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6 사냥개 =========================================================================
“워, 저 아가씨 화끈하네요. 봤어요? 남자 배때기에 칼 쑤시는 거?”
진한은 앞장서서 길을 가고 있을 때 마법사 K는 남녀 간의 싸움을 구경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일행은 자리에 멈춰 시선을 돌렸다.
얼마 안 되는 시간동안 목격한 남녀 간의 사랑싸움만 해도 한 손에 꼽기 힘들었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수준은 양반이었고, 심한 경우엔 방금처럼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길을 걷던 치료사 슬레이어가 다가와 남자를 치료했고, 남자는 익숙하게 품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여자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듯 남자에게 울며 매달렸고, 남자는 여자에게 뭐라 뭐라 소리치더니, 여자를 밀치고 자리를 벗어났다.
혼자 남겨진 여자는 자리에 주저앉아 울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여자는 다시 칼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다가갔다.
여자의 눈동자는 독이 올라있었다.
“저거 봐라. 여기는 미친년이 천지네, 천지야. 또 찌르러 가는 거 봐라 저년.”
메이첸 역시 눈을 떼지 못하고 사태를 지켜봤다.
메이첸의 예상대로 여자는 남자에게 칼을 휘둘렀고, 곧 사랑싸움이 목숨을 건 혈투로 변질되었다.
몇몇 슬레이어들이 앞으로 나설 준비를 하는 것을 봐서는 이런 싸움이 있은 후 치료사들이 한몫 두둑이 챙기는 것 같았다.
“에이, 근데 더럽게 못 싸우네.”
“으휴, 병신새끼. 모가지를 쳐야지, 모가지를. 지 배때기 쑤신 년이 뭐가 이쁘다고 봐줘, 봐주기는.”
메이첸과 마법사 K는 구경을 넘어서 중계까지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만 가자.”
진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엘리스는 종종거리며 진한을 따라 나섰고, 둘은 아쉬운 눈초리를 거두고 길을 나섰다.
진한이 향한 곳은 의뢰소였다.
의뢰소에는 현상금 사냥 파티를 모집하는 슬레이어들과 현상금 갱신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모인 슬레이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슬레이어들은 전문적인 현상금 사냥꾼들이 아니었다.
유적지 탐사를 나가거나, 다른 마을에 갈 일이 있을 때 혹시 모를 부수입을 위해 현상금 수배범들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의뢰소의 벽면에는 각양각색의 길드들이 수배 의뢰한 현상범들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회귀 이전 한때는 진한의 얼굴도 저 벽면에 붙어있었다.
“뭐, 해결사라도 하시게?”
메이첸의 물음에 진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진한이 의뢰소를 찾은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그간 해온 행보를 봤을 때 해결사 등록이라도 하려는 듯싶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아니오’였다.
진한은 창구로 향했다.
“추적꾼을 좀 구하고 싶은데.”
“원하시는 추적꾼이 있으신가요?”
“사냥개가 지금 의뢰를 받나?”
진한의 말에 접수원은 장부를 뒤적였다.
대부분의 추적꾼들은 의뢰소를 중간에 끼고 의뢰를 받는다.
그편이 의뢰를 받기도 편할뿐더러 정보를 구하기도 쉬웠다.
접수원은 서류를 한참 뒤지더니 고개를 저었다.
“의뢰 받기 힘든 상황이네요. 다른 추적꾼을 추천해드릴까요?”
진한은 품에서 돈을 꺼내 접수원에게 내밀었다.
은화 이십여 개가 창구에 놓였다.
“사냥개한테 소개장 좀 적어줬으면 좋겠군. 사냥개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라.”
접수원은 동전을 챙겨 넣으며 펜을 휘갈겨 소개장을 적어줬다.
“소개장은 드리는데, 의뢰를 받고 말고는 책임 못져요.”
진한은 말없이 소개장을 받아 품에 넣었다.
“아, 사냥개가 자주 가는 술집이 어딘지 아나?”
“맥그린이요.”
진한은 그대로 걸음을 돌려 의뢰소를 나왔다.
메이첸과 마법사 K는 서둘러 진한의 뒤로 따라 붙었다.
“뭐야, 뭐 족칠 새끼라도 있어?”
