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관리인(6)]
이름
최 미리네.
고졸. 대학은 안나옴.
나이는 20중반. 외견은 한참더 어려보이긴 하지만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다.
하는 일은 특별히 없다.
주로 원룸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임이나 달칵거리며 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 가지고 있는 콘솔기기 없음. 인터넷 서핑도 별로 하지 않음.
모바일 게임은 종종 한다.
...
아니 최근에는 좀 더 빠져있는듯 했다.
"근데 모바일 게임인데 휴대폰이란걸로 안하고 왜 컴퓨터로 하는건데?"
"그런 게임이야."
"???"
뭐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곤 하지만 적당히 그렇다고 치고,
게임속에서 게임이 인생인양 살아오던 평범한 그녀다.
평범했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나의 부름을 받아 신비한 힘을 얻으니, 그녀의 서포트를 위해 내가 여기에 있다.
아, 물론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용당하는거다.
"돈이 없다고?"
이번에는 나의 육체를 위해. 강림한 이상 안정을 찾기 위해 미리네를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사소한 문제가 조금 생겨버렸다.
"나도 돈 없어 인마!"
"왜?"
"있으면 내가 이렇게 살겠냐!?"
미리네도 돈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사실은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 인생 최대의 소원이 돈인 사람이 돈이 많을리가 있나?
그래도 나 한끼 먹을 정도의 돈은 있을 줄 알았다. 라나에게 갈까 했지만 그녀의 집은 그녀의 가족과 가정부등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생길것 같아 이곳으로 왔는데도 미리네의 생활이 이래저래 곤란하니 나 역시 곤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석을 돈으로 바꾸면 돈이 나오는거 아닌가? 너희는 그렇잖아?"
"그, 그건 그렇긴 한데..."
하지만 그를 위해 미리네는 던전에 다녀왔다. 정확히는 대미궁을 한번 탐험하고 왔다. 그로인해 마물의 장비 몇개와 마물의 마석 몇개를 얻었으니, 그것을 팔면 이 세상에서는 제법 생활비로 써먹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나의 물음에 미리네는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그 작은 신장으로 서서는 자신의 옷자락을 꼭 잡고는 시선을 회피하듯이 눈을 돌리고 있었으니, 그런 미리네가 흥미로워 아무말 하지 않고 있자. 곧. 더듬더듬 이야기를 꺼내는 미리네.
"조..조금 무서워서..."
"하하."
웃었다.
* * * *
한 참 후,
시: 도심지>
A 시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심지.
그 한 구석 어귀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걷는 그녀는 모자와 후드를 꾹 눌러쓰고는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걸었는데,
풍성한 머리카락 때문인지 후드의 모습이 조금 이상해 바깥에서 보면 좀 우스운 모습이 되어 있는 채였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쉬지 않고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푹 고개를 숙이고 말았는데,
그것이 바로 미리네다.
최 미리네.
주머니에 손을 꼿아 땅바닥만 보면서 걷는 미리네.
불안한것처럼 보이기도했다.
목적지는 도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알아차릴 수 없는 이질적인 기운이 둘러져 있는 기묘한 건물.
-"마석으로 만들었군."
"아... 그런데 쓰는거구나"
-"이래저래 쓸 곳이 많겠지 '마력'이 가진 가장 기초적인 성질은 '강화'니까."
"칫. 몰라."
마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라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강한 마물의 공격에도 끄떡하지않을 강도를 가지고 있는 곳.
미리네는 그런 이야기를 목소리. 그러니까 마왕과 나누고 있었다.
-"... 내가 생각한것보단 수준이 제법 되는데? 이정도면 내가 원래 있던 세계의 모험가 길드라고 해도 되겠어. 아직 부족한게 많지만."
"몰라 염병."
한걸음 걸을때마다 조금 멀미가 나는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많다고.."
사람이 너무 많다.
몇개월째 집 바깥으로 나간적이 없었다. 나가봐야 편의점 정도. 필요한 것은 전부 배달로 해결했고, 그렇게 살아왔던 미리네다.
