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엘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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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첸은 유적지의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아무래도 불안한데.’
좀 더 떨어진 곳에서 다른 교관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신규 슬레이어들과 주거니 받거니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지만, 메이첸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이런 예감을 무시하고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다.
‘중도 포기자가 나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보통 중도 포기자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적성검사 유적지가 아무리 최하급 유적지라지만, 신규 슬레이어들에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포기해도 진즉에 포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었다.
‘뭔가 틀어졌어.’
메이첸은 뒤를 흘끗 바라봤다.
‘설마 셀리나가 정말……. 아니, 아니지. 그럴 리가.’
교관들은 여전히 다른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확인해 봐야겠군.’
그는 애써 불안감을 떨치며 유적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적지쪽에 거의 도달했을 때 즈음 유적지 안쪽에서 두 남자가 비척대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 아아! 교관니…….”
메이첸은 서둘러 달려 나가 둘의 입을 틀어막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행한 일이었다.
메이첸은 자신도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장은 본능이 시키는 데로 따랐다.
그는 곧장 고개를 돌려 교관들이 있는 쪽을 살폈다.
다행히 누구도 이쪽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둘의 입을 틀어막고 유적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 대체 이게 무슨…….’
유적지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그의 낯빛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아까 자신이 확인했던 유적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내부가 달랐다.
“교, 교관님?”
메이첸에게 끌려온 둘은 당황하며 메이첸을 바라봤다.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둘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지?”
메이첸은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고, 둘은 안에서의 일을 낱낱이 보고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는 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확인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유적지.
신규 슬레이어들의 몰살.
그리고…….
‘진한이라고?’
그 많은 몬스터들을 홀로 처리한 신규 슬레이어.
이름도 흐릿할 정도로 눈에 띠지 않는 슬레이어였다.
그런데 그가 모든 몬스터를 처리하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총교관 자리를 넘긴 것은 결국 이런 의도였나.’
메이첸은 지금 이 순간이 오랜 기간 품어온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갑작스런 총교관의 교체, 그리고 전날에서야 지정해준 적성검사용 유적지.
그런 유적지에서 사고가 났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해명을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그녀는 이 모든 사실에서 자신의 책임을 부정할 것이다.
길드 내에서 그녀의 입지는 압도적이었다.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자신의 손을 들지 않을 정도로.
페어리문 길드의 결속은 서로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믿음으로서 생긴 결속이니까.
모든 관계는 그녀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해결을 봐야 한다.’
대책을 마련하려 해도 지금이어야 했다.
길드까지 일을 끌고 간다면 그에게 기회는 없었다.
“그래, 수고 많았다.”
메이첸은 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제 편히 쉬어도 좋아.”
둘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긴장을 푸는 순간…….
우드득.
메이첸의 양 손이 둘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그는 두 구의 시체를 들고 유적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나이트.
진한은 우선 나이트의 갑옷을 살펴봤다.
‘최하급이군.’
갑옷의 색과 문양으로 나이트의 등급을 판별할 수 있었다.
은색, 금색, 흑색 순으로 등급이 높아지고, 각 색깔별로도 문양으로 등급이 나뉘었다.
문양은 0개에서 3개까지 있었는데, 진한의 앞에 자리한 나이트는 문양이 없는 나이트였다.
그럼에도 신규 슬레이어로서 상대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대였다.
‘말은 타고 있지 않군.’
그나마 다행이었다.
놈들은 마상에서 더 강력했고, 혼자보다는 여럿이 뭉쳤을 때 더 강력했다.
진한은 광장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그긍-!
진한이 완전히 들어서자, 광장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퇴로를 차단했다.
공간에는 나이트와 진한.
오직 둘뿐.
나이트는 옥좌에서 일어나 천천히 진한에게 다가왔다.
은빛 갑주가 불빛을 눈부시게 반사시켰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진한은 손에 들린 검을 꼬나 쥐었다.
진한과 나이트의 간격은 보통 걸음으로 네 걸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서로를 공격할 수 있고,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거리였다.
진한은 이 거리를 제일 좋아했다.
