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관리인(4)] (5/112)



〈 5화 〉[관리인(4)]

두명의 하수인이 생겼다.

<검은 공간>

"후우"


짧게 호흡을 정돈하고 나서 화면을 바라보면 라나는 여전히 그 좁은 상자 안에서 끊임없이 펜을 끄적거리고 있었고, 미리네는 마석을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미리네는 그러다가도 뭔가 떠올랐다는 듯, 쓰레기장 같은 자신의 방 안에서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더니 외출하기 시작했고, 라나는 변함이 없다.

"..."

그것 뿐이다.

내가 이 검은 공간에서 하는거라곤 이런게 전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녀들의 영상이나 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죽이는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이럴  밖에 없는 이유는 제법 복잡했는데,

우선 이 검은공간에서 할 수 있는건 시스템밖에 없다는 것이 그 첫번째 일것이고,
이 다음으로는 미리네와 라나, 두 사람에게도 삶이라는게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장 라나만 해도 그녀의 좁은 집안에 있는것이 일상.
나는 그런 라나의 일상을 쉽게 망가트릴  있지만, 본디 인간이란 정신적인 피로와 육체적인 피로.  다 염두해 두어야만 하는 생물.


어떤 존재라 해도 끊임없이 싸움만 할 순 없고, 적절한 휴식과 안식이 필요하다.


인간인 그녀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의식주가 필요한데...
지금의 난 그걸 그녀들에게 줄 수 없었다. 아니 이 부분은 애초에 관여조차 할 수 없었지.


그렇기에 일상이 필요했다.

라나는 안락하게 먹여주고 재워줄 집이 필요했고, 입을 옷이 필요했다.
만일 내가 라나의 일상을 망쳐버려 집을 잃게 만들고 음식을 제공해주지 못하며 입을 옷도 챙겨주지 못하게 된다면..
그녀의 전투 후 휴식은 길거리 바닥에서 박스를 덮고 주린 배를 잡으며 웅크려 있는것이 될테다.

그런 휴식후에는 분명 다음 전투에 영향을 끼치고 말겠지.

그렇기에 최소한 그 삶이나 일상을 망치지 않을 정도만 이용하는 것이 가장 길게, 그리가 가장 효율 좋게 쓸 수 있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부족해."


하지만 부족해.


난 저들이 강해질 방법을 알고 있다.
일상생활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만 쥐어짜낼 수 있다면...


"아니 애초에 미리네의 방은 너무 더러워... 저런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할 수 있을리가 없을텐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일상적인 생활의 만족에서 나오는 전투능력은 무시할 것이 못된다.


 그런일 아니었는가?


좋은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취할수록 다음날의 모험을 완벽하게 이끌 수 있는것이 모험가들의 기본 소양.
매일매일 주지육림속에 빠져살면서도 자신이 얻은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와
매일매일 아무것도 못하고 비참하게 남의 섹스 영상이나 보면서 딸치면서 노력은 커녕 자신의 삶에 애통해 하는 자.

둘중 누가 더 강하겠는가?

아니 뭐... 이건 사실 개인 차이긴 하겠지.

그럼 이건 어떨까?
허름하고 잠자리도 좋지 않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어깨가 배겨서 견딜 수 없는 전사와
푹신하고 말랑한 침대에서 부드러운 것을 껴안고  덕분에 모든 피로가 싹 가신 상태의 전사.
평소 둘의 능력이 동일했을 경우. 지금 둘이 싸우면 누가이기겠는가?

아,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겠지.
그것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모험가들이 먹는 음식이나 마시는 물, 평소 경험하고 보는 것. 듣는것 그 사소한 모든 것들은, 생사를 거는 전투와 전장에서 무시못할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고로


...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해...!'

나의 하수인이다.
오직 나만을 위한 나의 하수인!

그들을 관리하는건 내가 해야 하는 일. 나의 목적을 위해 저들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만 한다.
난 이 이상 여러 손해를 입고 싶지 않아.


저들의 컨디션이 저조하여 결과가 안좋게 나오면, 그건 고스란히 내가 떠안을수 밖에 없는 일.

