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1 혈거인 =========================================================================
*
“우린 도대체 여기 왜 온 건데?”
메이첸은 불만스런 목소리로 진한에게 물었다.
그로서는 진한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크라임 타운이 가뜩이나 시끄러울 때, 크라임 타운을 방문했다.
조용히 지내도 모자를 판에, 베가본드를 위해 일을 했다.
물론 거래의 형식을 한 행위였지만 폭풍의 소용돌이 그 중앙에 들어온 것이다.
삼파전에서 유니온이 빠지고…….
"저 아저씨는 불만이 참 많습니다. 좀 닥쳤으면 좋겠는데.“
미친놈이 베가본드에 눌러 앉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메이첸은 마법사 K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길드들은 이따금씩 교류의 기회를 갖는다.
그때 몇 번 마법사 K를 만난 적이 있어 안면식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당최 적응이 되는 인사가 아니었다.
거기에 길드를 회사 다니듯,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꼴이 뒤가 구린 놈인 것 같기도 했다.
“미친년에 미친놈이 추가 됐어, 씨발.”
“말을 해도 참. 신사 한 명이 낀 거라 하죠.”
“엘리스는 그럼 숙녀할레.”
진한의 옆에 붙어있던 엘리스가 끼어들자, 마법사 K는 정중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시죠, 미친 숙녀분.”
“토끼님. 미친놈이 엘리스 괴롭혀.”
진한은 셋의 대화에 끼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응? 토끼님. 미친놈 가라 그래. 쟤 메이첸보다 싫어.”
엘리스가 보채는 통에 진한은 책을 덮어야 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셋을 바라봤다.
메이첸은 능숙하게 진한의 시선을 피하며 담배를 물고 창밖을 응시했고, 마법사 K는 괜스레 신발끈을 묵으려 고개를 숙였다.
엘리스는 가슴을 쭉 펴고 기세등등하게 둘을 깔아봤다.
“셋 다 좀 꺼져라.”
메이첸과 마법사 K는 듣지 못한 양 딴청을 피웠고, 엘리스는 풀이 죽어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르 푹 숙였다.
진한은 책을 옆으로 치우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진한 일행에 대한 여명검수의 대우는 나쁘지 않았다.
저택은 꽤 넓었고 남는 방은 많았다.
여명검수는 분명 각자에게 방 하나씩을 배정해 주었다.
하지만 잠잘 때를 제외하면, 물론 한명은 예외였지만, 어쨌든 잠잘 때를 제외하면 모두가 진한의 방에 몰려있었다.
좁아터진 방에 성인 남자 둘이 꾸역꾸역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고, 엘리스는 옆에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우린 여기 계속 처박혀 있어야 하냐고.”
메이첸은 창밖을 보다 말고, 못 참겠는지 진한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맞아. 메이첸만 여기 있으면 되는데, 엘리스 나가고 싶어 토끼님.”
“아니, 저 미친년이.”
“미친 숙녀분이 옳은 말을 하네요.”
“거, 씨발. 미친년놈들이”
셋은 다시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공격했다.
셋의 대화에는 아군도 없었고 적군도 없었다.
그저 빌미만 있으면 누구든 집중 공격했다.
진한은 셋을 두고 방을 나섰다.
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베가본드를 떠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여명검수에게 부탁한 아이템이 아직 모이지 않았다.
진한이 여명검수에게 부탁한 아이템들은, 진한과 엘리스가 착용할 장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주 목적은 장비들이 아니었다.
장비를 구해야 했으면, 몰락하는 페어리문의 창고를 털고 나와도 되는 부분이었다.
진짜는 바로 장비를 제외한 몇몇 재료 아이템들이었다.
회복이나 저주 계열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슬레이어들은 잘 모르는 아이템이었지만, 다행히 여명검수는 그 분야에 부족하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대부분이라, 여명검수로서도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아들을 위해 쏟았던 시간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그 아이템들을 구하는 경로만 찾고 있었을 것이다.
진한으로서는 다행인 부분이었다.
진한이 향한 곳은 여명검수의 집무실이었다.
지금은 베가본드와 검은달 사이의 전쟁이 한창으로, 여명검수는 자리에 없었다.
지금 크라임 타운은 검은달과 베가본드 슬레이어들의 시가전으로 한창 시끄러웠다.
오히려 양 진영의 본거지가 제일 조용했다.
진한은 여명검수의 집무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문 밖으로 자신을 찾아다니는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가뿐히 무시하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번 전쟁은 회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전 생에서 베가본드가 패배했던 이유는 단 두 개였다.
혈거인이 여명검수의 아들의 존재를 알아내고, 여명검수가 흔들린 것이 첫 번째.
