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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7 여명검수 (27/40)

00027  여명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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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크라임 타운은 완전 무법지대란 말이여.”

크라임 타운으로 향하는 길목 내낸, 메이첸은 지금 이 시점의 크라임 타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열렬히 설파했다.

크라임 타운은 무법지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치안이 엉망인 곳이었지만, 요즘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범죄자, 떠돌이 슬레이어, 길드.

크라임 타운을 구성하는 세 종류의 슬레이어들이 집단을 나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공인 투기장을 이용하던 슬레이어들도 크라임 타운을 떠나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요즘 상황이 어떻다고?”

진한의 물음에 메이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떠벌렸다.

크라임 타운의 투기장은 알게, 모르게 각 마을을 길드들이 주시하는 곳이었다.

페어리문 역시 크라임 타운의 소식은 정기적으로 수소문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아는 최근 소식은…….”

“세 세력이 각자 연합의 형태를 구축했다?”

“바로 그거지. 이젠 완전 전쟁이라니까?”

비슷한 성향의 슬레이어들끼리 뭉쳐 싸움을 벌이던 것이, 이제는 집단을 이뤄 집단간의 전쟁이 되어버렸다.

범죄자 슬레이어들의 집단, 검은달.

떠돌이 슬레이어들의 집단, 베가본드.

길드들의 연합체, 유니온.

가장 세력이 큰 곳은 유니온, 그 다음이 검은달, 최약체가 바로 베가본드였다.

“이것들이 뭐 때문에 이러는지는 몰라도, 아주 미친 새끼들이라니까?”

진한은 메이첸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회귀 이전 삼파전에서 승리한 집단은 바로 검은달이었다.

검은달에는 괴물 슬레이어가 존재했다.

슬레이어 데이크.

이름보다는 혈거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슬레이어.

하지만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삼파전은 있을 수 없었다.

각 집단에는 혈거인과 비등하거나,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슬레이어가 존재했다.

검은달의 혈거인.

베가본드의 여명검수.

유니온의 마법사 K.

모르는 슬레이어들은 혈거인이 제일이고, 그 다음이 마법사 K, 최약이 여명검수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세력이 최약인 베가본드가 삼파전의 한축을 담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명검수 덕분이었다.

“도대체 무슨 지랄들이 불어서 이 난리를 떠는 건지, 통 모르겠단 말이야. 등신들인가.”

메이첸은 세 집단이 삼파전을 벌이며 지루한 소모전을 벌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공인 투기장이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이제껏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있는 성질의 시설이 아니었다.

또 크라임 타운에서 이득을 위한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처럼 크라임 타운 자체가 삼분할 되어 칼을 겨눈 것은 처음이었다.

“냄새가 나. 분명 뭔가 있어.”

아직까지 세 집단이 서로 칼을 겨누는 이유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아이템이든 혹은 세 세력 간에 끈끈하게 얽힌 은원의 고리이든.

“토끼님, 메이첸 개야.”

“그래, 그런 것 같다.”

엘리스는 코를 킁킁대는 메이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한은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하, 결국 와버렸구나.”

메이첸은 허탈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저 멀리 크라임 타운이 보이고 있었다.

먼 곳에서 보니, 몇몇 슬레이어들이 크라임 타운을 나서고 있었다.

대부분의 슬레이어들이 크라임 타운을 떠나는 가운데, 진한 일행은 크라임 타운으로 입성했다.

*

사건의 시작은 한 만취한 슬레이어의 도박에서 시작되었다.

공인 투기장의 시스템 상점에는 아무도 사지 않는 ‘랜덤 박스’라는 아이템이 존재했다.

박스를 열었을 때, 뭐가 나올지 모르는 ‘랜덤 박스’.

처음에는 대박을 노리고 ‘랜덤 박스’를 구입하는 슬레이어들이 많았지만, ‘랜덤 박스’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쓰레기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렇게 모두의 기억에서 ‘랜덤 박스’의 존재가 잊혀져갈 때 즈음, 두 개의 아이템이 나와 버렸다.

‘생명수’와 ‘영혼수’.

만취한 슬레이어가 뽑은 랜덤 박스 두 개에서 나온 두 개의 아이템.

두 아이템은 공교롭게도 조합 아이템이었다.