“뭡니까, 사냥개는 뭐고. 뭐 현상금 사냥이라도 하려는 겁니까?”
추적꾼을 찾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진한이 사람을 찾을 이유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원한 관계이거나 현상금 사냥을 하거나.
그게 둘이 보아온 진한의 모습이었다.
“현상금 사냥한다.”
그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워낙 말수가 적은 진한이었으며, 시시콜콜 세세한 사항들을 설명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열 마디를 걸면 아홉 마디를 무시하는 것이 진한이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말을 거는 사람은 엘리스 밖에 없었다.
진한도 그런 엘리스에게는 질렸는지, 드문드문 대답을 해주는 편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진한을 따르는 메이첸을 엘리스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토끼님, 메이첸 이제 잘 닥쳐.”
“칭찬해 줘라.”
엘리스는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메이첸에게 내밀었다.
“뭉뭉이, 칭찬해줄게. 자, 밥 먹자.‘
“미친년이?”
본인은 피지도 않는 담배를 굳이 사다가 배낭에 챙겨 넣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개입니까?”
“닥쳐, 미친놈아.”
메이첸은 한숨을 푹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술집 맥그리는 외진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겸 주점이었는데, 진한과 일행은 방을 잡고 내려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 사냥개인가 뭐시긴가가 그렇게 추적을 잘해?”
식사를 마친 메이첸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메이첸의 질문에 마법사 K 역시 궁금한 듯 진한을 바라봤다.
일반적으로 의뢰소 추적꾼들의 수준은 고만고만했다.
정말 특출난 추적꾼들은 길드에 속해있거나 의뢰소를 끼지 않고 의뢰를 받았다.
고작 의뢰소 추적꾼을 만나기 위해 여관까지 잡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그의 질문에 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한 최고다.”
“지랄은. 너 신규 슬레이어 아니지.”
메이첸은 입을 삐죽이며 물었으나, 진한은 대꾸하지 않고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잡히는 것이 없었다.
담배가 다 떨어진 것이다.
진한은 메이첸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이첸은 진한이 손을 내미는 이유를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토끼님 담배 없다. 엘리스가 가져다줄게. 메이첸 더러워.”
엘리스는 식사를 하다말고 담배를 가지러 올라갔다.
“저 미친년이 진짜.”
“메이첸, 난 여기까지 오면서 댁이 씻는 걸 한 번도 본적 없습니다.”
마법사 K의 말에 진한은 메이첸에게 내민 손을 거두고 마법사 K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만 기다리시죠. 먹다말고 올라갔는데.”
마법사 K는 계단 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고, 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간 지 몇 분이 지났지만, 엘리스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한은 마법사 K에게 손을 내밀었다.
“담배.”
마법사 K가 어색한 얼굴로 품에서 담배를 건네려 할 때.
“제거 피시겠어요?”
그때 진한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한이 고개를 돌리자, 갈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담배를 건네고 있었다.
진한이 대답하지 않자 여자는 진한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불을 붙였다.
갑작스런 여자의 등장에 메이첸은 물론 마법사 K는 고개를 갸웃했다.
“의뢰소에서 저를 찾으신 게 여러분이에요? 근데 한 분이 안계시네요. 네 분이라고 들었는데.”
그녀의 말에 메이첸과 마법사 K는 그때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냥개를 보던 메이첸은 무언가 발견한 듯 입을 열려 했으나, 사냥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침 슬슬 일 해볼까 했는데, 운이 좋으시네요. 제 입으로 말하긴 그런데, 저만한 추적꾼 만나기 힘들거든요.”
메이첸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다시 뭔가를 말하려 했으나…….
“제 이름은 제니에요. 사냥개라고 더 많이 불리는데, 편한 데로 부르세요.”
사냥개는 틈을 주지 않고, 엘리스의 자리에 앉으며 소개를 했다.
그녀의 모습에 메이첸은 뭔가를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마법사 K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K의 손을 마주 잡았다.
“마법사 K입니다. K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름다운 숙녀분.”
K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니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
“네네, 반가워요 K. 다른 분들은?” “메이첸. 근데 그 자리…….”
자신을 소개한 메이첸은 사냥개의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쟤 자린데.”
