본순간 직감했을 것이고, 직감한 순간 라나는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졌다.
라나가 감각적으로 뒷걸음질 치면,
띠링-
[이름: 최 미리네]
[알 수 없음]
['공격능력' E : 날카로운 일격을 가할 수 있다.]
['방어능력' F : 바람에 날아갈지도 모름.]
['마법능력' F : 신비함에 이끌릴 수 있다.]
['보조능력' F : 할 줄 아는게 별로 없음]
[보유스킬]
-['급소 간파' 레벨: 1]
-['정확한 일격' 레벨: 1]
미리네는 한걸음 도약하듯이 발을 뻗고는 동시에 손에 잡고 있던 검을..
"돌겠네 진짜..!"
뻗어 던졌다.
슈육-!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미리네의 칼이 그렇게 날아가면 라나에게 집중하고 있던 여섯 칼날중 하나의 칼날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니. 라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야...야!"
마물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미리네? 그녀는 겁먹고 있다.
라나와 같이 저런 칼날 폭풍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만한 용기같은건 없었다. 질린듯한 얼굴로 보조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미리네가 할 수 있는 고작이었을 것이다.
마른침을 넘겨 삼키고는 다른 능력자들도 보았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혹여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도와주긴 할까? 아니 혹시 자신이 '마왕의 하수인' 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사람이란걸 알면..?
저들은 무슨짓을 할까?
-"미리네! 라나를 지켜!"
"나 한명이 아닐줄은 알았는데! 저런 미친년인건 좀!"
-"재물을 원하다며! 금은 보화!"
"씨이발... 저런 미친년을 어떻게 서포트하겠냐고!"
미리네는 울먹이면서 자신의 인벤토리 보석에서 다른 무기를 하나 꺼냈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라나가 미리네의 생각할 틈을 막아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