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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2 페이크 (12/40)

00012  페이크  =========================================================================

 진한은 앞에 선 상대를 응시했다.

반항아의 사정거리는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거리를 두고, 급소를 노린다.

단검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해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무기에 비한다면 살상력이 부족한게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짧은 무기를 쓰는 슬레이어들은 레이드를 하듯 상대에게 피해를 누적시켜 숨통을 죄어온다. 하지만 반항아의 전투 방식은 그렇지 않았다.

거리를 두고, 일격 혹은 이격에 상대를 끝장낸다.

지근거리에서 싸우는 게 더 유리할 터인데, 반항아는 히트 앤 런도 아닌 일격을 고수했다.

여기서 몇 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가까운 거리를 선호하지 않는 다는 것은 상대보다 근력 능력치가 낮다는 것을 뜻했고, 그럼에도 상대를 일격에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쥐새끼가 결투장에 있다니. 별일이군.’

반항아의 클래스가 암살자라는 것을 뜻했다.

일격 혹은 이격 째에서 추가 데미지 보완을 받을 수 있는 암살자 계통의 클래스들이 선호하는 전투 방식이었다.

기습이 더 유리한 클래스였다.

거기다가…….

‘놈은 일격 혹은 이격에 익숙하다.’

이 전의 결투에서도, 그 전의 결투에서도 놈은 상대를 찌르고 망설임없이 등을 돌렸다.

그 말인 즉 놈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의 전투에 익숙하다는 말이었다.

진한이 상대에 대한 파악이 끝날 때 즈음 전투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반항아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대각선 방향으로 진한에게 빠르게 쇄도해 왔다.

암살자의 스킬 고속 이동이었다.

고속 이동은 직선거리로는 움직임이 빨라 위치를 선점하거나 기습하기는 용이했지만 단점이 있었다.

방향을 전환하기가 힘들었다.

진한은 망설임 없이, 몇 걸음 움직였다.

놈이 스킬까지 사용해가며 좁히려 한 거리를 진한은 몇 걸음 이동만으로 벌려 놨다.

‘우습군.’

진한은 인상을 찌푸린 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여태까지는 상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던 놈이 먼저 제치고 들어온다.

놈은 자신을 얕보고 있었다.

약한 상대와의 전투와 익숙하기에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스킬의 활용력은 높지만, 스킬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거기에 공격이 단조롭다.

진한은 싸움장의 바닥 타일에 사이에 검을 꽂아 넣었다.

놈은 진한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쥐새끼가 왜 싸움장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한은 검지를 까딱거리며 말을 이었다.

“쥐새끼는 맨손으로 때려잡아도 충분하지. 들어와 봐라.”

“이 씨벌놈이.”

반항아의 이마에 핏줄이 불룩 솟아올랐다.

“갈기갈기 찢어주마.”

“찍찍대는 게 귀엽기도 하군.”

진한의 말 한 마디에 반항아는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반항아는 곧장 진한에게 달려 들었다.

걸치고 있는 아이템이나 무기를 보니 신규 슬레이어였고, 손 쉬운 상대였으니 특별히 괴롭지 않게 결투를 끝내주려 했다.

배떼기에 칼질 두 어방 맞는다 해도 죽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자비를 베풀어 주려 했지만 놈은 끝내 그것을 거부했다.

어느새 진한에게 다가선 반항아는 돌진력을 이용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반항아의 반짝이는 단검이 진한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멍청한 새끼.’

반항아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놈은 맨손이었고…….

“이런 씨발놈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진한이 검을 뽑아 반항아의 단검을 막아냈다.

‘일격.’

진한은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에 이를 악물었다.

반항아의 근력 능력치가 낮다지만, 높은 민첩에 고속이동의 추진력이 붙으니 막아내기 쉽지 않았다.

놈의 행동을 미리 예상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심장이 꿰뚫리고 말았을 것이다.

반항아는 휘청이는 진한을 향해 다른 손의 단검을 휘둘렀다.

놈의 단검이 진한의 목을 노리고 사선에서 베어 들어왔다.

진한의 민첩 능력치로는 눈으로도 따라잡기 쉽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카앙-!

진한은 검의 측면을 손으로 받쳐 놈의 공격을 막아 냈다.

묵직한 타격감.

‘이격.’

암살자 클래스의 추가 데미지 판정은 이격이 끝.

진한은 그 이격을 소모시키기 위해 놈을 도발했다.

멍청하게도 도발에 걸려든 놈은 진한이 예상하는 데로 착실히 움직여 줬고, 진한은 예상한 경로에 맞춰 검을 움직였다.

민첩이 높다지만, 행동을 예상할 수 있다면 못 막을 수준의 차이도 아니었다.

놈과 진한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험의 벽이 존재했다.

목숨을 건 전투가 수백 번.

