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06 엘리스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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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한은 눈을 크게 부릅떴다.

'……!'

진한은 눈을 크게 부릅떴다.

['학살자의 검'은 슬레이어 창조 스킬로 분류됩니다.]

[스킬 완성도 23%를 달성하셨습니다.]

['학살자의 검'과 동일한 명칭의 스킬이 존재합니다. 이름을 바꿔주세요.]

[수준 높은 스킬을 창조하셨습니다.]

[보상으로 근력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민첩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체력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더즌 헬에는 스킬을 익히는 방법이 세 가지 있었다.

첫째는 아이템을 통해서 스킬을 얻는 방법.

가장 일반적인 경우로, 스킬북이나 특정 아이템을 통해서 스킬을 익힐 수 있었다.

둘째는 전수를 통해서 스킬을 얻는 방법.

슬레이어 혹은 이 세계의 주민에게서 스킬의 체계를 전수받고, 충분히 체계를 익혔을 때 그것은 스킬로 등록된다.

셋째는 바로 창조였다.

일정한 체계성만 갖추고 있으면, 더즌 헬의 시스템은 그 체계성을 스킬로 인정해준다.

어떤 기준에서 그리 되는지 모르지만, 시스템이 인정해 주는 한 스킬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둘째와 셋째의 경우에서, 가능성을 보고 행동했다.

학살자의 검을 자신만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스킬 발동으로 시스템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닌, 스킬 발동 없이도 학살자의 검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었다.

'학살자의 검'은 진한이 회귀 이전에 사용했던 검술 스킬로, 진한에게 칼날 사냥꾼이라는 이름을 얻게 해준 스킬이었다.

슬레이어들이 뽑은 검법 중 열손가락에 꼽히는 스킬로, 이미 존재하는 스킬이었다.

헌데 '슬레이어 창조' 스킬로 분류된다니.

거기에 동일한 이름의 스킬이 있다니.

'학살자의 검을 얻은 게 아닌가.'

진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우선은 뭐가 다른 건지 펼쳐봐야 알 수 있었다.

진한은 학살자의 검을 발동시켰다.

시스템이 진한의 몸을 유도했다.

의지인 듯, 의지가 아닌듯, 자연스럽게 진한의 몸이 움직였다.

수준 낮은 슬레이어였다면, 시스템의 도움 없이 자신이 하루아침에 검법의 달인이 된 것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한은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다.

진한은 시스템이 유도하는 데로 몸을 움직였다.

피난체의 난쟁이 셋이 한꺼번에 진한에게 달려들었다.

진한의 몸이 반보 물러나자 한 놈이 허망하게 진한을 스쳐지나갔다.

진한은 검을 빠르게 역수로 쥐고는 놈의 뒷덜미를 그어버렸다.

난쟁이의 피가 진한의 볼을 적셨다.

그리고 다시 반보 물러나며 피난체의 난쟁이 하나의 목을 따버렸다.

놈의 목에서 솟구친 피분수가 진한의 눈을 가렸다.

진한은 게의치 않고, 피 분수 너머로 검을 뻗었다.

콰득하는 소리와 함께 피난체의 난쟁이의 머리가 박살났다.

진한은 검을 내려다 봤다.

시스템의 유도에 따라 몸을 맡겼다.

확실히 옛날에 익혔던 '학살자의 검'과는 그 형태가 달랐다.

좀 더…….

'형식이 없다.'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검술 스킬은 호불호가 갈리는 스킬이었다.

일반 액티브 스킬처럼 단발성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스킬이었다.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할 때는, 오히려 움직임을 제약했다.

검술 스킬같은 스킬들을 액티브와 패시브의 중간이라는 뜻의, 하프 스킬이라 불렸다.

사용하기 까다롭다.

하지만 그만큼 이점도 컸다.

대부분의 상급 슬레이어들은 하프 스킬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헌데 이번에 만들어진 스킬은 하프 스킬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형식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스킬 보정을 받아 향상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진한은 검에 묻은 피를 허벅지에 슥슥 닦아냈다.

지금 얻은 스킬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천천히 생각해보지.'

시스템에서 인정하고 보상을 주는 스킬은 흔치 않았다.

