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9 여명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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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K는 눈앞에 앉은 두 남녀를 응시했다.
“저를 왜 찾아 오신건지?”
마법사 K는 불씨 없는 곰방대를 물고 진한을 응시했다.
진한은 시선을 테이블에 고정시키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마법사 K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명검수를 만날 때처럼 특별한 쪽지를 건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찾아가서, 만나게 해달라 이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마법사 K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담보로 내놓을 수 있는 미친놈이었다.
“삼파전에서 빠져라.”
“풉, 이거 손님인 줄 알았더니…….”
진한은 테이블에서 시선을 떼고 마법사 K를 응시했다.
그를 아는 슬레이어들은 마법사 K를 다르게 말했다.
지독한 안전주의자.
마법사 K는 진한과 눈을 마주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은은하게 감돌던 미소는 사라지고 잔뜩 굳은 표정이 자리했다.
“다시 말하지. 삼파전에서 빠져.”
마법사 K는 굳은 표정으로 대꾸하지 않았다.
지독한 안전주의자이면서 재미를 위해 목숨도 내놓는 미치광이로 보이는 이유.
그것은 바로 그의 곰방대 덕분이었다.
겁쟁이의 곰방대.
곰방대를 물고 있으면 위험을 알려준다.
상황이라면 자신이 연관된 상황에서, 사람이라면 눈을 마주치면.
상대가 자신에게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은지를 보여줬다.
디텍터들은 스킬로 수치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했지만, 겁쟁이의 곰방대는 감각적인 사실을 알려줬다.
상대의 능력치는 상관없이, 상대가 자신에게 위험한 존재인지, 아닌지를 알려줬다.
그는 겁쟁이의 곰방대를 이용해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상황에 관여해 왔다.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 위험한 상황일수록 그는 즐겼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처럼, 안전장치가 달린 위험은 스릴일 뿐이었다.
“흠.”
마법사 K는 곰방대를 빼고 진한을 바라봤다.
“이상한데.”
그는 다시 곰방대를 물고 진한을 응시했다.
마법사 K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어떤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다.
“뭡니까?”
좀 전까지는, 소스라칠 정도로 위험하던 사람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뭐긴.”
진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마법사 K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이런, 씁.”
마법사 K는 서둘러 겁쟁이 곰방대를 입에서 뗐다.
전혀 위험하지 않았던 사람이 한 순간 소름끼칠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이거, 그러니까. 그겁니까?”
마법사 K는 인상을 찌푸리고 오른쪽 눈썹을 긁적였다.
“그, 내 목숨이 댁 손바닥 위에서 왔다, 갔다 한다는 뭐 그런 거?”
“역시 이해가 빠르군.”
진한의 말에 마법사 K는 곰방대를 품에 넣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진한은 그를 보며 담배를 끄고는, 다시 하나를 꺼내 물었다.
희뿌연 담배연기와 함께 침묵이 감돌았다.
마법사 K는 눈앞의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겁쟁이 곰방대가 위험을 알려온 적은 많았지만, 이정도 강도로 위험을 알린 것은 처음이었다.
‘저항도 못 한다는 건가?’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은 마법사 K였다.
뒤로 빠져서 마법만 난사하는 병신들과는 다른, 마법사 Killer라는 별칭을 가진 슬레이어였다.
어느 누가 있어 자신에게 저항도 못할 정도의 위협을 준단 말인가.
‘누가 이 방에 숨어든 건…….’
아니었다.
누가 이 방에 숨어들었다면, 겁쟁이 곰방대를 물었을 때 은은한 경고가 있었을 것이다.
딱 저 남자와 눈을 마주쳤을 때만 경고가 울렸으니, 저 남자가 원인이었다.
“뭐 폭탄이라도 숨겨서 들어오셨습니까?”
“더즌 헬에 화약도 있었나.”
“당신 뭡니까 도대체.”
진한은 마법사 K를 보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내가 누구냐 보다는, 네가 누구인지가 중요할 거 같군.”
마법사 K는 불쾌한 얼굴로 진한을 응시했다.
차라리 겁쟁이 곰방대를 사용하지 않고 이 남자를 대했으면, 이토록 위축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는 알지 않습니까? 나 마법사 K입니다. 그 유명한…….”
“마법사 Killer. 잘 알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슬레이어는 몇 없었고, 별칭이 붙는다 해도 본인의 별칭을 마음에 들어하는 슬레이어는 드물었다.
그러나 마법사 K는 자신의 별칭을 굉장히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본인이 지은 별칭이니까.
