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사냥개 =========================================================================
“내가 뭘 실수했나요?”
사냥개는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스를 보며 물었다.
진한은 사냥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재떨이에 지저 끄고는 엘리스가 떨어트린 담배를 가져왔다.
그는 포장을 벗기고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가 나풀거렸다.
“하루 빨리 마을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야.”
메이첸의 말에 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마을에서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지만, 이곳은 질투 마을이었다.
질투가 커지고, 커지고 더 커져 이성까지 잠식해 버리는 곳이었다.
“그건 그렇고, 의뢰하시는 분들 맞으시죠?”
사냥개의 말에 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떻게 한 눈에 알아봤냐.”
메이첸의 물음에 사냥개는 종업원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의뢰소에서 저를 찾았다는 사람이 있어서요. 종업원이 말해주더라고요, 제 얘기 하는 뉴 페이스들이 있다고.”
그녀는 종업원이랑 꽤 친한 듯 눈인사를 하고는 담배를 물었다.
“자 본격적으로 어떤 의뢰를 하실 것인지 좀 말해주시겠어요?”
“현상금 사냥.”
“구체적으로 어떤?”
사냥개가 물었다.
현상금 사냥에도 종류가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생포 혹은 살상.
그리고 현상금까지 고려를 해야 했다.
“현상금은 상관없다. 살상으로. 단 조건이 있다.”
사냥개는 진한을 응시했다.
그녀는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나다.
보통 추적꾼까지 고용해 수배범을 추적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전문적인 현상금 사냥꾼들과, 현상금을 건 길드에서 직접 찾아 나서는 경우.
하지만 진한은 양쪽 어디에도 속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현상금 사냥꾼들은 현상금을 크게 신경 쓰고, 길드에서 추격 나온 이들은 정확한 수배범을 지목했다.
이런 경우는 딱 한가지뿐이었다.
“혹시 파티에 마법사가 있나요?”
사냥개의 질문에 메이첸과 마법사 K가 머쓱하게 손을 들었다.
“아, 질문을 잘못했네요. 별칭부터가 마법사신데. 제 말은 그러니까, 뭐 실험이라던가.”
그녀가 묻는 요는 이것이었다.
진한이 찾는 수배범들이 죽여 치워도 아무런 뒤탈이 없는 수배범들이냐, 이런 질문이었다.
수배범들이라 해도 종류가 다양했다.
뒷배가 있는 자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크라임 타운의 혈거인 같은 경우가 그러했다.
혈거인이 크라임 타운 내에서 이름을 널리 알렸음에도, 그를 추적하는 길드에서 그를 잡으러 오지 못하는 이유는, 혈거인이 크라임 타운에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혈거인 하나를 잡는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집단과 집단의 전쟁이 될 수 있었다.
흔치는 않았지만, 고액의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들 중 그런 이유로 기피되는 대상들이 존재했다.
거대 길드들에서는 몬스터 사냥만으로 스킬 숙련도 상승을 기대하지 못하는 클래스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지적 생명체들을 공급했다.
여기서 말하는 지적 생명체란, ‘인간’을 의미했다.
노예를 사들이기도 하고, 수배범을 잡아오기도 했다.
가장 선호되는 종류는 바로 수배범이었다.
수배범들은 잡아들이는 순간 스킬 숙련도는 물론 돈까지 들어오는 셈이었다.
그녀 역시 그런 종류의 의뢰를 꽤 받아봤기에 진한이 원하는 바가 무엇진지 바로 잡아낼 수 있었다.
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배낭에서 수첩을 꺼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얘는 잡혔고, 얘는 음.”
사냥개는 진한이 요구하는 조건으로 수배범들을 거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종이를 꺼내 몇 가지 이름과 현상금 그리고 수배범들의 수준을 적기 시작했다.
종이 위에는 총 열 개 남짓한 이름이 쓰여 졌다.
“우선 조건에 맞는 수배범들은 이정도 되는데요. 여기 위험등급을 분류해 놨거든요?”
그녀가 분류한 위험등급은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있었다.
보통의 슬레이어들은 능력치가 강함을 객관적으로 나타내어 준다 생각했지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능력치는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지, 객관적인 지표는 아니었다.