학살자의 검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초반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크나큰 이점이었다.

진한은 검을 들어 덤벼드는 피난체의 난쟁이들을 겨눴다.

'어디 놀아보지.'

남은 피난체의 난쟁이는 총 다섯.

나쁘지 않은 숫자였다.

*

김소연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바닥을 기어서 입구로 향했다.

그녀의 하반신이 바닥에 질질 끌리며 소리를 내었다.

옷이 헤지고 살이 쓸렸지만 게의치 않았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그녀는 진한이 떠나자 다시 극심한 패닉 상태에 들어섰다.

머릿속이 수천마리의 벌레가 기어 다니듯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이곳은 이상한 나라가 아닐까. 나는 토끼를 쫓아 토끼굴로 돌아온 거야. 이건 꿈 일거야. 꿈. 꿈.'

"웁-! 우웩!"

그녀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뱃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냈다.

꿈 일리 없었다.

인간이 가축처럼 도축당하고, 겁간 당하는 그 장면은…….

"아아아아악!"

꿈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이 현실은 뭘까.

'여기는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말이 안돼. 이상해.'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그녀는 어릴 적 읽은 동화책을 생각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자신 역시 한시적인 여행은 아닐까.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는 꿈이었다.

현실이라면 이상한 나라가 아니다.

이곳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이상한 나라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렇다면 이상한 나라는 어디일까.

그녀가 살던 지구일까, 아니면 다른 어딘가일까.

'어디든 좋아…….'

이곳을 벗어날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토끼는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인도했다.

'토끼, 토끼.'

어쩌면 토끼를 만나면,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앨리스가 아니었다.

앨리스가 아니면, 이상한 나라로 갈 수 없을 것이다.

'아냐, 아냐, 아냐. 나는 앨리스야.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신이시여, 나는 앨리스입니다.'

그래야 토끼가 그녀를 이상한 나라로 안내해 줄 것이다.

'나는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그녀는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래, 나는 사실 앨리스였어.'

이곳이 이상한 나라든 아니든, 그녀가 앨리스라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출구는 토끼가 알고 있으리라.

'토끼, 토끼를 찾아 가자.'

그녀는 바닥을 집고 일어섰다.

힘이 들어가지 않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토끼, 토끼를 찾아 가자. 토끼, 토끼, 토끼.'

그녀는 입구를 응시했다.

토끼는 어디 있을까.

그녀의 머릿속에, 한 남자가 스쳐지나갔다.

앨리스는 토끼를 찾아 유적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진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홉구의 피난체의 난쟁이 사체가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진한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체력(15) 근력(17) 민첩(15) 내구력(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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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를 확인해보니, 내구력을 제외한 각각의 능력치가 스킬 창조 보상으로 5씩 오르고, 추가로 1씩 상승한 상태였다.

'제법 괜찮군.'

예상치 못한 보상에 제법 수월했다.

새로 생긴 검술 스킬을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진즉에 상황이 정리되었으리라.

진한은 스킬창을 열어 검술 스킬을 살펴봤다.

[학살자의 검(가칭)]

스킬 랭크 : (미정)

숙련도 : (미정 : 완성도 27%)

스킬 설명

시스템이 착오를 일으킬 정도로 학살자의 검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학살자의 검과는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킬을 완성하십시오. 랭크와 숙련도가 나타납니다.

(스킬이 완성되지 않아 효과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우선…….”

진한은 학살자의 검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완전히 다른 스킬이라는 것을 안 이상, 이름부터 바꿔놔야 앞으로 혼동하지 않을 것이었다.

‘사냥꾼의 검이라 하지.’

진한은 스킬명을 눌러 이름을 변경했다.

[가칭 ‘학살자의 검’이 ‘사냥꾼의 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진한은 스킬명을 바꾼 후 주위를 둘러봤다.

피난체의 난쟁이에게 당한 신규 슬레이어들 중 살아있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여자 둘, 남자 셋.

진한의 전투 도중 혀를 깨물어 자결한 이들도 있었고, 그새 과다출혈로 죽은 이들도 있었다.

남자 셋은 불구가 되어있었다.