삼파전이 길어져 혈거인이 검은달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두 번째.
하지만 이번 생에는 혈거인이 여명검수의 아들의 존재를 알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이다.
물론 혈거인은 아직 검은달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디로 보나 베가본드의 승리였다.
“시기가 맞았으면 좋겠는데.”
진한은 이 전쟁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를 가늠했다.
절정이란, 여명검수가 혈거인의 목을 치기 직전의 순간을 의미했다.
엘릭서는 결국 여명검수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메이첸이 들어왔다.
엘리스는 진한을 찾아다니고 있었고, 마법사 K는 진한이 사라지자 금세 흥미를 잃고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메이첸은 진한이 당연히 집무실에 있을 거라는 걸 예측한 듯, 바로 집무실에 들어섰다.
“너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메이첸은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물고 진한을 바라봤다.
“무슨 말이지?”
“여명검수는 아들이 있고, 너는 그 아들의 존재를 알고 있어. 그건 여명검수에게 아주 치명적인 정보지.”
메이첸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연기를 내뿜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진한은 자비가 없는 슬레이어였다.
신뢰라는 단어는 진한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여명검수의 아들의 존재는, 이 삼파전에 있어서 하나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였다.
하지만 진한은 그런 정보를 고작 아이템을 얻어내는 데에 사용했다.
거기에 삼파전에서 유니온을 빼주기도 했다.
물론 진한이 여명검수에게 요구한 장비들이 값이 싼 장비들은 아니었다.
제법 되는 길드의 정예 길드원들이나 착용할 법한, 떠돌이 슬레이어들은 꿈도 꾸지 못할 장비에 속했지만, 그런 아이템들이 탐이 났던 것이라면 페어리문을 나설 때 빈손으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거래였다.
그가 아는 진한이라면, 여명검수에게 입막음의 대가를 받아낸 후 혈거인과 접촉해 추가적인 이득을 받아낼 것이다.
하지만 진한은 그러지 않고 있었다.
“내가 그 정보를 알았다면, 혈거인을 먼저 찾아갔을 거다.”
메이첸의 말에 진한은 말없이 연기를 내뿜었다.
“제법 머리를 굴렸군.”
메이첸 치고는 제법 머리를 굴렸다.
진한은 말없이 담배를 내뿜었다.
“이상해. 넌 대체 뭘 얻으려는 거냐. 알고나 좀 붙어있자.”
메이첸 진한을 응시했다.
“아이템.”
이전에 물었던 질문과 같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메이첸에게는 다른 대답으로 들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 숨겨진 뜻을 알아챘다고 봐야 했다.
크라임 타운에 오고 나서야, 진한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한이 말하는 아이템이란…….
“너, 너 설마…….”
엘릭서였다.
“비정한 새끼.”
메이첸은 그날 저녁, 짐을 챙겼다.
이제는 여명검수의 사정의 전반을 알고 있는 메이첸이었다.
진한은 몰랐지만, 그 사이 메이첸은 여명검수와 술자리를 자주 함께했다.
여명검수로서는 진한 일행은 자신의 폭탄 스위치를 손에 쥔 이들이자,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해방구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명검수와 많은 대화를 했다.
모순되게도 여명검수는 진한 일행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 빨리 삼파전이 끝나야 했는데, 진한 일행은 그 걱정을 털어 주었다.
하지만 진한의 목적이 엘릭서인 이상, 여명검수는 결코 엘릭서를 얻지 못한다.
메이첸 특유의 감각이, 이성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진한이 원하는 이상, 베가본드도, 검은달도 결코 엘릭서를 얻지 못한다.
“양패구상을 바라는 거였어.”
양 집단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너덜너덜해 지는 순간, 진한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것이다.
그때는 어려울 것도 없었다.
승자가 누가 되었건, 여명검수나 혈거인 둘 중 하나의 목만 따버리면 엘릭서는 진한의 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김태수의 품에 안긴 셀리나의 목을 날릴 때의 그 움직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메이첸은 짐을 챙기다 말고 담배를 물었다.
“씨발, 지금 떠나면 목 날리는 거 아냐?”
진한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진한은 매정하고, 사람의 마음을 짓밟을 때 망설임이 없는 슬레이어였다.
진한만큼 ‘슬레이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슬레이어는 없었다.
메이첸이 본 진한은 사람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틀어쥐고,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럴 필요성만 있다면 얼마든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도를 지나쳤다.
정말 엘릭서를 원하는 것이었다면, 굳이 여명검수에게 접근할 필요도 없었다.
진한이라면 얼마든 다른 방법을 구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삼파전에 끼어들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진한은 굳이 베가본드를, 여명검수를 찾아왔다.