나이트는 잠시간 진한을 응시하다가 검을 뽑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나이트가 검병을 잡는 그 순간…….
진한은 곧장 뛰어올라 나이트의 검의 폼멜을 발로 밟고는, 자신의 폼멜로 나이트의 턱주가리를 후려 갈겼다.
나이트는 검을 뽑지 못하고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진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이트의 갑옷 옆구리 사이로 검을 쑤셔 박았다.
진한은 갑옷 사이로 검을 쑤셔 박고 그대로 위로 쭉 올렸다.
옆구리의 틈은 어깨까지 이어져 있었다.
카가가각-!
귀를 찢듯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흠, 역시 안 되나.”
진한의 검은 나이트의 왼 어깨에 끼인 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근력 스탯이 부족해 어깨를 완전히 해체하지 못했다.
진한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놓고는 그대로 팔꿈치고 나이트의 턱주가리를 한번 더 후려쳤다.
까앙-!
텅 빈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큽.”
피륙과 쇳덩이의 충돌이었다.
충격이 없을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 덕에 나이트는 다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였다.
나이트는 진한을 뿌리치기 위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진한은 왼팔로 나이트의 팔 안쪽을 막고는, 오른손을 뻗어 나이트의 검을 움켜쥐었다.
검을 움켜쥔 진한은 그대로 검을 뽑고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검면으로 나이트의 대가리를 후려 갈겼다.
까앙-!
경쾌한 쇳소리가 광장을 가득 매웠다.
진한은 뒤로 다시 한 걸음 물러서며 거리를 뒀다.
“후우-!”
나이트의 투구는 처음과는 달리 깡통처럼 우그러져 있었으며, 왼 어깨에는 진한이 박아 넣은 싸구려 검이 꽂혀 있었다.
진한 역시 무사하지 않았다.
왼손의 팔꿈치는 금이 가고, 팔뚝은 부러진 듯 덜렁거리고 있었다.
나이트의 턱주가리를 후려졌을 때, 그리고 오른팔을 막았을 때 생긴 부상이었다.
진한은 나이트의 검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사용하던 싸구려 검과 비교하기 무색할 정도로 좋은 검이었으나, 그만큼 더 무거웠다.
아직 자신의 근력으론 양손을 사용해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무게였다.
한 손으로는 휘두르기가 고작이었다.
나이트가 정신을 차리고 진한을 노려봤다.
나이트는 진한을 한번 응시하고는, 자신의 텅 비어버린 검집을 응시했다.
진한은 나이트의 시선이 떨어진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왼편으로 달려들었다.
아주 짧은 틈이었지만 진한이 나이트의 뒤로 돌아 가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움직임을 알아챈 나이트가 진한을 제지하려 했지만 왼 어깨에 꽂힌 검 때문에 왼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진한은 그대로 멈추며 검을 크게 휘둘러…….
카아앙-!
베팅하듯 나이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뒤통수를 후드려 맞은 나이트는 대짜로 앞으로 엎어졌다.
진한은 곧장 일어나려는 나이트의 등짝을 발로 차고는 그대로 뒷목의 틈새에 검을 쑤셔 박았다.
카각!
바둥거리는 나이트.
진한의 검이 틈새를 완전히 비집고 들어가지 못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그 뒤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그극-!
엎어지면서, 왼쪽 팔에 꽂힌 검이 빠진 듯 나이트가 양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려 했다.
왼쪽 팔이 부자연스러워 온전히 힘을 주지는 못했지만 이대로라면 시간문제였다.
진한은 그대로 체중을 실어 검을 내리 눌렀다.
그리고…….
우득.
갑옷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이트의 검이 갑옷 사이로 완전히 비집고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나이트의 몸에서 기이한 연기가 빠져나가며 갑옷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 애먹었군.”
진한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
“토끼가 어디 갔지?”
엘리스는 유적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척대는 그녀의 발걸음은 위태했다.
그녀는 몬스터의 시신들을 하나, 하나 들추며 토끼를 찾고 있었다.
“여기 있나? 없네? 여기 있나? 없네?”