하나만으로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지만, 두 아이템을 조합하면 새로운 아이템이 탄생했다.

‘생명수’와 영혼수‘를 조합했을 때 나오는 아이템의 이름은 바로 ’엘릭서‘였다.

엘릭서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었다.

죽은 것만 아니라면, 그 누구든 살려낼 수 있는 아이템.

육체, 정신은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저주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두 아이템을 뽑은 슬레이어가 조합법을 알아볼 때 소문이 세어나갔다.

‘생명수’와 ‘영혼수’를 조합하면 엘릭서가 탄생한다.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그리고 며칠이 안지나, 두 아이템을 지녔던 슬레이어가 시궁창의 시체로 발견되고, 소문은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소문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크라임 타운에서 이 정도는 일상적으로 겪는 해프닝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문은 사실이었다.

‘생명수는 검은달이, 영혼수는 베가본드에.’

누군가에게는 한낱 해프닝으로 끝났던 소문이었지만, 그 해프닝이 지금 크라임 타운의 삼파전을 만들어 냈다.

정확히는 생명수는 혈거인이, 영혼수는 여명검수가 가지고 있었다.

검은달과 베가본드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둘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적지 않았다.

추종자들은 영혼수와 생명수의 소문을 조사, 사실을 파악 후 두 아이템을 강탈했다.

강탈하는 과정에서 두 무리 추종자들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그렇게 두 무리 추종자들이 충돌하고, 결국 생명수는 혈거인에게, 영혼수는 여명검수에게 들어갔다.

두 무리 추종자들은 빠르게 소문을 불식시켰다.

그 뒤로는 음지에서의 전쟁이었다.

서로가 가진 아이템을 뺐어오기 위해 서로의 목을 노렸다.

전쟁은 추종자들 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혈거인과 여명검수는 각자의 영향력이 닿는 슬레이어들을 끌어들였고, 결국에는 범죄자 슬레이어와 떠돌이 슬레이어의 세력전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길드 연합이 낀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법사 K의 주도하에 크라임 타운에 파견 나온 길드들이 연합했고, 두 집단의 세력전은 결국 삼파전이 되어버렸다.

여기까지가 훗날 밝혀질 삼파전 발생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 있었다.

왜 마법사 K는 두 세력 간의 싸움에 끼어 삼파전을 만들고, 어떤 이득도 취하지 못하고 중간에 빠져버린 것일까.

오직 진한만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흥미본위.

부가적인 이유가 더 붙기는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었다.

단순히 재밌어서.

‘쓰레기들이랑 거지들이 노는 꼴이 워낙 귀여워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핏대 올리고 싸우는 걸 보면 뭔가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숟가락 얹은 거죠.’

마법사 K는 삼파전 구도를 만들고, 시간을 번 후 두 세력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고, 목적을 아는 순간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

이것이 길드 연합 유니온이 생기고, 사라진 이유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법사 K의 흥미본위였다.

진한은 망설임 없이 베가본드의 근거지로 걸음을 옮겼다.

“너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알고는 있냐?”

메이첸의 물음에 진한은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우리 여기에 머물 거면 차라리 유니온으로 가자니까? 마법사 K가 나를 홀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메이첸의 말에도 진한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엘리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진한의 팔에 매달려 실실거리고 있었다.

“왜 하필 그지들이여. 하다못해 여관이라도 가던가.”

메이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개인의 신분으로 세력 다툼에 끼어들면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었다.

여기까지는 진한을 믿고 따라왔다지만, 삼파전에 가세하는 것은 반대였다.

설령 삼파전에 가세를 한다 해도, 세력이 제일 큰 유니온으로 가야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진한은 베가본드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메이첸이 궁시렁대는 사이 셋은 어느새 여명검수가 머무는 저택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냐.”

문을 지키고 있던 슬레이어가 묻자 진한은 품에서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여명검수에게.”

“아이고, 결국 저질렀네.”

메이첸은 그 모습을 보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

여명검수는 떠돌이 슬레이어 출신으로 공인 투기장에서 가장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이끌고 있는 슬레이어였다.

그는 크라임 타운에 흘러 들어와 하루도 빠짐없이 공인 투기장의 싸움판에 올라섰다.

