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관리인(2)]
<검은공간>
그녀가 말하길
-"돈. 돈을 줘. 로또라도 당첨되게 해주던가."
재물을 원한다고 했다.
동서고금 어느시대나 어느 세계를 불문하고 재물을 원하고 탐하는 이들이야 어디에나 있으니, 그녀도 그런 이들중 한명이었다는 뜻이다.
마왕이었던 시절이라면 그다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그 욕망이 단순하고 이용해 먹기 좋으며, 주는만큼 일을 잘 해주곤 하여 제법 눈에는 들어두었던 타입.
돈을 주면 움직인다.
그 단순한 사고방식은 얼마나 써먹기 좋은지!
...
"좋아."
라곤 했으나,
사실 돈을 줄 수는 없다.
저 세계의 돈은 물론이고, 금은보화가 가득한 창고를 보여준다던가 손 끝에서 황금을 만들어내는 묘기 같은것도 할 수가 없다.
난 돈이 없다.
현금이고 보물이고 보석이고 뭐 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난 말한다.
"돈을 주지. 내 하수인이 되어라."
-"어? ... 음... 진짜?"
화면 너머. 어두운 방안에 있던 그 미리네라는 여성은 그런 나의 말에 의심하는 듯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보단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게 더 옳겠지!
어차피 이 녀석은 나를 위해 일해야 할 운명을 가지게 된거나 마찬가지고,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돈을 준다' > '하수인이 된다' 라는 거래같이 보이는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
-"진짜 주는거야?"
못준다.
"그럼."
-"어, 얼마나?"
아무것도 없다.
"네가 원하는 만큼."
난 아무것도 줄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그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안을 몇번인가 다시 돌아보고는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도, 돈만 있으면... 전설의 장난감 상자를 열어서 기적의 큐브를 돌릴 수 있을거야... 그럼... 주문서를 사서... 아니 아니 차라리 직작보다는 완제를 구입하는게..."
솔직히 뭐라는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 뿐이지 않을까?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인지 이외의 일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그것이 달콤한 유혹을 해오려한다면, 증거 없이도 쉽사리 믿어버리고 말것이다.
보이지 않는곳에서 어떤 목소리가 말을 걸고 대화까지 한다니! 이미 그것이 증거인셈 아니겠어!
"상태창! 같은걸 외칠 수 있게 돼."
-"하...할께!"
띠링-
['최 미리네'가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미리네의 표정은 탐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웃기네.
* * * *
라나를 처음 하수인으로 삼았을때를 떠올리며,
차근차근히 진행해 나갔다.
우선 미리네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하수인이 된 순간 미리네의 몸에는 마력이 깃들었다.
마력은 근본적으로 신체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것. 마력이 없는 신체에 비해 신체의 기초능력이 월등히 상승하게 되며, 체질에 따라서 몸의 불순물을 자연스럽게 태워버리기도 할것이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변화가 몸에 일어나면, 그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몸이 달라졌다는걸 깨닫겠지.
-"힘이 넘쳐 흘러..."
이런 식으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후엔
-"상태창!"
그런 말을 중얼거리곤
-"진짜... 나왔어...나... 내가 드디어...!"
그렇게 환희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썩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하수인으로 고른건 좋았는데, 하수인으로써 확정되기전까지는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 않은가?
지금 영상은 잔뜩 끼어있던 안개가 사라진듯 미리네의 모습과 방의 모습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하아..."
일단 한숨부터 내쉬어야 했다.
미리네의 신장은 작은 편이었다. 체구가 작았고, 길다 못해 풍성한 머리칼은 며칠 감지도 않아 부스스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피부는 조금전까지 발진이 나있어 갈라져있거나 기름이 줄줄 흐르기라도 한 듯 했지만 뭐 마력을 품은 덕분에 조금 나아진 느낌이었고,
피부 자체는 햇빛을 쬔적이 없다는 듯 새하얀 그대로이긴 했었을까...
뭐 그런 외견보다는 방안이 지저분했다는 것.
벌레가 몇마리 기어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에, 정확히 미리네가 누워 잘만한 공간만이 적당히 치워져 있는 모습이 상당히 보기 꺼려졌다.
...
'또 잘못 골랐나'
또 잘못골랐다는 느낌이 싸늘하게 다가오긴 했다.
그래도 뭐 할건 해야겠지.
