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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5 실리아 (25/40)

00025  실리아  =========================================================================

 더즌 헬에는 뱀이 산다.

깊고, 깊은 늪지에 또아리를 틀고, 몬스터, 슬레이어, 주민을 가리지 않고 집어 삼키는 뱀이 살았다.

슬레이어들은 뱀에게 ‘요르문간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절대 토벌할 수 없다고 판단된 몬스터.

요르문간드.

하지만 요르문간드는 결국 토벌당하고, 사체는 늪지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뱀은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오직 하나.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독을 제외하고는.

요르문간드를 토벌했던 길드 연합은 결국 괴멸하고, 요르문간드의 독은 슬레이어들의 사이를 돌고, 돌아 결국 할리의 손에 들어갔다.

독의 효능은 단 하나.

세뇌.

“고민을 참 많이 했네. 이 독을 자네에게 쓸지, 말지.”

칼날 사냥꾼은 눈앞의 남자를 응시했다.

할리.

성역의 지배자 길드의 부길드장, 할리.

할리는 침상에 앉아, 뭔가를 품에 안고 있었다.

“자네를 내 밑에 두고,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볼까, 아니면 팔다리를 잘라 더즌 헬의 슬레이어들 앞에서 모욕을 줄까.”

그는 말을 이으면서 품에 안은 물체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할리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물체에 달린 은빛 실타래가 탐스럽게 넘실거렸다.

“수십, 수백 개의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어느 것도 성에 차지 않았어. 내 상상력이 딱 그 정도였던 게지.”

칼날 사냥꾼은 할리를 응시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할리가 품에 안은 물체를 응시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의 머리가, 할리의 품에 안겨있었다.

칼날 사냥꾼의 시선은 할리를 벗어나 방을 훑었다.

너무나 익숙한 방이었다.

눈을 감아도, 이 방의 풍경을 머리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방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얕지 않은 시간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그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보금자리였다.

더즌 헬의 슬레이어에게 보금자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곳은 그의 보금자리였다.

그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함께했던 보금자리.

그랬던 곳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철저하게 해체되어, 방을 나뒹굴고 있었다.

장난스럽게 그를 유혹하던 다리, 그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 그가 어루만지던 젖가슴.

모든 것이 조립장난감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자네를 먼 곳에서 지켜봤지. 생각을 했다네. 내가 자네를 밑에 둔다면, 과연 재기의 발판을 만들 수 있을까?”

할리는 탐스러운 은빛 머리칼을 정성껏 쓸어 넘겼다.

“학살자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군. 아마 자네를 베어 넘기고, 나를 죽일 거야. 그런 족속들 아닌가.”

칼날 사냥꾼은 미동 없이 할리를 바라봤다.

그의 코끝으로, 비릿한 피 냄새와 썩은 내, 희미한 정액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그럼 자네를 직접 욕보이는 것은? 하하, 자네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슬레이어인가. 자네는 내가 봐온 어떤 슬레이어보다도, 가장 슬레이어다운 사람이야.”

칼날 사냥꾼의 손이 검병에 닿았다.

“어떻게 해도, 자네를 자극할 수 없을 것 같았다네. 동료의 죽음이야, 이미 숱하게 겪어본 일 아닌가. 학살자 길드를 무너트린다 해도, 자네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 

그렇다고 이 독으로 자네를 무너트릴 만한 사람을 세뇌시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네. 성역의 지배자가 하지 못한 것을 그 누가 한다는 말인가.”

할리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영광으로 알게, 난 이 귀한 독을 오직 자네만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어.”

뿌연 담배연기가 방안을 가득 매웠다.

그는 품에 안은 물체의 입을 벌려 재를 털었다.

그 순간 담배를 쥔 할리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담뱃재는 결국 할리의 팔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칼날 사냥꾼의 검에는 피가 묻었다.

“큽……. 나는 이미 너무 지쳤네. 모든 것을 일궈놓았지만, 자네가 다 망쳤어.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

할리의 반대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칼날 사냥꾼은 석상이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검에는 핏자국이 늘었다.

“어떻게 해야……. 자네에게 끔찍한 기억을……. 남길…….”

할리의 양 다리가 무릎 아래부터 떨어져 나가고, 귀가 잘려나갔다.

칼날 사냥꾼의 몸에는 핏자국이 늘었다.

“그때, 이 여자가 나타났지. 그래서 생각했네. 어떻게 해야 이 여자로, 자네에게 가장 끔찍한 기억을 안겨줄 수 있을까.”

칼날 사냥꾼은 천천히 걸어가 할리의 품에 있는 물체를 두 손으로 들어, 품에 안았다.

“선물은 잘 받았나. 어떤가. 각본은 좋았나. 사랑했던 남자는, 사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어. 편한 데로 이용하기 위해 접근했던 거지. 