진한이 나이트를 잡았던 것처럼 능력치를 뛰어넘는 전투는 얼마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냥개는 단순 능력치만으로 위험등급을 책정하지 않았다.
수배범이 어떤 포위망을 뚫었고, 어떤 상황에서 살아남았는지를 토대로 위험등급을 산정했다.
“1단계부터 5단계가 있는데, 5단계는 별로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네요.”
“등급은 어떤 식으로 책정하는 겁니까?”
마법사 K의 질문에 사냥개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보통 어떤 상황에서 살아남고, 수배범을 놓쳤을 때 어느 정도 피해가 있었는가. 이런 종합적인 걸로 평가를 내려요. 음, 크라임 타운에서 오셨죠?”
그녀는 마법사 K를 보며 물었다.
크라임 타운은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있어서 노다지와 같은 땅이었다.
한가락 한다는 수배범들이 대부분 크라임 타운에 몰려 있었으니, 추적꾼으로서도 크라임 타운의 동태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마법사 K의 이름을 듣고 진한 일행의 출발지를 추정했다.
“혈거인 같은 경우는, 단독 무력만 놓고 봤을 때 5단계가 되겠네요. 5단계 중에서도 위험도 중하?”
그녀의 말에 일행은 어느 정도 기준을 잡을 수 있었다.
“보통 5단계 추적을 나설 때는 길드 단위에서 나서는데, 이 파티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딱히 추천은 안해요.”
혈거인이 베가본드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단신으로 몇 명의 슬레이어들을 쓸어버렸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때는 포위된 상황이었지만, 만약 혈거인이 유리한 위치에서 끊어먹기로 치고 빠지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피해는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선 마법사 K만 해도 크라임 타운 내에서 혈거인과 비등하다고 알려졌던 슬레이어였다.
물론 상성 상 혈거인이 더 유리한 입장이겠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을 수준은 되었다.
파티는 보통 크게 수준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 꾸려진다.
그녀는 진한과 메이첸의 수준도 마법사 K와 합을 맞출 만한 수준으로 판단했다.
쉽게 말하자면, 그녀가 본 진한의 파티는 위험도 4,5단계의 슬레이어들이 최소한 셋은 되는 파티였다.
“단계는 상관없다. 그건 그렇고, 수배된 이유들은 뭔지 아나?”
진한의 물음에 사냥개는 다시 수첩을 뒤지며 옆에 이유를 하나, 하나 적어갔다.
의외로 강간, 살인, 사기, 절도 같은 이유는 별로 없었다.
열댓 명 중 대다수가 이유 미상이었다.
그 중 살인과 강간 등의 이유가 적힌 이들을 추리자 다섯의 수배범들만이 남았다.
진한은 다섯의 수배범들을 체크하고 그녀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그녀는 진한의 분류 방식에 의문을 표했다.
사실 더즌 헬에서 살인과 강간으로 수배가 내려진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차라리 ‘이유 미상’이라고 적는 편이 더 신빙성 있었다.
하지만 진한이 찍은 이들은 모두 누가 봐도, 그러니까 ‘현대인’의 사고방식으로도 범죄자들이었다.
그녀는 이유는 묻지 않고 종이를 쭉 훑어봤다.
다섯 수배범들이 전부 4단계 혹은 5단계의 수배범들이었다.
“이 중 누구로 하시겠어요?”
사냥개의 질문에 진한이 대답했다.
“전부.”
“와, 제대로 된 의뢰자들이셨네요.”
진한의 대답에 사냥개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마침 돈도 슬슬 떨어져 가던 터라, 이런 식의 의뢰는 희소식이었다.
진한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도 인연인데, 오늘은 술이나 한 잔 하는건 어때요?”
일어나는 진한에게 사냥개가 말을 건넸으나 진한은 대꾸하지 않고 방으로 올라갔다.
“무뚝뚝하네. 이렇게 된거 우리끼리라도 마실레요?”
사냥개가 메이첸과 마법사 K에게 물었다.
거절할 둘이 아니었다.
*
“너무해.”
엘리스는 이불을 끌어안고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자가 물려준 담배를 피고 있는 진한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어떻게…….”
메이첸이나 마법사 K였다면 차라리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슬레이어가, 그것도 여자가 담배를 줄 때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수도 있었다.
그저 담배를 주기에, 받아 핀 것뿐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나빠.”