기억을 더듬어서.. 옷이랑 무기가 들어있는 보석을 건네주었다.
[초보자용 장비 세트] 라고 쓰여있는 시스템 기능의 일부로, 처음에만 주는 장비세트. 더 좋은것을 원한다면 아무래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모양이므로 지금은 신경쓸 필요가 없다.
-"악! 뭐야! 이거 진짜야! 오...오오?!"
['초보자용 검은 코트']
-[방어등급: E]
-['인식저해' 레벨: 5]
검은색 정장 한벌과
['초보자용 검']
-[공격등급: E]
검 한자루, 그리고 같이 주어진 조그마한 보석은 저 방어구와 무기를 소환하기 위한 촉매가 될 것이다.
"그 보석에 마력을 살짝 불어넣으면 장비를 수납할 수 있고, 그 상태로 다시 불어넣으면 장비를 소환할 수 있지. 옷을 장비하면 널 아는 일반인도 너라고 인식하지 못하게돼."
아마 기능은 하수인에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랬다.
그렇게 하나하나 알려줄 것을 알려주었다.
내 하수인이 됨으로써 달라지는것.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일들을 말이다.
반응은 심플하다.
-"조, 좋아... 근데 돈은 언제 줘?"
처음에는 자신감이 넘치기 마련이지. 그렇게 미리네를 하수인으로 삼는것을 확정하고 나면..
"어디... 다음 마물이 언제 나타나는지나 볼까.."
나는 시간을 좀 죽이기로 했다.
-"돈은 언제주는데? 현금? 금은보화가 가득찬 창고를 보여주거나 손에서 황금 떨궈지는 묘기같은거 안보여줘? 야 환청아. ... 지금 질러야 하는데... 환청아? ...아니 혹시... 내가 드디어 미친건가?"
남은건 실전 뿐이다.
* * * *
"아님... 내가 속은건가?"
미리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보이스...피싱...인가?"
전화로 사람들을 속여넘기는 사기의 한 종류인 보이스 피싱.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일부 보이스 피싱에서는 초능력자만 사용할 수 있는 [마도 장비] 같은것을 불법으로 입수하거나 하여 듣도보도 못한 신비한 방법으로 사기를 친다고 들어왔다.
"아니, 설마... 나같은거한테 뭐 뜯어갈게 있다고.."
미리네는 애써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고개를 획획 돌려서 쓸데없는 생각을 지어버렸다. 흔히 사기꾼에게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지만,
그래도 미리네.
"이, 이런걸 진짜로 주는게 사기일리가 없잖아...."
확실한 증거를 손에 쥐고 있었으니, 은근히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 기대또한 아주 단순한 일이었지.
자신의 능력치를 눈으로 보고, 부족한 점을 볼 수 있고, 나중에 가면 포인트 따위를 얻어 스킬을 강화하고 신체능력을 강화하고... 강력한 마물들을 간단하게 쓰러트리면서..!
"하하!"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유명세를 얻게 되거나, 막대한 돈을 얻는 한편 음지에 가려져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미리네의 불안했던 생각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있을때.
그 기대감이 고조되어가고 있을 때.
띠링-
['던전'으로 소환됩니다.]
"오... 던전..."
띠링-
[1분 후 소환됩니다.]
"...던전?"
미리네는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어...음? 어?"
자신이 생각하고있던 일과는 영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 때.
띠링-
[소환됩니다.]
"어엇?!"
파앗-!
빛이 솟아올랐다.
* * * *
<대미궁: 하늘탑, 1층>
이름은 천공탑.
나의 힘. 그러니까 나의 파편이 흩뿌려질 때. 나의 파편을 노린 온갖 마물들과 악마들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틈은 점차 커지고 구멍이 되었는데, 그 구멍을 매우듯이 나타난 것이 대미궁중 하나다.
총 세군대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더 있을지도..
...
아무튼 이 대미궁에,
미리네가 도착했다.
시스템의 수많은 기능중 하나였는데,
특정 던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인스턴트 입장' 이라는 기능이 딸려 있다는 것. 어떤 자원도 필요로 하지 않는 기능으로써 가장 보기 쉬운 위치에 있기도 했던 기능이다.
마치 이것이 본질이라는 듯이 말이다.
난 라나를 처음 하수인으로 받아들였을때. 이 기능을 발견했고, 라나를 던전으로 보냈었다.