말하자면 사회부적응자.
조금 더 말하면 방구석 폐인.
피치못할 사정보다는 그것이 좋아서 그렇게 된 미리네에게는 약간 버거운 일이기도 했다.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랗고 깔끔한 건물에서 마석을 판매한다는...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한다는 행위 말이다.
"괜찮아... 엔피시라고 생각하면 돼... 좋아. 좋아 괜찮아."
한동안 마왕과 이야기를 나누던 미리네는 이내 스스로 최면을 걸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주머니에 있는 마석 몇개를 만졌다.
'인벤토리 보석' 이라 하는 도구에서 꺼낸 마석은 총 네개. 아이의 주먹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마석이었으니, 팔아넘기면 돈좀 되리라. 그렇게 팔고 현금으로 돈을 받고 바로 도망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히히... 그, 그래도 이거 팔면 20연차는 더 할 수 있을거야..."
조금 기분이 좋아진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미리네는 걸음을 걸었다.
조심스럽게, 가끔은 고개를 들어 가장 높은 건물을 보면서 다시 고개를 숙이며 한걸음씩 차분하게 전진해 나갔다.
* * * *
<기관>
능력자 기관.
수십년전 나타난 마물과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인 능력자들이 모여 있는곳.
모든 능력자는 세계기관에 등록되어 있고, 등록된 능력자들은 능력사용에 제한이나 관리를 받게 되는 것이 보통.
그 후에는 정부 기관에 소속하게 되거나 어느 기업에 소속하게 되기도 한다.
능력자 등록을 돕는 기관은, 능력자에게 있어서 일종의 주민등록을 하는것과 마찬가지인데, 후일 세계기관에 '소속'되기로 하거나 기업이나 정부에 소속되게 되더라도 각도시따위에 있는 기관지부를 이용하게 되곤 한다.
능력자의 능력자체가, 그리고 마력이라는 신비의 힘 자체가 생소한 이 세계에서, 어느 집단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니...
거쳐가지 않는 능력자는 또 없었을 것이다.
... 비등록 능력자는 빼고.
그사람들은 범죄자. 대부분은 능력을 사용하니 현상금이 붙고, 세계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능력자들이 직접 잡으러 다니기도 한다는 모양이다.
아무튼 미리네는 그곳에 도착했다.
하얀색의 깔끔한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는 깔끔한 사람들.
"으윽.."
괜히 위축되는 듯한 웅장한 크기. 분위기. 그 모든것이 미리네를 압박했지만, 그래도 미리네!
'그래도 이정도 쯤이야!'
그래도 어엿한 성인. 이런 정도의 일은 간단한 퀘스트 클리어하듯 해낼 수 있을거라 믿고서 뚜벅뚜벅 전진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
"저, 저...저, 저...저기...!"
"어? 아, 네 어서오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마..마석..마,마..마석 파, 팔려왔..는데요.."
마석을 사준다.
접수원에게 말거는 것은 성공.
접수원은 조그마한 미리네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다시 활짝 웃어 이야기했다.
"네! 마석은 저쪽으로 가면 정산 받으실 수 있을거에요."
뭐 어린애가 작은 마석이라도 주웠겠지.
제법 흔한 일 아닌가, 시골 개울가에서 놀던 아이가 우연히 사금을 발견했다던가 하는 정도의 이야기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맹이를 주웠다던가, 아니면 전투후 미처 회수되지 못한 마석이라도 주웠다는 이야기겠지.
그걸로 푼돈을 받으면 아이는 그걸로 사탕 몇개 사먹으며 좋아하리라,
접수원은 그런 생각으로 흐뭇하게 미리네를 바라보며 지정된 장소로 안내해 주었다.
"가..감샷..! 합...니다... 으.."
그래도 덕분에 미리네는 안내받은 곳으로 향했다. 곳곳에 안내판이 있기에 어렵지 않게, 손에 한아름 잡히는 마석을 쥐고서...
