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9 은백의 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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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날 밤, 진한은 잠들기 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희뿌연 연기가 나풀거리며 내리 깔렸다.
진한이 피고 있는 담배는 마법사 K가 준 담배였다.
담배가 떨어졌는지, 엘리스는 더 이상 담배를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주변에 붙어있는 시간이 줄었지만, 진한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진한은 마지막 채비로 상태창을 점검했다.
체력(29) 근력(33) 민첩(30) 마법력(14) 지력(12) 내구력(29)
능력치는 크라임 타운에 들어설 때와 별반 달리지지 않았다.
영혼에 각인 된 6개의 군주 스킬 중, 진한이 열려있는 스킬은 여전히 공포의 심장 뿐이었다.
[공포의 심장]
스킬 랭크 : ???
숙련도 : ???
스킬 설명
공포 군주의 권능.
공포의 지배(사용 가능)
공포의 권역(사용 가능)
공포의 각인(사용 가능)
공포의 심장은 공포의 지배를 넘어서, 권역과 각인까지 풀려있는 상태였다.
지배는 상대가 자신에게 공포를 느꼈을 때만 사용가능한 스킬이었다고 한다면, 공포의 권역은 범위 이내에 있는 대상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스킬이었다.
공포의 각인은 정도 이상의 공포를 느낀 대상에게 표식을 새길 수 있는 스킬로, 표식이 각인 된 대상은 일정 시간동안 공황상태에 이르게 된다.
권능은, 권역-지배-각인의 순서로 연계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공포 군주의 권능은 철저하게 약자들을 상대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조건만 맞는다면,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강자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진한은 이제 직업 스킬을 살펴봤다.
[비극 관람]
스킬 랭크 : A
숙련도 : 없음
스킬 설명
비극을 관람합니다.
비극의 정도를 알려줍니다.
경험한 비극 : 1
제작한 비극 : 1
관람한 비극 : 0
[비극의 유물]
스킬 랭크 : A
숙련도 : 없음
스킬 설명
경험, 제작, 관람한 비극을 능력치 또는 숙련도로 바꿔줍니다.
경험, 제작, 관람한 비극을 소모하여 일시적인 능력치 상승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비극 제작]
스킬 랭크 : A
숙련도 : 없음
스킬 설명
정도 이상 관여한 상황이 안 좋게 끝났을 경우, 비극 제작으로 분류됩니다.
비극을 제작한 직후 대상이 느끼는 비극의 정도에 따라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한 결 같이 불친절한 설명이었다.
비극 관람자 전직 때 카운트 됐던 비극들은 모두 능력치로 변환되어 흡수 되었다.
상당한 수치의 비극이 카운트 되었지만, 능력치 상승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비극들이 능력치로 환산되는지는 시스템이 설명해 주지 않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자세한 사항은 직접 겪어봐야 아는 일들이었다.
진한이 주목한 스킬은 비극 관람과 비극의 유물이었다.
두 스킬의 조화로 진한은 다른 클래스보다 올리기 힘든 전투 스킬의 숙련도를 상승을 꾀할 수 있었다.
‘경험한 비극이 하나에, 제작한 비극이 하나라.’
진한은 비극의 카운트를 살펴봤다.
경험한 비극이란, 관람료로 지불한 ‘실리아의 죽음2’를 의미했고 제작한 비극은 여명검수의 비극을 의미했다.
이상할 게 없었지만, 비극의 유물과 비극 제각 스킬에는 아직 열리지 않은 기능들이 있었다.
당장의 능력치 상승을 위해 비극 관람자를 택했고, 실리아를 급히 떠나오느라 설명을 듣지 못했기에 직접 알아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진한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번 현상금 사냥은 엘리스의 성장을 위한 것이었다.
스킬의 숙련도뿐만이 아니라 더즌 헬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그러나 막상 현상금 사냥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항상 쫓기기만 했지, 쫓아 본 적은 없으니 착오가 있었다.
쫓길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추격꾼들에게 시달렸던 진한이었다.
‘생각이 짧았다.’
하지만 꼭 잘못 된 선택은 아니었다.