“잘 알면서 뭐가 또 중요하단 겁니까? 지금 사람 놀립니까? 사람 목숨 손에 쥐니까 사람이 우스워…….”
“길드 B.”
마법사 K는 말을 멈췄다.
진한이 내뱉은 단 하나의 문장.
길드 B.
“길드 Breaker. 웃기지도 않는 별칭이야. 마법사 K만큼 작명 센스가 구리군.”
마법사 K의 다른 이름은 길드 B였다.
물론 길드 B라는 별칭 역시 본인이 지은 별칭이었으나, 부르는 이는 없는 혼자만의 별칭이었다.
“대, 대체 그걸 어떻게…….”
마법사 K의 안 좋은 취미가 있었다.
스스로가 붙인 별칭, 길드 B.
길드 브레이커의 약칭.
마법사 K의 취미는 바로 분탕질이었다.
길드 하나를 정해놓고 들어가 차분히 수뇌부까지 올라선 다음 길드를 알게 모르게 와해시키는 것이었다.
회귀 이전 진한이 알기로는 마법사 K의 손에 와해된 길드만 해도 한손에 꼽기 힘들었다.
작은 규모의 신생 길드부터, 큰 규모의 거대 길드까지.
물론 마법사 K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럴 만한 이유도, 그런 일을 했을 때 그에게 돌아갈 어떤 이득도 없었으니까.
그의 원칙은 단 하나였다.
길드를 와해시킬 때, 이득을 챙기지 않는다.
단순한 것이지만 이것만 잘 지켜도 의심의 화살은 피할 수 있었다.
“어떻게는 중요한 게 아닌 거 같군.”
진한의 말에 마법사 K는 마른세수를 하고는, 신경질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니, 아니. 잠깐만, 잠깐만. 댁이 그러니까, 그 사실을 어떻게 활용할 거라는 말입니까?”
“미치광이 잭!”
마법사 K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엘리스였다.
“미치광이 잭! 외팔이 잭!”
엘리스는 신이 난 듯 ‘미치광이 잭’과 ‘외팔이 잭’을 번갈아 외쳤다.
“이런……. 저 여자분 미친년입니까?”
마법사 K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쥔 손으로 시끄럽게 짹짹대는 엘리스를 가리켰다.
“요샌 잘 모르겠군. 어쨌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지는 충분히 전달 된 거 같은데.”
진한은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치광이 잭은 마법사 K가 맨 처음에 와해시킨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다.
맨손으로 사람을 갈가리 찢어 죽일 때 성적 쾌락을 얻는, 더즌 헬의 미치광이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치광이가 바로 잭이었다.
여러 길드의 척살령을 받아 언제나 도주중이지만, 그마저도 즐기고 있다고 소문이 난 변태였다.
오직 그만이 마법사 K를 길드 와해의 주범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정확한 물증이 없으니 마법사 K를 가만두고 있지만, 언제든 심증이 굳어지거나, 물증이 생기는 순간 그는 곧장 마법사 K를 찾아올 것이다.
“후,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유니온을 해체하지요.”
마법사 K의 말에 진한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 내일.”
“우리도 절차라는게…….”
“한 사람만 없어지면 유니온이 존재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마법사 K의 머리가 쭈뼛 섰다.
맞는 말이었다.
애당초 어떤 가시적인 이득도 없는 삼파전에 끼어들고, 유니온이 결성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수완 때문이었다.
크라임 타운에 파견 나와 있는 길드들의 정치적 알력을 이용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짜깁기한 것이 유니온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그의 이름값도 톡톡히 작용했다.
총대를 멜 사람이 있으니, 각 길드에서도 유니온을 결성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든든한 연합체였지만, 마법사 K의 존재가 빠져버리면 애초에 있을 수도 없는 연합이었다.
그 사실을 눈앞에 앉은 남자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차하면 자신을 죽일 것이다, 라고 마법사 K는 생각했다.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하지.”
진한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사 K는 방을 나서는 진한과 엘리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괴물에 미친년이라……. 흔한 조합은 아닌데.’
이런 조합이었다면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마법사 K는 곧장 종이와 펜을 찾아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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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검수는 눈앞에 앉은 세 남녀를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유니온을 삼파전에서 빠지게 해달라 했는데…….”
진한은 말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마법사 K를 만나고 온 것이 당장 어제였다.
유니온의 와해는 생각보다 빨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저녁부터 유니온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마법사 K의 실종.
마법사 K는 편지 하나만을 달랑 남긴 채 사라졌다.
