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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널 쳐내려 하는 것 같군. 이번 적성검사는 그 시작이고.”

진한의 물음에 메이첸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려 해봐야 소용없었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이유가 뭐지?”

진한은 그 이유를 물었다.

단순한 정쟁이 아니었다.

이전 생에서 김태수에게 들은 말로는, 셀리나는 길드 운영에서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다고 한다.

모든 실권은 김태수와 메이첸에게, 그녀는 최종 결정권만.

페어리문에서 그녀의 존재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컸다.

그런 그녀가 왜 직접 나서면서까지 메이첸을 도려내려 할까.

회귀 이전 김태수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메이첸은 길드 내에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안 셀리나는 그간의 정 때문에 메이첸을 즉결처분하지 못하고 스스로 나가면 처벌을 하지 않겠다며 설득했다.

페어리문에서 마약유통에 대한 처벌은 양팔을 자르는 것이었다. 메이첸은 길드를 떠났다.

그 뒤 페어리문 내에 대대적인 마약소탕이 이뤄졌고, 그 도중 메이첸이 마약을 유통했다는 사실을 중진들까지 알게 되었다.

중진들은 길드의 규율을 세우기 위해 추적대를 만들었으나 끝내 추적에 실패하고 말았다.

메이첸은 셀리나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배신 군주 토벌 때 다시 나타나 셀리나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때 김태수는 스스로 메이첸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배신 군주 토벌은 성공했지만, 그날 김태수는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를 모두 잃었다.

이것이 김태수가 평생 후회하는 일의 전모였다.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진한에겐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마약 유통 같은 경우는 꼬리를 잡기 쉽지 않았다.

학살자 길드엔 이름보다는 사냥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슬레이어가 있었다.

놈이 주로 했던 일은 청부를 받아 길드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마약 소탕 역시 끼어있었다고 한다.

사냥개는 더즌 헬에서 손에 꼽히는 해결사였지만, 그도 잡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길드 내 마약 유통업자였다.

길드 내부 마약 유통은 보통 내부의 조력자와 외부의 브로커가 손을 잡고 진행한다.

내부의 조력자는 브로커가 길드를 출입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고, 브로커는 길드에 본격적으로 마약을 판매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부 조력자는 마약을 유통시키는 것이 아닌, 판을 깔아주는 것이었다.

금전적인 흐름은 있지만 그것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조력자가 브로커와의 연결만 끊어 버리고 손을 털면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거 정치 싸움인거 같은데요?’

셋이 모인 술자리에서 사냥개가 김태수의 말을 듣고 내뱉은 감상이었다.

그날 김태수는 사냥개를 복날 개 패듯 팼다.

사냥개의 말에 내포된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셀리나에 의한 메이첸의 숙청.

셀리나를 잊지 못하는 김태수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지금 진한은 사냥개의 말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메이첸의 반응과 상황이 그것을 증명했다.

‘메이첸은 셀리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

진한이 내린 결론이었다.

셀리나는 메이첸을 숙청하려 하고 있었고, 메이첸이 정말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다면 그것을 빌미로 얼마든 잘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셀리나는 번거로운 방법을 쓰고 있다.

그 말인 즉 메이첸이 숙청되는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라는 말이었다.

진한은 품에서 잎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셀리나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군. 그렇지?”

메이첸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은 셀리나에게 아주 치명적인 이유고.”

진한은 메이첸의 눈을 응시했다.

메이첸의 눈동자는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미약하게.

진한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우선 나갈까?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군.” 그 말을 끝으로, 진한은 유적지 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

적성검사 커리큘럼은 참가 신규 슬레이어들의 떼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생존자는 단 둘.

진한과 엘리스.

페어리문 길드는 총교관과 몇몇 교관들의 문책을 위한 청문회를 열었고, 결국 모든 책임은 총교관과 교관들이 짊어지게 되었다.

특히 총교관인 메이첸의 길드 내의 입지는 눈에 띄게 좁아졌다.

진한과 엘리스에게는 대기 명령이 내려져 진한은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진한은 방에서 여유롭게 잎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해가 떨어져 어두운 방, 작은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진한 역시 증인으로서 출석을 하고 조사를 받았지만, 예상했던데로 진한을 향한 문책이나 추궁은 없었다.

‘역시나군.’

애초에 메이첸을 숙청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니, 자신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갖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다소 허술한 증언으로도 쉽게 시달림을 벗어날 수 있었다.

“들어간다.”

그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로브를 뒤집어 쓴 남자가 들어섰다.

남자는 로브를 벗고 곧장 진한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메이첸이었다.

“물건은?”

진한의 물음에 메이첸은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내밀었다.

아이템 감정스크롤이었다.

“고맙군.”

“……. 유적지에서 뭔가를 얻었나보군.”

메이첸의 말에 진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이 좀 줄었다고 들었는데, 얼굴은 죽을상이군.” 진한의 농에 메이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길드 내의 입지가 대폭 축소되고, 그가 그간 맡아왔던 업무들은 모두 다른 중진들에게 돌아갔다.

생활은 전보다 여유로워졌으나, 정신적인 압박은 늘어났다.

메이첸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며 화를 삭였다.

“너……. 대체 뭐냐. 셀리나가 보낸 건 아닌 거 같고. 대체 무슨 목적으로…….”

“너를 도우려 하냐고?” “……그래.”

메이첸도 바보는 아니다.

진한이라는 놈은 자신을 도우려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에 무언가 얻어낼 것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얻어낼 것이 없었다.

진한이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 그걸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너는 정체가…….”