다들 최소한 사지 중 하나는 뜯겨져 나가 있었고, 여자들은…….

‘눈이 죽었어.’

인간이 도축되고, 험한 꼴을 당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편히 보내주는 편이 좋겠군.’

수없이 많이 봐온 눈빛이었다.

저토록 죽은 눈빛을 가진 이들은 차라리 편히 보내주는 편이 나았다.

현대였다면 정신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더즌 헬은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그렇지, 마녀 엘리스가 아닌 이상.’

이전 생에는 엘리스라는 마녀가 있었다.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엘리스라고 주장하는 여자.

떠돌이 슬레이어이면서도 길드 슬레이어들을 상회하는 전력을 가진 슬레이어였다.

그녀는 미쳐있었다.

아무도 그녀의 과거를 몰랐다.

평생을 ‘토끼’를 찾아 더즌 헬을 떠돌았고, 미친 행각을 벌여왔다.

그녀는 미친 행각 끝에 길드들의 추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에게 ‘토끼’로 간택 받아 잡혀 다니다가 도망쳐온 이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이따금 제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이런 상황을 겪었다고 말한다.

여자 둘과 남자 하나.

눈빛이 죽어있는 이들이었다.

진한은 망설임 없이 그들을 편히 보내주었다.

진한은 살아남은 남자 둘에게 다가가, 갈고리에서 내려주었다.

남자 둘은 각각 왼팔과 오른팔이 잘려나가 있었고, 갈고리에 찔린 관통상을 제외하면 간단한 찰과상뿐이 없었다.

더즌 헬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부상이었다.

“운이 좋군.”

다리는 멀쩡하니 기동성은 살았고, 팔 한쪽이 없지만 더즌 헬에서는 이렇다 할 흠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진한은 주위에 떨어진 옷가지를 찢어 남자들의 상처를 지혈했다.

“입구까지 걸어갈 수 있겠나.”

진한의 말에 남자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로서는 이 장소에 머무르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다.

기어서라도 나가야 할 판이었다.

“그래, 그럼 알아서 가도록.”

진한은 남자들을 보내고, 망설임 없이 유적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유적지의 구조는 간단했다.

일직선으로 된 복도, 그리고 복도를 지나면 광장이 하나 나온다.

광장에는 몬스터들이 있었고, 함정은 없었다.

진한은 세 번째 방을 지날 때 즈음 자리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주위로는 피난체의 난쟁이보다 조금 더 큰 덩치에 초록빛 피부를 가진 몬스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간형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유적지군.’

진한으로서는 잘 된 일이었다.

진한은 인간형을 상대하는 데 최적화 된 슬레이어였으니까.

다음 복도가 광장 불빛에 비춰졌다.

바닥에 깔린 벽돌들의 색깔이 이전의 것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꽤나 편리한 곳이군.’

마치 게임의 인스턴트 던전을 연상케 하듯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유적지 중에서 이런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운이 좋았다.

진한은 얼마간 휴식을 취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몇몇 생존자들을 내보냈으니, 교관들이 탐색을 시작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군.’

세 번째 방까지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나아왔다.

교관들이 생존자들에게 내부 상황을 보고받고, 탐색 인원을 꾸려 탐사를 나오는 시간을 고려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두운 복도를 가로지르자,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거대한 철문의 양 옆으로 횃불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진한은 마지막으로 상태창을 점검했다.

체력(17) 근력(18) 민첩(16) 내구력(19)

첫 번째 방에서보다 체력이 +2, 근력이 +1, 민첩이 +1 되어있었다.

경이로운 향상속도였다.

회귀 이전의 경험이 바탕되지 않았다면, 능력치가 오르기도 전에 죽어 나뒹굴고 있었으리라.

‘가능하려나.’

진한은 문 앞으로 걸어가 문에 손을 댔다.

그그그긍-!

진한이 손을 대자 철문이 뒤로 열리며 내부를 보여줬다.

거대한 광장은 횃불들이 빛을 밝히고 있었고, 광장의 중앙에는 거대한 옥좌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진한은 옥좌에 앉은 것을 응시했다.

“나이트군.”

은빛 갑주를 걸친 ‘나이트’가 옥좌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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