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관리인(1)]
솔직히 말해서...
봉인당한건 그렇다 치자.
그래 봉인좀 당할 수 있지. 명색이 마왕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 정복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새웠던 존재라면 뭐... 어쩌다가 일이 잘 안되어서 봉인당할 수도 있긴 했다.
물론 그것이 용사였던 시절의 동료들에게 뒷통수를 후려맞아 마왕이 되고, 사랑했던 연인이나 믿었던 친구에게 이리저리 찔리고, 영혼은 수만조각으로 찢어지며 육신과 의식은 분리되는 가혹한 봉인이긴 했지만...
아니 뭐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치자는 뜻이다.
근데 염병, 이게 풀리면 안되었던게 아닐까?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다.
-"하하. 사고가 나서 그대의 봉인이 풀리게 된건 정말 예상할 수 없었어. 사실 까먹고 있었거든"
애초에 이 엿같은 안전불감증 환자들에게 봉인당하면 안되었던게 아닐까 하고
그날.
내가 이 검은 공간에서 눈을 떴던 날. 나의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머릿속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는 이따금 계시랍시고 받았던 목소리와 같았다. 말투는 조금 달랐지만.. 아무렴 어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관심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 목소리는. 내 봉인이 우연한 계기로 우연히 박살 났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에는 기뻤으나,
정말 내 봉인이 완전히 풀렸다면 내가 이곳에 의식만 둥둥 떠다닐리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심각해졌다.
그걸 깨달았을 땐 목소리가 이어말했다.
-"불안정하게 풀린 그대의 봉인은 다른 차원과의 균열을 키워버렸고 그곳으로 모두 흘러가 버렸어. 음... 어떻게 말하지? 그대가 마왕이라 불리울 만큼 가지고 있던 그 막대한 힘이... 마력이라곤 몰랐던 세계에 뿌려졌다는거지."
"미친."
난 반사적으로 그렇게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검은 공간에 나타난 화면.
화면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곳에서는 비명이 제일먼저 들렸다. 절규소리와 고함소리가 섞여 들렸고, 그 후에는 폭음이 들렸으며 그 후에 보인것은 치솟는 불길이었다.
세상이 멸망하고 있던 모습 말이다.
-"그대의 힘은 이 곳으로 뿌려졌어. 그리고 그대의 힘이 뿌려질때 마물들 역시 벌어진 틈으로 그대의 힘을 탐하여 쫒아갔지. 그 결과가 이거야."
"..."
봉인이 풀려버린 내 힘의 탓으로. 한 세계가 무력하게 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높은 건물들만 즐비해 있던 그 세계는 마력이 존재한적이 없어 마물들을 상대하지 못했고, 그들이 만들어낸 무기는 오히려 자신들을 상처입히기만 했다.
높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세상이 불타고 아이들이 울다가 죽어버리고... 뭐 그런 흔한 재앙이 일어나고 있는 모습.
"내 탓은 아니잖아."
내 탓은 아니다.
-"맞아. 그대 탓은 아니지"
굳이 말하면 내 봉인을 제대로 관리 못한 놈들의 탓이지. 기왕 봉인을 할거면 영원히 봉인을 해 놓던가, 아니면 내 육신과 영혼 의식마저 소멸시킬 도구라도 열심히 만들던가 했어야 했던 인간들의 탓이다.
아무튼 내 탓은 아니지만,
내 힘이 아주 약간 원인이 되어 한 세계가 멸망해가는 모습을 보고나면, 그 후에는..
-"그대의 힘을 얻은 이들도 생겼거든."
나의 힘을 받아들인 일부 인간들을 중심으로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내 힘이 저 세계에 뿌려졌을 때. 인간들이 나의 '파편'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생겼고, 마물이 쳐들어오기에 앞서 힘을 각성하는데 성공했다.
한명이 성공하니 그들은 빠른 속도로 집단을 형성했고 내 힘을 노리고 찾아갔던 마물들에게 저항했다. 마력을 상대할 수 있는건 그와 비슷한 힘의 자원이었으니, 내 파편으로 인해 '마력'과 '마법'을 얻은 이들은 그것을 '스킬'이라 부르며 사용했고,
이내 '능력자'라 부르는 이들은 인류의 터전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내가 본건 여기까지.
영상이 멈추었을 때.
목소리는 다시금 말했다.
-"그대는 부활하고 싶지 않아?"
내가 가장 원하던 것을. 가장 갈구하던 것을 대뜸 말해버렸다.
대답은 하나 뿐이다.
"하고 싶지"
당연히 하고 싶지.
나는 봉인당하며 할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 나에게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세계정복은 마왕으로써 가져야 할 핑계에 가까웠지만 결국 끝내지 못한... '복수'를 이루어야만 했다.
하고싶은것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목소리가 거짓을 말하는지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놀리려는 것인지 아닌지 의도를 파악해보려고 하기도 전에,
대답부터 했다.
뭐라도 붙잡고 싶었던 때였으니까.
