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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8 은백의 용사 (38/40)

00038  은백의 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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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는 가장 먼저 추적할 수배범을 추리기 위해 며칠간 바쁘게 움직였고, 오늘에서야 일행들을 모았다.

맥그린 1층의 식당에 다섯의 남녀가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이놈으로 시작하죠.”

사냥개는 수배지를 내밀었다.

수배지에는 특색 없는 남성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현상금과 현상금이 걸린 이유가 걸려 있었다.

현상금은 금화 50개로 페어리문 같은 길드의 일반 슬레이어가 1년에 받는 기본 급여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진한은 현상금이 걸린 이유를 살폈다.

수배 된 이유는 간단했다.

살인.

여기까지는 전날 확인한 그대로였다.

진한이 주목한 것은 수배지에 적힌 집단의 이름이었다.

“이 놈이 아마 가장 찾기 편할 거 에요.”

사냥개의 말에 메이첸과 마법사 K는 사냥개를 바라봤다.

수배범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수배가 내려진 집단을 찾아가 정보를 얻고, 발견 된 장소를 시간 순서대로 찾아가며 정보를 조합해야 했다.

수배범을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 후에 판명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사냥개는 은연중에 수배범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듯 기색을 내비쳤다.

그녀는 수배지에 적힌 집단 명을 가리켰다.

“더블엠이군.”

“어라, 어떻게 알았어요?”

진한의 말에 사냥개를 제외한 셋은 집단명을 읽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집단명에는 분명히 ‘the supreme sacrifice’라고 적혀 있었다.

숭고한 희생.

더즌 헬에는 음지의 집단이 굉장히 많았는데, ‘숭고한 희생’도 그중 하나였다.

본인들은 자칭하기를 the supreme sacrifice라고 자칭했지만,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Mad Magician.'

줄여서 더블엠.

미친 마법사들의 집단이 ‘숭고한 희생’이었다.

사냥개는 진한을 제외한 셋에게 더블엠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시작했다.

진한이 쾌락 군주 토벌을 나설 때 까지도 조용히 음지에 숨어있던 집단이었다.

그들이 멀쩡한 이름을 가지고도 더블엠이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더즌 헬의 슬레이어들의 시선으로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미친 작태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인체실험을 하는 곳이에요.”

사냥개가 설명을 마치고, 더블엠의 활동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더블엠은 인체실험을 하는 마법사들의 집단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인간의 육체를 끼워 맞추고, 찢고 조립하는 인체실험 집단이었다.

그런 집단에서 수배 이유를 ‘살인’이라고 붙인 것은 꽤나 우스운 일이었지만, 진한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수배자는 통칭 마스크, 더블엠 소속의 마법사였어요.”

사냥개는 추적에 앞선 브리핑을 시작했다.

최초 수배 날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발견지를 설명하고, 마지막 발견지까지의 예상 이동경로를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은 꽤나 자세했다.

“마스크를 추적했던 추적자에게 산 정보에요.”

사냥개는 다섯 수배자들 중 마스크를 첫 번째 대상으로 삼고, 마스크를 추적했던 동료 추적자에게 정보를 샀다.

본래라면 그 정보를 토대로 수배자의 경로를 재추적하는 것이 순서에 맞았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를 확신하고 있는 듯 말을 이어갔다.

“이 뒤로는 행방불명상태인데, 내로라는 추적꾼들도 두 손, 두 발 다들 정도로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그렇다면 사냥개 역시 다르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진한은 사냥개가 마스크의 흔적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인체실험은 필연적으로 흔적이 남는다.

재료를 구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실험이 끝난 후에도.

재료를 공급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었다.

납치와 구매.

납치는 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안정적이지 못하고 토벌 의뢰가 들어올 수 있기에 선호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대부분의 집단은 노예를 구매해 실험을 이어갔다.

“마스크가 사라지고, 몇 달 안지나 이 지역에서 주민들이 행방불명되고 있어요.”