'능률을 올려야 해...'

저들을 '관리'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이 검은공간 안에 봉인되어 있는것과 마찬가지인데?
할 수 있는건 시스템을 만지는 능력밖에 없는데? 뭐,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고 이런 기회라도 붙잡아 써먹겠다고 한건 나였지만,

아무래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때 쯤.
나는 새로운 것을 알아내었다.

뒤져보았던 시스템중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띠링-
['임시 강림': 임시 육체로 땅에 강림합니다.]

[타입 1 : 인간의 시체와 '강림' 스킬을 보유한 경우]
[타입 2 : 인간의 시체에 '의지'와'영혼'이 없고 필요 '마력'을 충족, 시체가 의식과 알맞은 육체인 경우]
[타입 3 : '죽음의 파편'을 보유한 채로 '100개의 초'를 피우고 '산 제물' 4명과 '광란의 연회' 의식 스킬을 사용했을 경우]

여러 방법이 있는 시스템의 기능 하나를 발견했다.

'이것만 있다면 제대로 관리할  있을지도 몰라...'

이런 서비스가 있는 이유는 알기 어려웠지만...
혹여 어떤 종류의 '함정'이라고 생각하긴 쉬웠지만.

괜찮아. 나라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필요한건 지금.

"타입 2와 3은 제법까다롭고... 타입1은 쉬워보이지만, 나한테 '강림'스킬이 회수되지 않는 이상은 소용없지... 그럼 둘중 하나... 라나는 움직이는게 힘들어보이는 일상이니까.."


화면을 흘끔 보았다.
매일매일 학업이라는 일상에 몰두하고 있는 라나와,.

-"시발! 아니 이게 안뽑혀!? 미친... 시발...이거 망겜... 망겜이야!"


매일매일 백수라는 직업에 몰두하고 있는 미리네..


누구를 시켜야 할지 고민할 때.
 오랜 심사숙고의 시간을 거쳤다.

"야, 미리네!"

-"뭐, 뭐야 또!? 시발 갑자기 말걸지 말라고!"

3초 정도


 * * *


일상은 이어졌다.

세상에 마물들이 쳐들어오게 된지 수십년 째. 이미 인류가 지배했던 땅의 절반은 마물들이 차지했으며, 당장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괴기한 생명체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가끔 보일 정도의 세상.


마물에게 사람이 죽는 것이 흔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대단한 능력자들이 모여든 '기관' 이 있던 덕분이었을 수도 있고,
어떤 대단한 초능력자가 만들어낸 [마도 장비] 를 계승한 물건들이 나타나며 거대한 도시에 강력한 결계 따위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다양한 것들을 이용하여 국가는 나름대로  기능을 했고, 빠른 속도로 안정되어갔으며, 세계 역시 그러했다.


아, 물론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었겠지만, 그런게 무슨 대수라고, 운이 좋은 곳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않은곳은 자멸했거나 마물들에 죽었을 뿐.

그런 세상에서,
그런 어느 나라의.
그런 어느 도시의.
그리고 그런 어느 동네의 어느 길거리에서

쿵-!
묵직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조용한 동네. 도심에서 겨우 몇십분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조그마한 동네. 이상한 소음이 끊이지 않고, 이따금 물건 집어던지는 소리나 부숴지는 소리가 날 뿐인 그런 동네에 그런 묵직한 소음은 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다른 소리를 신경쓰기에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이후 그 근처에서 들린 소리는 누군가가 토악질을 억지로 참아내며 열심히 도심쪽으로 도망가던 소리.


그런것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아..."

그 후엔 작은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청년이었다.
아니, ... 옥상에서 떨어진 청년 이었다.

그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그는 조금 웃었다.

"..."

머리가 근질거렸으나 손을 올릴 수 없었고, 온 몸에 말못할 격통이 있었으나 소리를 지를 힘같은것도 없었다.


...


시간은 몇 분정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청년의 의식은 흐려졌고 곧이어 지워졌겠지.


...