제니는 그때서야 자신의 자리 앞에 식사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엘리스가 서있었고, 그녀의 발치에는 종이에 곱게 쌓인 담배가 떨어져 있었다.
메이첸은 담배 연기를 훅 하고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제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미안해요, 신경 쓰지 못했네요.”
그녀는 머쓱하게 웃으며 엘리스에게 사과했지만, 엘리스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참고로, 쟤 미친년이야.”
제니와 마법사 K는 메이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사 K는 엘리스와 제니를 번갈아 보고는 손뼉을 탁 쳤다.
“아, 여기는 질투 마을이군요.”
마법사 K의 시선이 엘리스의 발치에 떨어진 담배에 고정되어 있었다.
엘리스는 진한에게 줄 담배를 가지러 방으로 올라갔다.
담배를 피지 않는 그녀의 가방에는 두 종류의 담배가 있었다.
하나는 메이첸이 시끄러울 때 닥치게할 목적으로 사둔 담배였고, 다른 하나는 진한이 피는 담배였다.
더즌 헬에 담배는 주민들 또는 슬레이어들이 직접 만드는 잎담배들이었는데, 제조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진한이 피는 담배는 너무 독해 찾는 사람도 많이 없었고, 만드는 사람도 별로 없는 담배였다.
그래서 진한은 담배를 파는 곳을 찾으면 최대한 많은 담배를 구비해 배낭에 넣어 다녔다.
엘리스는 크라임 타운을 떠나기 전, 진한 몰래 진한의 담배를 사기 위해 이른 새벽 거리로 나섰다.
이전에 진한과 함께 갔던 곳은 크라임 타운의 세력전으로 영업을 중지한 상태였다.
그녀는 진한이 피는 담배를 찾기 위해 새벽부터 온 새벽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끝내 해가 떠오르기 전에 무사히 담배를 구할 수 있었다.
엘리스는 질투 마을에 오는 내내 진한의 담배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마을에 오는 내내 진한의 담배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바라던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고작 담배 한 개비 건네주고, ‘고맙다’는 칭찬 한 마디로 끝날 일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왠지 설레는 일이었다.
그녀는 배낭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담배를 찾아 식당으로 내려왔다.
그때 엘리스는 마법사 K에게 손을 내미는 진한을 볼 수 있었다.
“담배.”
엘리스는 마법사 K가 진한에게 담배를 넘겨주기 전에 서둘러 담배를 건네기 위해 발을 뗐다.
아니, 떼려 했다.
“제거 피시겠어요?”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와 진한에게 담배를 건넸고, 진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대답 없는 진한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손수 불을 붙여 주었다.
“의뢰소에서 저를 찾으신 게 여러분이에요? 근데 한 분이 안계시네요. 네 분이라고 들었는데.”
엘리스는 손에 든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내가 가져다준다 그랬는데…….’
분명 자신이 가져다준다 했는데 진한은 이상한 여자가 건넨 담배를 피고 있었다.
여자는 뭐라, 뭐라 말을 하면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내자린데…….’
마법사 K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드는 생각은 단 두 개뿐이었다.
진한이 다른 여자가 준 담배를 피고 있다는 것과, 그 여자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정확히 말하자면 진한의 옆자리에 앉았다는 사실들이었다.
메이첸이 뭐라, 뭐라 말하며 자신을 가리키자, 여자는 자신을 발견하고 의자를 하나 빼와서 자리에 앉았다.
위치가 딱 원래 자신의 자리와 진한의 가운데였다.
‘내가 분명…….’
엘리스는 알 수 없는 섭섭함에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가져다준다 그랬는데…….’
마법사 K가 자신과 여자를 쳐다보더니 뭔가를 깨달은 듯 박수를 탁 쳤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자신의 발치에 고정됐다.
무언가 흥미롭다는 눈빛의 K의 시선이 닿자 엘리스는 어딘지 모르게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두고 그대로 방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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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마이// 아닙니다! 진한은 질투마을로 떠났습니다!!!
RoadSeeker//히히히히ㅣ히히 .. 저도 웃을게요.. 웃어야 힘이 나죠 ㅎㅎㅎㅎㅎ
HYouN우// 혈거인을 GET! 보금자리를 겟했다! 엘리스 키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스는 미쳐있는 걸까요, 아닐까요!!
네.. 댓글 모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