메이첸은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진한의 눈을 보니, 도저히 말해줄 것 같은 눈빛이 아니었다.

“아니, 됐다. 그래서 날 어떻게 돕겠다는 거지?”

진한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마을의 특성에 예외란 없었다.

인간에겐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고, 마을의 특성은 그런 감정을 증폭시키고 표출하게 한다.

김태수의 말에 의하면 셀리나가 그렇게 사람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감정이 아예 없거나 희박하기 때문이라 했지만, 그 얘기를 들은 학살자 길드의 길드원 중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진한은 거기서 더 나아가 셀리나가 어떻게 특성을 무시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해답은 간단했다.

스킬.

셀리나에게는 마을의 특성을 무시할 수 있는 종류의 스킬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고, 어떤 식의 스킬인지는 모르지만, 진한은 확신하고 있었다.

진한이 배신 마을을 찾은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태수, 셀리나, 그리고 배신 마을에서 찾아야 할 ‘그것’이 진한이 배신 마을을 찾은 이유였다.

쾌락 군주의 현혹은 카이센의 증표를 지니고 있는 진한으로서도 견디기 힘든 수준의 것이었다.

하지만 정신 계열 스킬을 디스펠 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면, 훗날 쾌락군주에게 도전을 한다 해도 승산이 있을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스킬이 아닐 수 있었지만, 알아두는 편이 좋았다.

“우선 네가 알고 있는 걸 모두 들어보도록 하지. 뭘 알고 있길레 셀리나가 널 숙청하려 하고, 너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는지.”

진한의 말에 메이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과연 믿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상대는 종잡을 수 없는 슬레이어였다.

그는 이제 진한이 정말 신규 슬레이어인지 아닌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대로 간다면 셀리나에게 숙청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니길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랐건만 결국 이 모양이었다.

이미 쏘아진 화살이었으니, 망설일 것은 없었다.

“그녀에게는……. 배신 군주의 문양이 있다.”

메이첸의 말에 진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십이군주의 문양이 있는 슬레이어.

그것은 십이군주에게 복종을 맹세한 슬레이어에게 주어지는 흉터와 같은 것이었다.

‘설마 셀리나가 군주의 씨앗이었을 줄이야.’

타이틀 군주의 씨앗.

꽤나 나중에 알려지게 되는 타이틀이었다.

군주들은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사념체와 같은 것을 아이템의 형식으로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는데, 그것을 얻은 이들은 해당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군주를 위해 행동하게 된다.

당연히 토벌에 성공할 거라 믿었던 토벌대가 토벌에 실패한 대다수의 원인이 군주의 씨앗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정도로, 군주 토벌전에서 군주의 씨앗은 치명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군주의 씨앗이 되어 강력한 힘을 얻는다.

그들이 그 힘으로 하는 일들은 간단했다.

슬레이어들의 전력을 감소시키거나 토벌대를 와해시키기.

군주의 씨앗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디텍터는 흔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간단하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몸 어딘가에 있는 군주의 문양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군. 그래, 그랬군.”

군주의 씨앗이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 실려 있는 기이한 신뢰감은 그녀가 받은 힘일 것이다.

“개같은 년……. 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나를…….”

메이첸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싸맸다.

진한은 괴로움에 떠는 메이첸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메이첸은 셀리나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로서는 그 문양의 의미를 알지 못하니 셀리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문양을 알게 되고부터 그녀와 사이가 틀어졌으니, 그녀가 자신을 숙청할 이유는 문양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엄청난 비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셀리나가 자신을 쳐낼 거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번 일이 일어나서야 비로소 확신했을 것이다.

‘배신 마을이 가장 먼저 군주 토벌에 성공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군.’

다른 마을들이 군주 토벌에 속속들이 실패하는 와중에 배신마을이 제일 먼저 토벌에 성공했던 이유.

메이첸이 셀리나, 군주의 씨앗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진한은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담배를 창틀에 비벼 끄고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셀리나는……. 죽인다.’

진한은 결심했다.

셀리나를 죽이기로.

군주의 씨앗을 살려주고 군주 토벌전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메이첸.”

진한은 다시 자리로 와 메이첸과 대화를 시작했다.

메이첸이 돌아가고 진한은 품에서 유적지에서 얻은 반지를 책상위에 올려뒀다.

푸른색 보석이 박혀있는 은빛 반지.

메이첸에게 부탁해 아이템 감정스크롤을 얻었으니, 유적에서 얻은 반지를 파악해야 할 때였다.

진한은 양피지를 꺼내고, 그 위에 반지를 올려 뒀다.

[아이템을 감정하시겠습니까?]

“그래.”

진한의 대답에 양피지가 하얗게 빛을 뿜어내며 반지에 녹아들었다.

진한은 빛이 사라지자 조심스럽게 반지를 들고는 정보를 열어봤다.

“……이건.”

아이템 정보를 읽은 진한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진한의 예상이 맞다면, 현재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은 있을 수 없었다.

‘대체 이건 뭐냐.’

회귀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아이템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전 생에는 누구도 저 변환유적을 클리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기본적인 옵션도 누구나 탐낼 만 한 옵션이었지만, 진한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진한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아이템 정보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기억의 반지]

사용 시 일시적으로 착용자가 원하는 과거의 몸 상태로 돌려줍니다.

유지시간 : 5분

(사용 후 다음 사용까지 걸리는 시간 2주)

기억의 반지.

설명이 맞다면, 회귀 이전의 스탯들과 스킬들을 일시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진한은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반지를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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