"여긴 능력자관련시설...이 많네"
-"능력개발실. 실험실... 뭐 많네. 하지만 걱정마라 미리네, 이런 곳보다 내가 더 잘 관리할 수 있어."
"안 물어봤어."
미리네는 다양한 시설을 지나쳤다.
마석을 교환할 수 있는 곳은 가장 구석진 곳이라 고된 여정이 되었지만... 미리네는 해냈다.
해내고야 만것이다.
"뭐야, 여기 왠 어린애가 와?"
"저런애도 능력자인가보지... 가자, 가."
"쟨 무슨 능력일까.."
"... 이상한게 느껴지는데... 착각이겠지."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치며 그렇게...
미리네는 거래소 앞에서 흘끔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저건.."
-"전이문. 오... 이런 기술까지 쓴단 말이야? 운좋은 어떤 녀석이 전이문이 있는 내 파편을 먹기라도 했나? 그걸 사용하고 고정시켜놓은거 같은데 내 지식이 들어있는 파편을 먹은놈도 있겠군"
"별게 다 있네..."
그리곤 금방 흥미를 끊고 거래소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막 전이문에서 나온 험상궂은 이들이나 도저히 싸우는 일을 할것같지 않은 능력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싸움을 준비하는 듯 했다.
거래소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다양한 도구를 판매하는 한편, 마석도 구매해주는 고마운 곳.
물론 도구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능력자 등록이 필요한건 당연하고, 세계기관 소속이 아니면 할인도 A/S도 없다. 그 금액역시 상당히 필요한데 포인트 적립도 해주지 않지. 게다가 대부분의 도구는 세계기관에서 정한 능력자 등급에 따라서 구매할 수 있는 종류가 달라지니..
실상 그곳에 있는건 대부분이 장식품.
미리네는 그 중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가서..
심호흡 한번 하고..
<기관: 거래소>
"흐읍... 마, 마석...! 파. 팔러엇!!!"
뭐 잘 안될 수도 있지.
"파..팔러왔는데요.."
목소리가 갈라지며 괜히 큰 소리를 내버리긴 했지만... 괜찮다. 안에 있던 험상궂은 아저씨들과 날카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돌연 소리를 낸 미리네에게 시선을 주어,
"암만봐도 학생으로 보이는구만, 나 참. 요즘은 개나소나 다 능력자..."
"마석팔러왔으면 마물 사냥하는 능력자?"
"에이 설마. 근처에서 하나 주운 녀석인가보지. 전에 시가지에 마물 나타났었다며"
수근거리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뭐 괜찮겠지.
이 다음. 미리네가 괜히 겁먹고 돌아갔다면 말이다.
...
"이...이거..."
벙찐 얼굴로 미리네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웃음을 참으려 하는 접수원이 있었기에, 미리네는 시뻘겋게 된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곤 마석을 몇개 내밀었다.
마석을 주머니에서 꺼내던 도중에는 한개를 떨어트려 바닥을 굴렀고, 미리네는 황급히 그것을 주으려다...
데구르르-
"아..내, 30연차...!"
나머지것도 떨어트리는 등.
이리저리 작은 소란이 있었고, 동시에 거래소에는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방금 느낌이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 마석..."
"4개...? 저런 정도 크기를 네개나 주웠을리가 없는데?"
아주 작은 소리만이 들렸다.
속닥이는... 고급정보를 교환하는 듯한 소리가 말이다.
미리네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떨어트린 마석 네개를 모두 주워 다시 접수대에 올려놓았다.
접수원은 조금 당황한듯 하더니 그 검은 돌맹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오, 마석에 든 마력을 감지하는 장비인가. 진짜... 생각보다... 수준이... 흠. 이상하군."
'마석'이 얼마만큼의 마력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마력의 순도와 종류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한다. 접수원은 그 마석 네개를 모두 그 도구 안에 집어넣었으니.
이제 결과는 금방 나온다.
"어... '최하급 마석'이네요."
"네? 아...네, 뭐...아, 아무튼.. 그.. 저, 정산좀...빨리..."