그는 그렇게 죽었다.
미련같은건 두지 않고 옥상에서 떨어져서는 만족한 듯 웃음지으며, 그러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도 오지 않고 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느릿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천천히 진행된 고통스러운 죽음과는 반대로 그의 죽음을 목격하는 사람은 몇 시간이 지나도 없었고, 피웅덩이가 생기고 또 굳어가려고 할 때 쯤..

-"운이 좋군"

무언가 다가왔다.
그것은 검은색의 덩어리였다.

희미한 안개 비슷하기도 했고,
크게 신경쓸건 아니었다.


그것은 붉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푸른 기운을 내뿜기도 했는데, 그 역시 별로 신경쓸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튼 그 검은 덩어리는 죽은 청년의 시체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소리쳤다곤 말하지만 그 목소리가 정말로 존재하는건지는 모른다.


다만 듣는 사람은 확실히 목소리라고 인지하고 있겠지.

-"미리네! 빨리 안오고 뭐해!"


"씨이...발... 간다고 가!"


불편한 듯이, 신경질 가득 담아 대답하는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모자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체구는 어린 소녀와 같았고, 그럼에도 입에서는 끊임없이 험한말을 쏟아내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목소리는 그녀를 재촉했다.


-"이 녀석이야."

"돌겠네... 내가 하다하다 이런짓까지 해야 되냐고...쯧... 자, 이거 여기 던져놓으면 되는거지?"


목소리가 그녀의 주변을 하도 알짱거리며 돌아다니기에, 그녀는 품에 쥐고 있던 작은 돌맹이를 던졌다. 그리고  즉시..


"난 간다."

-"왜"


"그  또 보고싶진 않거든?"

-"이번엔 성공이야. 확실해."


"지랄... 그 때 다 터져서 난장판...우웁... 됐어, 간다. 나머진 알아서 해."

-"큭큭... 그래, 집에가서 식사를 잘 챙겨먹고 기다리도록."

"염병."


그런 담소를 나누듯 하며 소녀가  자리를 벗어났으니...

목소리. 아니 검은 덩어리는 빛을 내었다.
 빛은 죽은 시체의 몸에 닿았고, 검은 돌맹이에서도 빛을 내기 시작하며 무언가 시체로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큭큭..크하하하!"


하늘엔 먹구름이 깔렸다.
주변은 노을지던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새까만 밤보다 더욱이 어둡게 변했다. 그리고 일이 일어났다.


꿈틀-
시체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검은 덩어리는 사라졌다.

바닥에 가득하던 피 웅덩이는 피빛 안개처럼 사라져갔고,


뚜둑- 뚜둑-
소름끼치는 소리가 주변에 연달아 울렸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동네였던 덕분에, 시체는 서서히 그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끄어어어.."

이내 소리를 내었다.

시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걸음 한걸음. 자유로이 몸을 움직였고, 잠시후 빛이 가라앉고 어둠이 물러가며 다시 노을진 평범한 하늘이 돌아왔을 땐.

"크하하하!"

그것은 더이상 시체가 아니었다.

"쓰레기 같은 몸이군! 당장이라도 영양실조로 쓰러질것 같은 몸뚱이! 살아생전 운동같은건 해본적도 없다는 빈약한 몸!"


그건 '누군가의' 것이 되어버렸다.

"크하하하핫! 하지만 삶의 미련조차 없는 영혼은 육신이 죽는것과 동시에 빠져나가 사라져 버렸으니! 이 따위 몸이라 한들 이제 이몸의 것이다!"

죽어있던 청년은 모든것을 깔끔하게 포기해버려 영혼은 육체에 남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으며, 그 육신의 적합성은 누구보다도 탁월 했으니.


"나 마왕 카론의 부활의 초석이 되리라!!"

마왕이 그의 몸에 강림했다.

"크하...크하하하하!!!"


-"시끄러워!"

그제서야 주변 사람들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웃으며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는 그를 향해 소리지르거나 욕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청년의 육신을 가진 마왕은 성큼성큼 도심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미친사람마냥 달려가는 청년을 보며 지나가는 노인은 중얼거렸다.

"쯔쯔... 말세다 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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