진한이 나쁘다는 건지, 사냥개가 나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섞여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엘리스는 생각을 확장시켰다.
의미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는 생각의 확장이 이뤄지고 있었다.
진한의 옆에 꼭 붙어 있는 것도 자신이었고, 언제나 진한을 먼저 찾는 것도 자신이었다.
생각해보면 진한이 먼저 말을 건다거나, 그녀를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진한에게 있어서 자신은 그저 귀찮은 혹덩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그득 메웠다.
자신은 그렇게도 귀찮게 여기던 진한이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진한의 태도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녀가 다가오면 내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찾지도 않았다.
“토끼님…….”
그녀가 고개를 파묻은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엘리스의 내면에선 섭섭함, 배신감, 초라함 등등의 감정이 뒤섞여 휘몰아쳤다.
“미워요, 토끼님.”
왜 이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진한과 그녀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고, 둘 사이에 특별한 감정의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섭섭했다.
“나빠, 나빠, 나빠.”
엘리스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 누가 진한에게 똑같이 행동해도 진한의 태도는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섰다.
엘리스는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토끼님……?”
진한이었다.
엘리스는 진한의 등장에 반색했다.
엘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한에게 안기며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토끼님, 토끼님.”
진한은 습관적으로 엘리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진한의 손길을 느끼며 잠시간 행복감을 만끽했다.
‘토끼님이 처음으로 날 찾아 오셨어.’
“네 방으로 가라.”
라는 그녀의 생각은 불과 1초도 지나지 않아 깨어졌다.
그녀가 시름에 빠져있던 방은 바로 진한의 방이었다.
방으로 올라온 진한은 자신의 침대에서 비비적대고 있는 엘리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엘리스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봤다.
눈물을 흘린 듯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녀가 품에 안겨 코를 비비적댔다.
진한은 습관적으로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마을 속성은 무시할 수 없군.’
엘리스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간 거한 홀대도 받았던 엘리스였다.
고작 이런 일로 질질 짤 정도로 곱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엘리스의 감정은 많이 불안해 보였다.
그녀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진한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는, 놔주지 않았다.
“네 방으로 가라.”
진한의 말에 엘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아, 아. 가, 가요? 엘리스 가요?”
엘리스는 뭔가 당황한 듯 진한을 보며 물었다.
“안가면 안돼요?”
진한은 물끄러미 엘리스를 응시했다.
질투는 질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른 감정을 동반한다.
그렇게 동반되는 감정은 제각각 다르다.
누군가는 질투를 느낄 때 화가 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질투를 느낄 때 심각한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엘리스는 지금 불안해하고 있었다.
진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엘리스를 밀어내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더 있다 가.”
진한의 말에 엘리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은 진한이 물고 있는 담배에 고정되어 있었다.
엘리스는 의자를 끌어다 진한의 옆에 딱 붙어 앉았다.
“토끼님.”
엘리스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진한을 올려다봤다.
“아까 그 여자는 누구에요?”
진한은 엘리스를 내려다 봤다.
촉촉한 눈가가 어딘지 불안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사냥개, 우리가 찾던 추적꾼이다.”
“걔 메이첸 보다 싫어요.”
천진한 눈빛에 진한은 할 말을 잃었다.
============================ 작품 후기 ============================
제망량// 십이 마을에는 군주 게이트가 있습니다. 군주 게이트가 있는 마을은, 해당 군주의 속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군주 게이트를 통해 군주의 힘이 흘러나와서 그런 영향이 있는 겁니다.
HYouN우//엘리스를 찬양하네요. 엘리스가 참 귀엽습니다. 엘리스가 주인공인거 같아요
카이마이//부디 제가 끝까지 글을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카이마이님의 응원에 감사드리며, 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카이마이님의 이름은 꼭 쓰도록 하겠습니다. 중년간지남이군요.
저매인//시무룩한 엘리스... 진한이 달래주러 온줄 알았는데.. 이런.. ㅠㅠ
아오안님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로로로로랍님 후원감사합니다. 이번편도 잘 보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딸기맛시아님 후원감사합니다. 엘리스 딥빡인데 과연 이번 편에서 풀린 걸까요...
엘리스의 빡침은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반짝 하고나니까 순위가 많이 내려갔네요.
꾸준하게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