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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5 덫 (15/40)

00015  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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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몬스터들의 이름은 슬레이어들이 붙이는 경우가 많다.”

진한은 엘리스를 앉혀두고 설명을 시작했다.

진한은 침대에 걸터앉아 엘리스를 내려다 봤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엘리스는 계속해서 진한의 품으로 파고들려 했다.

“가만히. 교육 시간이다.”

진한은 간단하게 엘리스를 제지하고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더즌 헬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은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지.”

엘리스는 불퉁한 표정으로 진한을 올려다봤다.

진한은 엘리스의 시선을 무시하고 교육을 계속했다.

본래는 길드의 신규 슬레이어 육성 커리큘럼에서 교육을 시켰어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페어리문의 커리큘럼은 기약이 없이 멈춰진 상태이니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조금 특이한 몬스터에 대해서 알려주지.”

더즌 헬의 몬스터들은 아직까지 전부 밝혀진 게 없을 정도로 종도, 개체수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간혹 치명적이기도, 혹은 슬레이어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 몬스터들이 존재했다.

“몬스터의 이름은 어떻게 붙인다고 했지?”

“토끼님, 재미없어요.”

“닥치고 대답해라. 몬스터의 이름은?”

“슬레이어들이 붙인다. 토끼님, 칭찬해줘요.”

엘리스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진한에게 파고들려 했으나 진한은 엘리스를 간단히 제지했다.

“그래, 잘 닥쳤고 잘 대답했다. 몬스터의 이름은 슬레이어들이 붙인다. 그렇기에 사연 없는 이름도, 이유 없이 붙는 이름도 없지. 몬스터의 이름을 들으면 그 몬스터에 대한 특징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

더즌 헬의 시스템은 슬레이어들에게 여간 불친절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 발견되는 몬스터의 이름은 공백으로 표시되었고, 몬스터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결국 슬레이어들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몬스터의 이름에는 어느 것 하나 그냥 붙는 것이 없었다.

일전의 피난체의 난쟁이처럼 어떤 사연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는가 하면 그 몬스터의 생식, 섭식적인 특징으로 붙여지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특징으로 이름 붙여졌다.

간혹 가다 지구의 전설 혹은 신화에 나오는 괴물들과 비슷한 몬스터가 존재했는데, 그때는 거기서 영감을 받아 이름을 붙이고는 했다.

“오늘 알려줄 몬스터는 바로 도플갱어다.”

진한의 설명에 엘리스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김소연으로서의 삶을 기억하는군.’

엘리스의 표정을 보니 미쳐있다고는 하지만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엘리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그녀가 ‘김소연’으로서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으나 진한은 내색하지 않았다.

“지구의 도플갱어가 뭐지?”

“똑같이 생긴 괴물. 만나면 죽어요.”

“그래, 그게 지구의 도플갱어지. 더즌 헬의 도플갱어는 사람의 외면을 똑같이 복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은 몬스터다.”

더즌 헬의 도플갱어가 그렇게 이름 붙은 이유는 바로 대상의 외형을 완벽하게 복사하는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도플갱어의 복제는 마법적인 변형이 아닌, 물리적인 변형이었기에 디스펠로도 풀리지 않는 능력이었다.

“보통은 몬스터 도플갱어라 하면 그 사람의 외형뿐만 아니라 능력까지 복사하고, 그 대상을 죽이려 한다고 오해하지만, 더즌 헬의 도플갱어는 다르다.”

더즌 헬의 도플갱어는 딱 복제가 전부였다.

그 외의 능력은 없었다.

“폭력성도 없고, 위험하지도 않다. 다만 대상의 외형을 완벽하게 복사할 수 있지.”

도플갱어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였다.

대상의 외형을 완벽하게 복사할 수 있으므로, 어떤 몬스터의 외형을 복사하고 나면 변형 장면을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그것이 도플갱어인지 아닌지를 육안으로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면, 바로 움직임이었다.

도플갱어는 변형을 일으키고 나면 그저 인형과 다름없었다.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인형.

만약 유적지나 밖에서 몬스터를 만났을 때 움직이지 않는 몬스터를 만난다면 그것은 도플갱어일 확률이 컸다.

“도플갱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적지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도플갱어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오늘은 이 도플갱어의 쓰임새에 관해 알려주지.”

하나의 몬스터를 파고들 정도로 한가하진 않았지만, 도플갱어는 알아둘 가치가 있는 몬스터였다.

변형하지 않은 도플갱어를 입수할 수만 있다면,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예를 들어 사체의 가치가 억만금에 달하는 몬스터를 잡았다고 할 때, 도플갱어를 그 몬스터로 변형시키면 억만금의 가치를 가진 사체가 두 개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 말고도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신분을 세탁하기 위한 수배자들에게 유용했다.