이것은 기만이었다.
여명검수를 기만하는 행위였다.
여명검수의 눈앞에 그가 바라는 것을 쥐고, 잡힐 듯 말 듯 흔들며 농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한이라면, 여명검수의 손끝이 엘릭서에 닿는 그 순간, 여명검수가 가장 희망에 찬 그 순간, 여명검수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것이다.
메이첸은 진한이 여명검수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기에, 몸서리를 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사람을 이용했다는 사실에서 몸서리를 치는 것이었다.
지금 메이첸에게 진한은 셀리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메이첸은 두려운 것이다.
진한이라는 사람 자체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언제고 진한이 자신의 심장을 틀어쥐고, 농락할 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짐을 다 챙긴 메이첸은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문을 열지는 못했다.
그는 그 상태로 한참을 굳은 채 자리에 서있었다.
“하, 씨발.”
메이첸은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또.”
그는 정이 많다.
김태수의 죽음을 묵인한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으며, 심지어 셀리나의 죽음에도 어느 정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첸의 방 창문 밖으론 뿌연 담배연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동이 틀 때까지,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
*
이른 아침 진한은 여명검수의 부름에 집무실로 향했다.
“고마웠소.”
여명검수의 말투는 어느새 정중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고,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지만, 얼굴은 어느때 보다 밝았다. 진한을 앞에 앉힌 여명검수는 진한에게 한짐 가득한 배낭을 넘겨줬다.
거기에는 진한이 요구한 장비들이 들어 있었다.
여명검수는 배낭 말고도 조금 작은 보따리를 내밀었다.
“누군가 아픈 구석이라도 있는가 보오?”
보따리에는 재료 아이템, 회복 아이템 심지어는 저주 아이템까지 골고루 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수요가 적어, 구하려 해도 발품을 팔아야 하는 물건들이었으나, 아들을 위해 아이템을 구하러 다녔던 여명검수는 비교적 쉽게 아이템들을 구해왔다.
진한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물었다.
“뭐, 내가 상관할 부분은 아니겠지. 어쨌든 잘 치료가 되길 빌겠소.”
“전쟁은 끝나가나 보군.”
진한의 물음에 여명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거인이 실수를 했소. 꽤나 다급해 보이더군. 덕분에 검은달이 궁지에 몰렸지. 오늘 저녁 근거지를 습격할 것이오.”
“다행이군.”
여명검수의 말에 진한은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하는 타이밍과 아이템이 구해진 타이밍이 딱 맞았다.
“오늘부로 떠나도 좋소. 덕분에 전쟁이 일찍 끝났구려.”
“어차피 거래였다.”
진한의 말에 여명검수는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런 아이템을 대가로 해주기는 큰일이었소.”
여명검수는 아들의 정보를 입 다문 것뿐만 아니라, 유니온을 없애준 것까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마워하면 오히려 미안하군.”
진한의 말에 여명검수는 손 사레를 치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한쪽 다리를 꼬고, 담배를 입에 문 후 천장을 바라봤다.
집무실에는 침묵이 내리깔렸다.
한참이 지나고 여명검수는 진한을 바라봤다.
그의 눈가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엘릭서를 구하고 나면,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이오. 그때 초대하겠소, 진한.”
여명검수는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진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 작품 후기 ============================
스나일// 제가 힘들기 위해선! 모두가 합심해서 #을 붙여야 합니다!
김조작// 슬픕니다.. 너무 슬픕니다.. ㅠㅠ 혈거인도, 여명검수도.. 사정이 있었네요.
HYouN우// 엘리스가 나왔습니다! 엘리스는 너무 팬이 많네요! 감사합니다!
흑월접// 매력적이라니.. 감사합니다!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옙,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잠을 푹 잤네요.
어젠 비가 오락가락 했습니다.
오늘은 투베 2위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00:00시 지나서 한편 더 드리고, 내일 오후에는 2편을 던지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00:00시에 연재를 하겠습니다.
자꾸 군만두를 얘기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뼈해장국에 소주라면, 조림통도 좋습니다.
그리고 군만두 주실거면 간장 마니 주세요..
제가 좀 짜게 먹습니다.
어제 병원을 갔는데, 이젠 술을 마셔도 되냐 물으니 의사선생님께서..
제가 금주 기간을 얼마나 말했지요?
두, 두 달이요..
근데 수술 후 9일만에 와서는.. 이제 좀 살만 한가봐요?
.......
낫고 그때 먹으세요.
하십니다....
킁.....................
네.. 저는 금주중입니다..
이번편도 모두가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연재가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작가의 리리댓을 원하시는 분은 #을 붙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