사냥개는 지도 위의 한 지역을 가리켰다.

수배자, 그러니까 마스크가 행방불명 된 지역으로부터 도보로 한 달 남짓 걸리는 거리의 지역이었다.

그곳에는 주민들의 마을이 표시되어 있었다.

진한은 입에 담배를 물었다.

“토끼님, 여기 불.”

엘리스는 잽싸게 성냥을 꺼내 불을 붙여줬다.

“저는 이 지역에 마스크가 있다고 예측해요.”

사냥개는 마스크가 있을 법한 지역을 특정 지었다.

메이첸과 마법사 K는 별 흥미를 못 느끼는 듯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엘리스는 아예 대화를 듣지도 않고 있었다.

진한만이 지도의 한 부분을 응시했다.

사냥개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지만, 사냥개의 얼굴은 피로로 찌들어 있었다.

인체실험을 하는 마법사가 사라진 후, 주민이 있는 마을에서 행방불명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어렵지 않게 마을 근처에 마법사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메이첸도, 마법사 K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특정 짓기 위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보를 모으는 것부터 해서 단편적으로 조각난 정보들을 이어붙이는 작업은 꽤나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훗날 사냥개가 제일의 추적꾼으로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추적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이런 정보 취합 능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스크가 추적하기 쉬운 종류의 수배범이라는 점도 한 몫 했지만, 단 며칠 새에 위치를 특정 지을 수 있는 추적꾼은 몇 없었다.

“뭐, 아니면 다시 찾아보죠.”

사냥개는 담배를 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예측이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었고, 지금은 현장에 나서지도 않고 뽑아낸 추론일 뿐이었다.

며칠 밤을 새서 취합하고 분류한 정보였지만, 사냥개 역시 단번에 마스크를 찾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정도 까지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엠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스크의 추적을 포기한 추적꾼들과 그녀의 차이는 더블엠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었다.

“출발 준비가 끝나면 출발한다.”

진한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이틀 걸리는 거리를 가는 것도 아니니,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았고 경로도 조정해야 했다.

최소한 이삼일은 걸릴 준비였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사냥개는 그렇게 말하고, 맥그린의 2층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한에게 고용된 뒤 사냥개는 아예 맥그린으로 거처를 옮겨버렸다.

아마 그녀는 남은 며칠 동안 자신이 취합한 정보 중 잘못 판단한 것이 없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

엘리스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에게 요 며칠간의 상황이 아무 못마땅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네요?”

“집단에서 실험을 할 경우, 한 마을에서 주기적으로 재료를 조달하지는 않는다.”

사냥개는 준비를 하는 기간 동안 자신이 취합한 정보를 다시 분석하고 있었다.

메이첸과 마법사 K에게 이번 현상금 사냥은 관심 밖의 일이었으니, 별다른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사냥개가 정보를 의논하는 대상은 자연스레 진한으로 정해졌다.

그녀가 추린 지역을 제외하고도 두 개의 지역이 더 특정되었다.

당연히 사냥개와 진한이 붙어있는 시간 역시 길어졌다.

아침식사를 하고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둘은 진한의 방 혹은 1층의 식당에서 의견을 나눴다.

엘리스는 이 상황이 굉장히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번은 자신 역시 대화에 끼고자 자료를 살펴봤지만, 도통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엘리스는 진한의 옆에 붙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따름이었다.

‘미워.’

엘리스는 얘기를 나누는 진한과 사냥개를 쳐다봤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공적인 대화였지만, 엘리스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그녀에게는 진한과 사냥개가 나누는 대화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대화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아, 담배가 떨어졌네요. 하나만 주시겠어요?”

사냥개가 담배가 떨어진 듯 손을 내밀자 진한이 담배를 건넸다.

‘내가 준건데.’

엘리스가 아침에 준 담배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진한의 팔을 꾹 움켜쥐었다.