유령을 쫓으려는 길드는 없었다.

수배자가 도플갱어를 입수해 자신과 똑같은 시체를 만든다면 그는 완벽히 죽은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도플갱어의 존재는 비밀에 붙여졌다.

더즌 헬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치광이들이 도플갱어를 이용해 추적을 피하고 숨어든다면 그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도플갱어를 입수하는 방법은 의외로 쉬웠다.

“도플갱어는 변형을 일으키기 전에는 투명한 물과 같다. 그래, 슬라임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좋겠군.”

슬라임 상태의 도플갱어는 생식활동을 하지 않았다.

도플갱어가 하는 유일한 생식활동은 몸뚱이를 유지하기 위한 수분 섭취가 다였다.

그렇기에 습한 곳에 서식했으며, 몬스터나 슬레이어를 만나면 변형을 일으키기 때문에 변형되지 않은 도플갱어를 입수하려면 슬레이어와 몬스터 모두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동굴을 찾아야 했다.

“도플갱어는 깊은 동굴에 적게는 서넛, 많게는 수십 개체 씩 뭉쳐서 존재한다.”

진한은 그런 곳을 도플갱어 습지라고 불렀다.

습지에서 도플갱어들은 변형을 일으킬 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쥐죽은 듯 기다린다.

“그렇게 뭉쳐서 대상을 기다리다가 대상이 나타나면 일제히 변형을 일으키지.”

“전부 다?”

“그래, 전부 다.”

“그럼 토끼님이 여러 명?”

“그럴 수도 있겠지.”

“좋아, 토끼님. 우리 가자. 도플갱어 잡을래.”

진한은 이상한 곳에 관심이 꽂힌 엘리스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생각을 한 새끼가 있기는 했지.’

도플갱어의 존재를 아는 슬레이어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한 놈도 있었다.

‘존나 리얼한 단백질 인형을 만들 수 있겠네.’

저 말을 했던 놈은 도플갱어를 찾아 더즌 헬에서 가장 유명한 미녀들로 변형을 시키겠다고 난리를 치고 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궁창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항간에는 그 시체도 도플갱어고, 놈은 목적을 이뤄 외딴 곳에서 단백질 인형을 상대로 허리를 놀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이었다.

진한은 엘리스에게 도플갱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부터 입수 방법까지 알아야 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줬다.

직접 겪은 사례를 곁들인 진한의 설명은 해가 지도록 계속 되었다.

설명이 끝나고, 속성 이해도에 대한 교육이 시작될 무렵 한 인영이 창문을 통해 진한의 방으로 뛰어 들었다.

엘리스의 반응은 신속했다.

그녀는 곧장 불 속성 마법을 영창 해 침입자에게 쏟아 부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녀는 짧은 시간동안 세 번의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침입자에게 유효타는 없었다.

침입자의 반지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엘리스의 마법을 삼켜버렸다.

“……. 환영인사가 썩 달갑지는 않군.”

침입자는 인상을 찌푸리고 진한을 노려봤다.

“반응속도가 꽤 쓸 만하군.”

진한은 침입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스를 바라봤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마법을 연달아 세 번 쏟아 부었다.

마법의 위력이 약해서 그렇지, 그녀의 영창 속도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토끼님이 칭찬해줬어.”

엘리스는 침입자를 언제 경계했냐는 듯 진한의 옆에 달라붙어 머리를 내밀었다.

“그래, 잘했다.”

진한은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엘리스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딴 꼴 보여주려고 방으로 부른 건가?”

침입자는 진한과 엘리스가 보여주는 우습지도 않은 작태에 인상을 찌푸렸다.

진한은 개의치 않고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답답할 텐데 로브부터 벗지.”

“엿 같군, 정말.”

침입자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로브를 벗었다.

“애꾸눈?”

침입자의 정체는 바로 메이첸이었다.

“씨발, 이 미친년이?”

“토끼님, 애꾸눈 무서워. 귀신이야.”

메이첸의 사나운 기세에 엘리스는 진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진한은 엘리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귀신이 아니다. 이게 바로 도플갱어의 활용법이다.”

“…….”

둘의 작태에 속이 터지는 것은 메이첸이었다.

메이첸이 자살했다고 알려지기 며칠 전, 메이첸은 진한에게 셀리나에게 있는 군주의 문양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었다.

군주의 씨앗.

군주가 심은, 슬레이어들을 파멸시킬 씨앗.

