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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문으로 돌아온 진한은 사냥꾼의 검을 점검했다.

[사냥꾼의 검]

스킬 랭크 : S

숙련도 : C

스킬 설명

학살자의 검과 유사한 체계를 지닌 스킬입니다.

학살자의 검에 슬레이어 진한의 전투 경험이 녹아든 실전 검술입니다.

사냥꾼의 검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슬레이어 진한 한정으로 항시 유지됩니다.)

(강자에게 추가 피해 5%)

(검의 거리가 보입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건 대체…….’

진한은 사냥꾼의 검에 대한 설명을 읽고 충격에 휩싸였다.

옵션이 부정확해도 너무 부정확했다.

강자라는 모호한 수치도 그러했고, 검의 거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은…….

‘시스템 보정을 받는 이유가 없다.’

모호한 기준이었다.

보통의 스킬들은 명확한 효과가 제시되어 있었다.

아무리 더즌 헬의 시스템이 슬레이어에게 불친절한 시스템이라지만 이번엔 도가 지나쳤다.

거기에 스킬 숙련도는 어떠한가.

스킬의 숙련도는 E부터 S까지.

과거 진한의 학살자의 검 숙련도는 S등급이었다.

아무리 학살자의 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지만, 사냥꾼의 검은 숙련도가 시작부터 C등급이었다.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좋지 않군.’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하면서 스킬의 효과가 증가하는데, 사냥꾼의 검은 C등급부터 시작하니, 많은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충분했다.

스킬 랭크가 S등급.

더즌 헬의 시스템에는 이유가 없는 것은 없었다.

스킬 랭크가 S등급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진한은 이제 반지를 살펴봤다.

‘설마 비밀의 집행자라니.’

진한의 오른 손에 끼워진 반지, 스페셜 클래스 ‘비밀의 집행자’를 습득할 수 있는 전직 아이템.

비밀의 집행자는 과거에도 나타났던 스페셜 클래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비밀의 집행자는 반항아가 아니었다.

회귀 이전의 비밀의 집행자 클래스를 가졌던 슬레이어는 바로 아레나, 성역의 지배자 길드의 ‘그림자’이며…….

‘개같은 년.’

성역의 지배자와 학살자 길드의 항쟁에서 십수 명의 학살자 길드원들을 도축했던 슬레이어.

철거인 역시 그녀에게 입은 부상 때문에 결국 들판에서 몬스터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물론 훗날 진한의 손에 의에 사지가 잘린 채 벌레와 같이 생을 마감했지만, 그때의 분노는 잊을 수 없었다.

철거인은 그때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재미있군.’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었다.

진한은 전직 아이템을 살펴봤다.

[비밀의 집행자 전직 아이템]

스패셜 클래스 비밀의 집행자로 전직하기 위한 아이템입니다.

비밀의 집행자는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데에 특화된 클래스입니다.

전직 달성 조건 : 슬레이어와의 결투 승리 100회

(패배 시 초기화)

(전직을 원하시면 단검의 형태로 변환됩니다.)

비밀의 집행자는 여간 까다로운 직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상대를 철저히 무력화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클래스로서 암살자 계열 클래스이지만 일대일 대인전투에서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클래스였다.

마법, 버프, 액티브 스킬을 디스펠시키고, 상대를 디버프 시킨다.

디스펠 스킬들 중 몇 가지는 하향조정 되어 자신에게 깃들게 하고, 상대가 디버프 된 수치의 반만큼 자신의 전력이 상승하는, 대인전에 특화된 비밀의 집행자.

암살자들이 아이템을 바리, 바리 싸들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비밀의 집행자는 스킬 몇 가지로도 행할 수 있었다.

비밀의 집행자를 지칭하는 명칭이 있었다.

‘유니크 잡는 스패셜.’

스킬과 버프로 전력을 상승시키는 계열의 클래스에게는 치명적인 클래스였다.

‘이건……. 보관해 둬야겠군.’

진한은 비밀의 집행자의 전직을 포기했다.

자신과 비밀의 집행자의 상성이 잘 맞는지도 의문이었으며, 전직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다면 훗날 다른 슬레이어를 영입하기에도 효과적이었다.

비밀의 집행자와 확실히 상성이 맞는 슬레이어는 흔치 않았으나, 진한은 그런 인물을 하나 알고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레나 바로 그녀였다.

그녀가 이번 생에도 성역의 지배자의 그림자가 되라는 법은 없었다.

‘아레나, 아레나라…….’

진한은 아레나가 성역의 지배자에 들어가기 전의 행적을 모조리 꿰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성역의 지배자의 중진들 역시 자신의 모든 행적을 꿰고 있었을 테니까.