봉인당해 몇년이나 지났는지 모를 동안 꿈꾸던 '부활'이었으니 말이다.
목소리는 그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가지 제안을 해 왔다.
제안이래봐야 내가 거절하지 못할거라는걸 알고 있었겠지만...
뭐...
'시스템'을 전해주었다.
-"내가 요즘 실험하고 있어. 여러모로 개선하고 개량할 것도 많은 힘이긴 하지. 그대가 이걸 가지면 그대는 그대의 '파편'을 회수할 수 있어"
실험이니 시험이니, 개량따위의 단어는 내가 목소리의 말을 끊을 이유가 되지 않았고, 목소리는 잠시 뜸을 들이는 듯 하더니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대는 이 시스템에 담긴 기능으로 그대의 힘을 모으는거야. 그러다 그대가 그대의 육신마저 다시 손에 넣으면... 그대는 부활하는거지!"
"그게..."
그제서야 대답했다.
"그게 내 부활의 조건이야? 네가 말하는 시스템이란 걸 시험해주는게?"
-"으음... 뭐, 그렇긴 한데. 조건은 그대가 '파편'을 모두 회수한다. 겠지?"
"그건 당연해. 내 부활을위해서는.."
-"그대가 보았듯 그대의 파편으로 인한 문제는 저곳에서 꽤 심각해. '개입'하지 않았다면 세계가 멸망했을거라고.... 솔직히 우리도 이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으니 저곳에서 파편이 없어지길 바래."
"..."
거래 라고 해도 좋을까?
아니면 규칙?
-"게임이라고 생각해."
목소리가 말한것과 같이 어떤 '게임'의 규칙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듯 싶었다.
"내가 파편을 모두 모으는게 날 부활시켜주는 조건이라고?"
-"맞아. 해줄거지 그대? 그대는 부활하고 싶잖아?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지? 설령 모든 힘을 잃더라도 다시 이곳에서 그대의 목적을 이루고 싶잖아? 복수하고 싶잖아?"
"..."
간단하다.
첫번째 규칙은 내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것 뿐이고,
두번째 규칙은 그렇게 내가 '파편'을 모두 회수하는것 뿐이다.
단 두개의 규칙만이 있는 것이다.
성공하면 부활한다.
돌아가 복수할 수 있다.
"...당연히 하지."
말할것도 없다.
모든걸 알고 있다는 듯한 목소리의 말투가 조금 짜증이야 났지만,
그리고 조금이야 의심이 들고 있긴 했지만... 이런 작은 의심따위는 찾아온 기회를 걷어 차버릴 정도로 문제되질 않았다.
어차피 할 수 있는것도 없지 않은가?
작은 기회. 작은 가능성이 생기는 순간. 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슴에 새겼다.
"할거야. 한다고. 뭐가 됐건간에 하겠어! 내 힘을 되찾고! 내가 부활 할 수 있는거라면 난 뭐든지 하겠다고!!!"
-"하하! 역시 그대는 날 실망시키지 않아.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그대는 날 실망시키는 일이없었지!"
오래전부터? 뭐야 그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 그보다도 이날.
띠링-
['시스템' 사용자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띠링-
['관리인 시스템'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이날 시스템을 얻었다.
* * * *
...
그러나 시스템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난 여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게 일단 대전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내가 뭔가 행동할 수 없으니까.
관여할 수 없으니까.
지켜보는것 밖에 못하니까.
띠링-
['하수인'을 설정합니다.]
하수인이 필요했다.
저 세계에서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대로 행동해줄... 그런 부하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하수인의 존재에서부터 있었는데..
하수인은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일반인 일테고, 마력조차 가지지 못한 하잘것 없는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강한 힘을 지닌 이를 처음부터 하수인으로 삼기엔 초기 시스템의 능력 역시 하잘것 없었고 내가 파편을 회수하면서 함께 기능과 성능이 확장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던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시스템... 아니 이 능력을 준 목소리가 노리는 바는 아주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었는데..
힘없는 하수인에게 내 미약한 힘을 전해주어야 했고,
그렇게 힘을 받은 하수인은 파편을 지닌 마물이나 인간을 상대해 파편을 회수해와야 했다.
그렇게 내가 파편을 흡수하여힘을 되찾으면, 내 하수인이 더 많은 파편을 얻게끔 하기 위해 되찾은 파편의 힘을 나누어줘야 하고..
회수해 오면 더 강한 이들이 있을테고... 그들로 부터 파편을 회수하려면 또 회수한 파편으로 강화하고...
...
끊임없이 반복.
그렇게 되어 일어나는 일은 결론적으로..
'힘의 약화'
결국 내 막대했던 육신의 힘은 이리저리 분산된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하수인에게 나누어져서 말이다.
그로인해 일어날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으로써 부활하게 된다는 뜻이겠지.
"너무 뻔해."
너무 뻔해서 다른 노림수가 더 있나 의심스러운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이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부활만 성공하면... 내 육신을 되찾기만 한다면... 난 '할 수 있다' 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
"좋아. 그럼... 첫번째 하수인은 누구로 할까. 말 잘듣는 녀석으로 하는게 좋은데..."