"그런데 크기가... 이정도면..."
"빠, 빨리요."
최하급 마석.
평범한 능력자가 바깥에서 마물을 사냥해 돌아오고 나면 손에 남는건 마물의 사체나 피부 조각, 또는 마석알맹이었는데, 보통 그 마석은 손톱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방금 미리네가 떨어트리고 또 정산을 요청한 마석은... 어린아이의 주먹만한 정도의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석의 크기와 등급은 마물의 강함에 비례하는것이 보통이니...
"어, 얼마에요?"
"아...다해서 10만원..."
"생각보다 적네...10연차도 못하겠... 아...! 혀, 현금으로..."
"포인트 적립은..."
"그런것도 있어요? 아니.. 아니, 그냥 빨리 주세요."
"출석도장도 있는데 혹시 없으시면... 일주일 연속거래 하시면 한번은 수수료를 빼드리는데.."
"아 필요없으니까. 빠, 빨리요!"
"고등급 능력자시면 회원 특전도 있는데..."
그래 그럴 수 있다곤 쳐도, 처음보는 조그만 어린아이가 가지고 올만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래도 접수원은 정해진 절차대로 마석을 처리하여 미리네에게 즉시 현금을 건네주었다.
수수료를 빼고 나서 총 8만 5000원을 현금으로 손에 쥐고 나서...
"저, 근데 잠시만요. 혹시 능력자 등록명이..."
"!!"
미리네는 그 다음 질문을 듣기도 전에 재빨리 건물을 나서려 걸음을 옮겼다. 아주 빠르게 말이다.
"잠시만요!?"
미리네는 서둘러 달려갔다.
한시라도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야겠다는 어떤 종류의 직감이었을 수도 있다.
미리네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무시하고 잡으려고 쫒아오는 듯한 사람들도 적당히 무시해 넘겼다.
몸은 놀랄정도로 가볍고 달리는 속도는 이미 평범한 사람을 벗어나 있었으니, 쫒아오는 사람은 없었고, 있더라도 금방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미리네는 웃었다.
"으하...! 으하하하! 다 연차에 꼴아박아야지!!!"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 * * *
그리고 그시각.
<행복 빌라203호: 미리네의 방>
이 육신을 사용하게 되어도 시스템을 사용하는데는 문제가 없어, 미리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일을 시작했다.
냉장고에 아주 조금남아있는 상할듯 말듯한 음식을 대충 씹어먹으며, 배를 채우고는 방을 치우기로 한 것이다.
쓰레기는 제법 잘 분류되어 있어 모아 버리는것이 편했고, 옷가지들은 냄새가 심해 순차적으로 세탁기에 돌리는 중이다. 모르는 것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았다.
띠링-
[기종 'SKQWKR 72, 통돌이형 세탁기'사용법 검색...]
[전원 버튼 1회. 세탁버튼 2회. 행굼버튼 3회. 세제는 한 컵. 섬유유연제는 따로 넣어두고 세탁완료 후 바로 건조 해야 합니다.]
"흠. 세제는 이걸 쓰면 되겠군."
공용세탁기에 속옷부터 넣어놓고. 방을 조금 청소하고 나면 점차 보이지 않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방을 정리하는 와중에..
"이제 이걸 긁기만 하면..."
미리네가 돌아왔다.
"어서와라 미리네!"
"아 씨 뭐야. 아직도 있었어?"
"8만 5000원을 벌었을테고, 그중 5만원은 편의점에서 이상한 카드를 구입하는데 썼으니 남은 3만5000원이 있겠군 큭큭... 나에게 내놓도록 해라. 큭큭큭 네 녀석을 건강하게 만들어버리겠으니.."
"시발..?"
"뭣하면 돈을 더 벌도록 대미궁에 넣어줄테니까 빨리 줘."
띠링-
['인스턴트 입장' 기능을 활성화 합니다.]
[대상을 지정해주세요.]
"시발! 준다고 줘!"
시: 도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