길드간의 전쟁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상대의 약점을 알기 위해 할 수 있다면 지구의 행적 혹은 삶까지 파악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아직 더즌 헬에 떨어지지는 않았겠군.’

그녀가 더즌 헬에 들어선 것은 배신 군주가 토벌된 직후 혹은 그 직전이었다.

진한은 창밖을 내다봤다.

밤이 깊었으나 페어리문의 길드 본부는 때 아닌 손님맞이에 분주해져 있었다.

‘불행 마을에서의 손님이라…….’

불행 마을에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한다.

페어리문은 배신 마을에서 손에 꼽히는 길드.

그런 페어리문이 늦은 시간임에도 저리 분주하다는 것은 손님의 신분 역시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했다.

불행 마을에서 온 슬레이어는 단 둘.

하지만 그 신분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배신 마을은 세 개의 거대 길드가 삼분하고 있다지만, 불행 마을은 오직 하나의 길드가 독주하고 있었다.

클로버 길드.

오늘 온 손님은 바로 클로버 길드의 총관과 호위였다.

더즌 헬에서 실력과 직위는 비례했지만, 그 실력이 꼭 무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총관은 바로 더글러스.

눈에 띄는 아무런 능력도 없이 정치와 처세, 수단으로 올라선 불세출의 지략가로 알려져 있는 슬레이어였다. 그는 특히 용병술에 뛰어났다. 슬레이어를 적재적소에 배치시키고, 꼭 맞는 임무에 투입시켰다. 그가 행하는 토벌 혹은 항쟁에서는 불필요한 인적 손실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총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용병술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진한은 그가 클로버의 총관이 되고, 훗날 클로버가 괴멸되었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그것은 그의 클래스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의 클래스.

‘훔쳐보는 자.’

더글러스의 클래스는 바로 디텍터였다.

진한은 창밖으로 페어리문의 길드원들을 훑어보는 더글라스를 응시했다.

더글라스는 무언가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들어 진한을 바라봤다.

둘의 눈이 교차하고, 더글라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읽어 봤군.’

더글라스는 진한의 상태창을 읽어봤으리라.

*

더글러스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페어리문의 길드원들을 둘러 봤다.

‘형편없군.’

페어리문은 정말 기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길드가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일 정도로, 일반 슬레이어들의 수준이 형편없었다.

개중에는 간혹 정예다 싶은 슬레이어가 있었지만, 길드란 몇몇의 정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삼대 길드로 꼽힐 수 있었던 거지.’

더글라스가 불행 마을에서 배신 마을로 온 이유.

그중에서 굳이 페어리문으로 찾아온 이유.

며칠 전 더글라스는 기묘한 방문자를 맞이했다.

‘여동생, 복수.’

방문자는 단 두 단어만으로 더글라스를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불러냈다.

더글라스는 홀로 그 장소에 나가 방문자를 맞이했다.

‘너……. 뭘 알고 있지?’

‘정말 그의 말이 맞았군. 단 두 단어만으로 클로버의 총관을 불러내다니.’

‘뭘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할 상대는 내가 아니다. 당신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

‘물론 대가는 있다. 당신은 그 대가를 거부할 수 없을 거라던데.’

‘대가는?’

‘날카로운 칼 한 자루. 그리고 냄새를 잘 맡는 사냥개.’

‘개소리 하고 있군. 내가 누구라 생각하지?’

‘누구긴, 그 유명한 더글라스 아닌가. 강한 슬레이어도, 노련한 청부업자도 손쉽게 구할 수 있겠지. 한 마디 더 붙이라 했는데 잊고 있었군.’

‘……?’

‘클로버가 시들고 있다.’

‘……. 우선 얘기나 들어보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지?’

‘미치겠군. 내가 고작 말 몇 마디로 더글라스를 움직일 수 있을 줄이야.’

더글라스는 방문자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이것은 더즌 헬의 알려지지 않은 시스템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으며, 군주 토벌을 준비하는 모든 길드들에게도 값진 정보였다.

하지만 그 정보는 탐구심 많은 자신을 자극할 만한 정보이긴 했으나, 모든 일을 내팽게치고 올만한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가 움직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여동생, 복수 그리고 시들고 있는 클로버.’

여동생의 복수는 그의 숙원이었으며, 시들고 있는 클로버는 길드 내부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정보였다.

자신은 방문자에게, 정보의 출처가 누구인지를 물었으나 방문자는 모호한 말을 남기고 떠날 뿐이었다.

‘자신을 본다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더군.’

더글라스는 페어리문에 방문했지만, 정확히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군주의 씨앗이라는 신선하고 놀라운 정보를 접하긴 했지만,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신은 그저 보는 것이 전부였다.

