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관리인(3)] (4/112)



〈 4화 〉[관리인(3)]

미리네는 빠르게 적응했다.
상황. 힘. 마력과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 머리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두컴컴한 미궁의 복도는 마치 미리네가 지내고 있던 방과 닮아 안심이라도 된건지. 그녀는 호흡을 정돈하면서 차분하면서도 냉철하게 적응해 나간것이다.


제일먼저 한 것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데..


-"시발... 이렇게 끝날 순 없지... 그래, 이렇게 끝날 순 없어...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자. 그러기위해서...'

미궁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 천 따위를 주워 모아 자신이 습득한 몽둥이와 칼을 묶은 것이었다.

 후에는 마물을 마주쳤고, 미리네는 무기와 천을 묶은 것을 던지는 '투척'을 주된 방법으로 사용했다.


"오..."

그건 좀 신박했다.

당장 있는 것을 찾아 꼬물꼬물 조합한것도 나름대로 대단한거라고 칭찬해줄 수 있었지만, 괴물의 괴성이 이따금씩 들려오는  두려운 장소에서 그렇게 도구를 만들어 적을 향해 던질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저것이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존본능인지.
아니면 미리네가 그만큼 쉽게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던건지..


그것도 아니면 시스템의 정신보정쪽 기능이 저정도의 판단을 하게 만든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미리네는 자신이 직접 만든 투척용 무기로 몇번인가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면서도..

-"우에에에엑!!!"

"벌써 4마리나 잡았네..."

말라 비틀어진 마물 넷의 사냥에 성공했다.

그런 미리네는 던전에 엎드려서는 방금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끊임없이 헛구역질을 하고는 근처에 널부러져 있었지만,

아주 좋은 결과다.


당장 라나만 하더라도 저런 말라비틀어진 마물을 잡겠다고 칼과 이빨과 손톱이나 발톱같은것도모조리 사용하면서 달려드는 바람에... 고작 3~4마리 잡고 치명상을 입었었지.

적어도 라나보다는 위험부담이 훨씬 적은 하수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큭큭, 그래도 보상정돈 주지... 정확히 해낸 일에 대한 합당한 보상밖에 받을  없을꺼다. 그 이상은 꿈도 못꾸게 말이야.. 큭큭..."

띠링-
[포인트 상점]
[다양한 보조아이템을 구해 하수인을 관리하세요!]

라는 설명을 달고 있는 웃기지도 않는 편의 시스템중 하나.


'파편', '시스템 스킬', '포인트' 이라는 세가지 자원 중 하나인 '포인트'를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포인트' 라는 것을 이용하여 다양한 물건이나 보조아이템등을 살 수 있는데, 대다수의 아이템들은 '힘 강화 물약'이라던가 '강철피부 물약' 같은 것들이다 '미약', 'sm용 채찍' 같은것도 종종 있는 편이지만 이건 아무래도 상관 없지.

아무튼. 그런 포인트 상점을 이용하기 위한 포인트는 하수인이 특정 행동이나 어떤 일을 성공해냈을 경우에 주어지고, 미리네 같은 경우에는 '첫 마물 사냥 성공!' 이라는 명목으로 13pt 가량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4마리를 잡았을때 아주 소량의 포인트를 추가로 얻으면서... 총 '21pt' 가량을 손에 넣었다.

라나를 처음 획득했을때도 이와 비슷한 정도의 포인트를 얻었고, 한번도  적이 없었으니,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의 총량.


띠링-
['47pt']

이정도면  수 있는것이 몇개 있다.
간단하게 전투중에 먹을  있는 회복포션 따위.


띠링-
['전투용 회복 포션' : 30pt]
[전투중 사용하면 생명력을 소량 회복한다.]


비싸다.
초반엔 이런 포인트 따위로도 할 수 있는건 거의 없기에..


"후후. 아주 까무러치게 감사하도록 해라."


띠링-
['윈기 충전! 피로회복제' 20pt]
[묵은 피로가 씻은듯이 사라진다.]

띠링-
[구입했습니다.]


피로회복제.
지금 미리네에게 가장 필요할 정신 안정용의 물건을 두개 구입하여, 직접 하사해 주듯이..

미리네에게 하나, 그리고 라나에게도 하나 내려주었다.
스윽 화면을 돌아보면 미궁의 복도에서 헛구역질을 하다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이 죽인 마물들을 바라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는 미리네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하고 나타나는 '원기충전! 피로회복제'.


미리네는 정색했다.

-"이...이..."


감사의 말을 준비하는 모양이지.


-"시발아!"