진한은 슬쩍 엘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다시 사냥개와 의견을 나눴다.

엘리스는 알 수 없는 박탈감에 눈물을 글썽이다가,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올라간 후에도 진한과 사냥개의 대화는 계속 됐다.

“으음, 저 아가씨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요?”

엘리스가 올라가자 사냥개가 물었다.

진한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좀 더 안 챙겨줘도 괜찮아요? 진한 씨 피앙세 아니에요?”

“아니다.”

진한은 연기를 내뿜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양쪽 관자놀이를 담배를 쥐지 않은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두통을 억눌렀다.

“여기 질투 마을이에요. 마을 특성이 생각보다 심해요.”

사냥개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질투 마을.

평소라면 참고 넘길 수 있는 일들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종래에는 이성을 잠식한다.

그 영향은 마을을 한 바퀴 돌기만 해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었다.

“곧 떠날 거니까.”

어차피 하루, 이틀 내면 질투 마을을 벗어날 것이었다.

예상보다 준비 기간이 길어졌지만, 준비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 동안만 엘리스가 사고를 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흐응, 마을만 벗어나면 해결 될까요?”

사냥개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진한을 바라봤다.

진한은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마을을 벗어나면 특성의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한번 흘러간 사고의 흐름은 바로잡기 힘들었다.

특성을 받는 것처럼 커다란 영향은 없었지만, 전보다 더 귀찮아 질 것이 뻔 한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확실히 선을 긋는 게 좋지 않겠어요? 마을을 벗어났을 때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사냥개의 말에 진한은 대꾸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었다.

옛날 엘리스는 ‘진한’이 아니라 ‘토끼’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 집착은 ‘이성적인 감정’이 아닌, 새끼 오리가 알을 깨고 나와 처음 마주한 대상을 ‘부모’로 여기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진한은 엘리스를 가만 뒀다.

하지만 질투 마을에서 엘리스가 하는 행동을 보니,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균열의 마법사’ 클래스를 얻은 뒤에는 전처럼 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딘지 모르게 엘리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엘리스는 혼자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떨어지기를 싫어했다.

그렇기에 떨어져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는데, 그래서 제대로 된 상태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전과 같은 불안함에 의한 ‘집착’이라고 생각했는데, 질투 마을에서 하는 양을 보니 진한의 예상이 틀렸다.

“우선 마을을 벗어나고 지켜보자.”

“나쁘네요. 지금 본인은 엄청 힘들 텐데.”

진한은 대꾸하지 않고 서류에 눈을 돌렸다.

엘리스는 방으로 올라가다 말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만 두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으론 끝도 없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엘리스가 계단을 내려설 때, 사냥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더 안 챙겨줘도 괜찮아요? 진한 씨 피앙세 아니에요?”

“아니다.”

엘리스는 자리에 굳은 듯 멈춰 섰다.

알긴 알았다.

자신은 진한과 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녔고, 진한은 거절하지 않았을 뿐이다.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만약 자신이 떠난다 하면 진한은 과연 자신을 잡을까.

“흐응, 마을만 벗어나면 해결 될까요?”

상상하기 싫었다.

상상만 해도 초라해지고,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사냥개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이라도 확실히 선을 긋는 게 좋지 않겠어요? 마을을 벗어났을 때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엘리스는 사냥개의 말에 가슴이 덜컥거렸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그런 말 하지 마. 나빠.’

선을 긋는다.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마나 지금의 관계라도 유지하고 싶었다.

그녀는 계단에 주저앉아 귀를 막았다.

그 뒤의 대답은 듣기 싫었다.

진한이라면 당연히 선을 긋겠다, 밀어 내겠다, 대답할 것이다.

그녀는 듣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안 듣는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지금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마을을 벗어나고 지켜보자.”

“나쁘네요. 지금 본인은 엄청 힘들 텐데.”

진한은 확실한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리스는 진한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혼자 진한의 대답을 상상하다 울며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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