더글라스는 한시라도 빨리 정보 제공자를 만나기 위해 페어리문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어둑한 창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더글라스는 무심히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

더글라스는 사내를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클래스도 갖추지 못한, 평범한 신규 슬레이어에 불과했지만.

‘공포의 심장?’

상대의 상태창에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스킬이 존재하고 있었다.

--

[공포의 심장]

스킬 랭크 : ???

숙련도 : ???

스킬 설명

공포 군주의 권능.

공포의 지배(사용 가능)

(제한 된 능력입니다.)

(제한 된 능력입니다.)

…….

--

‘공포 군주의…… 권능?’

더글라스는 방문자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그를 찾아가게 되리라는 것을.

모른다면 모를까, 보고 알게 되었는데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무슨.’

더글라스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고, 사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

진한은 떨리는 더글라스의 눈동자를 보고 웃음 지었다.

더글라스는 과거 몇 안 되는 디텍터 클래스를 가진 슬레이어였다.

그리고 이름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유일한 디텍터였다.

디텍터란 상대의 상태창을 훔쳐볼 수 있는 클래스로, 개인의 전투 능력이 전무했다.

그럼에도 모든 길드에서는 디텍터를 탐냈고, 영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영입이 안 되면…….

팔다리를 잘라 약과 정신마법으로 말을 듣게 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디텍터들은 정체를 숨기고 음지에 숨어들었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더글라스가 클래스가 드러나는 걸 감안하면서까지 양지에서 활동했던 이유는 바로 동생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클로버는 더글라스가 길드장과 부길드장과 함께 만든 길드로, 초기 창립 멤버였다.

더글라스는 클로버를 키워 여동생의 복수를 위한 칼로 삼으려 했지만, 결국 클로버는 몰락한다.

더글라스는 그 뒤 다른 길드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의 능력을 떠나서 기반이 없는 그로서는 그 길드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몇 번은 그의 목적을 이뤄주겠다고 그를 영입한 길드도 많았지만, 오직 말뿐이었다.

더글라스는 그렇게 몇 번의 배신을 당하고 끝내는 팔다리가 잘려 약과 정신마법에 취해 아이템처럼 취급당하다 죽임을 당했다.

더글라스의 사연은 유명했다.

더글라스와 함께 더즌 헬에 떨어진 여동생.

하지만 그의 여동생은 신규 슬레이어 시절 쾌락 마을에서 온 슬레이어들에게 겁간을 당하고 자살하게 된다.

신규 슬레이어였던 더글라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비전투 클래스인 디텍터를 얻은 그로서는 훗날을 도모하기도 쉽지 않았다.

몇 번이고 클래스를 버리고 전투 클래스를 갈아타려는 고민을 하기도 했으나, 그는 아쉽게도 전투에는 재능이 없었다.

반면 그는 디텍터 클래스를 누구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그 즈음 그는 클로버 길드의 창립 멤버들을 만나고, 클로버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온힘을 다해 클로버를 키웠고, 원수들에 대한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쾌락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그가 알게 된 사실은 절망적이었다.

원수들은 바로 쾌락 마을의 제일 길드의 중진들이었다.

당시 클로버 길드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거대 길드였다.

그날 이후로 더글라스는 클로버를 키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클로버가 불행 마을의 제일 길드가 되었을 때 그는 환호했다.

클로버의 동료들은 그를 지지했으며, 마을과 마을, 길드와 길드간의 전쟁도 불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갑작스런 창립 멤버들 사이의 불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길드장과 부길드장 사이의 파벌 싸움이었다.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 곪아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클로버가 언제 갈가리 찢겨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진한은 더글라스의 원수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더글라스의 동생을 겁간하고, 자살에 이르게 한 이들은 바로 쾌락 마을의 세인트 스타의 중진들.

그들은 바로 훗날 ‘성역의 지배자’로 발호하게 된다.

이전 생에서는 학살자가 발호하기 전 더글라스가 목숨을 잃었다.

‘재밌게 얽히는군.’

진한은 돌아서는 더글라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전 생에는 닿지 않았던 인연들이 이번 생에는 진한을 찾아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솨라솨라// 감사합니다! 연참은.. 열심히 쓰겠습니다!

가니메디아//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부분은 본문에 설명 넣었습니다.

트레샤// 감사합니다! 연참을 바라시는군요!

유리별// 전직 아이템의 용도는, 전직 이외에도 있는 아이템도 있고 없는 아이템도 있습니다. 비밀의 집행자는 어떨까요.

코멘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즐거운 감상 되셨기를 바랍니다.

추천, 선작,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진한은 과연 더글라스를 어떻게 활용할까요.

더글라스에게 방문한 방문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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