* * * *



어느 어둑하고 낡아빠진 아파트의 어느 한 구석진 집의 구석진 방안. 그녀는 툭- 하고 그 쓰레기장같은 방안에 떨어져 내려왔다.


허공에 문이 열리는 듯한 모습과 함께, 말 그대로 툭- 공간을 가르는 순간이동마냥 그렇게 말이다.

"아이고... 아이고오..."

노인네같은 신음소리나 내면서 훌쩍훌쩍 울먹이는 그녀. 이름은 최 미리네.


그녀의 손에는 [윈기 충전! 피로회복제] 라고 쓰여있는 수상쩍은 병을 쥐고 있었고, 온 몸이 만신창이라도  듯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온 몸이 아파..."


온 몸이 부숴질듯 아파왔다.
움직인거라곤  거대한 장소를 걷는것과 마물로부터 도망친 것. 그리고 검을 몇번 휘두른것과 천으로 묶은 각종 물건을 던졌다가 회수하는 동작 몇 번.


겨우 그 뿐.

그러나 과도한 긴장과 정신적인 소모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은 계속 떠올라 죽어버린 마물의 모습과 어떻게든 먹이를 먹으려 입을 뻥긋거리고 있는 그 모습 역시 떠올랐으니..

"겨우 이딴걸로 퉁친다고? 내가 지금 목숨을 걸고 왜 싸워야 되는지도 모를 것들이랑 싸우고 죽이고 왔는데!?"

미리네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말았다.

한번 좆된 인생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앞으로 몇번이나  짓을 해야 하는데... 얼마나 오래 이런걸 해야 해? 이게 익숙해지는건가? 이런게 괜찮아져!?"

돌아오는 대답도 없다.
미리네는 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


피로회복제.
어찌보면 그것이 당장 필요한것이었을 수도 있지.

뚜껑을 열면서..


"후우..."


자신의 참담한 생활을 다시 돌아보고..


"... 그래도..."

자신이 손에 쥐게 된 보석.

[인벤토리 보석]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 인벤토리 보석 안에는 자신이 얻는데 성공한 마물의 잡스러운 아이템 몇개와... '마석'이 고이 보관되어 있을것이니...

의외로 이후에  생각은 조금 희망찼다.


처한 상황도 하게 된 일도 전부 암담하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란걸 깨닫기야 했지만,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지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피로회복제를 들이켰다.
씁쓸하지만 조금 신맛이 느껴지기도  맛. 억지로 말하면 달콤함 약간도 들어있으니..


"끄윽.. ...이거 뭐 맛없네"


미리네의 피로가 사라져 간다.
...

앞으로 있을 진정한 싸움에 대해서도 모른채로..
미리네는 서서히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

미리네가 보내온 인생중에서 가장 격렬한 하루였지만, 그날 하루 피로회복제를 마시고 잔 날은 지금까지 보낸 삶중에서 가장 편안한 한 때가 되었을 것이다.

...

* * *  *




집은 2층 구조의 개인주택이다.
집은 넓은 잔디밭이 깔려 있을 정도로 크고, 차 여러대가 들어가고도 남을 차고가 함께 있는 곳이었다.


대문에서는 계단을 몇걸음이나 올라가야 겨우 현관에 다다를  있는 정도에 마당을 관리해주는 전문 인력이 따로 붙어 있을 정도의 집.


집안에는 출퇴근을 하는 가정부도 있었으며 불편한 것이난 더러워 보이는건 단 하나도 없는 그러한 이상적인 집.

그런 이상적인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곳에서의..


한 곳.
가장 돋보이는 집안에서..

라나는 웃음을 지었다.

"와아.."

...

라나가 있는곳을 말하기 위해서는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넓은 마당을 지나 현관에 도착하고, 현관문을 열면 엄청 넓은 거실이 나오며, 2층으로 올라가는 꽃같은 계단을 올라가면 라나의 방이 나오는데,


그런 라나의 방 역시 왠만한 집만큼이나 크고 좋아보였지만,  한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 상자가 있었다.

...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라나는 그 상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아주 좁디좁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방안의 방.


그것도누군가가 일부러 넣어놓은 곳이 아닌, 라나 스스로 걸어 들어간  방안의 방은 정확히 상자의 넓이에 맞추 책상이 놓여 있었고 스탠드 하나가 밝게 빛을 내기 있었다.

그 의자에 앉아. 책상에 손을 올려놓고 책을 펼치고 있으니...


그게 바로 라나가 주로 있는 장소.

아주 좁아터진 책상의 앞.

거기서 라나는 두 손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아아! 마왕님!"