세 번째 방까지 오기 전에 두 명의 남자를 만났지만 그들은 토끼가 아니었다.
그녀는 토끼를 찾기 위해 몬스터의 사체를 일일이 들추고 있었다.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시체를 하나, 하나 들추며 얼굴을 확인하고, 물건을 찾듯이 샅샅이 헤집고 있었다.
마주할 수밖에 없는 불행을 최대한 늦게 마주하기 위한 어린 아이의 행동처럼, 그녀의 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피난체의 난쟁이들의 무서움이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토끼의 시체가 없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녀는 당장이라도 찢겨나간 토끼를 마주할 거라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있었다.
토끼는 그녀의 구세주였다.
하지만 이 세상은 너무도 무서웠다.
그녀는 이 길의 끝에 토끼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렇게 그녀는 세 번째 방을 다 뒤지고 네 번째 방으로 나아갔다.
“토끼야아…….”
그녀는 비척대며 걸음을 옮겼다.
토끼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진한은 무거운 다리를 끌고 옥좌로 향했다.
광장에는 옥좌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구조물도 없었다.
보물이 복잡하게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변환 유적지의 끝에서 얻는 보물을 보상이라 부르는 이유는…….
“찾았다.”
항상 유적지의 끝에 찾기 쉬운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변환 유적지를 통과한 이들이 당연히 가져갈 수 있도록.
마치 그것을 바라는 것처럼.
옥좌의 엉덩이를 대는 부분은 마치 뚜껑처럼 손잡이가 달려있었다.
진한은 망설임 없이 뚜껑을 열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푸른 보석이 박혀있는 은색반지였다.
진한은 반지를 살폈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최초 한번은 감정서를 사용해야 했다.
진한은 반지를 품에 갈무리하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겠군.”
진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신규 슬레이어가 홀로 나이트를 잡았다는 것은 경이스러운 일이었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십이군주의 영역에 들어서면 몬스터 하나, 하나가 최하급 나이트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앞으로 길어야 삼년, 그 기간 동안 힘을 키워 토벌에 참가해야 했다.
몇 번인가 숨을 더 들이쉰 후 진한은 옥좌의 뚜껑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그그긍-!
그때 철문이 육중한 굉음을 내며 쩌억 벌어졌다.
“……?”
자리에 멈춰 서서 철문을 응시했다.
누군가가 들어서지 않는 이상 열릴 리 없는 문이었다.
문이 다 열리자, 진한은 문을 연 주인공을 볼 수 있었다.
“김……소연?”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반쯤 미쳐있던 여인.
입구로 갔을 거라 믿었던 그녀가 철문을 열고 서있었다.
“토끼야아-!”
그녀는 진한을 보자 양 팔을 활짝 벌리고 달려들었다.
‘토끼?’
진한은 인상을 찌푸리고, 그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그녀는 꼭 껴안고 가슴팍에 볼을 부볐다.
“토끼야, 토끼야. 내가 엘리스야. 내가 엘리스야. 넌 토끼지? 토끼가 맞지? 나 엘리스야. 나는 엘리스야.”
진한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떼어냈다.
“제정신이 아니군.”
“당연하지 여긴 이상한 나라니까! 토끼야아, 토끼야아. 내가 엘리스야. 내가……. 내가 엘리스야아…….”
그녀는 다시 진한에게 달라붙어 고개를 파묻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단 두 개였다.
토끼, 엘리스.
그녀는 주문처럼 읊조렸다.
마치 진한은 토끼여야 하고, 자신은 엘리스여야 한다는 것처럼.
진한의 뇌리에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토끼를 찾는…… 미친년?’
“내가…… 누구라고?”
“토끼!”
“너는…… 누구라고?”
“엘리스!”
진한은 회귀 이전 한때 더즌 헬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광녀 슬레이어를 떠올렸다.
토끼를 찾는 마녀 엘리스.
마법 계열 노말 클레스로 전직해 일인 군단이라 불리던 미친년.
“이런 씨발.”
진한은 뒷목을 부여잡았다.
걸려도 더럽게 걸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