그 차이가 이번 전투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진한은 검을 휘둘러 놈을 떨쳐냈다.

다시 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너 이 새끼……. 맨손으로도 충분하다면서……!”

“그 말을 믿다니. 지능도 딱 설치류 수준이군.”

반항아는 진한이 스스로 한 말을 어겼다는 사실과 조롱당했다는 수치심에 이를 악물었다.

일격, 이격이 보기 좋게 날아갔다.

놈이 진한에게 경각심을 가지려는 그때.

“자, 이제는 진짜 맨 손으로 상대해주지.”

진한은 다시 검을 결투장 바닥의 타일에 사이에 꽂아 넣었다.

“이 씹어먹을 새끼……!”

반항아의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반항아는 다시 고속이동을 사용해서 진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좀 전과는 달랐다.

놈은 진한이 다시 검을 뽑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하고 움직였고…….

그것이 놈의 행동을 제약했다.

‘심장과 목만 아니면 된다.’

진한은 단검의 궤적을 얼추 계산한 후, 망설임 없이 몸을 틀어 놈의 다리를 걷어 찼다.

“억!”

균형이 무너진 놈이었지만 검을 멈추지 않았다.

놈의 검이 진한의 왼쪽 어깨에 틀어박혔다.

반항아가 반대쪽 단검을 휘두르려던 그때, 진한은 어깨를 찌른 놈의 손을 잡고 뒤로 누우며 놈을 땅바닥에 꽂아 넣었다.

달려오던 추진력이 채 사라지지 않아 놈의 몸이 손쉽게 넘어갔다.

싸움판 바닥에 등부터 떨어졌다.

“컥!”

진한과 반항아는 머리를 맞대고 싸움판 바닥에 대짜로 누워있었다.

내구력 능력치가 있어 금새 회복하겠지만, 진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깨에 박힌, 놈이 놓친 단검을 뽑은 진한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놈의 다리께로 걸어갔다.

“자, 그럼.”

진한은 망설이지 않고 놈의 양 발의 아킬레스건을 잘라냈다.

“아아악!”

놈의 비명이 싸움판을 가득 메웠지만 진한은 들리지 않는 다는 듯 손을 털었다.

챙강-!

진한은 단검을 발목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놈에게 던져줬다.

“다시 기회를 주지.”

진한은 옷깃을 찢어 어깨를 지혈하고는 꽂아놓은 검을 뽑아 들었다.

진한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고 자세를 잡은 후 놈에게 말했다.

“다리병신이 된 네놈을 위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마. 이번 약속은 지키마.”

“아아아악-! 이 개새끼이! 죽여버리겠어어어어어!”

반항아는 이를 악물고 꾸역꾸역 바닥을 집고 일어났다.

원래라면 일어날 수도 없었지만, 이곳은 더즌 헬이었다.

놈은 어떻게든 일어나 진한에게 비척비척 다가왔다.

다 큰 성인이 걸음마를 배운 아이가 된 듯 걸어오니 꽤나 우스웠다.

“오기 불편하겠군.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가줄 수 없다. 미안하다.”

“개애애애새끼!”

놈은 가까스로 다가와 진한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두 단검은 진한이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지만, 분노를 이기지 못해 공격이 단조로웠다.

진한은 놈의 어깨를 보고 움직임을 예측했다.

둘은 지근거리에서 공방을 주고 받았다.

주로 공격하는 것은 놈이었고, 진한은 놈의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내고 있었다.

“씨발! 씨발! 씨발! 죽어! 죽어! 죽어!”

반항아는 필사적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점점 더 빨라지는 공세.

진한은 오직 어깨의 움직임만으로 놈의 공격을 예측했다.

그럼에도 진한의 몸에는 잦은 생체기가 끊이지 않았다.

픽! 픽!

진한의 옷깃이 찢어지고,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단순이 이기기 위해서라면 아까 놈의 목을 따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사냥꾼의 검을 완성하기 위해 온 곳이었다.

그렇기에 진한은 번거롭지만 놈의 두 아킬레스건을 따버렸다.

아킬레스건을 따였어도 놈의 공격은 매서웠지만, 딱 진한이 원한 수준이었다.

‘신기한 놈이군.’

진한은 점점 더 빨라지는 놈의 공격을 보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출혈 때문에 몸에 힘이 빠지고 있을 텐데도 놈의 공격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중첩 가속을 익힌 건가.’

진한의 머릿속에 암살자 계열의 스킬이 떠올랐다.

꽤나 결투장을 전전하는 놈들이 익히기에는 고급 스킬이었는데, 놈은 아무래도 그걸 익히고 있는 듯 했다.

공격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는, 암살자 계열의 스킬.

반항아의 성미가 안전을 추구했기에, 자주 사용하는 스킬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활용하고 있었다.