몸까지 다 줘버렸는데, 남자는 여자를 버렸다네. 심지어 동료에게 여자를 넘겼지. 

여자는 힘없이, 남자의 동료에게 강간을 당하고, 온갖 모욕을 다 당한 후, 남자를 원망하며 스스로 죽음을 택했네. 남자 역, 진한. 여자 역, 실리아. 동료 역, 할리. 각본, 연출 할리.”

칼날 사냥꾼은 할리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팔다리가 잘린 할리는, 벌레처럼 버둥거리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끄……. 요르……간드의 독은 참 좋……더군. 천……하의 마스터가. 끅. 끄으…….”

칼날 사냥꾼이 할리의 팔이 잘린 단면을 우악하게 쑤시고 들어갔다.

“끄으으……. 새치 혀로, 농락을……당했……. 어……떤가. 사랑하는…… 여……자가……. 자네를 원……망하면……서, 목숨을 끊는 모, 습, 이. 캬악!”

칼날 사냥꾼이 할리의 뼈를 으스러트리고, 조각내서 뽑아냈다.

그의 손은, 수차례 할리의 상처를 들쑤셨다.

횟수가 늘수록 할리는, 할리라는 이름의 고깃덩어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칼날 사냥꾼은 할리가 죽기 전에 아이템을 사용해 회복시켰다.

진한은 옆에서 그 광경을 모조리 지켜봤다.

단 하나도 빠짐없이.

칼날 사냥꾼이 할리를 도축하고, 실리아의 시체를 온전히 수습해 침대에 누이고, 집에 불을 지르는 모든 장면을 지켜봤다.

불타는 집을 보며, 오열하는 칼날 사냥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주변이 까맣게 점멸 되었다.

진한의 눈앞으로 시스템 알림창이 나타났다.

[‘비극의 재경험’을 완료하셨습니다.]

[극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리아의 죽음2’가 시작됩니다.]

[유니크 클래스 ‘비극 관람자’로 전직하셨습니다.]

[경험한 비극 6개가 능력치로 환산됩니다.]

[만들어낸 비극 31개가 능력치로 환산됩니다.]

[관람한 비극 137개가 능력치로 환산됩니다.]

[직업 스킬 ‘비극 관람’을 얻으셨습니다.]

[직업 스킬 ‘비극의 유물’을 얻으셨습니다.]

[직업 스킬 ‘비극 제작’을 얻으셨습니다.]

*

진한이 ‘비극 관람자’로 전직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진한은 실리아의 유적지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상태를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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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진한

성향 : 악

직업 : 비극 관람자

타이틀 : 카이센의 슬레이어

능력치 :

체력(29) 근력(33) 민첩(30) 마법력(14) 지력(12) 내구력(29)

스킬

사냥꾼의 검

공포의 심장

비극 관람

비극의 유물

비극 제작

(Unlock)

(Unlock)

(Unlock)

(Unlock)

(Un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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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들이 능력치로 환산됨에 따라, 모든 능력치가 큰 폭으로 상승되었다.

주요 능력치는, 체력, 근력, 민첩, 내구력.

진한은 현재 능력치의 수준을 가늠했다.

김태수가 아이템의 보조를 받지 않는다면, 지금 진한 정도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슬레이어들의 수준을 비교해 봤을 때, 진한의 능력치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사냥꾼의 검의 숙련도는 여전히 C 등급.

공포의 심장은 어느새 제한이 모두 풀려, 공포의 지배뿐만 아니라, 공포의 권역, 공포의 각인이 사용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외에 직업 스킬로는 비극 관람, 비극의 유물, 비극 제작이 생겨 있었는데, 세 스킬 모두 패시브 스킬로 전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스킬은 아니었다.

진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들고, 사냥꾼의 검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 능력치로는 충분히 상위권의 슬레이어들과 붙을 만 했으나, 진한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직업에 따른 전투 스킬의 숙련도 상승 가산효과.

검을 쓰는 직업군은 검과 관련된 스킬의 숙련도가 더 빠르게 오른다.

하지만 비극 관람자는 정해진 무기를 사용하는 직업군이 아니었다.

두 번째는 아이템.

일반적인 상위권 슬레이어들은 단계적으로 능력치와 아이템을 얻으며 성장했다.

진한은 갑작스런 능력치 상승으로, 능력치에 걸맞은 아이템을 구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비극 관람자는 진한으로서 당장에 힘을 키울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능력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능력치가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아이템이야 어떻게 해결한다 해도, 전투 스킬의 숙련도가 문제였다.

진한은 그 문제의 해결점을 ‘비극의 유물’과 ‘비극 제작’에서 찾아냈다.

사냥꾼의 검 수련을 마친 진한은 방을 나섰다.