시간이 흐르고, 더 이상 그가 선 싸움판 위로 누구도 올라오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여명검수라 불리고 있었다.

그는 명실상부 크라임 타운의 최강의 슬레이어였다.

그에게 추종자가 생기고, 사람이 모여들어 이제는 하나의 집단이 되었다.

길드는 아니지만, 어떤 길드보다도 강맹한 집단.

크라임 타운 내에서 그와 어깨를 견줄만한 슬레이어는 채 다섯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영혼수와 생명수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얼마 가지 않아 두 집단 중 하나는 붕괴될 거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 집단은 검은달이 될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법사 K의 개입으로 삼파전은 지루한 장기전에 도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지만, 서로의 전력에 타격이 갈 만한 전투는 발생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없다.’

그는 초조한 기색으로 담배를 꼬나물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지구에서 낳은 아들이 아닌, 더즌 헬에서 주민과 낳은 아들이.

그는 더즌 헬을 떠돌다 더즌 헬의 한 주민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은 사랑을 나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여명검수는 그때 생각했다.

지구로 돌아가지 않아도 행복하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의 네 번째 생일날, 아들은 검은 피를 토해냈다.

병명은 파푸아 병.

슬레이어들과는 달리 주민들은 병에 자유롭지 못했고, 그중에는 치명적이고 치료방법이 발견되지 않은 병도 더러 존재했다.

파푸아 병 역시 그런 종류의 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여명검수는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유능한 치유사를 불러도 보고, 아이템을 사용해보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어떤 차도도 없었다.

더즌 헬의 그 많은 아이템 중에, 과연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아이템이 없을까.

하지만 떠돌이 슬레이어인 그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템을 살 돈도 없었으며, 직접 아이템을 구하러 유적지를 탐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그에게 공인 투기장의 시스템 상점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는 그렇게 공인 투기장에 흘러 들어왔다.

검을 손에 놓은 그에게 투기장의 싸움판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어깨에 걸린 것은 그의 목숨 하나가 아니었다.

여명검수의 어깨에는 아들의 목숨까지 걸려 있었다.

더즌 헬은 잔인한 세상이었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재능과 직결되었다.

다행히 여명검수는 재능이 있는 슬레이어였고, 공인 투기장에서, 크라임 타운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는 코인이 생기는 족족, 자신의 아이템보다는 아들을 위한 아이템을 구입했다.

하지만 파푸아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아이템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아들의 상태가 위독해지고 여명검수가 절망에 휩싸일 무렵.

소문이 돌았다.

영혼수와 생명수를 조합하면, 엘릭서를 만들 수 있다.

그는 추종자들을 시켜 두 아이템을 손에 넣으려 했지만, 혈거인의 개입으로 반쪽만을 손에 쥐게 되었다.

“어느 쪽이 끝나든…….”

슬슬 끝을 봐야만 했다.

아들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의미 없는 전투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똑똑.

그때 그의 집무실을 누군가 두드렸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쪽지를 전하라 했습니다.”

문지기 슬레이어가 내민 것은 꼬깃꼬깃하게 접은 종이 조각이었다.

여명검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문지기의 처우에 대한 고민을 잠시 해보다가 이내 종이 조각을 받아 들었다.

============================ 작품 후기 ============================

끙...

시간상 오늘중으로 도저히 +1편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의자에 등을 못기대니 허리가 너무 아프네요.

오늘 못 쓴 한 편은 내일로 보내겠습니다.

오늘은 3연참 했습니다.

내일도 3연참 가겠습니다.

오늘 4편이 올라올 줄 알고 기대하셨던 독자분들께 심심한 사죄의 인사를 드립니다.

o(_ _)o

그리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o(_ _)o

sodn // 첫코!! 감사합니다!!

酒狂者 // 한결같은 보고갑니다!! 항상 잘 보고 가셨기를.. 감사합니다!!

까꿍이라니 // 감사합니다. 미련을 끊는 진한이 참 슬프네요..

마법사 K는 어떤 인물일까요.

혈거인은 대체 왜 엘릭서를 만들려는 걸까요.

여명검수는 과연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까요?

진한은 왜 베가본드에 찾아간 걸까요?

추천, 선작, 코멘트 감사합니다.

평점도 꾹!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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