스킬 숙련도는 집어 치우더라도, 엘리스를 더즌 헬에 적응 시키는 데에 있어서 이번 현상금 사냥은 아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사냥개를 일행에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시간이 아깝지 않은 일정이었다.
하지만 사냥개는 뭔가를 건드려 끌어들이기에는 사연이 부족했다.
김태수는 건드릴 부분이 확실했고, 마법사 K는 미친놈이라 따라왔다지만, 사냥개는 끌어들일 만한 빌미가 없었다.
진한은 생각을 멈추고 잠을 청했다.
어차피 이번 의뢰를 끝낼 때까지 시간은 많았다.
*
주민 마을 하룬에는 2년 전부터 이상한 일들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마을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근래에 들어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실종되었다.
많게는 한 달에 한, 두 명 적게는 몇 달에 한명씩 주민들이 실종되었다.
주민들은 마을에 방문하는 슬레이어들을 고용해 의뢰를 했지만, 실력 있는 슬레이어들을 고용할 형편은 안 되었고, 뜨내기 슬레이어들은 실종되거나 돈만 먹고 나르기 일쑤였다.
마을의 분위기는 축 가라앉아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마을의 분위기는 꽤나 달아올라 있었다.
한 슬레이어 때문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입구에 모여 짐을 챙겨 떠나가는 슬레이어를 배웅했다.
앳된 얼굴에 허리에 찬 은백색 검.
주민들 사이에선 ‘은백의 용사’라고 불리는 슬레이어, 백성진이었다.
“제가 꼭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백성진은 슬레이어들 보다는 주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슬레이어였다.
이따금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백성진을 이렇게 지칭했다.
용사놀이에 빠진 얼간이.
지닌바 실력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꽤나 유능한 슬레이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길드에서 백성진을 꺼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슬레이어 답지 않은 가치관.
백성진은 슬레이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겪어온 슬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결여된 사람들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슬레이어들조차 백성진의 기준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사들이었다.
필요에 의해 살인을 꺼리지 않는다.
‘슬레이어들은 잘 못 되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슬레이어들은 도덕적 감각이 말살되어버린 인간들이었다.
열아홉에 더즌 헬에 떨어져 그가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뒤로 십 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적응되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초반 신규 슬레이어일 때부터 어느 정도 노련한 슬레이어가 될 때까지, 그가 슬레이어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끝은 대부분 안좋았다.
일을 할 때에 있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백성진은 들어간 길드마다 마찰을 일으키고, 끝내 떠돌이 슬레이어가 되어 더즌 헬에 스며들었다.
필요에 의해 행동하는 슬레이어들과 백성진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그는 지닌바 능력으로 해결 가능한 선에서 주민들의 곤란거리를 해결해 주었다.
미치광이 슬레이어를 잡는 것부터 마을 인근의 몬스터 토벌까지 그가 하지 않는 일은 없었다.
그가 어떤 보상도 없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주민들의 우러름을 받아 생긴 별칭이 바로 ‘은백의 용사’였다.
그 와중에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며 주민들을 도와왔다.
물론 주민들만 돕는 것은 아니었다.
옳은 일을 하는 슬레이어가 있다면 혹은 위험에 빠진 슬레이어가 있다면 백성진은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몇 번인가 그렇게 친해진 슬레이어들과 어울려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항상 같은 이유로 무리를 떠나와야 했다.
그는 그 이후 슬레이어들과 섞이기를 완전히 포기했다.
백성진이 이번에 들른 마을은 하룬이었다.
2년 전부터 사람이 실종되기 시작한 마을.
몬스터의 소행인지, 슬레이어의 소행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백성진은 하룬을 돕기로 결정했다.
*
리나와 리니스는 남매였다.
리나는 일곱 살, 리니스는 여덟 살로 연년생의 사이좋은 남매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셋이서 자란 남매는 나이답지 않게 철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남매는 무던히 노력했고, 어머니는 그런 남매의 모습을 보며 기특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남몰래 눈물을 삼키곤 했다.
어머니가 아침 일찍 식당으로 일을 나가시면, 리나와 리니스는 마을 밖 동산에 올라 뛰놀았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고는, 어머니의 생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어린 남매는 어머니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어머니를 위해 꽃반지와 꽃 왕관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었다.