점점 더 빨라지는 반항아의 검격에 진한의 몸에는 조금씩 큰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개새끼! 개새끼!”

진한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막을 수 있는 공격은 막아내고 흘릴 수 있는 공격은 흘려냈다.

‘좋군.’

예상하지 못했지만, 딱 좋은 수준이었다, 라고 생각한 순간.

카앙-!

진한은 예상외의 타격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검을 쥔 진한의 팔이 크게 뒤로 넘어갔다.

“일격 돌아왔다, 이 새끼야아!”

놈은 희열에 차서 이격 째 공격을 진한에게 휘둘렀다.

반항아의 이격이 진한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축하한다.”

진한은 팔이 뒤로 넘어가며 뒤로 쏠린 무게중심을 이용해, 등을 뒤로 젖혀버렸다.

“익! 개새……. 컥!”

놈이 다시 검을 휘두르려던 그때, 진한의 상체가 옆으로 돌아 일어나며 놈의 옆구리를 베어 버렸다.

원심력을 이용한 진한의 검은 놈의 옆구리를 장작 패듯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그럼에도 놈은 포기하지 않았다.

놈은 이를 악물고 진한을 공격했고…….

진한은 망설이지 않고 놈에게 박힌 검을 뽑아냈다.

“칵!”

잘려진 놈의 옆구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그와 동시에 진한의 귓가로 그토록 기다리던 알림음이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사냥꾼의 검’을 완성하셨습니다.]

[‘비밀의 집행자’가 되기 위한 수련자를 죽이셨습니다. 전직 아이템의 소유가 진한님에게 넘어갑니다.]

첫 번째 알림음은 그토록 기다리던 것이었지만…….

두 번째 알림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알림음이었다.

진한에게만 간신히 보일 것 같은 희미한 불빛이 손가락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것은 거뭇한 문양 없는 반지였다.

진한은 예상 밖의 소득에 만족하며,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망설임 없이 걸음을 돌렸다.

*

“메이첸, 메이첸, 메이첸…….”

불이 꺼진 페어리문 길드장 실, 셀리나는 자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메이첸이 자살을 했어?”

근 며칠 그녀는 한 가지 문제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메이첸의 자살.

김태수와 쌍벽을 이루며, 표면적으론 길드의 대소사를 도맡아 하는 총관 메이첸.

그녀와 그가 지낸 시간은 짧지 않았고, 메이첸이 그녀를 잘 알 듯, 그녀 역시 메이첸을 잘 알았다.

‘말도 안 돼.’

메이첸은 야수와 같은 남자였다.

냉철하지만 여린 면모가 있는 김태수와는 달리, 메이첸은 언제든, 어느 때든, 틈만 보이면 목덜미를 물 것만 같은 야성적인 남자였다.

처음 그녀가 김태수와 다닐 때, 낙오자에 불과했던 메이첸을 받아들인 것도 바로 그런 면 때문이었다.

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눈에는 독이 바짝 올라 언제고 이빨을 들어낼 준비를 하던 남자.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였고, 그녀는 그런 맹수를 길들였다고 믿었다.

자신과 메이첸은 단순히 길드장과 총관의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가 필요하면, 언제든 서로의 침소로 찾아가 서로를 탐닉하던 관계.

연인이라기에는 차가웠고, 친구라기에는 뜨거웠던 관계.

둘은 업무적으로도, 성적으로도 좋은 파트너였다.

그녀는 메이첸을 길들였다고 믿었다.

그날도 그녀와 그는 어둠속에서 몸을 섞었고, 한 순간의 열락이 침실을 휩쓸고 간 후 여느 때와 침실을 빠져 나오려 했었다.

‘셀리나, 등에 문신이 있었나?’

메이첸은 그녀가 나가기 전 업무를 보기 위해 촛불을 켰고, 오랜 시간 지켜온 그녀의 비밀이 드러나게 되었다.

“메이첸이 자살을 하다니. 말도 안 돼.”

셀리나는 길드장실을 서성이며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메이첸의 시체를 확인했으니, 못 믿을 수도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메이첸은 자살을 할 인물이 되지 못했다.

야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이보다 더 우스운 일이 어디 있는가.

그녀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꾹꾹 눌렀다.

똑똑.

“셀리나.”

그러던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김태수였다.

“불행 마을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셀리나는 김태수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불행…… 마을?”

이 시간에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심지어 불행 마을이라니.

그녀의 머리 속은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 작품 후기 ============================

가니메디아//셀리나는 과연 어떻게 없어질까요!!!! 메이첸은 과연 어떻게 된걸까요!! 앞으로를 기대해주세요!

유리별b// ㅠㅠㅠ 불쌍한 친구에요... 저렇게 가는군요....

가니메디님, 유리별b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거운 감상 되셨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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