배신 마을에서 계획했던 일은 모두 끝마쳤다.

배신 군주 토벌 역시 페어리문의 붕괴로 시일이 연장되었다.

근 일주일 진한은 앞으로의 계획을 재정립했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였다.

*

“노처녀.”

“발육부진.”

수련을 위해 마련된 방에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엘리스, 안작아.”

“그렇다고 큰 건 아니지?”

한쪽 구석에서 마법을 영창하고, 속성을 익히는 메이첸을 뒤로하고 엘리스와 실리아가 기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실리아, 무식하게 커.”

실리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상의를 풀어헤쳤다.

“무식한 게 아니라, 풍만한 거란다.”

엘리스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옮겼다.

뚜렷한 쇄골, 그 밑으로 매끄러운 살결을 따라 내려가자 깊게 파인 계곡이 나타났다.

“이정도 되면,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단다.”

엘리스는 시선이 실리아와 자신의 가슴 사이를 빠르게 왕복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명백한 패배였다.

“뭘 할 수 있는지, 자세히 말해줄까요?”

“엘리스는 그런 거 필요 없어.”

엘리스의 얼굴엔 명백한 굴욕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래요, 알아봐야 쓸 수도 없으니까요. 그렇죠? 우리 꼬마숙녀?”

“저는 좀 알고 싶습니다, 실리아님.”

수련 중이던 메이첸이 급히 손을 들었다.

“메이첸, 개.”

엘리스의 경멸어린 시선에도 메이첸은 굴하지 않았다.

“실습이 좋겠습니다.”

“보세요, 꼬마 숙녀님.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합니다?”

실리아는 명백한 승자의 얼굴로 엘리스를 깔아봤고, 엘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둘의 기싸움은 끝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때 수련실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토끼님!”

진한이었다.

“토끼님, 실리아가 엘리스 괴롭혀.”

엘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한에게 달려들었고, 진한은 여유롭게 엘리스를 피해냈다.

“방에 처박혀 뒈진 줄 알았는데, 살았구만?”

메이첸은 진한을 보며 이죽거렸다.

그로서는 이 유적지에서의 생활이 썩 즐겁지는 않았다.

실리아는 정신계 마법 뿐만 아니라, 마법 자체에 있어서 정통한 마법사였다.

그런 그녀에게 배움을 얻는 것은 꽤나 값진 기회였지만, 그의 성미에는 영 맞지 않는 생활이었다.

당장 유적지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진한이 두문불출 방에 틀어박히니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짐 싸라. 떠난다.”

진한은 메이첸을 가뿐히 무시했다.

“토끼님, 이제 가요?”

엘리스는 진한의 팔에 매달려 진한을 올려다봤다.

진한의 얼굴은 싸늘했다.

원래도 표정이 없었지만, 지금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구석이 있었다.

엘리스는 고개를 내리고, 진한의 팔에 코를 부볐다.

“벌써 가게?”

실리아는 진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진한이 시험의 방에서 나온 지 일주일.

일주일 전, 진한은 시험에 방에서 나온 후 곧장 빈방을 골라 들어가 두문불출했다.

“비극 관람자, 설명 안 해줘도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다들 짐 싸라.”

진한은 변함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메이첸과 엘리스를 재촉했다.

엘리스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짐을 챙기러 방을 나섰고, 메이첸은 뭐라 궁시렁 데려다가 진한의 얼굴을 보고는 말없이 수련실을 나섰다.

실리아는 그 모습을 보며 진한이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 대가로 뭘 바친 거야?”

이전까지는 차갑기는 해도, 서두른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여유가 없어보였다.

진한의 태도에 변화가 생길만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극 관람자’로 전직하기 위한 대가밖에 없었다.

진한은 실리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수련실을 빠져나왔다.

============================ 작품 후기 ============================

잉여소굴//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유리별b// 엘리스는 정상으로 돌아온 걸까요???

Damaoka//압도적인것 까지는 모르겠습니다 ㅠㅠ

디블라스//음. 멀쩡해진걸까요.....?!

이토록아름다운//어제는 연재를 못했네요... 이중인격... ㅎㄷㄷ 무섭습니다.

酒狂者 //이번편도 잘 보고 가셨기를 바랍니다.

멋진소설// 칭찬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길치곰//넵!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流江//아.. 죄송합니다 ㅠㅠ 항상 뒤가 궁금해지는 글을 쓰겠습니다!

25편을 완성했네요.

대략 1권 분량을 채웠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빠르면 15일, 늦어도 17일까지는 30화를 채우고 싶었습니다만..

일정에 없던 수술을 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어제는 개인 사정상 현재를 못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오늘은 한번 달려보겠습니다.

쓰는데로 바로,바로 올릴 것인데.....

과연 오늘 몇편이나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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