메이첸은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셀리나가 왜 자신을 쳐내려고 하는지.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길드 내에서의 입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졌고, 셀리나가 군주의 씨앗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무엇보다 진한의 말을 모조리 믿을 수도 없었다.

그때 진한이 셀리나가 군주의 씨앗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일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메이첸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진한은 아직 신규 슬레이어에 불과했다.

진한은 그런 메이첸에게 도플갱어의 존재와 가장 가까운 도플갱어 습지를 알려줬다.

‘끔찍했지.’

메이첸은 도플갱어의 습지에서 수십 명의 자신을 마주해야했다.

그렇게 메이첸이 변형된 도플갱어를 입수해 온 날.

그는 대외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었다.

메이첸은 불행 마을에 가 더글라스를 불러들였다.

하지만 그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물건은?”

“여기 있다.”

진한의 물음에 메이첸은 품에서 수정구슬 하나를 꺼내 보였다.

진한은 메이첸이 넘겨준 수정구슬의 정보를 확인했다.

“정확하군.”

“대체 이걸로 뭘 어쩌려는 거지?”

메이첸은 진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글라스를 페어리문으로 불러오라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는 클로버의 총관이었으며, 그가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면 꽤나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수정구슬의 용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설명도 안 읽어봤나?”

진한의 물음에 메이첸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읽어 봤으니까 하는 말 아닌가.”

“내가 친히 다시 읽어주지.”

진한은 아이템 정보를 열어 손수 정보를 읽어 줬다.

[공유의 수정구슬]

사용자의 시야를 그대로 투사할 수 있습니다.

공유의 수정구슬은 사용자의 시선 그대로를 다른 이에게 공유할 수 있는 일회성 아이템이었다.

녹화는 되지 않았고, 같은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므로 가치가 낮았다.

호기심에 한번은 사용해보지만 두 번은 찾지 않는 아이템이 공유의 수정구슬이었다.

메이첸 역시 과거에 공유의 수정구슬을 사용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특별할 것은 없었다.

정말 자기 자신이 보고 있는 시야를 영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줄 뿐이니까.

“시야를 그대로 투사한다.”

“안다.”

“상태창을 열고 사용해 본 적은 있나?”

진한의 물음에 메이첸은 고개를 갸웃했다.

“공유의 수정구슬은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도 함께 투사해주지.”

“그걸 이용해서 셀리나가 군주의 씨앗이라는 것을 알리겠다는 건가?”

메이첸은 기가 막혔다.

셀리나가 정말 군주의 씨앗이라 해도, 과연 호락호락하게 공유의 수정 구슬을 사용해 줄까.

그것도 자신의 상태창을 열고서.

셀리나가 군주의 씨앗이 아니라 해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자신 같아도 절대 상태창을 열고 공유의 수정구슬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상태창을 보여준 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멍청한 짓에 시간을 낭비했군. 셀리나가 이걸 사용할 것 같은가?”

“애꾸눈은 멍청한가봐, 토끼님.”

날이 선 그의 질문에 진한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사용하는 것은 셀리나가 아니다.”

“……?”

“더글라스. 공유의 수정구슬을 사용하는 것은 더글라스다.”

“대체 무슨 개소리…….”

“디텍터. 더글라스는 디텍터다. 들어는 봤겠지?”

“……!”

메이첸은 두 눈을 부릅떴다.

디텍터라는 직업이 있다고는 들었다.

전투 능력이 전무한, 철저한 비전투 클래스.

하지만 디텍터의 가치는 전투 능력으로 따질 수 없었다.

남의 상태창을 열어볼 수 있는 슬레이어.

하지만 그 대우가 좋지 않아 모두 음지로 숨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더글라스가 디텍터일 줄이야.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지?’

단순히 용병술과 지략만으로 클로버정도 되는 길드의 총관이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클래스가 곧 개인의 능력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클래스가 쓸모없으면 그 개인도 쓸모가 없다는 말이었다.

잔인하지만 더즌 헬은 그런 세상이었다.

메이첸은 이제야 진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일 바로 진행하지.”

진한의 계획은 이러했다.

만천하에 모든 길드원들이 모인 곳에서…….

셀리나의 정체를 공개한다.

“꽤나 재밌을 거다.”

진한의 입 꼬리가 보기 좋게 올라갔다.

“토끼님, 웃었다. 좋아.”

엘리스는 진한의 미소를 보며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진한이 요 근래 지은 표정 중 제일 밝은 표정이었다.

반면 메이첸은 진한의 미소를 보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 작품 후기 ============================

엘리스를 좋아하는 트레샤님 후원 감사합니다.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원고료 쿠폰이 들어왔네요.

처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천, 선작,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코멘트가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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