생일날 아침 깜짝 선물을 받고 기뻐할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하니, 부푼 기대감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남매는 언제나와 같이 마을 밖 동산으로 가 어머니를 위한 선물을 만들고 있었다.
분명 그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남매가 기억하는 ‘바깥’의 기억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든 남매가 눈을 뜬 곳은 집도, 동산도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이었다.
평범한 동굴은 아니었다.
그 사실은 남매를 막고 있는 쇠창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남매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두려움에 떠는 일 밖에 없었다.
“오빠 무서워…….”
“괜……찮아. 엄마가 곧…… 찾으러 오실 거야.”
어린 동생의 말에 오빠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밖에는 없었다.
그 본인도 무서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엄마가 없는 동안엔 리니스가 리나의 보호자야. 알겠지?’
리니스는 어머니의 말을 되새기며 리나를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을에 사람들이 실종되는 것은 어린 리니스도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그 실종자가 자신과 동생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평범한 일상이, 행복한 일상이 한 순간에 어그러져 버렸다.
리니스는 무서워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불안해하는 리나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리나의 보호자야.’
여덟 살배기 소년은 그렇게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뚜벅, 뚜벅 동굴 안으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아. 오빠아.”
리나는 오빠를 꼭 끌어안았다.
리니스는 리나를 등 뒤로 감추며 발자국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리나는 오빠의 등에 고개를 파묻었다.
오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세차게 요동칠 때, 발자국의 주인공이 두 남매의 앞에 나타났다.
밋밋한 무늬 하나 없는 가면을 쓴 남자였다.
남자의 손에는 그릇이 들려있었는데, 거기에는 말라비틀어진 빵이 몇 조각 담겨있었다.
남자는 창살로 다가와 그릇을 세로로 눕혀 빵을 넣어 주었다.
빵이 그릇에서 흘러내렸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누, 누, 누구세요?”
리니스는 용기를 내서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니스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 집으로, 집으로 보, 보내주세요.”
남자는 대꾸하지 않고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오, 오빠. 흐, 흑.”
가면을 쓴 남자가 돌아가자, 리나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동굴 전체에 리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 울지 마. 울지 마. 괜찮아. 엄마가, 엄마가 곧 오실거야. 괜찮아. 울지 마. 오빠, 오빠가 있잖아.”
리니스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리나를 달랬다.
하지만 리니스 역시 무섭기 마찬가지였다.
끝내 리니스도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으려는 그 순간.
쾅!
“흐끅!”
커다란 소리에 리니스도, 리나도 고개를 돌렸다.
가면 쓴 남자가 쇠창살에 붙어 남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리 안 닥치면, 성대를 잘라주마 애새끼들아.”
남매는 너무 놀라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가면 쓴 남자는 그 모습에 킬킬대며 웃어댔다.
“그렇지, 그래. 그렇게 입 닥치고 있어라, 알겠지? 말 잘 듣는 아이는, 아저씨가 상을 줄게요.”
표정 없는 가면 속에서 다 갈라진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면 쓴 남자는 그렇게 되돌아 갔지만, 남매는 웃음소리가 그칠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김조작// 엘리스는 역시 카와이!! 이번에도 카와이 합니까?!?!?!?
HYouN우// 진한이 섭섭해하겠네요.... 불쌍한 진한.... 하지만 엘리스 기여버..
카이마이// 거듭되는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ㅠㅠ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용기 얻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요 근래 울적했는데, 덕분에 힘내서 글을 씁니다. 감사합니다.
제망량// 넵!! 킬러조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저는 아쉽지만 킬러조를 보지 않았습니다, 간혹 할리퀸 같다는 분도 계시는데, 엘리스가 그만큼 매력있는 케릭터인가봅니다. 우리 엘리스 많이 사랑해주세요!
네네... 다시 새로운 에피소드로 들어가는군요.
엘리스의 귀욤귀욤함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 될까요!
그리고 갑툭티한 백성진!!
이 친구는 어떤 역할일까요!!!!!
과연 진한의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