대미궁의 1층은 아주 소수의 마물들과 처음 능력을 얻은 사람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마물들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 굳이 이야기를 하면...
이전날 라나가 상대했던 마물은 '파편을 막 획득한 마물' 로써 몸이 변형되었고 난폭해졌지만, 이곳 대미궁에 있는 마물들은 파편도 획득하지 않은 평범한 마물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공격성이 줄어들고 특정한 강화도 없기에 초보가 상대하기에 적당한 마물이 등장할 것이었다.
그런 장소에 있는..
미리네.
-"뭐... 뭐야!"
"아, 저게 보통 반응이었지."
실전훈련을 시작했다.
...
"키에엑!"
미리네는 더듬더듬 대미궁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숨이 거칠어졌고, 두려움이 가득차 있는듯한 표정으로 한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체구가 작은 그녀가 가지고 있기에는 다소 기다란 칼이었지만, 그것을 두손으로 꼬옥 붙잡고 있는 미리네가 숨을 토해내듯이 내쉬면...
-"케에엑!"
그 이상의 여유시간은 주지 않고 작은 인간의 모습을 한 마물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겨우 한마리.
그것도 오랫동안 마력이나 음식 따위를 공급받지 못해 말라 붙어 있는 아사직전의 마물.
미리네는 그 마물을 보는 순간 기겁을 하며 넘어져 버렸지만,
"뭐해! 일어서! 잘못하면 죽어!"
-"윽...으으으!"
내가 다그치자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우는 모습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물은 약하다. 말라 비틀어져 가기 직전이라 그 달리는 속도도 충분치 못했다. 다리를 떨면서 비틀비틀 도망치고 있는 미리네도 붙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빨은 흉측하고 흉악한 모습으로 벌리고 있었으며 눈에는 핏발을 세워 어떻게든 잡아먹겠다는 집념으로 달려들고 있었으니.
두려움에 도망치는 미리네는 차마 마물과 싸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런걸 생각한게 아니었는데...! 나는 이런걸 생각한게 아니었다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불만을 토해내고있다.
나겠지.
...
그렇게 조금씩. 미리네는 뒤로 달리기만 했다.
그리고 미리네는 서서히 깨닫고 있겠지.
얼마나 달렸을까,
-"어? 나..."
장시간 도망치고 있음에도 쉽게 지치지 않으니 미리네는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고, 마물과의 거리가 통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니, 점차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몸은 마력을 받아들여 충분히 강해져 있단걸 깨닫고, 뒤를 돌아보아 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몸에는 두려움이 깃든채로..
바들바들 떨며 양손으로 검을 쥐고 있는것이 그 증거다.
"조심해. 지금은 네 상처를 치유해줄 수단도 없으니까"
-"하아...하아.."
그리고 미리네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마물을 응시했다.
...
이 때부터는 본능. 하수인이 되어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 영역.
전투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식이 생겨나고, 목숨과 목숨을 주고 받는 싸움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어버린다. 거기에 대한 두려움은 완화되어. 남는것은 오직 상처입을까 두려워 하는 마음 정도.
미리네의 얼굴에서 점차 공포가 사라져간다.
까짓껏. 시궁창 같은 인생. 여기서 마물에게 뜯어먹히면 뭐 어때.
-"후우우..."
그녀의 호흡이 가벼워져갔다.
그리곤 중얼거리면서 한걸음 앞으로.
-"시발."
-"키에에엣!"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말라 비틀어진 그 마물을 보며..
-"진짜 내 인생 좆같네."
검을 휘둘렀다.
띠링-
['13pt'를 획득했습니다.]
['마석(최하급)'을 획득했습니다.]
['나무 몽둥이'를 획득했습니다.]
띠링-
[포인트 상점에 새로운 물건이 입하했습니다!]
미리네의 첫 전투가 그렇게 끝났다.
마왕인 나를 위한 새로운 병사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큭큭큭...너도 라나처럼 마음껏 이용해주마... 하루 6시간 이상 일주일에 4일은 더 부려먹어주지! 포인트를 얻어오는 기계처럼 일하는거다! 너무 힘들어서 저녁엔 겨우 몇시간 정도만 개인시간을 가지고, 주말 말고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끔 말이야! 생명수당 같은건 안줄거고! 크...크하하하하!"
기분이 좀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욕을 위해서 생명수당은 조금 챙겨주자. 어디보자 포인트로 할 수 있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