어떤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차기 연합장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떠나는 이유라던가 어떤 설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편지의 내용을 간추리자면, 그저 떠난다.
이 말뿐이었다.
“설마 죽인건……?”
질문을 하는 여명검수의 얼굴은 다소 긴장되어 있었다.
만약 진한이 마법사 K를 죽였다면, 유니온이 삼파전이 더 이상 삼파전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유니온이 이 전쟁에서 빠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진한이 마법사 K를 죽이고, 그 사실이 유니온에 알려지면 유니온은 검은달과 손을 잡고 베가본드로 진격해 올 것이다.
혹을 떼려다가 혹을 붙인 격이었다.
“아니다.”
진한의 질문에 여명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집무실에 깔렸다.
엘리스는 진한의 옆에 딱 붙어 진한을 올려다봤다.
남들이 보기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엘리스는 알 수 있었다.
진한의 심기가 불편하다.
그렇다고 일이 잘못된 것 같지도 않았다.
엘리스는 진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가 익숙한 표정이었다.
진한은 옆에 붙어서 알짱대는 엘리스를 보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흠, 우선 유니온이 삼파전에서 빠지게 되는 것은 기정사실인 것 같은데.”
진한이 마법사 K를 죽인 것만 아니라면, 굉장한 호재였다.
일이 잘 풀려도 이렇게 잘 풀릴 수는 없었다.
이제는 검은달을 치고, 혈거인에게서 생명수를 빼앗아 오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근심 하나가 사라지니 새로운 근심거리가 생겨났다.
삼파전의 지루한 양상일 때야, 삼파전이 어서 끝나고 검은달과 승부를 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승부를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였다.
혈거인이라고 자신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그리고 검은달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오히려 삼파전은 혈거인에게 조직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삼파전이 끝났다.
이제는 혈거인이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명검수 스스로는 썩 좋은 수장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혈거인은 거대 길드의 총관 역을 수행하던 인물이었다.
길드간의 항쟁에서 길드장의 목을 따버리는 바람에 도망자가 되어 크라임 타운으로 숨어들었지만, 그가 유능한 지휘관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당장에만 해도 베가본드는 그저 슬레이어들을 모으고, 경계를 강화하는 데 그쳤지만 검은달의 슬레이어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스는 여명검수와 진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녀는 여명검수의 표정과 진한의 표정을 비교했다.
여명검수의 얼굴은 누가 봐도 근심거리를 한가득 안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에 반해 진한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은 근심이라기보다는 불쾌감에 가까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고민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아저씨, 좀 심각하십니까?”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한을 제외한 셋이 집무실 내부를 둘러봤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으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놀라는 표정들이 참 유쾌하군요.”
허공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이었다.
메이첸은 곧장 마법을 영창하고, 여명검수는 검병에 손을 얹었다.
엘리스는 상황을 판단하는 수단으로 진한을 바라봤다.
진한의 표정이 좀 더 뚜렷해졌다.
허공에서 발 하나가 쑥 나오더니, 한 사람이 나타났다.
“신사, 숙녀 여러분, 서프라이즈! 마법사 K입니다.”
그때 엘리스는 깨달았다.
진한의 표정이 익숙했던 이유.
처음 진한이 자신을 보던 그 눈빛, 그 표정이었다.
“이런 씨발…….”
진한의 중얼거림은 집무실에 있는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엘리스를 제외하고는.
============================ 작품 후기 ============================
잉여소굴// 감사합니다! 이번 편도 잘 보시길!
Damaoka// bb 항상 댓글 감사합니다!
BlueRuiN// 이번 편도 재미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천봐백부// ㅠㅠ 댓글을 수정하셨군요! 이번편도 잘 보고가셨으면 좋겠습니다!
lestiaM// 즐감! 감사합니다! 이번편도 즐감하시길!
저매인// 본격 삥뜯는 진한.. 뭘 가져오라 했을까요!
요핫// 쿠폰을 맞은 작가가 심쿵해버렸습니다! 요핫님 쿠폰 감사합니다!
은의칸// .... 소주도 한 병만.. 으흐흐흐흐흐..
죄송합니다 ㅠㅠ
이번편 적다가 잠깐 눕는 다는게 잠들어 버렸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적어서 올립니다.
어떻게 쓰면 쓸수록 한 편을 뽑는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처음에는 그래도 2시간 30분이면 한편 적었던 것 같은데..
요새는 한편 적는데 3시간 내지는 4시간 걸립니다..
빨리쓰면 내용이 마음에 안들고..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지금 투베 4위군요..
천지개벽했습니다.........
감사합니다!
o(__)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