띠링-
[이름: 유라나]
['공격능력' F : 보잘것 없는 일반인]
['방어능력' F : 재생 능력이 있다.]
['마법능력' G : 마법의 재능은 조금도 없다.]
['보조능력' E : 이것저것 평범하게 하는 편]
"흠.. 어차피 이정도밖에 못고르긴 하겠지. 어쩔 수 없나..."
이게 나와 라나의 첫 만남이었다.
...
너무 말을 잘 들었다.
* * * *
따라서 나는 한명의 하수인을 더 선발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지. 라나는 마치 자살하려는 것같이 행동한다.
마물과 싸우는데 자신의 팔이나 다리 하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으며 목숨을 빼앗아 달라는 듯 미친사람마냥 싸운다.
지금까지 총 세번의 전투가 있었고, 그 세번의 전투에서 라나는 단 한번도 멀쩡하게 귀환한적이 없었다.
두번째 싸움이 끝났을때는 이렇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너 죽고 싶어서 그러니!?"
"아뇨. 살고 싶어요. 계속...계속 살고 싶어요... 이렇게 살고 싶었던적은 없었는데...! 아...! 살고 싶어요!"
... 살고는 싶다고 대답했었다.
... 아니 그때 조금 이상하게 웃었나?
아니면 마물을 찌를때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희열을 느끼던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라나를 보조해야 하는 하수인이 한명쯤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상을 줄이고 경험을 가진 인수를 늘린다.
동료를 만들어 상호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한다.
간단한 일이지.
따라서 나는 시스템을 다시 뒤적거렸다. 라나를 처음 하수인으로 삼을때는 '튜토리얼' 이랍시고 바로 하수인으로 삼을 수 있었지만,
두번째 하수인 부터는 일정 시스템 스킬 레벨이 되어야 했던 모양이었다.
띠링-
['시스템 스킬' 레벨: 3]
지금 내가 가진 시스템 스킬의 레벨은 3.
띠링-
[시스템 스킬]
['강제 귀환' 0/3]
['회복' 0/3]
보유하고 있는 스킬은 지정된 장소로 바로 귀환 시킬 수 있는 강제귀환과 고위 사제의 회복마법과 동등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회복스킬 두개.
그리고 횟수는 최대 3회이지만 라나탓에 전부 써버렸다.
띠링-
['하수인' 1/2]
그리고 보유할 수 있는 하수인은 이번에 시스템 스킬의 레벨이 오르면서 한명 더 늘었으니...
"... 좋아. 이 녀석으로 해야겠어."
나는 제법 적성이 높아보이는 인간을 하나 발견했다.
띠링-
[이름: 최 미리네]
[알 수 없음]
['공격능력' F : 일반인 이하]
['방어능력' F : 바람에 날아갈지도 모름.]
['마법능력' F : 신비함에 이끌릴 수 있다.]
['보조능력' F : 할 줄 아는게 별로 없음]
[보유스킬]
['급소 간파' 레벨: 1]
"스킬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라니, 제법 괜찮은데?"
처참한 수준의 능력치는 보지 않았고,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로 그 장래성을 파악하여..
"너로 정했다."
난 미리네를 하수인으로 영입하려 하기 시작했다.
* * * *
딸칵-
딸칵-
"아니 시발, 성공확률이 95%인데 연속 3번을 실패한다고? 이게 말이돼? 이런 미친.."
어두컴컴한 방안.
빛이 들어오는 창문조차 검은 커튼으로 가려놓은 그 어두운 방에서 의미없는 마우스 클릭을 반복하고 있는 한 소녀.
띠링-
[시스템 검사 중]
"아니 시발 이게뭐야?"
띠링-
[적성확인 완료.]
“뭔데?”
띠링-
[공격 능력 평가중···]
띠링-
[방어 능력 평가중···]
띠링-
[마법 능력 평가중···]
“아니 뭐냐고··· 어? 뭐야···?!”
띠링-
[기타 능력 평가중···]
띠링-
[시스템 초기 설정을 시작합니다.]
"아니 뭔데 이게!? 뭔데?!"
-"나의 하수인이 된걸 축하한다. 마왕의 병사여.."
"뭐..."
그녀는 연이어 들려오는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 한호흡. 그렇게 쉰후에
"염병, 드디어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는군... 드디어 내가 정신이 나갔나봐."
-"환청 아니야. 넌 이제부터 마왕군의 일원으로써 마왕 부활을 위해 노력할..."
“환청이네, 좆같은 환청새끼”
그녀는 거칠게 내뱉었다.
"..."
그리고나서 자신의 더러운 방안을 슥슥 몇번 돌아보고 난 후에,
“···. 그래서 진짜 뭔데, 받아들이면 뭐 줘?”
그녀 '최 미리네'는 조심스럽게 환청에게 물어보았다.
-"마왕군에게 어울리는 탐욕이군. 뭘 원해? 어디한번 말해봐."
"허. 디테일한 환청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