황홀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신실한 신자가 믿고 있던 신을 직접 눈앞에서 만난듯이, 눈앞에 눈부시게 내려온 작은 병을 바라보면서 울먹이며 그것을 붙잡고 있었다. 뺨을 부비는건 예사고 숨을 들이켜  병의 냄새를 맡으려고 하거나, 혀끝을 내밀어 핥짝핥짝. 겉면을 핥아내고 있기도 했다. 겉면을.

"저한테 이런걸 주시다니! 아... 정말...!"


가지고 있던 펜이고 지우개고 전부 내려놓고는 한참이나 [원기 충전! 피로회복제] 씹고 뜯고 맛보지는 않고 즐기고 있었다.


 끝을 내밀어 병의 끝을 살짝 쓸어 올리는 듯 하면서도 한입에 입안에 넣고는 상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마음에 입에서 꺼내어 다시한번 병의 기둥을 훑어내고..


뚜껑이 있는 부분인 살짝 입을 맞추면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하아..."

뜨거운 숨을 토해내면 마치 피로회복제 병이 움찔거리는 착각이라도 들었으니, 라나의 입술은 더욱이 뜨겁게 병에 입을 맞추며 음경을 훑어내듯이 달콤하게 물었다. 아직 마시진 않았다.


-"아냐 라나, 그거 그렇게 먹는거 아니야."


"하앗...아... 마왕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같아... 쯉...♡. 쪼옥♡ 하아..앗...♡"

-"아냐 목소리 맞아. 진정해 라나. 마시는거야"


약 한 시간동안 그렇게 몽롱한 기분에 잠겨있는듯한 라나,


철컹철컹-
그런 라나의 그 좁은  문을 열려는듯한 소리는  때  들려왔고, 한참 녹아내리고 있던 라나의 표정은 그 순간 다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리곤 피로회복제를 자신의 주머니에 스윽 넣고는 다시 펜을 잡았는데,
 순간,

철컥-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 상자 방의 문이 열렸다.

정말 라나 혼자 들어가 앉아 있으면 꽉 차는 그 좁은 상자 안.


"이제 저녁 먹으렴"

그 안에 앉은 라나의 뒷모습을 보며 한 중년의 여성이 그렇게 말하니, 라나는 몸을 일으키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싱긋 웃음을 지어 대답했다.

"네 엄마."


라나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마 그들만 알겠지.


"... 저번처럼 또 학원에 빠지면 정말로 저녁도 없이 공부방에 있을줄 알아."


"네."

"그 학원에 등록하는데 얼마나 들었는데 멋대로 학원을 빠지고 어디서 몇시간 있다가 기어들어오질 않나..."

"..."

"휴대폰은 괜히 사줬니? 전화를 하면 받았어야지. 대체 어디에 있길래 계속 휴대폰도 꺼져있고... 우리가 널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데! 학원비만 해도 그래! 그 빌어먹을 경쟁자들을 전부 해치우는데도 엄청들었다고! 그런데 네가 그런 학원을 빠져!? 학교는 빠져도  학원만큼은 절대!!! 너!!!"


그 중년여성은 점점 언성을 높히기 시작했다. 라나는 푹 고개를 숙인채로, 입가에는 미소를 담은채로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는데, 그녀는 말하기 시작하니 화를 참을  없다는 듯이 시뻘건 얼굴을 하고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짜악-!
그리고 그 절정은 손을 들어올린것이었고, 그 후에는 라나의 뺨을 후려치며 점차 자신의 분노를 삭히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정적이 가득차 있는 라나의 방안에 중년여성의 거친 숨소리가 가득히 찰 때쯤이면, 그 분노도 가라앉아 그녀는 털썩 무릎꿇어버렸다.

"라나야... 후우.. 알지? 이게 다 널 위해서라는거? 나중엔 분명히 도움이 될거야... 네 인생은 성공할거란다.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응? 제발 엇나가지 말고...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응?"


아무렇지 않게 서 있던 라나를 끌어안으며 그렇게 말한다.
라나는 표정을 지웠다. 한숨을 내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일부러 참아낸듯 했다. 그리고는 살짝 표정을 짓는 연습을 하는 척. 중년여성. 자신의 어머니를 마주 안아주며... 천천히 대답했다.


"네."


"이제 수능도 얼마 안남았잖아."

"걱정마세요."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하라는 듯이 그렇게 다독이는 척을  후에..

"그래, 그럼 밥먹으러 가자. 비건식으로 준비했단다. 좋아하지?"


"네."


라나는 인형처럼 그렇게 대답한다.
품속에  피로회복제를 꾸욱 쥔채로 말이다.

'다음은 언제... 언제  그 분을 위해 싸우러  수 있을까...'


좀 처럼 오지 않는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라나는 오늘도 순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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